오만/역사
1. 개요
이 문서는 오만의 역사에 대해 다룬다.
2. 고대, 중세
아시리아의 왕 아슈르바니팔(BC. 668-627) 치세에 현재의 오만 북동부에 위치한 이브리(현재에도 같은 위치에 같은 이름으로 있다)에서 사람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역사기록에서 오만의 첫 등장이다. 오만 북부 지역은 마간(magan), 마카(maka) 등으로 불리면서 고대부터 걸프만 지역과 인도와 구리, 유향(frankincense)무역으로 교역했다고 한다.
작은 부족과 토후국들로 분열되어 아라비아 반도의 무역으로 번성하였다. 잠시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며 동로마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전쟁으로 이라크 육상 무역루트가 막히자 오만쪽으로 빙 돌아가는 무역이 성행해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 AD 630년경에 아랍인들이 정복하고 이슬람교로 개종하였다. 이슬람 제국 하의 아라비아 반도에서 오만은 처음으로 지역 왕조가 세워진 곳이었다. 3차 피트나 (우마이야-압바스 교체기)를 틈타 750년 카와리지의 이바디파가 세운 이맘국이 그것이다. 비록 2년 후 압바스 군에게 점령되었지만 793년 다시 세워졌고 한세기 후에 압바스 조에게 정복되었지만 10세기 경에는 베두인들의 카와리지에게 점령되었다.
그외에도 오만은 워낙 중요한 무역루트였기 때문에 여러 강대한 제국들, 특히 바다 건너 이란 세력이 처들어와서 점령을 하는 일이 잦았다. 10세기 후반 부와이 왕조를 시작으로 1053년경에는 셀주크 투르크이 일대를 정복하였다. 이후 이바디파를 신봉하는 나바니 왕조와 야루바 왕조 같은 현지 국가들이 성립되었다. 바다(아라비아 해와 페르시아 만)에 접하여 오스만 제국 때도 상당수의 해군력이 여기에서 충당되었으며, 이미 9세기에도 인도네시아 등의 동남아와 무역 중이었다고 한다. #
3. 근세, 근대
- 자세한 내용은 오만 제국 문서를 참고하세요.
여기에 영 껄끄러움을 느낀 야루바 왕조의 술탄들과 오스만 제국이 연합하여 1650년경 포르투갈과 전쟁을 벌여 축출하고 영토를 회복하였다.
이 후 1730년대에 동아프리카 지방의 아주란 술탄국과 스와힐리 지방의 포르투갈인들을 역공하여 축출하고 계속 남진하여 19세기 초중반까지 아랍 유일의 해상제국을 이룬 오만 제국을 세웠다. 동아프리카의 소말리아, 케냐, 잔지바르, 탄자니아의 해안 지역과 서,남쪽으로는 아랍에미리트와 예멘 남부 일부 지역등 아라비아 반도 남부 일대, 동쪽으로는 이란 남부, 심지어 오늘날 파키스탄 령인 발루치스탄과 신드의 해안가 지방 까지 진출했다. 그 당시 오만 제국은 아프리카에서 포르투갈, 스페인과 더불어 노예 무역으로 유명했다. 덕분에 오만의 지배를 받았던 탄자니아 등지에서는 지금도 오만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다. 신밧드의 고향이 북부의 소하르 출신이라는 (신빙성은 조금 의문시 되는) 민담이 전해져 것도 이 때문. 그리고 오만 제국의 수도는 오만 본토가 아니라 오만 제국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있는 잔지바르였다.''' 해상 무역과 노예 무역으로 벌어들인 부가 이곳으로 몰렸기 때문.
1740년대에 이란의 전쟁기계 나디르 샤가 처들와서 쑥대밭이 되고 잠시 정복당하였다. 수도가 잔지바르로 옮겨간 것도 이 시기. 그러나 사이드 가문을 중심으로 다시 이란인들을 축출하고 독립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후 사이드 왕조가 성립되었으나 술탄 사이드 빈 알 부사이드가 1856년 죽자 후계자 분쟁이 일어나 3번째 아들이 무스카트와 오만을 잇고 6번째 아들이 동아프리카 지역과 잔지바르 등을 접수해 오만 제국은 분할되었다. 이때부터 후계자 승계에 조정을 맡은 영국과 서구 열강들의 영향력이 강해져 오만에 내정간섭을 하는일이 잦았다. 1885년 경에 독일이 진출하여 탄자니아 지역에 독일령 동아프리카 식민지를 건설하여 영토를 강탈하고 소말리아 해안가는 이탈리아가 접수하였다. 영국-잔지바르 전쟁 결과 케냐를 비롯한 나머지 동아프리카 지역도 깨끗하게 분할되었다. 오만도 1922년 노예매매를 금지하는 조약을 맺어 사실상 경제적으로 종속되었다.
4. 현대
1951년, 1955년에는 일련의 수호통상조약을 맺어 식민지는 아니었지만 사실상 보호국 취급을 받았다. 1954년 이맘 칼리브가 무력투쟁을 전개하여 동생 타리부는 카이로로 망명하여 오만 이맘청을 설치하고 분리운동을 시작하였다.
1960년 아랍 10개국은 오만 문제를 영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UN의 의제로 채택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후 오만 문제특별위원회가 설치되었고, 그 보고서에 근거하여 1965년 12월 영국의 의존으로 인한 오만국민의 민족자결권과 독립을 방해하고 있다는 취지의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1970년 7월 족장단이 술탄 사이드의 퇴위를 강요하여 그의 외동아들 카부스 빈 사이드 알사이드가 술탄을 계승하였다. 이 때 국명을 무스카트와 오만 술탄국에서 현재의 오만 술탄국으로 개칭하였다.
새로운 술탄은 정치범을 석방하고 중세기적 국가에서 탈피하여 오만의 국정을 개혁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1972년 정식으로 UN에 가입하였다. 카부스 술탄 하에서 오만은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경제적, 정치적 발전을 이룩하였지만 국왕독재국가라는 특성상 후계자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나라의 장래도 결정될 듯 하다.
2013년 5월부터 오만은 주말을 금, 토로 변경했다.
2020년 1월 카부스 국왕이 서거했다. 오만은 후계자를 선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