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아르메니아 관계
1. 개요
우크라이나와 아르메니아의 관계. 우크라이나는 아제르바이잔과 가깝다보니 아르메니아와는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게다가 아르메니아는 친러이고 우크라이나는 반러라는 차이점도 있다.
2. 역사적 관계
2.1. 현대 이전
우크라이나와 아르메니아는 역사적인 관계가 깊은 편이면서도 사이가 안 좋은 편이다. 다만 우크라이나에는 전통적으로 아르메니아인 공동체가 존재해왔다. 한 때 우크라이나가 가톨릭 국가였던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영토였던 영향으로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인들 상당수가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전례법을 고수하되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는 아르메니아 가톨릭으로 종파를 옮겼기 때문이다. 특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던 갈리치아 지방에는 아르메니아 가톨릭이 우세했다. 폴란드-리투아니아의 통치하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받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통치하에서도 종교의 자유를 인정받았다.
20세기에 러시아 제국이 혁명으로 몰락하고 소련이 출범한 뒤에 서쪽 지역을 제외한 우크라이나와 아르메니아는 소련의 공화국이 되었다.[1] 양 지역은 소련의 공화국이 되면서 91년까지 소련의 일부였다. 91년에 소련이 해체되면서 양 지역은 독립국이 되고 공식 수교했다.
2.2. 현대
우크라이나와 아르메니아는 독립국이 된 뒤에 공식 수교했지만, 양국은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해선 다른 편이다. 우크라이나가 반러국가인 반면, 아르메니아는 친러국가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는 아르메니아의 적국인 아제르바이잔과 친하기 때문에 아르메니아와 사이가 좋지 않다. 아르메니아의 친러 성향을 우크라이나가 고깝게 보는 경향도 있다.
아르메니아인 학살 언급에 대해 소극적인 경향도 일부 있는데 물론 우크라이나 내에서도 인정 촉구 움직임이 있다. 그러나,돈바스 전쟁 당시 일부 아르메니아인들이 용병으로 참전하여 친러파 편들어주면서 우크라이나와 사이는 얼어붙었고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때 우크라이나는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했다. 무엇보다 아르메니아와 갈등이 큰 원인이 아르차흐 공화국 인정 여부 때문이다. 노보로시야같은 친러 세력 지역이 독립한다라고 하는 우크라이나로선 아르차흐 인정을 필사적으로 반대할 수 밖에 없다. 같은 문제를 가진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이 이런 문제로 우크라이나와 우호적이다.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계 우크라이나인은 10만명에 육박하는것으로 추산되며 율리야 티모셴코 우크라이나 전 총리가 아르메니아계 혈통으로 알려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