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차흐 공화국

 






소련 치하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의 영역
1994년~2020년 아르메니아 치하 아르차흐 공화국의 영역[1]
2020년 전쟁 이후 바뀐 현재의 영역[2]
'''아르차흐 공화국'''
'''Արցախի Հանրապետությու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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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수도
스테파나케르트 / 한캔디
정치체제
공화제, 대통령제
대통령
아라이크 하루튜냔
언어
아르메니아어
러시아어
아제르바이잔어
인구
150,932명(2015년 센서스)[3]
1. 개요
2. 상징
2.1. 국명
2.2. 국기
2.3. 국가
3. 역사
4. 주민
5. 군대
6. 논쟁
7. 외교
7.1. 터키와의 관계
7.2. 이란과의 관계
7.4. 아제르바이잔과의 관계
7.5. 조지아와의 관계
7.6. 아르메니아와의 관계
7.7. 러시아와의 관계
8. 정치
9. 관광과 출입국
10.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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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언어별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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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어 / 아제르바이잔어
Արցախի Հանրապետություն[11] / Qondarma Dağlıq Qarabağ Respublikası[12]
아르차히 한라페투튠 / 곤다르마 다글르그 가라바그 레스푸블리카스
페르시아어
جمهوری آرتساخ (Jomhuri-ye Ārtsāx)
좀후리예 아르차흐
러시아어
Наго́рно-Караба́х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Nagórno-Karabáxskaja Respúblika)
나고르노카라바흐스카야 레스푸블리카
영어
Republic of Artsakh

아르차흐 공화국은 이란러시아 사이, 캅카스 지역의 아제르바이잔 영내에 있는 미승인국이다. 임시 수도스테파나케르트(Ստեփանակերտ) / 한캔디(Xankəndi)이다.[4] 소련 치하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의 면적은 4,388 ㎢였으며, 이후 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힌 아르차흐 공화국에서 주권을 행사하는 영역은 11,458 ㎢에 달하였다. 인구는 150,932명(2015)이다.
2020년 11월 10일,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러시아가 삼자회담으로 나고르노카라바흐에 속하지 않았던 지역들과 카라바흐 남부의 아제르바이잔 점령지를 아제르바이잔에게 넘겨주기로 합의함에 따라 면적이 약 3,170 ㎢로 축소되었다.

2. 상징



2.1. 국명


1991년 독립 선언 이후 대내외적인 공식 명칭은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Լեռնային Ղարաբաղի Հանրապետություն)'[5]이였으나, 2017년 2월 20일에 헌법개정 국민투표를 거쳐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에서 '아르차흐 공화국'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나고르노카라바흐라는 명칭은 러시아어 표현인 '나고르노카라바흐(Нагорно-Карабах)'에서 유래한 것이다. '나고르노'는 '산악'을 나타내는 형용사 '나고르니이(Нагорный)'의 단어미형(Краткая форма)이다.[6] '카라바흐'는 튀르크어로 '검다'라는 의미의 '*kara(아제르바이잔어로는 qara)'와 페르시아어로 '정원'을 의미하는 'باغ‎ (bâğ)'가 합쳐진 조어이다. 관련 서적. 어원에 관련된 글.
엄밀히 말해 카라바흐라는 용어는 나고르노카라바흐뿐만이 아니라 아르메니아 남부의 잔게주르(Զանգեզուր) 산맥에서 아제르바이잔 중앙을 관통하는 쿠라 강까지의 넓은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아르메니아 남부 슈니크 주와 아제르바이잔 서남부 전체를 포괄하는 지역이다. 카라바흐의 경우 서쪽은 산악 지대로, 동쪽은 평지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카라바흐 서쪽 산악지대 중에서도 동쪽 평지대와 맞닿아 있는 끝 지역에 해당된다.
또 다른 명칭인 '아르차흐(Արցախ)'는 아르메니아어에서 유래하며 이는 동시에 대아르메니아 왕국을 구성하던 15개의 아슈하르(Աշխարհ) 중 하나였다. 미승인국인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은 2017년 2월 20일에 헌법 개정안 국민 투표를 실시하여 대내외적인 공식 명칭을 아르차흐 공화국(Արցախի Հանրապետություն)으로 변경한 바 있다.

2.2.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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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6월 2일에 제정되었으며, 아르메니아의 국기를 기반으로 하얀색 V자 모양이 계단처럼 그려져 있는 것은 아르메니아의 전통 융단에서 나왔으며, 아르메니아의 영토에서 삼각형 모양으로 분리된 지역임을 뜻한다.

2.3. 국가




보컬판
제목은 "아르차흐는 자유와 독립을 원하리(아르메니아어: Ազատ ու անկախ Արցախ 아자트 우 안카흐 아르차흐)".
아르메니아어 가사
한국어 해석
Ազատ ու անկախ Արցախ,
Քո տուն-ամրոցը կերտեցինք,
Պատմությունը մեր երկրի,
Մեր սուրբ արյամբ մենք սերտեցինք։
아르차흐는 자유와 독립을 원하리.
우리 모두가 지은 요새가 있네.
우리의 피와 우리의 조국은,
역사 속에서 남으리라.
Դու բերդ ես անառիկ,
Բարձունք սրբազան, վեհ անուն,
Մասունք աստվածային,
Քեզնով ենք հավերժանում։
너는 난공불락의 요새이니,
신성한 봉우리이자, 고귀한 이름의
신이 내리신 은총이요.
너로 하여금 우리는 존속하노라.
Դու մեր լույս հայրենիք,
Երկիր, հայրենյաց դուռ սիրո.
Ապրիր դու միշտ խաղաղ,
Մեր հին ու նոր Ղարաբաղ։
너는 하늘이 주신 조국이자
우리의 고향, 우리의 사랑이다.
평화 속에서 살아가리라
우리의 오랜 카라바흐에서.
Քաջերն ենք մենք հայկազուն,
Մռավ ենք, Քիրս ենք ու Թարթառ,
Մեր վանքերով լեռնապահ՝
Անհաղթելի մի բուռ աշխարհ։
우리는 자랑스러운 하이크와
므로브, 키르스, 타르타르의 후예이다
높은 산 속 수도원 아래
우리에게 맞설 자 그 누구도 없나니.

3. 역사





3.1. 소련 치하



1923년 이오시프 스탈린이 이 지역을 멋대로 아제르바이잔에 넘겨준 것이 분쟁의 불씨가 되었다. 아제르바이잔에 우호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같은 민족인 신생 터키 공화국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기 위한 정치적인 고려이자 동시에 매우 강경했던 아르메니아 민족주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결정이었다. 상당히 강성했던 아르메니아 민족주의는 소련 해체 이전까지 소련 국내 주요 민족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스탈린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아르메니아 민족주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민족의 영산으로 간주되는 아라라트산을 터키 영토로 인정할 정도였다. 그렇게 1923년에 자치주가 들어섰다.
일단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둘 다 소련에 복속되어, 두 나라의 경계선은 단지 행정적 경계선에 불과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다툼은 일어나지 않았다.[7] 문제는 1980년대 말 소련이 무너지면서 이 경계선이 그대로 국경선으로 변하면서 분쟁이 시작되었다.

3.2.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3.3.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이후


이후에는 잠시 평화가 왔지만, 2010년 이후 다시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소련 붕괴 이후 석유로 국력이 강화된 아제르바이잔은 영토 탈환을 원하고 있었다.
2016년 4월에는 꽤 큰 규모의 전면전쟁이 일어났으나 러시아의 중재로 4일만에 양국이 정전에 합의했다. 아르메니아에서는 4월 전쟁이라 부른다.

3.4.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결국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아르메니아의 패배로 끝나면서 아르차흐 공화국의 미래도 불투명하게 되었다. 이미 아르메니아와 아르차흐를 이어주던 땅도 5km 폭 정도의 도로만 남기고 모조리 아제르바이잔이 차지한 상태이고, 거기에 나고흐카르바흐 지역 땅도 굉장히 많이 빼앗겨 영토가 상당히 축소되었다. 특히 제2도시 슈샤마저 아제르바이잔령으로 넘어갔다. 전쟁 전 아제르바이잔은 아르차흐에게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대신 아제르바이잔 산하 자치공화국이 되든가, 현상유지를 하더라도 본래 소련시절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 이외의 구 아제르바이잔 SSR에 속했던 7개구를 넘겨주든가 식으로 1990년대부터 꾸준히 제시를 해왔으나 아르메니아가 이것을 모두 거부했고, 전쟁에서 패배한 이상 이전과 같은 제시는 다시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이 본인 입으로 공개연설을 했다. 때문에 평화유지군이 철수한 이후의 아르차흐의 운명은 전적으로 아제르바이잔의 결정에 달리게 되었다.

4. 주민


민족별 구성은 소련 붕괴 이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인구의 약 74%가 아르메니아인, 25%가 아제르바이잔인으로 집계되었으나, 전쟁 때 이 지역의 아제르바이잔인은 모두 난민이 되어 떠나고, 지금은 아르메니아인 99.7%, 기타(러시아인, 쿠르드인, 아시리아인) 0.3%이다.
한편 아제르바이잔 행정구역상의 구바들르(Qubadlı), 라츤(Laçın), 재브라이을(Cəbrayıl), 쟁길란(Zəngilan), 캘배재르(Kəlbəcər), 퓌줄리(Füzuli), 아그담(Ağdam)의 7개 행정구(Rayon)는 원래 나고르노카라바흐에 속하는 지역은 아니었으나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의 결과로 아르차흐 공화국의 지배지역이 되었다. 이 중 퓌줄리와 아그담을 제외한 5개 구는 전 지역이 아르차흐의 통제 아래에 있으며 퓌줄리는 전체 면적의 약 33%, 아그담은 약 77%가 아르차흐의 통제 아래에 있다. 이들 7개 구의 면적은 8,810 km2, 아르차흐가 통제하고 있는 지역의 면적은 7,633km2이다.
1989년 당시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제외한 아르차흐 공화국 영역의 인구는 (퓌줄리와 아그담 전역을 포함해) 421,726 명으로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189,085명)보다 2배 넘게 많았다. 이들 지역의 인구구성은 79년 당시에는 (퓌줄리와 아그담을 제외하고) 아제르바이잔인 97.7%, 쿠르드인 1.3%, 러시아인 0.7%, 그리고 아르메니아인 0.1%로 구성되어 있었다. 현재 이들 지역의 인구는 아르차흐 공화국의 나머지 지역처럼 아르메니아인이 절대다수를 점하고 있지만, 전체 인구수는 해당 지역에 설치된 샤후먄 구(Շահումյանի շրջան)와 카샤타그 구(Քաշաթաղի շրջան)의 인구를 합쳐도 05년 기준 12,323명으로 전쟁 이전에 비해 크게 감소하였다.
2020년 전쟁 이후 원래 아제르바이잔인이 다수였던 나고르노카라바흐 바깥 지역과 더불어 슈샤와 남부 하드루트 구 지역이 아제르바이잔에 넘어가게 되었다. 아르차흐 공화국에 남은 인구 대다수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이었기 때문에 아제르바이잔에 넘어간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는 소수였지만, 전쟁의 결과로 남은 아르차흐 공화국 영토의 지위 역시 불확실한 상태로 놓이게 되어 앞으로 남은 아르메니아인들의 운명도 불투명하게 되었다.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전쟁 기간 동안 수많은 성명과 외신 인터뷰에서 "그곳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 민간인들에 대해 그들도 우리 국민이며, 조지아나 다른 나라들에서 아르메니아인과 아제르바이잔인들이 서로 공존하듯이 카라바흐에서도 그럴 수 있다. 우리는 아르메니아 민간인들에게 복수하지 않을 것이다. 아제르바이잔의 임금, 복지 수준은 아르메니아보다 높기 때문에 우리가 나고르노카라바흐를 회복하면 그곳의 민간인들도 더 높은 수준의 복지를 누리고 이전보다 더 부유해질 수 있다"와 같은 발언으로 이들을 붙들어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전쟁기간에도 아제르바이잔 점령 지역으로 이동하려는 아르메니아 민간인들은 막지 않고 귀순을 허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5. 군대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복무를 일절 허용하지 않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다. 아제르바이잔과 항시 대치하며 교전까지 벌이는 탓이 크다. 때문에 이 나라에 사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는 감옥에 갈 수 있다.

6. 논쟁


현재 아르차흐 공화국은 독립국, 또는 아르메니아와의 통합을 추진하지만, 아제르바이잔의 격렬한 반대와 지역의 질서 붕괴를 우려하는 조지아와 터키, 이란 등 이웃 나라들 및 미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염려 때문에 현상 유지 중이다. 최악의 가능성은 아제르바이잔이 이 지역에 대한 무력 탈취에 나서는 것인데, 실제로도 아제르바이잔은 Azernews등의 민간 언론사를 통해 언젠가 군사력을 동원하여 되찾을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소련 이후 아르메니아에 주둔하던 러시아군은 철수했다. 그러나 아제르바이잔과 터키의 양면 봉쇄를 돌파할 방법이 없던 아르메니아와, 반러로 돌아선 조지아를 견제하고 CIS 지역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보존하려던 러시아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1995년부터 귬리(Գյումրի, Гюмри)에 제 102기지를 설치하고 S-300, MiG-29와 함께 5000여 명의 러시아군 병력이 주둔해오고 있다. 원래 25년 기한이었지만, 2010년 메드베데프의 방문 때 49년(만료기간 2044년)으로 연장했다. 이 주둔 러시아군이 대한민국주한미군처럼 이 지역의 전쟁 억제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제르측은 휴전이후 25년이 넘는 시간동안 만족할만한 협상결과가 끝끝내 나오지않자 평화적 분쟁해결이 어렵다고 판단, 자국의 군대와 민간인들이 공격당한 틈을 타서 자신들의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해 결국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러시아가 아르메니아를 지원하니 아제르바이잔의 러시아에 대한 감정은 당연히 좋을 리가 없다. 그래서 아제르바이잔 개밸래구(Qəbələ rayonu)의 러시아군 미사일 조기경보용 레이더 기지도 주둔 기한 연장을 거부당하고 2012년 말 운용을 정지했다. 또한 아제르바이잔은 친미정책으로 외교 정책을 바꾸고 있다. 2008년에 옆나라 조지아가 어설프게 반러 친서방 하다가 러시아한테 된통 당했기 때문에 아제르바이잔은 더욱 대비를 철저히 하고 있는데, 이스라엘과 군사협력까지 하고 있다. 이슬람 나라로서 유일무이하게 이스라엘군이 파병되어 훈련도 같이 한다. 이스라엘로서도 바로 핵무장을 한다고 하여 적국으로 견제하는 이란을 바로 국경에 맞닿은 아제르바이잔이 이렇게 먼저 손 내밀고 같이 훈련도 하자고 하니 환영할 일. 덕분에 이스라엘제 무기도 수출하고 아예 아제르바이잔군에 이스라엘 교관이 훈련도 일부 맡을 정도가 되었으며 아제르바이잔에서 수출하는 석유가 이스라엘군 연료 절반이나 될 정도로 강력한 우방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아르메니아와 이스라엘은 외교적으로 차가워진 상태. 2010년대 후반 터진 국경분쟁에서 아제르바이잔군은 이스라엘제 무기 효과로 아르메니아군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으니 아르메니아로서도 이스라엘이 미울 수 밖에 없다.
아르메니아와 맞닿게 된 현재 영토는 2020년까지 이어져왔다. 전쟁 중에는 공항이 파괴되어 하늘길이 막히기도 했지만, 지금은 모두 복구되었으며 국영항공사까지 만들어졌다. 하지만 항공기 운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아제르바이잔이 비행기를 격추시키겠다고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정상적인 비행이 가능할지는 불투명하다.
현재 아르차흐 공화국은 국제적인 미승인국으로, 러시아와 아르메니아부터 이 나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르차흐 공화국을 인정하는 "나라"는 압하스, 남오세티야, 트란스니스트리아인데, 여기도 국제적인 미승인국으로 나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아르메니아로서는 아르차흐를 승인하려니, 아르차흐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구소련권 내 미승인국 나라들(압하스, 남오세티아, 트란스니스트리아, 노보로시야 등)도 승인하라는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아르메니아는 코소보, 압하스, 남오세티아 등은 물론 팔레스타인도 승인하지 않는다.[8] 미승인국인 탓에 세계은행의 투자도 막혀 제대로 된 공업 시설이나 여러가지 인프라를 갖추기도 어렵다. 더불어 아제르바이잔과 터키의 보복으로 원유 및 가스 파이프와 철도 노선이 아르메니아를 비껴가 조지아를 지나가게 건설되면서 아르메니아 또한 막대한 이득을 날려버렸다.
러시아는 아르메니아를 도운 대가로 아르메니아에 러시아군을 장기간 주둔시켰으며, 자연히 아르메니아의 군사적, 경제적 대러시아 의존도 또한 높아졌다. 정부의 노골적인 친러정책 강요에 아르메니아에서도 일부 국민들에 의해 2012년 반러 시위가 일어났으나, 아르메니아는 현재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이라는 두 적국에 둘러싸인 상황이라 러시아의 지지가 매우 절실하기 때문에, 유로마이단과 같이 러시아에 대놓고 반기를 들기는 커녕, 할 말도 못하는 처지이다. 예를 들면 아르메니아에 주둔하던 러시아군이 탈영하여 아르메니아인들을 강간하고 죽이는 일이 벌어졌지만 러시아 군사재판으로 고작 징역 5년을 때리고 사건을 끝내거나, 러시아가 독점하는 전기의 요금을 갑자기 16%나 올리거나 하는 등의 행패에 시민들이 반발하여 시위까지 벌어졌으나, 아르메니아 정부는 시위를 필사적으로 뭉개버렸다. 아르메니아로서는 러시아가 없으면 아제르바이잔과 터키를 상대할 수 없기에 더러워도 참아야 하는 상황이다. 러시아 외에 아군으로 끌어들일 나라가 마땅치 않은데 아르메니아는 내륙국이라 미국의 개입도 한계가 있고, 이란이나 조지아도 아제르바이잔과 터키 두 나라와 교류가 많고 특히 조지아는 경제적으로 많이 기대는 터라 별 수 없이 아르메니아에 선을 긋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에는 항구도 있고 석유도 나오지만, 아르메니아는 뱃길이나 자원도 없는 데다가 사방이 적국에 둘러싸여 있어 상황이 몹시 암울하다. 또한 아르메니아는 사실상 미국의 성공한 동포들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가난한 나라인데, 적국인 아제르바이잔이 미국 경제와 정치계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유태인들과 이스라엘과 우호를 맺으면서 과거 90년대 미국이 지지하던 아르메니아 일도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아제르바이잔 군기지를 이스라엘에게 빌려주고 이스라엘군 연료를 무려 40%나 수출해주는 아제르바이잔에 대해 미국과 이스라엘이 옹호하고 반대로 위에 서술한 대로 러시아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만 러시아는 오히려 행패를 부린다. 이 지역의 미래는 그리 밝지만은 않다. 비록 미국 8개 주에서는 아르차흐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연방정부가 아닌 주 의회의 법안은 외교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미시간주, 나고르노카라바흐 승인. 정작 아제르바이잔이 친미적 태도를 보이면서 미국 정계가 아제르바이잔을 더 배려하고 있는게 현실이고 아르메니아는 상술한대로 친러시아 쪽으로 기울었으니...
2016년 4월 2-5일, 아르차흐의 영유권을 놓고 접촉선에서 아르메니아군과 아제르바이잔군의 충돌이 일어나 아제르바이잔군 95명이 사망하고 Mi-24 공격헬기 1대가 격추당했으며, 아르메니아군 역시 200여 명의 사상자가 나고 전차 6대와 야포 15문을 손실했다. # 오래가지 않은 작은 국경 분쟁이지만 당시 미국은 입다물었고 이스라엘은 아르메니아를 비난했으며 이젠 미국에게 찍힌 셈이 된 아르메니아는 더더욱 러시아에게 의존해야 할 판국이다.
사실상 남오세티야압하스 같은 캅카스 지역의 미승인국가들과 비슷한 처지인데 차이가 있다면 남오세티야와 압하스는 그 뒤를 봐주고 있는 러시아가 정식 주권 국가로 인정하고 공식 수교관계까지 맺고 있지만 아르차흐 공화국은 그 뒤를 봐주는 아르메니아조차도 주권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덕분에 아르메니아와 동맹 상호 조약을 맺어도 아르차흐가 아제르바이잔에게 미사일을 맞던 러시아는 끼어들 수 없다고, 아르차흐 자체는 러시아와 어떤 조약도, 우호도 없는 곳이라고 하고 있다.
물론 비공식적이지만 아르차흐를 지원하고 있는 게 아르메니아이고, 아르메니아가 아르차흐 공화국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 지역을 외국이 아닌 미수복지역으로 보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다. 실제로 아르차흐 공화국 초대 대통령 로베르트 코차랸(Robert Kocharyan, 1994~1997 재임)은 재임 중 아르메니아 총리로 임명되어 사임한다(...). 이 사람은 이후 아르메니아 대통령(1998~2008)이 된다. 아르메니아의 정권이 친서방진영으로 바뀐 이후 아르차흐에서도 파시냔의 지지를 받은 하루튜냔이 대통령이 되었다.
2020년 9월~11월에 벌어진 아제르바이잔과 전쟁 와중에 아르메니아는 아르차흐를 국제적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서방 국가들에서는 몇몇 지방 정부에서만 아르차흐의 독립을 인정했고, 무엇보다도 아르메니아 본국도 공식적으로는 아르차흐를 독립국으로 승인하진 않았다. 한편 프랑스나 오스트리아처럼 주요 서방국이 인정한 코소보를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와 세르비아 눈치를 보며 반대하기 때문에, 아르차흐를 인정이라도 한다면 러시아계 입김이 쎈 남오세티야나 압하스에서 노보로씨야 연방이나 북키프로스 등등도 마찬가지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할 터다.[9]
결국 전쟁이 러시아 중재로 명목상으로는 평화협정이었지만 사실상 아르메니아의 전면 항복으로 전쟁이 끝났고, 서구의 지원 없이 러시아군만 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하면서 아르차흐는 영토의 절반 이상을 아제르바이잔에게 넘겨주고 나머지 영역조차도 아르메니아군이 철수하고 러시아군이 5년 시한부로 치안을 유지하는 지역이 되었다. 따라서 5년 뒤인 2025년에 러시아군이 철수할 경우, 아제르바이잔에서 나머지 아르차흐 땅을 차지하려고 전쟁을 재개할 가능성을 우려한 아르메니아는 여기에 미군이나 나토군을 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하길 바라고 있다. 물론 이곳은 러시아 영토와 매우 가까워서 서방 군대를 배치하면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 때문에 전쟁을 치룬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에 미군도 나토군도 주둔하고 있지 않아서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 특히 나토군의 경우 코소보 전쟁 개입 당시에도 상당한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10]

7. 외교


압하스, 남오세티야, 트란스니스트리아는 같은 미승인국이라서 그런지 승인을 해주었다.

7.1. 터키와의 관계


아제르바이잔과 같은 튀르크계이고, 친하기에 아르차흐를 인정하지 않으며, 매우 부정적으로 취급한다.

7.2. 이란과의 관계


아르메니아가 친이란이고 군사적으로도 일부 동맹을 맺었지만, 동시에 사이가 안 좋아도 이란 내에도 아제리인들도 많고 같은 시아파라는 공통점들도 있기에 반쯤은 중립으로 보는 편이다.

7.3.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중앙아시아권의 서투르키스탄 5개국들은 중립으로 보는데, 이는 서투르키스탄으로 이주된 아르메니아계 후손들도 있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아제르바이잔처럼 같은 이슬람권에다 소련의 영향으로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나라들이며, 대부분 튀르크권에 해당되는 곳(또는 부분적으로 튀르크화되어 튀르크의 영향을 받은 곳)이 많기에 튀르크 민족주의 또는 일부 범이슬람 성향은 주로 아제르바이잔을 편들고, 반대로 아르메니아계 또는 친아르메니아 성향의 인물들은 아르차흐와 아르메니아를 지지하거나 인정하는 편이지만 서로 직접 부딪히고 싸우는 일들은 잘 없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중립으로 보기 때문이다.

7.4. 아제르바이잔과의 관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아제르바이잔에게는 아르메니아에 빼앗긴 땅, 아르메니아가 억지로 세운 괴뢰국 취급도 아닌 자국내 반란세력 정도로 여기고 있다. 일단 아제르바이잔에서 부르는 명칭부터가 "소위"(Qondarma)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 혹은 "범죄정권" 이며, 모든 공식성명서와 언론기사에서도 이 명칭들을 사용하고 있다. 공식 대화상대로도 여기지 않기 때문에 2020년 전쟁기간 내내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와 대화를 할 지언정 아르차흐와 대화를 시도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종전성명서 또한 때문에 러시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명의로 이루어졌다. 종전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계획에 대해서도 아제르바이잔의 공식입장은 나고르노카라바흐(아르차흐) 내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 민간인들 또한 아제르바이잔 국민이며 아제르바이잔은 이들을 보호하고 재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단 반란자들은 별개다" 라는 입장이다.

7.5. 조지아와의 관계


조지아는 나고르노 카라바흐 분쟁과 아르차흐의 존재를 중립으로 보기에 수교하지 않았다. 또한 아르차흐가 아제르바이잔인들에게 저지른 학살을 비판하는 등 아르메니아가 아제르바이잔에게 강제로 빼았았다고 여기는 것도 있다.

7.6. 아르메니아와의 관계


아르메니아에게 아르차흐는 아르메니아에서 분리된 같은 민족같은 포지션이기에 서로 큰 분쟁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아르메니아가 아제르바이잔에게 크게 패전하고, 영토를 내주게 되면서 아르메니아에 실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7.7. 러시아와의 관계


아르메니아가 기본적으로 친러에 해당되고, 러시아도 크림 반도와 남오세티아를 가졌기에 아르메니아의 편을 들어주며 아르차흐를 미승인국으로서 인정하는 상황이다.

8. 정치


아르차흐 공화국은 독립 이후 2017년까지 이원집정부제를 시행하고 있었으며, 총리직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2017년의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통해 완전한 대통령제로 권력 구조를 개편하면서 총리직은 폐지됐다.

의회는 총 33석이고, 대선과 총선을 같이 치른다.
총선 방식은 5년 임기의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17석)+소선거구제(16석)였으나, 2017년의 헌법 개정 국민투표와 함께 33석 전부를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로 선출하는 것으로 개정했다. 대선은 결선투표제를 시행하고 있다. 사실상의 본국인 아르메니아가 내각제로 바뀐 것과는 정반대인 것.
2020년 치러진 대선에서는 아라이크 하루튜냔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전쟁 패배로 그는 아르메니아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은 그를 2020년 전쟁 당시 전범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아제르바이잔 검찰청이 기소한 바에 따르면 갠재, 배르대를 비롯한 전장이 아닌 아제르바이잔 본토 내의 도시들에 대한 포격 및 그로 인한 민간인 피해 및 건물 피해에 대한 책임, 또한 백린탄과 집속탄 같은 금지된 무기의 사용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다만 하루튜냔을 비롯한 수뇌부와는 별도로 아르차흐 공화국에 대한 당근도 제시하고 있는데, 아제르바이잔 산하로 들어올 경우 똑같은 자치공화국인 나흐츠반 수준의 자치를 보장하고 전후복구 및 거주중인 아르메니아 민간인에 대한 안전보장과 지원을 약속했다.
그리고 사실상 도시국가로 전락함에 따라 지방의회로 재편 가능성이 높은 상태이다.

9. 관광과 출입국


나고르노카라바흐는 공식적으로는 대한민국 국적자를 대상으로 입국 전 사전비자를 요구한다. 비자는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 있는 아르차흐 공화국 대사관에서 당일치기로 발급이 가능하다. 그러나 사실상 도착비자 제도를 운영 중이라 할 수 있는데, 유효한 여권을 들고 국경 검문소에서 입국신청서를 쓴 뒤 수도 스테파나케르트에서 거주등록 절차를 밟으면 비자 발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르메니아를 통해서만 출입국이 가능하며, 아르메니아 예레반 - 고리스 - 스테파나케르트 노선의 미니버스(6시간 30분 소요)만이 유일한 국제선 대중교통이다. 2016년 1월 기준으로 하루 1대, 오전 7시에 예레반 버스터미널에서 마슈르카를 운행한다. 수도 스테파나케르트를 중심으로 각 지방도시행 버스가 있으며, 외국인의 경우 버스티켓을 살 때 국내선임에도 비자를 검사한다. 스테파나케르트 내에선 시내버스가 야간까지 활발히 있는 편이다.
미승인국인 만큼 아르차흐 내에서 국제로밍이 되는 통신사는 거의 없으며 현지 통신사인 KT -(Karabakh Telecom, 카라바흐 텔레콤)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이 곳에 입국해서 여권에 나고르노카라바흐 스탬프가 찍히게 되면 사전에 아제르바이잔 외교부의 허가를 받지 않는 이상 아제르바이잔 입국이 평생 불가능하다고 한다. 때문에 입국 시 별지에 비자와 도장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좋다. 아제르바이잔 외교부 홈페이지(아제르바이잔어)에 가보면 아예 카라바흐 월경자("Azərbaycan Respublikasının işğal edilmiş ərazilərinə qanunsuz səfər etmiş xarici ölkə vətəndaşlarının siyahısı")라는 목록이 상시 갱신되어 PDF 파일로 공개되어있다. 공인도 예외는 아니라 아제르바이잔 외교부의 양해가 없는 아르차흐 입경에 대해 아제르바이잔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여행경보제도에 의해 철수권고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나고르노카라바흐 및 인근 7개 지역'''이라는 이름으로 아르차흐 공화국이 통치하는 지역을 철수권고로 지정해 놨다.

10. 스포츠


2018년부터 12개의 팀으로 구성된 축구리그인 아르차흐 프리미어 리그를 시작하기로 결정하였다.
ConIFA 비공식 월드컵 대회를 2019년에 개최했다.

[1] 샤후먄구(Շահումյան շրջան), 마르타케르트구(Մարտակերտի շրջան) 일부, 마르투니구(Մարտունու շրջան) 일부는 아제르바이잔측에서 괴이괼구(Göygöl rayonu), 고란보이구(Goranboy rayonu), 태르태르구(Tərtər rayonu), 호자밴드구(Xocavənd rayonu)로서 통제해왔다.[2] 붉은색 부분은 아제르바이잔이 전쟁으로 점령하고 실효지배하는 구역, 빗금쳐진 부분은 아르메니아가 철수할 지역, 파란색 부분은 아르차흐 공화국과 아르메니아를 연결하는 라츤 회랑, 나머지 하얀색 부분이 현재 아르차흐 공화국이 실효지배 하는 구역이다.[3] 2020년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전쟁이 아제르바이잔의 승리로 끝나면서 아르차흐는 영토의 상당 부분을 잃었으며, 아르메니아인들이 대거 탈출하고 있다. 따라서 2020년의 인구는 이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보인다.[4] '스테파나케르트'는 현재 실질적으로 점유하고있는 아르메니아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아제르바이잔에서는 '한캔디'라고 불린다. '스테파나케르트'는 아르메니아인 볼셰비키 지도자인 '스테판 샤후먄(Ստեփան Շահումյան, 1878–1918)'의 이름에서 따왔다. '한캔디'는 '(Khan, 아제르바이잔어로 Xan)의 마을'이라는 의미이다.[5] ''Lernayin Gharabaghi Hanrapetut'yun''[6] 더 구체적으로는 삽간사(Интерфикс)인 -o-가 붙은 형태이다. 이 같은 형태의 합성어로는 'Паровоз(Пар-о-Воз, '증기기관차')'가 있다.[7] 평화로워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계속 불만을 품고 있었으나 단지 게릴라 행위를 계속하기에 소련의 통제가 확고하여 무력분쟁이 멈추었다는 의미.[8] 관련기사 또는 사설1(영어), 관련기사2(영어), 팔레스타인의 국제 승인 문제(영어위키백과) 참조.[9] 코소보조차도 아직도 유엔 반수 이상이 인정하지 못해 유엔조차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10] 세르비아도, 알바니아도 코소보 전쟁 당시에는 모두 나토 비회원국이었던 데다가 코소보는 아예 미승인 상태였다. (알바니아는 2009년 가입) 국제법적 개입 근거가 모호한 상황이다 보니 러시아가 강하게 비난했던 바가 있다. 그나마 당시는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으로 나라가 개판이 된 보리스 옐친 행정부였기 때문에 영향력 행사에 제약이 있었지만 현재의 블라디미르 푸틴 행정부는 이를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