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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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볼로 보는 우크라이나 외교.우리나라 : 우크라이나
부모 : 자포로제 카자크
조상 : 키예프 루스
절친 : '''러시아''', 폴란드
1. 개요
우크라이나는 루마니아, 몰도바,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주변국들과는 사이가 안 좋다 물론 러시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며 이들과는 갈등은 최소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신들을 괴롭혀 온 폴란드, 헝가리는 말할 것도 없고 루마니아, 몰도바와도 정치적인 문제와 영토분쟁도 있다. 슬로바키아와도 갈등이 있지만 그나마 나은 상태.
2. 유럽
2.1. 유럽연합 가입을 위한 행보
1991년 소련 해체로 독립국이 된 우크라이나는 크랍추크, 쿠치마, 유셴코, 야누코비치로 이어지는 정권 변화에도 EU 가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우크라이나는 94년 6월 독립국가연합(CIS) 회원국 가운데 최초로 EU와 동반자협력협정(PCA, 1998년 발효)을 체결해 양자협력의 포괄적 기반을 마련하고, 97년 9월 우크라이나-EU 정상회담을 개최하면서 EU 가입을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
이후 1999년 5월 당시 쿠츠마 대통령이 EU 가입을 의미하는 ‘유럽의 길’을 선언했으며 2002년 6월 EU 가입을 최우선적 국정과제로 규정하면서 EU가 제시하는 기준에 부합하는 법·제도 정비도 본격화했다.
한편 우크라이나의 이러한 움직임에 러시아는 강력히 반발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인을 비롯한 동슬라브족의 문명적 고향이자, 러시아 흑해함대의 주둔지인 크림반도가 위치한 군사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당시 CIS 내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경제 규모가 큰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할 경우 자국 주도의 탈소비에트 지역통합이 추동력을 상실할 수 있어 러시아로선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부채상환 독촉, 가스가격 인상, 잠가라 밸브 등의 방식으로 경제적 압력을 가하면서 2004년 11월 대통령선거(대선)에서 러시아와의 경제 통합에 호의적이던 야누코비치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부정선거 논란으로 ‘오렌지 혁명’ 이후 EU 가입을 공약으로 내세운 유셴코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우크라이나의 EU행은 더욱 유력한 시나리오가 됐다.
2005년 1월 유셴코 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우크라이나는 EU의 ‘유럽근린정책(ENP)’에 입각해 ‘ENP 행동계획’을 마련했고 이를 통해 EU와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가입 기준 충족을 위한 내부 개혁을 서둘렀다. 2010년 2월 집권한 야누코비치 역시 당초 예상과 달리 균형외교를 선언하면서 EU와의 협력관계를 강화해나갔다.
2013년 5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주도의 탈소비에트 지역통합 프로그램인 관세동맹에 옵서버로 참여하기로 결정했지만, 그와 동시에 EU와 탈소비에트 국가의 협력 프로그램인 ‘동부 파트너십’ 차원에서 사실상 자유무역협정(FTA)에 해당하는 협력협정 체결도 계속 추진했다. 그러나 2013년 11월 협정 체결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이를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고 이러한 결정은 이른바 우크라이나 사태의 시발점이 됐다.
야누코비치 정부가 EU 가입의 분수령이 될 협력협정 체결을 중단한 배경에는 러시아 측 압력과 함께 심각한 경제위기가 있었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경상수지 및 재정수지 적자 확대, 대외채무 누적 등으로 디폴트 위기에 직면해 대외자금 조달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2013년 우크라이나 경제는 2012년(0.2%)에 이어 0%대 저성장에 처해 있었다. 또 경상수지 적자가 사상 최대치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8.9%까지 확대됐고, 재정수지 적자가 GDP 대비 4.4%를 기록했으며,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중도 약 200%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EU와의 협력협정 체결에 따른 제도개혁 비용이 2017년까지 연 200억 달러씩 총 160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경기 침체를 겪던 데다 사실상 후진국이나 다름없는 우크라이나를 편입시켜 큰 돈을 들일[1] 가치를 느끼지 못했던 EU는 단지 14억 달러 지원만 약속하고 있었다. 이에 야누코비치는 2013년 10, 11월 두 차례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비공식회담을 갖고 우크라이나-EU 협력협정 체결을 중단하는 대신 150억 달러 차관 지원과 가스가격 인하 약속을 얻어냈다. 결국 경제위기와 러시아의 에너지지원 위협, 그리고 친러파가 EU 가입을 향한 우크라이나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자체의 지정학적인 특성 역시 문제로, 우크라이나 내전에서 보듯이 우크라이나는 기본적으로 평지 위주라 러시아군의 주특기인 장갑기동군을 동원한 고속타격전에 굉장히 취약하다. 군축으로 인하여 방어 위주로 전력이 개편된 EU 입장에서 우크라이나를 지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에 극히 좁고 그나마도 절반이 친러국가 벨라루스에 막혀 일부 국경만을 맞대며 심장부와 다소 떨어져 있는 발트 3국과 달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심장부를 남부에서 직접 노릴 수 있는 위치라 러시아가 결사적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부담이다. 또한 우크라이나 자체도 경제 자체가 굉장히 열악한 데다 EU 가입 조건에 전혀 맞지 않은 상태라는 것도 문제.
그런 와중에서도 EU의 동방 확장 정책과 우크라이나의 친EU 정책이 맞물려 2014년 6월 EU-우크라이나 자유무역협정(FTA) 및 포괄적 협력협정을 체결했다. 그래서 EU-우크라이나 FTA는 2016년 1월 1일 공식 발효했는데...
네덜란드의 반EU 세력들이 EU-우크라이나 협력협정에 반대하는 청원 운동을 벌여 법정 충족요건인 30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았다. 그래서 네덜란드[2] 에서는 2016년 4월 6일 EU-우크라이나 협력협정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된다. 구속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EU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동유럽 확대 정책에 중대한 도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론조사에서도 협력협정에 반대하는 여론이 우세했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EU 28개국 중 네덜란드에서만 EU-우크라이나 협정이 비준되지 않고 있었는데, 결국 국민투표에서 반대가 다수를 차지하면서 비준이 이루어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 게다가 네덜란드 국민 61%가 EU-우크라이나 협정에 반대하면서 협정 찬반 국민투표가 부결되었다.#
그러다 2017년 2월 들어 네덜란드 하원이 다시 투표하여 이를 통과시켰고, 상원도 이에 동의하면서 협정이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이에 따라 EU 의회는 5월 11일에 우크라이나 무비자 협정에 공식 서명하였으며(5월 22일에 발표), 6월 11일부터 적용된다. 단, 영국은 무비자가 적용되지 않는다. 2018년 11월 30일에 EU는 러시아와 갈등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5억유로를 지원했다.#
2019년 2월 7일 우크라이나 라다는 EU와 나토가입노선을 명문화한 개헌안을 승인했다.# 또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EU와 나토가입을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노선이라고 밝혔다.#
2.2. 러시아와의 관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키예프 공국에 뿌리를 둔 나라들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지금까지 매우 적대적인 관계이고 현대에도 양국 정부는 사이가 매우 안 좋다. 다만 동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친러 성항을 보이고 있다.
2.3. 벨라루스와의 관계
2.4. 폴란드와의 관계
2.5. 그리스와의 관계
그리스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매우 오래되었다. 고대 그리스시절에 그리스인들이 폴리스를 세웠고 흑해에는 그리스인들이 많이 정착했다. 현재에도 우크라이나내에 그리스인 공동체가 존재한다.
2.6. 조지아와의 관계
2.7. 아르메니아와의 관계
2.8. 헝가리와의 관게
헝가리와도 폴란드나 러시아 못지않게 역사적으로 사이가 좋지 못한 관계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시절에는 갈리치아 중 일부가 헝가리 영토에 속했는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자카르파탸 주에는 헝가리계 주민들이 많이 살게 되었다. 그리고 헝가리어는 우크라이나의 지역공식어로 지정되어 있지만, 2017년에 우크라이나가 자국어강화정책을 추진하면서 소수민족언어로 교육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반발했다. 헝가리인들이 니키타 흐루쇼프를 증오하는 가장 큰 이유가 헝가리 혁명을 잔혹하게 진압한 것이라면 그 다음은 흐루쇼프가 러시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인 취급을 받을 만큼 엄청난 친우크라이나 성향이었던 것이다. 헝가리인들의 입장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은 철천지원수들의 동족혐오인 셈이다. 다만 헝가리는 2014년 크림 위기 때 우크라이나편을 들었던 것으로 봐서는 완전히 적을 치는 사이는 아니다.
2020년 7월 7일에 아데르 야노시 대통령은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를 향해 하천 오염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2.9. 몰도바와의 관계
몰도바와도 마찰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부자크 문제만 제외하면 그나마 친하게 지내려 한다.
2.10. 불가리아와의 관계
우크라이나 부자크 지방에 19세기 오스만 제국에서 피난 온 불가리아인들의 후손인 베사라비아 불가리아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양국은 대체로 우호적인 관계이다.
2.11. 루마니아와의 관계
루마니아와도 역시 사이가 좋지 못하건 마찬가지다 다뉴브 델타 지역의 바스트로에 운하 영유권 문제 와 흑해의 세르펜트 섬 영유권 문제로 인해 갈등을 벌인전적도 있다 최근에는 어느정도 국경을 해결했으나 여전히 라이벌 의식이 있다.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사이에는 후츨인(루신인)이라는 우크라이나계 소수민족이 거주한다 다만 두국가 다 반러성항이 있는 만큼[3] 무족건 적대시만 하는건 아니다.
2.12. 독일과의 관계
우크라이나인들도 나치에 의해 학살당했던 시절이 있기 때문에 독일에 대해선 반독감정도 있는 편이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네오 나치들이 존재한다
최근 들어서 러시아의 간섭이 커지자 우크라이나인들은 나치를 본받자는 성항이 생기고 있다...
이와 별개로 우크라이나에는 독일계 우크라이나인들이 살고 있다.
2.13. 슬로바키아와의 관계
슬로바키아와도 역시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다. 원래 슬로바키아 영토였던 카르파티아-루테니아는 소련이 합병했는데 그게 우크라이나 영토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영토문제 이외에도 민족갈등도 역시 있는 편이다. 우크라이나가 자국어 교육을 위해 헝가리어처럼 슬로바키아어를 금지시키자 역시 반발했다. 하지만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러시아와는 달리 역사적인 앙금은 많이 없기 때문에 그나마 이쪽은 나은 편이다.
2.14. 오스트리아와의 관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18세기말에 멸망한 뒤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당시 우크라이나 지역에 속했던 갈리치아를 지배한 적이 있었고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을 세웠다. 그리고 역사적인 감정이 남아있어서 오스트리아와 우크라이나는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하지만 대체로 협력을 자주 하고 있고 교류도 있다.
2.15. 크로아티아와의 관계
우크라이나와는 독립 이후에 수교했다. 양국은 매우 우호적이다. 2010년대에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전쟁을 겪으면서 90년대에 유고 내전 당시에 훈련받은 크로아티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훈련을 실시하는 등 크로아티아도 우크라이나를 지원했다.
2020년 10월 6일에 크로아티아 정부는 우크라이나에게 돈바스 지역으로 특사 파견을 제안했다.#(러시아어)
2.16. 라트비아와의 관계
2.17. 리투아니아와의 관계
3. 아시아
3.1. 대한민국과의 관계
3.2. 일본과의 관계
일본과는 소련 해체 이후에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는 우호적인 편이다. 일본측도 우크라이나와 교류하는 경우가 있고, 거기에다 돈바스 전쟁당시에는 일본 정부도 노보로시야와 친러인사들을 제재하기도 했다.
3.3. 북한과의 관계
북한도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를 승인하여 외교관계를 맺었지만 1998년 공관을 철수하였다. 북한이 크림 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승인하자 결국 외교적 보복조치로 모든 무비자협정을 파기하고 북한인들을 추방하는 조치를 내렸다.
3.4. 카자흐스탄과의 관계
카자흐스탄과는 소련 해체 이후에 외교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에도 소련 시절에 이주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일부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내 우크라이나인들도 대부분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3.5. 키르기스스탄과의 관계
키르기스스탄과는 소련 해체 이후에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양국은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고 키르기스스탄내에도 우크라이나인들이 소수 거주하고 있다.
3.6. 대만과의 관계
3.7. 중국과의 관계
3.8. 이스라엘과의 관계
이스라엘은 우크라이나와는 구소련 해체이후에 외교관계를 맺었다. 과거 아슈케나짐 유대인 상당수가 오늘날의 우크라이나에 해당하는 지역에 거주하였으며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이 일부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지만,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 제국 내 다른 지방처럼 반유대주의가 강한 편이었고, 오늘날의 우크라이나에도 반유대주의가 어느정도 남아있는 편이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스테판 반데라에게 훈장을 수여한다고 하자 이스라엘 정부의 어그로를 끌어 반발하자 갈등을 겪은 적도 있다.
2019년 1월 21일에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은 FTA를 체결했고, 7월 11일에 우크라이나 국회에서 FTA가 통과되는 등 FTA가 발효되었다.#
3.9. 터키와의 관계
키예프 공국이 몽골에 의해 멸망당한 뒤, 오스만 제국은 우크라이나 남부지역을 지배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크림 칸국은 자주 러시아를 침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강해지면서 오스만 제국은 우크라이나 남부와 크림 반도를 잃어버렸다. 터키와는 역사적인 이유로 사이가 안 좋은 편이다. 다만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면도 있다. 대표적인 게 크림 반도 분쟁.
2020년 8월에 우크라이나산 천연가스가 터키로 수출됐다.#(터키어)
3.10. 몽골과의 관계
몽골 제국이 키예프 공국을 멸망시킨 적이 있어서 몽골과는 역사적으로는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소련 해체 이후에 몽골과 수교를 맺은 우크라이나에서는 13세기 몽골 제국의 키예프 침공에 대해 상징적인 의미로 배상을 요구한 적도 있다. 몽골은 표면상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나, 사실상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거나 다름없다. 기사를 보면 몽골에서 “우크라이나 국회가, 대량 학살의 결과로 죽은 우크라이나 국민들과, 그 가족들의 이름을 문서로 제시하는 경우, 우리 몽골은, 기꺼이 배상할 용의가 있다’는 답변을 했다고 나오는데 13세기에 죽은 키예프 공국 사람들과 가족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문서로 증명하는 게 가능할까? 오히려 조롱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http://m.gwbiz.kr/39862
이와 별개로 오늘날 우크라이나에는 몽골계 민족인 부랴트인과 칼미크인이 소수 거주하고 있으며, 몽골에도 냉전 시절에 소련에서 러시아인들과 함께 이주해온 우크라이나인들이 소수 거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몽골계 인물로는 부랴트인 출신인 유리 예하누로우 전 총리가 유명하다.
3.11. 인도와의 관계
인도와는 소련 해체이후에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내에도 인도인 공동체가 일부 존재해 있고 인도인 유학생들도 우크라이나로 가는 경우도 있다.
3.12. 파키스탄과의 관계
파키스탄과도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다. 그리고 파키스탄은 우크라이나로부터 무기를 수입하고 있다.
3.13. 타지키스탄과의 관계
소련이 해체된 이후 1993년 4월 24일부터 외교를 맺었다. 타지키스탄에도 다른 중앙아시아권 국가들처럼 러시아인과 더불어 우크라이나인들이 적지 않았지만 타지키스탄에 일어난 내전으로 인해 우크라이나로 가게 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소수이다. 타지키스탄은 친러에 가깝고, 우크라이나는 유로마이단 이후 반러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서로 간의 무역은 꽤 하는 편이다. 키예프, 두샨베에 각자 대사관이 설치되어 있다.
4. 아메리카
4.1. 미국과의 관계
미국과는 소련 해체이후에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양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미국도 유로마이단이 일어나자 우크라이나를 지원했다. 또한, 미국에도 우크라이나계 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4.2. 캐나다와의 관계
캐나다와는 매우 우호적이다. 19세기에 우크라이나인들이 캐나다로 이주했고 캐나다내엔 우크라이나계 캐나다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캐나다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5. 지역별 관계
- 미국-우크라이나 관계
-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
- 벨라루스-우크라이나 관계
- 폴란드-우크라이나 관계
- 한국-우크라이나 관계
- 중국-우크라이나 관계
- 캐나다-우크라이나 관계
- 그리스-우크라이나 관계
- 우크라이나-일본 관계
-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 관계
- 우크라이나-터키 관계
- 우크라이나-아르메니아 관계
- 우크라이나-조지아 관계
- 우크라이나-라트비아 관계
- 우크라이나-리투아니아 관계
6. 관련 문서
[1]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의 가입은 경제사정이 좋던 2007년에 이뤄졌는데도 EU 내에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그 뒤로 비슷하거나 그 이하의 경제력을 가진 국가를 가입시키는 일은 다시는 없었다. 하다못해 크로아티아도 국민소득이 꽤나 높은 축에 들어간다.[2] 골때리는 건 네덜란드가 2016년 상반기 EU의장국이다.[3] 다른 국가들에 묻혀서 그렇지 루마니아도 반러감정은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