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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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洛善
1927년 12월 7일 ~ 1989년 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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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월 18일, 육사 생도들의 5.16 군사정변 지지 시위를 지켜보는 정변의 주도세력. 왼쪽부터 박정희 소장, 박종규 소령, '''이낙선''' 소령, 차지철 대위.
1. 개요
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군인, 관료, 기업인이다. 본관은 전의(全義)[1].

2. 생애


이낙선은 1927년 12월 7일 경상북도 안동군 풍산면 하리동(현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2]#에서 아버지 이용섭(李用燮)과 어머니 안동 김씨 김수한(金壽漢)의 두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안동농림고등학교 졸업 후 1950년 육군종합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육군 포병소위로 임관하였다. 현직 육군 장교 신분이던 1960년에는 잠시 안동풍국국민학교, 대구국민학교 교사로도 재직하였다.
1961년 5.16 군사정변 당시 제2군사령부 소속 소령 신분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관을 역임하고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1963년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관에 임명되었다. 1966년 초대 국세청장에 임명되어 1969년까지 부임하였다. 초대 국세청장으로서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다고 평가된다. 1969년부터 1973년까지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지냈다. 1973년 12월 건설부(현 국토교통부) 장관에 임명되었으나, 1974년 9월, 부인의 다이아몬드 밀수 루머로 인해 사임했다.[3] 한편 1969년부터 1979년까지 대한배구협회 회장을 겸임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면서 정치활동 규제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정계에서 은퇴한 뒤 롯데그룹 부회장, 롯데상사 및 롯데호텔 사장, 코리아스파이서공업 대표이사 회장 등을 지내다 1989년 세상을 떠났다.

[1] 문장공파 이판공파. 30세 '善'자 항렬로 보인다. 즉, 예안 이씨.[2] 인근의 상리리와 함께 전의 이씨 집성촌이다. 대법원 판사를 역임한 이준승도 이 마을 출신이다.[3] 여담으로 그 후임 장관이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논쟁적 인물 '''김재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