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작전사령부
[clearfix]
1. 개요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있는 대한민국 육군의 작전사령부급 부대이다. 보통 2작사 또는 2작전사로 줄여 부르나 옛 명칭인 '제2야전군사령부'의 약칭인 '2군사령부'도 간혹 쓰인다. 별칭은 무열대(武烈臺)이다. 사령관은 대장이 보임되며, 부사령관으로는 중장이나 소장이 보임된다.
2. 상세
6.25 전쟁 이후 주한미군의 후방기지사령부가 가지고 있던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지역의 군사 통제권이 한국군으로 넘어오면서 육군본부 일반명령 제271호에 의거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계성학교에서 1954년 10월 31일 제2야전군사령부로 창설되었다. 초대 사령관은 강문봉 육군 중장이다.
이로써 초기 육군은 전방 지역(강원도와 경기도 중 FEBA 지역)을 통제하는 제1야전군사령부와 후방(삼남지방과 수도권 중 非FEBA 지역)을 통제하는 제2야전군사령부로 육군 작전지역이 분할되었다. 사령부는 1968년 12월 3일 현 주둔지인 수성구 만촌동으로 이전하였다. 1974년에는 제6군관구사령부가 경인위수사령부로 개편되면서 경기도 남부가 제3야전군사령부 지역으로 편입되었다.
1980년 2개 군단 체제로 바뀔 때까지는 제2야전군사령부는 제1야전군사령부와 다르게 5개의 군관구사령부 체제였다. 육군 소장이 부임하는 제1, 2, 3, 5, 6관구사령부가 각 지역을 책임지는 형태로 존재했으며(예하 사단장은 준장 계급), 당시의 관할지역은 현재는 지상작전사령부(구 3군)나 수도방위사령부가 관할하는 경기도 남부(지금의 인천광역시 자치구 지역 포함)와 서울특별시 일부까지 포함되었다.
그러나, 1980년 초반 관구사령부가 해체되면서 전라북도 완주군에 주재한 제9군단과 경상남도 창녕군에 주재한 제11군단의 2개 군단체제로 변경되었다. 이와 동시에 제2야전군사령관을 대장으로 보임되었다.
그렇지만 제2야전군사령부와 2개의 후방 군단은 전방과 비교할 때 병력이 많지 않고 임무가 복잡하지 않은데도 사단-군단-야전군으로 이어지는 다층적 지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도 국방개혁 2020에 의해서 제2야전군사령부를 축소시키고 이전의 체제로 돌리기로 하면서 후방 군단을 해체하기로 결정되었다.
2007년 10월 31일 육군 제9군단과 제11군단이 해체되어 군단기를 내렸고, 예하 부대 편제를 제외한 나머지 군단 직할부대들은 제2야전군사령부 직할로 전환되었다. 다음 날인 11월 1일에는 제2작전사령부로 새로이 명칭이 바뀌게 되었다. 이후 몇몇 향토사단을 동원사단과 통폐합시킨 결과 현재의 편제로 변경되었다. 따라서 2군 내 사단들은 모두 제2작전사령부 직할 사단들이다.
추후 국방개혁 조치가 이뤄지면 현재 대장이 보임되는 직위인 사령관도 중장으로 격하될 가능성이 상당한 편이다. 사실 1980년 이전까지는 중장이 보임되었던 자리이기에 쓸데없는 별 줄이기의 타겟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향후 제2신속대응사단이 창설되어 휘하의 2개 특공여단마저 빠져나가게 되면 제2작전사령관은 사단은 7개지만 인원 수로 따지면 사실상 1개 군단과 비슷하거나 혹은 그보다 약간 많은 정도의 병력만 거느리는 대장 지휘관이 된다. 이 때문에 앞으로 격하 논의가 일어날 여지는 충분히 있다.
하지만 2작사가 사실상 후방 전체를 관할하는 데다가 특수전 역량이 큰 변수로 작용하는 현대전쟁에선 전/후방 구분이 점차 옅어지는 상황이다. 게다가 후방에도 국가의 주요시설이 많기 때문에 단순히 병력수가 적다고 해서 함부로 사령관 계급을 내릴 수는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계속 이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일단 각 군 본부가 있는 계룡대, 주요 행정기관이 있는 세종특별자치시와 정부대전청사 자체도 엄연히 2작사 관할구역이다.[1] 그리고 원전, 제철소와 같은 국가기간망의 상당수도 이곳 관할 내에 있다. 실제 원전, 제철소의 경우 민,관,군이 수시로 방호훈련을 하는 매우 중요한 시설이다.
그러나 위와 같이 중요성이 높기 때문에 중장으로 격하하면 안된다는 논리는 해공군에서 '그렇게 따지면 각각 영해와 영공을 총 책임지는 해군작전사령관과 공군작전사령관을 대장으로 승격시키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따지면 반박하기 어렵다. 해, 공군작전사령부가 육군의 지상작전사령부에 비해 병력 수는 적을지 몰라도, 공군과 해군의 거의 모든 전투부대를 지휘한다는 점에서 중요성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전시 완편된 2작사의 규모를 감안하면 중장으로 격하하기도 어렵기는 하다. 예하부대에 비해 계급이 낮은 보직도 전시에는 해당 계급의 예비역이 오는게 감편 부대의 특징이다. 게다가 지작사의 전신인 1군사와 3군사도 2작사와 중장 계급의 사령관이 부임하던 시기는 같다.
3. 지휘부
육군 제2작전사령관은 전신이던 육군 제2야전군 창설 이래 줄곧 중장이 맡았다가 1979년 제17대 사령관 진종채 장군이 대장으로 임명된 이래 대장이 계속 임명되고 있다. 부사령관직은 舊육군 제1, 3야전군의 부사령관직처럼 한직이라 대부분 퇴역을 앞둔 육군 중장이 임명되고 참모장의 경우는 지작사와 다르게 부대 규모가 작아 중장이 아닌 육군 소장을 임명한다.
4. 관할 및 작전구역
관할구역은 이른바 후방(경상·전라·충청 지역의 6개 도와 5개 광역시, 1개 특별자치시) 전 지역이며 관할 내에 있는 향토 사단 및 직할 부대들을 예하에 두고 있다.
예전에는 강원·경기·서울 일부까지 포함한[9] 한강 이남 전체가 전신인 2야전군 관할이었으나 지금은 1야전군은 강원도(철원군 제외), 3야전군은 수도권(경기도, 인천광역시, 강원도 철원군)이 해당된다. 2작전사로 개명되면서 향토사단 위주에 군단도 없게 편제가 바뀌어서 지상작전사령부보다는 위세가 약해 보인다. 게다가 2작사는 부사령관이 소장일 때가 더러 있다. 지작사는 정말 부득이한 경우[10] 를 제외하곤 중장이 부사령관이었다. 그러나 총 5천㎞가 넘는 광활한 해안선과 국가 산업시설의 70%, 국민의 50%가 거주하는 넓은 작전 지역을 갖고 있다. 덕분에 타 군이나 타 기관과의 협조나 회의도 자주 이뤄지는 편이다. 그 외에 행사 사진 같은 것을 보면 외국 군복을 입은 사령관도 종종 볼 수 있다.
2작사는 지상작전사령부와는 달리 제2작전사령관이 전평시 모두 작전통제권을 가진다.[11] 전시에도 한미연합군사령부의 입김을 별로 안 받는다는 것.
더 웃긴 것은 2작사는 전술적으로 최전방에 속해 있어 북한의 전술유격대와 게릴라 공격을 막는 것을 전략적으로 가장 중시한다. 부대에서는 유사시 산업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2작사가 집중적으로 공격당할 것이니 전 장병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군생활을 하라고 하지만... 포와 기갑 전력은 경기·강원 지방에 집중되어 있고 그나마 있는 사단들은 평시 편제가 반토막이다.[12] 이러한 점을 국방부가 의식한 건지, 2014년부터 동.서해안의 돌발 상황(도서 기습강점, 해안선 침투, 산업시설 타격)에 대응해 대한민국 해병대가 신속대응부대를 동해안 및 서해안에 배치했기 때문에 부담은 많이 줄어들었다. 애초 편제가 (예비군 증원을 전제로) 반토막인 향토사단보단 대한민국 해군이나 대한민국 해양경찰청에서 해안선 대침투경계를 하는 것이 더 조밀하다.
게다가 화력전과는 거리가 먼 후방이다 보니 2작사 직할 포병이나 기갑 전력은 전무하다. 그나마 전라남도의 상무대에 포병학교와 기계화학교가 있긴 하지만 육직부대인 교육사령부 관할이다. 그나마 해병대 제1사단의 포병연대가 2작사에 화력 지원을 전담하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지원일 뿐.
또한 전방의 지작사와 달리 예하 사단들이 (중간에 군단 편제 없이) 사령부 직속이기 때문에 대장 계급의 사령관이 직접 예하 사단들을 방문하는데 아랫 사람들 입장에서는 심적 부담이 더 크다. 쓰리스타가 올 행사에 포스타가 온다. 사령관 방문 뿐만 아니라 해군 등 타군에 연락 장교를 파견하거나 할 때 본래는 군단급에서 파견을 가야 하는 경우 2작사는 사령부 직할의 장교가 가는 등, 군단급 임무를 사령부가 직접 대행하는 경우가 있다.
2018년 예비군관련 용어변경으로 '향토-'라는 단어가 삭제되고 '지역방위-'로 변경되었다.
5. 편제
예전에는 제9군단과 제11군단이 있었고 둘 다 상비군단이 아닌 향토군단이었다. 하지만 두 군단 모두 부대해체했기 때문에 제2작전사령부는 야전군사령부 바로 아래가 사단인 다소 희한한 부대 편제가 되었다.
5.1. 직할부대
- 근무지원단 (지원대, 수송대, 군악대, 경비중대, 방공중대)
- 군사경찰단
- 제12정보통신단
- 제1115공병단
- 제1117공병단
- 제19화생방대대
- 제2보충대
- 지형분석대(2작사)
- 제21항공단[13]
5.2. 예하부대
- 제31보병사단(충장부대) - 전남, 광주
- 제32보병사단(백룡부대) - 충남, 대전, 세종
- 세종시경비단(세종부대)
- 제35보병사단(충경부대) - 전북
- 제37보병사단(충용부대) - 충북
- 제39보병사단(충무부대) - 경남(양산, 진해 제외)
- 제50보병사단(강철부대) - 경북, 대구(포항, 울릉, 경주 일부 제외)
- 제53보병사단(충렬부대) - 부산, 울산, 양산
- 제5군수지원사령부(오성부대)
6. 과거부대
- 수도군단(충의부대)[16]
- [17]
- [18]
- 제17보병사단(번개부대)[19]
- [20]
- 제36보병사단(백호부대)
- [21]
- [22]
- [23]
- [24]
- [25]
- (구)제201특공여단[26]
- (구)제203특공여단[27]
- [28]
- (구)제2수송교육단[29]
- [30]
- [31]
7. 출신인물
7.1. 사령관
7.2. 장교/부사관
제2작전사령부 교훈처장을 역임했다.
제2작전사령부 주임원사를 역임했다.
7.3. 병
8. 기타
8.1. 근무환경
근무지원단: 지원대, 수송대, 군악대, 경비중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식당, 싸지방, 체단실, 목욕탕, 탁구장, 피엑스, 도서관, 농구장, 풋살장, 은행, 사진관, 파리바게트 등 가장 병사가 근무하기 편한 위치에 있다. 허나 코로나19 발발이후로는 대부분의 시설이 사용불가능한 상태이다. 2작사 예하 직할 부대 중 본청에서 정식 인가를 받고 근무를 지원하는 부대라 파워가 센편. 큰 지휘 훈련을 제외한 유격, 혹한기를 약식으로 받거나 아예 안받기 때문에 몸으로는 힘들 수 없는 부대. 간부들의 계급이 소령~대장까지 편차가 커서 정신적으로 힘든 편.
제12정보통신단: 사령부 직할 정보통신단으로, 단 본부대와 1개 대대는 대구 사령부 영내에, 다른 1개 대대는 전라북도 완주에 있다. 9군단과 11군단 예하에 있던 통신단을 흡수, 통합하여 만들어진 부대이다. 단 본부대는 행정병 위주로 편성되어 있고, 이외에는 가설, 무전, TMR, 교환, 암호, 레이더, 위성, 팩스 등 통신관련 주특기의 병들이 각 대대 예하 중대마다 다양하게 모여 있다. 사령부 직할이지만 후방이라 그런지 장비는 대체로 구형인 것들이 많다. 간혹 2작사 예하 향토사단 통신대대보다도 낡은 장비를 쓰기도 한다. 훈련의 난이도는 보직마다 다르지만 무거운 안테나를 설치해야 하는 TMR병만 빼면 그리 힘들지 않은 편이다.
제19화생방대대: 사령부 직할 화생방대대로 화생방병과 답게 화생방학교 관련 보직들이 많이 보인다. 보안상 자세한것은 말할수 없지만 초청행사때 공개된 내용만 설명하자면 전군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제일 넓은 지역을 담당하며 제일 임무가 막중한 대대라고 소개된다 이게 허구가 아닌게 2작전사 정문옆에 써있는 '대구 경북 충남을 수호하는 제2작전사령부'라는 말을 반증하듯 대대치곤 엄청나게 넓은 작전범위를 가졌다.
8.2. 무열회관
8.3. 사령부가
'''선혈의 웅지서린 유구한 터전'''
'''오늘도 무열용사 힘차게 뛴다'''
'''가슴에 끓는 피 불타는 충정'''
'''가꾸어 이루리 번영된 조국'''
'''보무도 당당하다 승리의 무열용사'''
'''영원히 빛내리 제2작전사'''
'''- 제2작전사가'''
9. 사건사고
- 2017년 7월 31일 제2작전사령부 사령관이던 박찬주 육군 대장과 그의 민간인 아내가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심각하게 악용해 공관병과 조리병들에게 갑질과 가혹행위를 저지르면서 악랄하게 괴롭혀 왔다는 사실을 군인권센터가 폭로하며 벌어진 사건이다. 관련기사
10. 여담
- 근처의 5군지사와 함께 주변 지역의 그린벨트를 이루고 있어서 시지와 수성구 본시가지 단절의 주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요즘은 그래도 연호지구개발 등 부대 근처에 개발을 하려는 조짐이 일고 있다.
11. 관련문서
[1] 이곳들을 커버하는 제32보병사단이 2작사 예하이고, 이러한 중요성 덕분에 32보병사단장직은 중장 진급 커리어를 쌓기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2] 2018년 10월 11일 ~ [3] 2018년 05월~[4] 2018년 05월~2020년 05월[5] 2016년 08월 13일 ~ ?[6] 2020년 9월 ~ [7] 2020년 05월 ~ [8] 2019?~[9] 당시의 제17보병사단과 제30기계화보병사단은 2군 예하 6관구사령부의 예하 사단으로서 서울, 경기지역 향토사단이었다. 그러나 6관구사령부가 경인위수사령부로 개편되어 3군 예하에 편제되자 수도권 지역은 3군 지역에 편입되었다.[10] 고 백병춘 장군(육사 30기)과 장종대 장군(육사 32기)이 소장계급으로 1군 부사령관을 역임한 적이 있다.[11] 전시에 2작사가 삼남지방에 대한 독자적인 작전 권한이 있는 것처럼, 수방사는 서울특별시 지역에 대한 독자적인 작전 권한이 있다.[12] 그래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2작사 산하에는 지작사 산하에 군단별로 편제되는 연대급 특공연대에 해당하는 특공여단이 편제되어 있다. 201, 203 특공여단. 다만 적진 침투가 주 임무인 지작사 특공연대와 달리 2작사 산하 특공여단들은 후방에 침투한 적 특수부대, 무장공비 등을 제압, 소탕하는 방어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게다가 방위 지역도 1, 3군에 비해 넓다. 그나마 경상도 쪽은 부산, 진해 쪽에 대한민국 해군의 3함대 및 진해기지사령부의 항만방어전대가 있고, 포항 역시 포항특정경비지역사령부를 해병대 제1사단에 두어서 부담은 적다. 그래서 경관이나 해수욕장 등의 이유로 철책과 경계초소(혹은 카메라)가 설치되지 않은 곳, 충남과 전라도의 리아스식 해안(특히 통영-여수 같은 특이지역)과 섬에 집중하면 된다.[13] 항공단 야전 군단, 2작사 직할 배치 계획에 따라, 2작사 직할부대로 편성.[14] 해병대 제2사단이 수도군단의 명으로 작전 수행하는 것과 같은 경우라고 보면 된다.[15] 소속은 제7기동군단 소속이지만, 작전권은 2작사에 있다. 이는 해병대 제2사단이 수도군단의 명으로 작전 수행하는 것과 같은 경우라고 보면 된다.[16] 1974년 제6군관구사령부가 경인지역위수사령부로 개편되어 제3야전군사령부 예하로 넘어감.[17] 2007년 국방개혁 2020으로 부대해체[18] 2007년 국방개혁 2020으로 부대해체[19] 1974년 상급부대인 제6관구사령부가 경인지역위수사령부(현 수도군단)로 개편되어 제3야전군사령부 예하로 넘어감. 개편 당시 이들 사단은 향토예비사단이었다.[20] 1974년 상급부대인 제6관구사령부가 경인지역위수사령부(현 수도군단)로 개편되어 제3야전군사령부 예하로 넘어감. 개편 당시 이들 사단은 향토예비사단이었다.[21] 1982년 부대 해체[22] 2008년 12월 01일 부대 해체 및 제32보병사단으로 통합[23] 2005년 12월 01일 부대 해체 및 제37보병사단으로 통합[24] 2000년 5월 01일 부대 해체 및 제39보병사단으로 통합[25] 2008년 12월 01일 부대 해체 및 제50보병사단으로 통합[26] 제2신속대응사단 창설 후 소속 및 제201신속대응여단으로 명칭 변경.[27] 제2신속대응사단 창설 후 소속 및 제203신속대응여단으로 명칭 변경.[28] 2007년 해체하여 제201특공여단과 제203특공여단으로 흡수 병합되었다.[29] 2019년 제2야전수송교육단에서 제2수송교육연대로 명칭변경 및 종합군수학교로 전속[30] 부대 해체 후 예하 대대는 제1117공병단으로 통합됨[31] 부대 해체 후 예하 대대는 제1115공병단으로 통합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