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왕국

 


'''이라크 하심 왕국'''
'''المملكة العراقية الهاشمية'''

''al-Mamlakah al-‘Irāqiyyah Al-Hāshimīy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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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1932년 ~ 1958년
수도
바그다드
정치체제
입헌군주제
국가원수

주요 국왕
파이살 1세
언어
아랍어
종교
이슬람
민족
이라크 아랍인, 쿠르드인
성립 이전
메소포타미아 위임통치령
멸망 이후
아랍 연방
1. 개요
2. 역사
2.1. 독립 이전
2.2. 독립 이후
3. 역대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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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32년부터 1958년까지 이라크에 존재하던 왕국이다.

2. 역사



2.1. 독립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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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하자, 1920년 세브르 조약에서는 오스만 제국이 영국에게 이라크의 지배권을 위탁하기로 되어 있었다. 영국은 '영국 위임통치령 메소포타미아'를 설립한다. 1921년 카이로 평화회담을 통해 이라크에 군주제를 건설하기로 합의, 하심 가문의 파이살 1세를 국왕으로 옹립하여 이라크 왕국을 건설시켰다. 파이살 1세는 이라크에 와 본 적도 없는 수니파 무슬림으로 영국에서 일부로 꼭두각시로 내세운 인물이었다. 영국은 파이살 1세를 허수아비로 내세운 다음에 시아파를 대대적으로 탄압하며 수니파와 유대인, 기독교도들을 중심으로 이라크를 통치했다. 이에 반발한 시아파를 중심으로 1920년 바그다드에서 쿠데타가 벌어져 이라크인 453명이 사망하고 영국인도 2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이때 영국은 독가스 살포와 민간인 공습 등 잔혹한 방법을 동원하여 이라크의 봉기를 진압했다. 이것이 윈스턴 처칠과 관련된 독가스 떡밥의 시초다.
영국은 계속해서 쿠르드 독립국가 건설, 아시리아인, 쿠르드인, 기독교도, 오스만 제국 관료 우대 정책을 펼쳐 시아파의 반발을 샀고 파이살 1세가 자신들의 기대와 달리 시아파와 수니파의 화해, 국방력 건설[1], 자주권 확보에 노력하자 영국은 각 부족과 친영파 내각을 이용하여 국왕의 권력을 약화시켰다. 1932년 이라크는 영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획득했지만 실상은 식민지나 다름없었다.

2.2. 독립 이후


1933년, 국가 단결을 위해 노력한 파이살 1세가 서거하자 그의 아들인 가지 1세가 즉위했는데 문제는 이 양반이 '''반문맹'''이었다. 무능하면서 권력욕은 많았던 가지 1세는 군부를 이용하여 독재를 강화하려 했고 1936년 바크르 장군을 시켜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는 등 이라크의 군부 전횡의 발판을 닦았다. 하지만 대중이 원하는 것을 읽어내는 능력은 기발하였고 자기 자신도 반영주의자라서 적극적인 반영 정책을 펼쳐서 큰 인기를 얻었다. 가지 1세는 영국에 저항하면서 현대화된 민족주의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였으나 1939년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가지 1세가 사망한 이후 이라크의 왕위에는 어린 파이살 2세가 즉위했다.

그러던 중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지나친 내정 간섭에 지친 라시드 알리를 중심으로 한 이라크의 민족주의자들은 정변을 일으켰다. 정권을 잡은 이들은 친독일 정책을 펴고, 추축국에 가입하여 영국과 전쟁을 벌였으나, 1달도 안 돼서 패배하였고, 이라크는 영국에 항복하여 추축국 중 가장 먼저 항복한 국가가 되어버렸다.[2] 영국은 이라크에 대한 통치를 강화하여 이라크를 괴뢰국 화한다. 그리하여 영국은 1948년까지 이라크를 통치하다가, 1948년 영국-이라크 조약을 통해 이라크는 주권을 되찾고, 1955년 바그다드 조약을 통해 완전한 독립 국가가 되었다. 1958년, 요르단과 연합하여 '''아랍 연방'''을 설립한다.[3][4] 그러나 1958년 여름 요르단의 국왕 후세인 1세가 레바논 위기로 인해 군사 지원을 요청하자 이에 파병되는 이라크군을 이끌던 육군 장교 아브드 알카림 카심이 7월 14일 바그다드로 방향을 돌려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군은 아무 저항 없이 파이살 2세 국왕과 왕실 근위대를 항복시켰다. 결국 아랍 연방은 해체되고, 이라크에는 공화정이 수립된다. 파이살 2세를 비롯한 왕족들은 총살당했다.
하지만 왕정이 군부 쿠데타로 폐지되고 공화정이 수립된 이후에 이라크가 쿠데타와 전쟁, 내분으로 혼란을 빚자 영국에 망명 중인 이라크의 하심 가문의 샤리프 알리 빈 알 후세인 당주를 새 국왕으로 즉위시켜 입헌 군주제로 개헌하여 왕정을 복귀시키자는 목소리가 이라크 국내에도 소수이긴 하지만 존재하고 있다.

3. 역대 국왕




[1] 여담으로 파이살 1세의 국방건설로 인하여 입대한 사람이 다름아닌 사담 후세인의 알 티그리티 가문이다.[2] 보통 추축국 중 가장 먼저 항복한 국가가 이탈리아 왕국인줄 알지만 이라크는 1941년에 항복했고, 이탈리아는 1943년에 항복하였다. 2년이나 일찍 항복한 셈이다. [3] 아랍 연합 공화국과 비슷하다.[4] 파이살 2세와 후세인 1세는 같은 하심 가문 출신으로, 사촌관계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