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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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신세계그룹 회장.
2. 생애
1943년 9월 5일 일제강점기 당시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의 막내(다섯째)딸이며, 삼성그룹 제2대 회장이자 이병철 창업주의 막내(셋째)아들인 이건희의 여동생이다. 남편은 국회의원을 지낸 삼호방직 정상희 회장의 차남인 정재은 조선호텔 명예회장이다. 아들인 정용진은 현 신세계그룹의 부회장이고, 딸인 정유경은 현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이다.
이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생활미술학을 전공하였다.
3. 기업인 활동
본래는 25세에 정재은[2] 씨와 결혼하여 12년간 전업주부로 살았는데, 갑자기 아버지 이병철이 "백화점 사업부를 맡아서 운영해보라"고 했고 이명희는 경영에 자신이 없다고 했으나, 이병철이 "앞으로는 여성도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는 요지로 역정 섞인 설득까지 한 끝에 결국 1979년 영업담당 이사로 신세계에 입사한다.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등과 더불어 현재 이부진, 이서현 등으로 이어지는 삼성家 여성 경영인의 시초.
이후 1997년 신세계그룹이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이후 1998년부터 남편 정재은으로부터 회장직을 넘겨받아 현재까지 회장으로 재직하며 신세계를 대한민국 굴지의 유통기업으로 성장시키게 된다.
전형적인 은둔형 경영자 스타일로 회사 운영도 본인이 직접적으로 챙기기보다는, 전문경영인이 주로 회사를 챙기고 본인은 큰 흐름만 제시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2005년 인터뷰에 따르면 아버지 이병철이 출근 전날에 '서류에 사인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었는데, 풀어서 설명하면 '한 번 맡겨보기로 결심한 사람은 통 크게 믿어봐라'는 의미였다고. 이 가르침을 따라 이명희는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신세계그룹을 운영하게 되었다고 한다[3]
아버지 이병철이 죽고 언니 이인희와 이명희는 재산을 균등하게 상속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언니 이인희의 한솔그룹은 쇠퇴하고, 이명희가 이끄는 신세계그룹은 재계순위가 무려 20계단이나 올랐다. 때문에 나름 탁월한 경영 능력과 안목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이인희의 경영 능력이 낮아서 저렇게 되었다고 볼 순 없는데, 왜냐면 한솔그룹의 경우 21세기 사양산업에 가까운 제지가 주력 사업이었던 원인이 더 크다.[4] 오히려 아버지인 이병철 회장은 이인희를 매우 높게 평가했다. 자서전(호암자전)에서 이 고문을 가리켜 “사내로 태어났으면 그룹을 맡겼을 큰 재목인데…”라고 할 정도였으니.[5]
이름은 익히 알려져 있고 사진도 언론이 몇번 보도됐었지만, 다른 삼성家 식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는 대중들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던 편이다. 덕분에 경쟁 매장인 롯데백화점이나 현대백화점, 갤러리아백화점 등에 잘만 다녔다고 하며 백화점 운영에 참고를 많이했다고 한다. 실제 명동 롯백 에비뉴엘에 딸인 정유경 부회장과 쇼핑하고 식사한 게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사실 대중에게 이명희 회장이 많이 알려진 이유는 고현정 이혼 이후의 구설수 때문이기도 하다. 이후 2005년에 본점 확장 오픈 쯤 언론 인터뷰를 한 것을 빼고는[6] 본인 인터뷰도 거의 없다. 심지어는 백화점 개점식에 직접 참석한 건 1984년 영등포점과 2006년 명동 본점 확장 오픈 뿐이라고.
그래서 과거엔 구학서 회장[7] 등 부회장이나 사장단이 언론 인터뷰에 자주 등장했으며, 2010년 이후로는 대외적인 활동을 주로 아들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하여 언론에서 이름을 찾기 힘들다. 오죽하면 후술할 2015년에 있었던 추징세 부과가 근황일 정도. 가장 최근에 대외적으로 얼굴을 드러낸 것은 2020년 10월 세상을 떠난 오빠 이건희의 장례식 때였다.
당초 정재은 명예회장 등 오너일가가 아들인 정용진 부회장 지분을 상속하면서 3,500억 원에 달하는 세금을 내면서 화제를 모았으나# 2015년 11월에 차명주식 800억 원 가량을 2003년에 이어 추가로 실명전환하면서 증여세 등 각종 이유로 700억 원에 달하는 추징세가 부가되면서 아들인 정용진 대표와 각자 100억 씩을 청년희망펀드에 희사한 의미가 퇴색돼버렸다.
그룹 후계는 정용진, 정유경 남매에게 분할되었는데 정용진이 그룹총괄 및 이마트를, 정유경이 신세계백화점을 가져가는 구도. 경영 참여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이명희 본인에 비해 자식들은 경영 참여에 적극적인 듯하다.
4. 이야깃거리
아들인 정용진이 고현정과 이혼한 후 한동안 방황하자, 정신차리라는 뜻에서 매일 아침 용산구 한남동 자택에서 당시 개점을 앞두고 있던 이마트 양재점까지 뛰어서 출근하도록 시킨 적이 있다. 한 마디로 운동삼아 강남대로를 뛰어가라는 명.[8] 한겨울 추위 속에서 몇 개월 간 극기 체험을 통해 정용진 부회장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업무에 충실해졌다는 일화는 재계에서 제법 유명한 이야기다.
카리스마 있는 배우인 고현정의 시어머니였다는 점 때문에 ''''무서운 시어머니계의 끝판왕''''취급하는 경우가 꽤 보인다. 고현정은 이혼한 뒤 인터뷰에서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유명한 배우가 재벌가에 시집 갔다가 이혼한 것치고는 이혼 조건 및 위자료가 형편없었으니, 실제로도 완고하고 위압적인 성격일 것으로 보인다.
반면 자신의 손주인 아들 정용진과 고현정의 자식들은 매우 이뻐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 미술을 전공해서인지 경영인이 되어서도 취미로 직접 그리기도 한다고 하며, 1년에 2번은 꼭 유럽과 뉴욕에 해외여행을 가서 패션 및 건축 트렌드를 직접 알아보려고 하고, 갖고 싶은 물건은 사진을 찍어서 어떻게든 몇 개월 안에 구한다나. 한때는 6개월간 사내 사보에서 기자도 해보았다고 한다.
삼성가는 한때 왕자의 난이 일어났던 적이 있을 정도로 이병철과 아들들은 사이가 영 좋지 않았던지 생전에 '아버지가 왜 이러시지'하는 불평을 한 반면[9] , 이명희는 아버지를 아주 좋아했기에 아버지처럼 되고 싶다는 꿈이 있어서 아버지처럼 노트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고,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순간은 아버지께 평가받을 때라고 한다.
한진그룹 회장 조양호의 부인인 이명희가 작은딸 조현민의 물컵 갑질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행패까지 공개되면서 동명이인인 신세계 회장 이명희가 엉뚱한 피해를 보았다. 물론 신세계 이명희도 차명계좌 해프닝 탓에 이미지 손실이 적잖게 있긴 했지만, 남한테까지 정신적/물질적으로 피해를 입힌 한진그룹 이명희와 달리 신세계 이명희는 자기 혼자만 이미지/금전적으로 손해보고 끝난 거라 비교적으로 꽤 깨끗하다. 일부 언론이 착각하고 한진 이명희의 기사에 신세계 이명희의 사진을 올리는 해프닝도 일어났다. 당연하게도 신세계그룹에서는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건희 회장과 함께 다정하게 찍은 사진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빠인 삼성 이건희 회장과는 상당히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10] 실제로 장남 이맹희의 경우 아버지 이병철 회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둘째인 새한그룹 이창희는 더 말 할 것도 없지만 이건희는 상당히 이병철의 신임과 총애를 얻었고[11] 그 덕분에 지금의 삼성이 세워질 수 있었으며 이명희는 막내딸로서 이병철과 더할 나위 없는 부녀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둘 다 아버지 이병철과 사이가 아주 원만했다는 점에서 연결고리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12월 말 신세계그룹 임원진이 자진해서 급여를 삭감하겠다고 건의했으나 이명희 회장은 “그 정도로 회사가 어려운 것이냐"고 묻고 "그렇다면 임원 연봉 삭감이 아니라 내 사재를 내놓아 해결하는 게 맞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5. 가족 관계
[1] 정상희 삼호방직 회장의 차남이다.[2] 현 신세계 및 조선호텔 명예회장. 과거 삼성전자 사장 등 삼성그룹의 주요 임원직을 역임했었다. 2006년 한국인 우주인 선발 당시 60대 후반의 고령에 나이에 지원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3] 일부는 이를 두고 "책임질 명분을 주지말라"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사인이 있다는 것은 문서의 존재를 알고 승인했다는 의미이므로 나중에 이 문서가 문제된다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경영인 중심 운영도 이런 관점에서 해석하면 명목적인 경영자를 두고 뒤에서 자신이 실질적으로 경영을 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방식의 경영이 가능하다.[4] 허나 엄밀히 말하면 신성장사업 발굴 또한 경영 능력 중 하나이다. 당장 삼성이 우뚝 설 수 있던 이유도 이건희 회장이 직접 반도체를 발굴했기 때문.[5] 사업을 확장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동통신사업에도 진출했으나 자금력이 부족해 결국 KT에 매각하게 된다. 그 외에도 이인희의 아들들보다 이명희의 자녀들의 능력이 좀 더 높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6] 이때 인터뷰 내용 중에는 앞으로 10년간 대면 인터뷰는 안 할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7] 삼성그룹 평사원 출신으로 신세계그룹에서 신세계회장까지 올랐다. 삼성그룹 비서실과 주요 계열사에서 재무전문가로 근무하던 구학서 회장을 주목했던 이명희 회장이 신세계그룹의 계열 분리 당시 직접 영입했다. 경영학 강의에서도 간혹 거론 되는 '윤리경영'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다. 퇴직 이후 신세계그룹의 고문으로 있으며,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그것도 '이화여대' 강연에서 '위안부 재합의를 원하는 건 우리나라 국민성 때문', '촛불로 정부가 바뀐 건 우매한 민주주의', '낮에 골프장 가면 여자들끼리 오는 나라는 한국 뿐, 호텔 레스토랑도 다 여자 뿐'등 주옥(...)같은 발언들을 늘어놓다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신세계는 재빠르게 "구학서 고문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며 선을 그은 건 덤(...)[8] 한남동에서 이마트 양재점까지 거리는 무려 '''10km'''로 자동차로도 네이버 길찾기 기준으로 무려 '''35분'''이나 걸리는 거리다.[9] 이명희가 막내딸이여서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었다고 한다.[10]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과 이명희 회장의 장남 정용진은 아예 초중고대학을 같이 나왔고 서로 동갑이다.[11] 아들 두 사람이 탈락한 것도 이유이지만 실제로 이병철과 삼성을 만들어온 과정을 보면 부자가 상당히 호흡이 잘 맞았던 것으로 보이며 이병철의 사람 보는 눈이 탁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