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순

 

[image] ''' 한국방송공사 ''' ''' 사장 '''
제15~17대
정연주


제18대
''' 이병순 '''


제19대
김인규

[image]
1. 개요
2. 일생
3. 논란
4. 수상경력


1. 개요


李炳淳
대한민국언론인. 1949년 8월 20일 생. 경상남도 거창군 출신이다.

2. 일생


경북고등학교서울대학교 독어교육과를 마치고 1977년, KBS 공채 4기 기자로 입사하여 주로 경제부에서 뛰었으며, 1984년 <경제특집-세계는 무역전쟁>으로 한국방송대상 문공부장관상을 받거나 <월요기획-인류의 유산 마야문명(1981)> 등 굵직굵직한 프로그램 기획에도 참여하는 등 관록을 지닌 기자였다.
1986년부터 경제부 차장을 3년 맡다가 1991년 유럽총국으로 발령나 3년간 파리, 베를린 특파원을 맡고 1994년 경제부 차장을 다시 맡았다. 이후 1995년 보도국 제작부주간, 1996년 사회부 기동취재담당 부주간, 1997년 전국부장, 1998년 경제부장 및 보도제작국 부주간, 1999년 보도국 편집주간 등을 두루 거친 후 2001년 창원방송총국장, 2002년 대구방송총국장, 2003년 뉴미디어본부장, 2004년 KBS 미디어 사장, 2005년 KBS비즈니스 사장을 각각 거쳐 2008년 정연주 전 사장 해임으로 공석이 된 사장직에 취임했다. 홍두표 이래 10년 만에 KBS 출신이 두 번째로 사장직에 앉았으며, 공사출범 이후 직원으로서는 처음이다. 2009년 DTV코리아 2대 회장도 겸임했다.

3. 논란


사장 취임한 지 3개월 만에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미디어 포커스[1]와 시사프로그램 시사투나잇/시사360을 폐지하였고, 자신이 사장이 되는 것을 반대하던 일부 직원을 징계하였으며[2], 2008년 말에 윤도현, 정관용, 2009년 김제동 등 진보성향 방송인들을 각각 프로그램에서 하차시켰다.
2TV 마지막 더빙영화 프로 KBS 프리미어도 폐지하였고, 2009년 가을 개편 때 걸어서 세계속으로[3]30분 다큐, 대결 노래가 좋다, 코미디쇼 희희낙락, 도전 황금사다리 등도 폐지하여 논란을 일으켰고[4] 2005년 닥터후 방영 시작으로 2회 연속으로 방영했던 일요 외화시리즈를 1회 편성으로 축소 시키면서출처. 여기에 악영향을 받아 KBS의 신뢰도는 떨어졌고, 시청률 하락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출처. 2009년 4월이원홍 등 전임 사장 5인[5]을 불러다 '홈커밍'을 열었는데, 사장 중 3명[6]5공 부역 인사라 논란을 빚었다. 다만, 의외로 KBS 9시 뉴스에 크게 간섭은 안 했다고는 한다.
결국 연임마저 하려고 했으나, 후임으로 김인규 사장이 임명되면서 연임은 무산되었다.
2017년 8월에 양승동을 제외한 과 함께 '''언론부역자''' 명단에 올랐다. 출처.

4. 수상경력


  • 한국방송대상 문공부장관상 (1984)
  • 한국방송대상 국무총리상 (1985)

[1] 이후 미디어 비평(2008~2013), 미디어 인사이드(2013~2016)가 나왔으며 고대영 임기 때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이 완전 폐지된 이후 후임 양승동 사장이 저널리즘 토크쇼 J로 다시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을 다시 부활시켰다.[2] 현 사장인 양승동파면 처분를 받았고 재심을 통해 정직 4개월로 징계 수위가 조정됐지만 이후 2년간 비제작부서 보내진 뒤 현업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3] 김인규 임기때 재편성.[4]SBS도전 1000곡을 그대로 배낀 노래가 좋다는 그렇다 쳐도, 황금사다리와 희희낙락, 30분 다큐는 봄 개편 때 신설되었지만 같은 해 가을 개편을 거치면서 없어지는 희대의 기록을 남기고 만다(...). 이후 매니아층이 있던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부활했지만 이병순 본인의 임기 때가 아닌 후임 김인규 임기에 가서 부활했고 나머지는 시청률이 저조했기에 부활하지 못 했다. 대신 임기 후반에 신설한 청춘불패출발 드림팀이 그럭저럭 시청률이 나와서 나름 오래 버텼으니 다행이랄까.[5] 정연주, 박권상을 제외한 당시 생존 사장들.[6] 이원홍, 박현태, 정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