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쇼헤이

 


'''카토 쇼헤이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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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NPB 이스턴리그 도루왕'''


'''2020 NPB 이스턴리그 타격왕'''

<color=#373a3c> '''치바 롯데 마린즈 등번호 65번'''
미나미 류스케 (2006~2012)

'''카토 쇼헤이 (2013~2017)'''

프란시스코 페게로 (2018)

<color=#373a3c> '''치바 롯데 마린즈 등번호 10번'''
로엘 산토스 (2017)

'''카토 쇼헤이 (2018~)'''

현역

치바 롯데 마린즈 No.10
카토 쇼헤이 (加藤翔平/Shohei Katoh)
'''출생'''
1991년 3월 28일 (33세), 일본 사이타마현 카조시
'''국적'''
일본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양타
'''학력'''
사이타마현립카스카베동고등학교-조부대학[1]
'''프로입단'''
2012년 NPB 신인드래프트 4라운드
'''소속팀'''
치바 롯데 마린즈(2013~)
'''등장곡'''
AAA - 笑顔のループ[2]
우에토 아야 - 夢のチカラ[3]
'''응원가'''
응원단 자작곡[4]
1. 개요
2. 아마추어 시절
3.1. 2013 시즌
3.2. 2014 시즌
3.3. 2015 시즌
3.4. 2016 시즌
3.5. 2017 시즌
3.6. 2018 시즌
3.7. 2019 시즌
3.8. 2020 시즌
4. 플레이 스타일
5. 기타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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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의 일본프로야구 선수.

2. 아마추어 시절


야구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때였다고 한다. 이때 육상도 하고 있었으나 아버지가 야구에 집중할 것을 권유하여 육상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갈 당시 공립고 소속으로 사립고를 꺾고 싶다는 이유로 카스카베동고등학교로 진학.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스위치 히터를 시작했다고 한다. 좌타를 시도한지 1 개월 후 연습 경기에서 이미 안타를 날리는 등 쉽게 좌타에 적응했다고 한다. 이렇게 스위치 히터가 됨으로써 자신의 빠른 발을 더 잘 살리게 됨으로써 본인 스스로도 "이것[5]이 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중요한 이정표" 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3년 내내 현 대회 8강이 최고기록이었고, 고시엔 출전은 하지 못했다.
2009년 죠부대학 비즈니스정보학부에 진학. 1학년 때부터 주전 자리를 거머쥐었다. 대학 리그에서 3년 연속으로 외야수 베스트 나인에 들어갔으며, 대학교 4학년 때는 주장을 맡았다. 리그 통산 성적은 4년 통산 90경기 107안타 7홈런 51타점 타율 .322.
이 활약을 바탕으로 201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치바 롯데 마린즈의 4라운드 지명을 받고 5000만 엔에 계약했다.

3.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3.1. 2013 시즌


5월 12일 카쿠나카 카츠야가 허벅지 부상으로 2군에 가면서 처음 1군에 올라왔다. 이날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전에 7번타자 우익수로 선발출장하여 3회 말, 프로 '''첫 타석'''에서 상대 투수 나가이 사토시의 '''초구'''를 강타하여 '''솔로 홈런'''을 기록했다. NPB에서 데뷔 첫 타석 초구 홈런을 기록한 선수 중 7번째이며, 6번쨰로 이 기록을 달성한 선수는 '''1950년에''' 데뷔한 '''투수''' 시오세 모리미치였다.[6] 참고로 한국에서 이 기록을 달성한 선수는 김태연송원국 단 두 명밖에 없다.[7][8]
시즌 성적은 23경기에서 타/출/장 .154/.154/.269 1홈런 1타점. 안타깝게도 데뷔 홈런 이후 타점을 생산하지는 못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에는 교체출장하였다. 이 경기 8회 초, 그의 '''생애 첫 포스트시즌 경기 첫 번째 타석'''에서 또 '''쓰리런 홈런'''을 날렸다! 패넌트레이스 데뷔 첫 타석과 포스트시즌 데뷔 첫 타석에서 모두 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NPB 역사를 통틀어 그가 유일하다고 한다! 팀은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까지 진출하였으나 거기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패하며 탈락.

3.2. 2014 시즌


2년 연속으로 개막은 2군에서 시작했으나, 4월 1일에 1군 등록. 타격 부진으로 13일에 다시 말소되었으나 한 달 뒤 다시 1군에 돌아왔다.
교류전 첫 경기였던 5월 20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경기에서 6 회말 대타로 출전하여 그대로 중견수 자리로 들어간 후 6-6로 팽팽했던 연장 10회말 2사 12루에서 상대투수 규코 겐타로를 상대로 우타석에서[9] 생애 첫 끝내기 쓰리런 홈런이자 자신의 데뷔 2호 홈런을 날렸다! 또한 바로 다음날에는 7번타자 중견수로 선발 출장하여 또 쓰리런 홈런을 쳤다! 그렇게 이틀 연속 수훈 선수로 선정되는 영광도 누렸다.
시즌 성적은 98경기 타/출/장 .253/.280/.344 3홈런 18타점 5도루.

3.3. 2015 시즌


겨우 21경기밖에 못 나왔다. 그래도 나올 때는 주로 선발위주로 나왔다.
시즌 성적은 21경기 타/출/장 .228/.267/.246 0홈런 2타점 2도루

3.4. 2016 시즌


2016년에도 개막을 2군에서 맞았지만 4월 291일에 1군으로 콜업되어서 선발과 백업을 왔다갔다하며 80경기 출전, 57경기 선발 출전을 기록하였으나. 8월 19일에 말소된 후 올라오지 못했다. 그리고 주로 중견수로 기용되었다. 선발출장한 57경기 중 45경기를 중견수로 나왔다고 한다.
시즌 성적은 80경기 타/출/장.245/.291/.310 0홈런 12타점 6도루. 점점 타격보다는 주루 쪽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이 해 7월에 결혼했다.

3.5. 2017 시즌


시즌 초반에는 2군에 있었으나, 팀 상황이 메롱이 되고 오카다 요시후미오기노 타카시, 이시미네 쇼타 등 기존의 리드오프들이 맛이 가면서 시즌 중반부터 1군에 콜업돼서 1/2번 타자로 자주 선발출장하고 있다. 팀타율이 2할 초반으로 맛이 간 롯데에서 2할대 중후반 타율을 보여주면서 스즈키 다이치와 같이 팀의 소년가장 역할을 하는 중.
8월 27일 기준 시즌 성적은 68경기 타/출 .266/.291 3홈런 4도루 17타점.
9월 14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전에서 4:3으로 뒤지던 9회 초에 역전 쓰리런 홈런을 쳤다! 이 홈런이 그날의 결승타가 됐다.
시즌 후 등번호를 10번으로 바꿨다.[10]

3.6. 2018 시즌


개막전에 9번 타자 우익수로 선발출장하여 5타수 1안타 1도루를 기록했다.
4월 3일 9번 타자 우익수로 선발출장하여 2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타율이 .167까지 떨어지고 대타 히라사와 타이가로 교체되었다.
결국 4월 7일 니시노 유지와 함께 아름다운 2군행. 대신 천관위가 1군에 콜업됐다.
2군에서 4할 치고 있다. 문제는 7경기 동안 1도루 4도루자를 기록할 정도로 도루센스가 떨어진 모습만 보여주는 중.
5월에 다시 1군에 콜업되었다. 콜업 이후 3경기에서 11타수 5안타로 불빠따를 휘두르면서 타율을 .296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부진 등으로 타율이 2할 2푼대까지 추락하고 결국 6월 25일 1군에서 말소. 빈 자리에는 스가노 츠요시가 올라왔다.
후반기 때 다시 1군에 돌아왔다.
7월 24일 스즈키 다이치대주자로 나와 1득점.
9월 5일 9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해 3타수 1안타를 기록. 타율은 .224로 올랐다.
9월 7일 대타로 나와 광속삼진.
9월 23일 후쿠우라 카즈야랑 같이 말소당했다.

3.7. 2019 시즌


히라사와 타이가키요타 이쿠히로를 밀어내고 주전 우익수 자리를 꿰찼고, 첫 3경기에서 2홈런을 치면서 이구치의 마음에 들었는지 2번 타자로 꾸준히 나오고 있다. 작년에는 똥행의 피해자였다면 올해는 수혜자가 된 셈.
4월 6일 2번 타자 우익수로 선발출장해 연타석 홈런을 쳤다.
4월 14일 1번 타자 우익수로 나왔으나 번트실패 하는 등 개판의 모습을 보여주며 스윕당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4월 18일 8번 타자 우익수로 나와 2타점 적시타를 치는 등 활약했다.
시즌 초에 4홈런을 치면서 포텐이 터지나 했으나 연속된 무안타행진으로 주전 자리를 오기노 타카시에게 빼앗겼고, 마지막 외야 한 자리도 키요타 이쿠히로, 오카 히로미와 번갈아 나오고 있다.
5월 8일에 다시 7번 우익수로 나옸으나 3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타율은 .238까지 내려갔다.
시즌 초에는 잘 했으나 시즌 중반에는 나올 때마다 아웃머신이 되었고 결국 6월 17일 1군에서 말소됐다. 대신 나카무라 토시야가 1군 콜업. 말소 전 성적은 41경기 92타수 20안타 타율 .217에 4홈런 8타점 4도루. OPS는 .689. 분명 툴은 좋은데 그 툴을 제대로 못 살리고 있다.
8월에 1군에 복귀했다.
8월 15일에 대수비로 들어와서 한 타석 섰으나 삼진아웃.
9월 중요한 경기에서 교체로 들어와서 연장전에서 콜플레이 미스로 중견수 오기노 타카시와 충돌하는 바람에 평범한 뜬공을 끝내기 인사이드 파크 여관으로 만들어버렸다.

3.8. 2020 시즌


2군에서 중심타자로 있지만 1군 기회는 받지 못하고 있다. 시즌이 어느정도 지난 7월에도 2군 외야수들 중 스가노 츠요시가 먼저 부름을 받으면서 점점 전력외로 밀려나가는 모양세.
8월 29일 드디어 콜업되어 이날 7번 좌익수로 나와 1안타를 기록했다.
9월 1일 7번 중견수로 나와 무안타.
이후 2군에 갔다가 10월 13일 1군에 복귀해서 대타로 나와 2루타를 쳤다.
1군에서 똑딱질밖에 못 했지만 나름 잘 쳤는데 의문의 2군 강등을 또 당했다. 방출 후보에도 올랐지만 살아남은 듯. 그리고 2군 타격왕을 수상했다.

4.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인 호타준족 스타일이다. 50미터 달리기가 5.68초로 준족으로 유명한 오카다 요시후미와 겨우 0.08초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런 준족의 장점을 살려 수비범위가 상당히 넓고, 거기다가 어깨도 강해서 멀리까지 송구를 할 수 있다. 2018년 시즌 이후 오카다가 은퇴하면서 50m 달리기가 팀내 2위다.[11]
타격의 경우 갭 파워를 가진 나름의 장타력을 소유한 타자이고, 스위치 히터이기 때문에 내야안타를 노리고 좌타석에 들어가서 치는 경우도 꽤 있다.[12] 하지만 컨택이 좋은 편이 아니라 타율은 2할 4푼 수준으로 좋지 못하다. 그리고 2015년부터 2년 간 홈런이 없어서 똑딱이화되나 싶더니, 2017년 다시 3홈런을 치면서 장타가 아직 남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오카다 요시후미와 비슷하게 선구안은 나빠서 볼삼비는 참담한 수준. 출루율이 2할 대이다(...). 참고로 현대야구 평균 출루율은 .330 정도. 사실 오카다와는 다르게 장타력이 있는 호타준족 스타일이라 1번 타자보다는 2~3번 타자가 좀 더 어울린다.
사실 팀메이트 오카 히로미처럼 발도 빠르고 나름대로 준수한 파워도 보유하고 있으나 야구센스가 부족한 스타일이라 기회는 많이 받는데 성적이 좋지 못하며 2군만 폭격하고 있다. 거기다가 오카는 다른 센스는 몰라도 도루 타이밍은 기가막히게 잘 읽는 편이고 1루 수비도 가능하다보니 대주자로의 활용도가 상당히 좋은데[13] 카토는 순수주력은 오카보다 빨라도 도루 센스마저도 부족해서 1군에서 도루를 잘 못 하다보니 그마저도 밀린다.

5. 기타


  • 도날드 덕을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 아버지는 창던지기 선수, 어머니는 육상선수였다고 한다. 운동선수 집안.
  • 프로에 입단하여 선수단 기숙사에 들어갈 때 대학교 시절 방에 구비해뒀던 만화책 200권을 모두 두고왔다고 한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야구에 집중하기 위함이라고.
  • 이노우에 세이야의 말에 의하면 팀에서 가장 프로야구 스피리츠 A를 잘한다고 한다. 이노우에도 데이터를 한 번 날려먹기 전에 100레벨을 돌파했던 나름대로 고인물 유저였음을 감안하면 정말 잘 하는 듯.

6. 관련 문서


[1] 미키 료의 대학 1년 선배다. 빠른 년생이라 학교를 1년 빨리 진학한 듯. 둘다 전공도 정보비즈니스학부로 동일.[2] 2번째 타석을 제외한 전 타석.[3] 2번째 타석 한정.[4] '''駆け抜けろ強く勝利を目指して光を放つ君の勇姿加藤翔平加藤翔平飛びたて翔平翔平彼方まで.(강하게 질주해라. 승리를 향해서 빛을 발하는 너의 늠름한 모습. 카토 쇼헤이 카토 쇼헤이 저쪽까지 뛰어올라라 쇼헤이.)'''[5] 스위치 히터 전향[6] 시오세 모리미치는 그 타석이 생애 유일한 타석이었다고 한다. 즉 1경기 1타석 1타수 1안타 1홈런 타율 1.000 출루율 1.000 장타율 4.000 OPS 5.000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애초에 시오세는 대학을 휴학하고 프로에 입단한 케이스로 투수로서도 딱 1경기만 나오고 프로를 떠나 대학에 복학하여 졸업하고 실업야구 쪽으로 가서 야구선수 커리어를 이어갔다.[7] 외국인 용병타자 짐 테이텀이 한국에서의 첫 타석 초구홈런을 달성한 적이 있기는 하다.[8] 참고로 롯데에서 첫 타석을 데뷔홈런으로 장식한 타자 중 유일한 현역이다. 카토 바로 전에 이 기록을 달성한 롯데의 타자는 헤이우치 히사오였는데. 이 타자는 일본판 김성현(...)이라는 소리를 듣는 선수였다. 2루수, 유격수가 주 포지션이었으나 3루수와 1루수도 안정적인 수비를 가진 타자였는데 중요할 때마다 이상하리만큼 실수와 본헤드플레이가 나오면서 팬들의 뒷목을 잡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또한 타격 역시 김성현과 비슷하게 뜬금포를 가진 똑딱이 스타일이었다. 김성현과는 다르게 주전 자리를 꿰차지 못하고 내야 백업으로만 뛰다가 2014년 33살의 나이로 방출당해 은퇴했다. 통산 449경기 출장 111안타 9홈런 타율 .199를 기록.[9] 좌완 사이드암이다. 2014년에는 공 한 개도 안던지고(도루실패가 나옴) 승리투수가 됐다.[10] 2016년까지는 오마츠 쇼이츠의 번호, 2017년에는 로엘 산토스의 번호였다.[11] 1위는 사기적인 스타트의 소유자 오기노 타카시.[12] 하지만 점점 우타석에 들어서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기는 하다.[13] 오카는 150타수 정도밖에 안 나오고도 13도루를 했다. 주전으로 써서 출루를 많이 했으면 1군에서도 30도루 이상 가능한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