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다 요시후미
1. 개요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의 일본프로야구 선수. 주로 중견수로 출장하며, 빠른 발을 이용한 뛰어난 외야 수비 하나만으로도 주전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선수이다. 이 선수의 호수비 모음이 한국에서도 돌아다닐 정도.
그러나 2018년 현재는 거의 강명구 마냥 전문 대주자...
드래프트에는 지명받지 못한데다 육성선수 드래프트조차도 하위픽을 받은, 거의 기대하지 않았던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에이스급은 아니지만 골글도 2년 연속 따는 등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나름 육성선수 신화를 이뤄낸 선수이다. 전성기가 워낙 짧아서 그렇지...[12]
2. 아마추어 시절
고등학교 시절 토치기현 예선에서 번번히 떨어지면서 고시엔을 밟지는 못했다. 이 때 주장을 맡은 적도 있다고 한다. 참고로 '''고교 통산 1홈런.''' 근데 그것도 정규 리그가 아닌 연습경기(...) 일본 고교야구는 연습경기 기록까지 다 합산하는 것 덕분에 그나마 이득을 보았다.
그 후 니혼대학에 진학하나, 대학에서 연골 손상의 부상을 입고 1년이상 재활이 필요하다는 소식에 대학을 중퇴하고 만다. 그리고 재활이 끝난 후 아시카 가스에 입사하여 사회인야구에서 뛰다가 2008년 롯데에 지명되었다. 참고로 지명된 해에 또 홈런을 1개 쳤다. 이 2개가 오카다의 프로-실업-아마추어 통틀어 유이한 홈런기록.
3.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3.1. 2009~2010 시즌
입단 직후 육성선수 전용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육성선수 기숙사의 로커도 없는 열악한 환실에서 헝그리 정신을 키웠다고 한다(...)
2009년 3월 30일 정식선수로 전환되었고, 2010년 6월 1일에 1군을 처음 밟게 되었다.
이 해 일본시리즈 엔트리에도 들어 2차전에는 선발로 출전하였고, '''7차전 연장 12회 결승타'''의 주인공이 되면서 일본시리즈 우승의 쐐기를 박았다.[13]
시즌 성적은 72경기에서 타/출/장 .176/.224/.190 '''0홈런''' 8타점 15도루로 또다른 준족의 탄생을 예고했다.
3.2. 2011 시즌
개막전에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 출장하면서 그대로 시즌이 끝날 때까지 꾸준히 1번이나 2번 타자로 시즌 전 경기 출전에 규정타석을 기록하였다. 육성선수가 시즌 전 경기를 출장하고 규정타석을 채운 것은 오카다가 최초라고 한다.
시즌 성적은 144경기 타/출/장 .267/.311/.293 '''0홈런''' 35타점으로 출루율보다 장타율이 낮을 정도로 똑딱질만 해 댔지만(...) 빠른 발을 잘 살려서 41도루를 기록했고 수비면에서는 시즌 내내 '''무실책으로''' 완벽한 수비력을 보여주었으며, 351척살로 퍼시픽리그 척살 1위+센트럴리그, 퍼시픽리그 통합 척살 1위를 기록했다.
당연히 최다 득표(163 표)로 골든글러브도 받았고, 퍼시픽리그 외야수 연속 무실책 신기록을 세우면서 특별 표창도 받았다.
3.3. 2012 시즌
전 경기 풀 이닝 출장을 목표로 임한다고 밝혔다.
개막 초기에는 타격 부진으로 인해 풀 이닝은 물론이고 전 경기 출장조차 이미 날아가버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주로 9번 타자로 출장하다가 타격이 조금 나아진 뒤에는 1번 타자로 자주 나왔다. 그러나 교류전에서는 지명타자가 없는 경기의 경우 출전하지 못하기도 했던데다 카쿠나카 카츠야, 오기노 타카시 등의 라이벌들에 밀려서 선발에서 제외하거나 9번 타자로 자주 나오는 등 전년에 비해 불안정하게 나왔다.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6월 19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홈경기에서 데뷔 첫 실책을 하면서 무실책 행진마저 깨지고 말았다. 그래도 리그 2 위를 차지하는 319 척살을 거두고 2년 연속 골든글러브 상을 수상했다.
이 시즌 성적은 131경기 타/출/장 .262/.300/.288 '''0홈런''' 18타점 23도루로 이 시즌 역시 출루율보다 장타율이 낮았다. 거기다가 23도루 14도루자로 도루자 1위는 덤.
3.4. 2013 시즌
팀의 주장을 맡게 됐다. 전년을 웃도는 134 경기에 출전했지만, 오기노 타카시, 기요타 이쿠히로, 이시미네 쇼타, 가토 쇼헤이 등 다른 준족 외야수와의 경쟁 때문에 대수비로 밀리는 경우도 많아서 2010년 이후 3년만에 규정 타석에 도달하지 못했고,, 타율도 결국 전년을 밑돌면서 주전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또한 3년연속 골든글러브 수상을 놓쳤다. 한편으로 전년보다 도루 수가 감소했지만, 도루 성공률은 .864로 제일 높았다.
시즌 성적은 134경기 타/출/장 .259/.319/.297 '''0홈런''' 18타점 10도루.
3.5. 2014 시즌
13시즌보다도 더욱 기회를 받지 못했다. 그래도 선발로 못 나올때는 대수비로라도 꾸준히 1군에서 출장하며 주전급으로 활약했다.
시즌 성적은 110경기 타/출/장 .275/.307/.329 '''0홈런''' 9타점 14도루. 그래도 이 시즌에 다시 수비 무실책을 기록하며 최고급 수비력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3.6. 2015 시즌
14시즌보다도 더욱 기회를 못받으며 1군 데뷔시즌을 제외하고 사실상 커리어로우가 됐다.
시즌 성적은 112경기 타/출/장 .245/.283/.287 '''0홈런''' 13타점 11도루. 결국 연봉이 깎이고 말았다. 데뷔 이래 연봉이 깎인 시즌은 이 해가 처음이라고 한다.
3.7. 2016 시즌
작년보다 기회를 많이 받으며 1번타자 혹은 9번타자로 꾸준히 출장하면서 1군 주전으로 재기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타격력도 2011년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좋았다. 아쉽게도 100안타는 실패하였지만 타/출/장 모두 데뷔 이후 가장 높았다.
시즌 성적은 121경기 타/출/장 .275/.323/.315 '''0홈런''' 18타점 14도루.
3.8. 2017 시즌
주전 1번타자로 자주 출장하던 타자가 팀의 성적이 폭망하면서 본인의 성적도 동시에 폭망하고 있다. 8월 25일 현재 성적은 31경기 40타석 33타수 무안타 타율 0.000 출루율 .132로 그냥 폭망해버렸다. 결국 시즌 초반에 9번타자와 대수비, 대주자로 좀 뛰다가 2군으로 쫓겨나서 몇 달째 감감무소식. 2016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4타석 연속 무안타를 기록하며 '''무려 44타석 연속 무안타이다.'''
2군 성적은 37경기에서 타율 3할 2리에 0홈런 7타점 10도루. OPS가 6할 7푼대일 정도로 똑딱질만 열심히 하긴 하지만 2군에서는 더 보여줄 게 없다.
올해는 결국 더이상 1군에 못 올라올 듯. 연속 무안타 기록+최다 타석 무홈런 기록은 내년 시즌이 되어야 이어갈듯.
결국 시즌 끝까지 못 올라왔다. 시즌 후 FA 대상자였지만 선언하지 않았다.
최종 성적은 31경기 출장 40타석 33타수 0안타 0홈런 0타점 4득점 2도루..그나마 5볼넷과 2희생타를 기록했다. 참고로 33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면서 1시즌 무안타 야수 중 가장 많은 타수를 기록한 선수라는 불명예 기록을 갱신했다(...) 참고로 그 전의 기록 보유자는 치바 롯데 마린즈의 요시다 유타. 이 선수는 16시즌 때 30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예상대로 연봉이 폭풍같이 깎였다.
3.9. 2018 시즌
2018 시즌 시작 전 기준 7타석만 더 무안타 기록하면 KBO 최고기록을 따라잡는 상황(...) 최다 타석 무홈런 기록도 곧 갱신하기 직전이다. 거기다가 오기노 타카시가 커리어하이를 찍는 덕분에 올해에도 작년마냥 부진하면 수비 포지션마져 밀려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러모로 본인에게 중요한 한 해가 될 듯.
개막전에 9회말 2사 상황에 신인 스가노 츠요시의 대주자로 나왔으나 어이없게 런다운에 걸리며 아웃당했다(...) 12회 말에 대타 리두쉬안으로 교체되어 타석에 서지는 못했다.
계속해서 대주자로만 나오는 중. 4월 8일에는 연장 11회에 2루주자의 대주자로 나와 3루를 훔치는 더블 스틸도 성공했다. 같이 도루에 성공한 1루주자는 스가노 츠요시.
4월 10일 대주자로 나와 또 도루자를 기록했다.
4월 12일 대주자로 나왔으나 바로 오기노 타카시가 병살을 치는 바람에 경기 끝. 대주자 이상의 기회를 못 받고 있다.
4월 20일 대주자로 나와 1도루를 하고 대타 히라사와 타이가로 교체.
4월 21일 기준 8경기에 출장했는데 1타석도 올라오지를 못했다(...) 롯데에서 18시즌 1군 경기를 치른 타자들 중 유일.
4월 25일 히라사와 타이가의 대수비로 경기에 투입되었다. 그 후 경기가 연장되면서 시즌 최초로 타석에 올라왔지만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희생번트(...) 결국 희생번트 성공으로 0타수가 되었다.
5월 2일 처음으로 타수가 기록되었다. 오기노 타카시의 대수비로 나와 타석에 선 것. 결과는 삼구삼진(...) 현재 46타석 연속 무안타다.
5월 14일 기준 18경기 3타석 2타수 타율 0.000 기록중.
5월 27일 기준 21경기 3타석 2타수 타율 0.000 기록중.
6월 2일 카쿠나카 카츠야의 대수비로 나와 타석까지 들어섰는데 볼넷으로 출루. 시즌 첫 출루다.
6월 9일 12회까지 연장을 치르면서 거의 모든 야수들이 대주자/대타로나마 출장하는 와중에 에무라 나오야와 함께 둘만 올라오지 못했다.
6월 13일 대주자로 나와 어이없는 도루실패로 아웃당한 후 우익수 대수비로 2이닝 뛰었다.
6월 26일 대주자로 나와 오래간만에 타석에 들어섰다. 결과는 볼넷. 6타석 3타수 무안타 2볼넷으로 출루율 4할을 찍었다. 현재 50타석 연속 무안타.
7월 3일 기준 42경기 7타석 4타수 무안타... 51타석 연속 무안타를 기록중. 60경기 이상 출장해서 무안타를 기록한 하야사카 케이스케의 2012년 기록과 비슷해진다. 또한 이로써 염경엽이 기록한(참고) KBO 기록을 따라잡았다. 참고로 NPB 기록은 90타석 연속 무안타. 그러나 이 기록은 투수의 기록이고 타자 기록은 난카이 호크스의 사쿠라이 데루히데가 기록한 58타석 연속 무안타이다.
7월 6일 끝내기 번트 병살타 포함 2타수 무안타로 말아먹었다. 53타석 연속 무안타를 기록.
7월 10일 결국 유일한 타석에서 2루땅볼로 아웃되면서 1타수 무안타 기록. 54타석 연속 무안타를 기록.
참고로 현재 78경기 중 48경기 나왔다. 하지만 고작 10타석 나온 게 전부.
7월 16일 이노우에 세이야의 대주자로 나왔다. 그 후에 타석이 돌아오긴 했는데 대타 후쿠우라 카즈야로 교체.
7월 24일 이시미네 쇼타의 대수비로 나와 3타석 2타수 무안타로 또 무안타 기록 연장.. 참고로 마지막 1타석은 번트다.
7월 27일 결국 1군에서 말소. 말소 전까지의 시즌 성적은 54경기 13타석 9타수 무안타 타율 .000 4도루 출루율 .182
참고로 57타석 연속 무안타.
결국 9월 25일 같은팀 투수 오토나리 켄지와 함께 은퇴를 선언했다.
10월 8일 은퇴경기를 치르기 위해 1군에 콜업되었다. 이날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한다. 이 날 첫 2타석은 안타를 기록하지 못해서 59타석 연속 무안타로 NPB 연속타석 무안타 타자 신기록을 찍었다(...) 그리고 3번째 타석에서 밀어쳐서 1루타를 치면서 간신히 2년 만에 안타를 쳤다. 그리고 다음 타자 후지오카 유다이의 삼진 때 도루자를 기록하면서 바로 덕아웃행. 그런데 그 후 4번째 타석과 5번째 타석에서 연속안타를 치며 이날 3안타를 기록했고, 마지막에 도루성공까지 해냈다. 그리고 경기 후에 은퇴식이 치러졌다. 오카다가 짤막하게 은퇴 소견을 얘기한 후에 모든 선수/코칭스태프와 인사를 하고 그 후에 주 포지션이 중견수인 오카다였던지라 담장 앞까지 가서 중견수 수비위치에서 동료들이 그에게 헹가래를 해 주었다. 이때 2군으로 밀려난 키요타 이쿠히로, 재활 중이던 오기노 타카시, 이미 은퇴식을 치른 카나자와 타케시, 네모토 슌이치 등도 자리에 있었다.
3.10. 은퇴 후
파견 형식으로 독립리그팀 골든 브레이브스의 코치로 취임했다. 치바 롯데와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만큼 훗날 코치로 친정팀에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
2019년 연말에 사스케에 출연한다고 한다. 주력 하나는 야구선수 중에서도 최고수준이었으니 스피드는 최상일 텐데 다른 부분에서는 어떨지.
그리고 1스테이지 첫 번째 장애물에서 광탈하면서 광속으로 사라졌다(...) 토치기 골든 브레이브스 유니폼을 입고 출전했으나 인터뷰 같은 것도 없이 묻혀버렸다.
4. 플레이 스타일
수비는 그야말로 엄청나다. 매 경기마다 호수비를 적립해내는 수준이다. 이 선수가 지워버린 안타 갯수가 매 경기마다 한 개 이상은 나올 정도라고 하니... 빠른 발을 이용한 엄청나게 넓은 수비범위와 몸을 가리지 않고 슬라이딩 캐치를 시도하는 모습 등으로 모든 플라이볼이 중견수 쪽으로 갔으면 싶은 수준의 괴물급 수비력을 보여준다.
수비 영상 모음 좌표.
그러나 수비 외에는 그다지... 타격은 일본판 강한울,이지영이다. 좌타 선수에 발이 빠르다 보니 강한울처럼 툭 갖다대고 1루로 전력질주해서 내야안타를 많이 생산해낸다.[14] 거기다가 강한울처럼 선구안도 좋지 않고 배드볼에도 막 배트를 갖다대다보니 출루율도 시망. 거기다가 맞추는 데만 급급하고 장타력도 안좋다보니 장타율이 출루율보다도 안 좋다. 출루율이 낮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장타율은 더 낮으니 원...
덧붙여 이런 선수를 1번에 기용하는게 일본의 낡은 야구관을 그대로 보여준다. 엄청난 외야수비와 2할후반의 타율을 기대가능한 에버리지로 주전선수로 기용은 가능하나, 하위타선이 아닌 테이블세터를 맡기는것 자체가 문제. 뜯어보면 타율만 2할 중후반이지 출루율을 생각해보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므로 비율스탯을 오로지 타율이랑 홈런 말고는 아무것도 안 보는 데이터 경시 일본야구의 전형적인 문제점이다.
1번타자에게 출루율, 가능하면 약간의 장타력도 요구되는것이 세이버 및 현대야구의 방침이라면, 2할후반의 괜찮은 타율과 빠른발만을 보고 1번자리에 세우는건 굉장히 비효율적이라 할수 있겠다. 사실 식물타격+낮은 출루율을 가졌지만 주루가 좋고 수비력이 좋은 타자는 9번타자가 제일 적합하다고 본다.
주력은 50미터 달리기가 5.6초가 될 정도로[15] 빠르긴 하지만 주루센스가 별로 좋지는 않다. 기록을 보면 도루사가 상당히 많다. 도루갯수도 한 해 40도루를 성공하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10개 좀 넘게 하는 데 그치고 있다.
결론적으로 보면은 그냥그런 주루와 형편없는 타격을 전설급 수비로 메꿔서 1군에서 버티고 있는 선수라는 것이다. 그러나 2017 시즌에는 타격이 그냥 형편없는 수준을 넘어서 '''투수가 타격해도 저것보다는 잘 할 것 같다''' 수준으로 추락하는 바람에 2010년 이후 꾸준히 1군에 붙박이로 있었던 그가 2군에서 몇달째 올라올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
5. 연도별 성적
6. 기타
- 육성선수 중 최초의 기혼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프로에 가기 위해 아시카 가스에서 퇴사할 때 부인이 엄청나게 반대했다고 한다.
- 통산 0홈런이다. 통산 2501타석에 섰는데도 0홈런을 기록하였다(...) 참고로 NPB 최고기록은 2528타석[16] 이므로, 27타석만 더 무홈런을 기록하면 이미 달성한 NPB의 통산 0홈런 타자 최다 타석 기록을 넘어 [17] NPB 최다타석 연속 무홈런을 기록하게 된다. 그러나 2018 시즌 이후 은퇴하면서 결국 2501타석에서 멈췄다.
- 이 양반 2군에서도 통산 0홈런이다(...) 물론 데뷔 직후와 2017년을 제외하면 풀 타임 1군 선수였기 때문에 2군 경기를 5년 동안 안 나가서 2군 경기는 통산 117경기 366타석 0홈런이지만...
- 앞에서 말했듯이 아마추어 시절에는 고교 연습경기에서 1홈런, 사회인야구 시절에 1홈런을 쳤기 때문에 홈런 자체를 평생 못 친건 아니다.
- [18]
[1] 주로 중견수 출장.[2] 사노 시에 위치한 니혼대학 부속 고등학교. 한국으로 치면 단대부고, 고대부고, 외대부고 등등과 비슷하다.[3] NPB는 자국인 육성선수도 드래프트로 뽑는다.[4] 일본의 사회인 야구팀. 일본의 사회인 야구가 그렇듯이 이 팀 또한 아시카 가스의 사원들로 이루어진 사실상의 실업야구 팀이다.[5] 2018 시즌부터 자작곡을 쓴다. 등장곡이 자작곡인 또 다른 선수로는 네모토 슌이치가 있다.[6] 이 노래 빠찡꼬 OST이다(...) 정확히는 전주만 해당.[7] '''전주: 打てよ力強く 放て鋭い打球 岡田走り抜け 風よりも速く/(岡田!)ラララ…熱くハートを燃やせ 鋭く振りぬけ 守備も魅せてくれ さあ走り出せ岡(힘차게 쳐라 날카로운 타구를 발산해라 오카다 앞질러달려라 바람보다 더 빠르게~/ 오카다! 라라라... 뜨거운 마음을 태워라 오카다! 날카롭게 배트를 휘둘러라 수비로도 매료시켜라 자 달려가라 오카다~)'''[8] 이 응원가가 처음 나온 시즌에는 打てよ~速く까지만 응원가로 썼다. 이 부분을 반복하고 캇토바세 오카다를 붙였으나 1시즌이 지나자 ラララ이후 부분이 추가되었고 캇토바세 오카다에서 오카다 히토로 응원 구호도 바뀌었다.[9] KBO 기록은 강한울이, MLB 기록은 벤 르비어가 가지고 있다.[10] 투수까지 합치면 90타석(...)[11] 2017년 기록.[12] 육성선수 드래프트 동기 8명 중 지배 등록된 선수는 3명밖에 없고(오카다, 니시노, 스미) 1군을 밟아본 선수는 2명이다.(오카다, 니시노) 나머지는 모두 육성선수 상태로 은퇴.[13] 사실 그 해 일본시리즈에서는 1무가 있었기 때문에 이거 져도 3승 1무 3패라서 한 경기를 더 할 수 있었다.[14] 1군 첫 시즌에 25안타중 8개가 내야안타. 이 해에 내야안타 8개, 내야를 벗어난 단타 15개, 2루타 2개를 쳤다.[15] 유재신이 30미터에 3.3초니 유재신과 견줄 만하다.[16] 전 한신 외야수 아카호시 노리히로의 기록. 아카호시는 그나마 통산 3홈런을 기록하기도 했고, 부상으로 생긴 불치병 때문에 이른 나이에 은퇴한지라 단순히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17] 참고로 데뷔 홈런을 가장 많은 타석을 경험하고 친 선수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서 뛰는 나카시마 타쿠야. 2287번째 타석에서 데뷔 홈런을 쳤다.[18] 2010년에 오카다의 연봉이 440만 엔이었고, 2011년에 880만 엔이 됐는데 이때 부인의 연봉을 역전했다고 인터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