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사건사고

 


1. 장나라 시구 사건
2. 인터뷰의 대가로 돈 요구 사건
3. 전준호와의 도루왕 경쟁 사건
4. 선수협 관련
5. 사건
6. 해설 관련
7. 기타


1. 장나라 시구 사건


[image]
[image]
당시 시구영상
호..호옹이! 너는?!
2002년 올스타전 당시 인천 문학야구장에서 장나라의 시구를 굳이 받아친 사건. 이때 맞은 타구가 하필 시구자 장나라 정면으로 날아가서 맞을뻔했다. 만약 대한민국 최고의 한류스타인 장나라가 현역 야구선수의 공에 맞아서 다치기라도 했다면 '''국제적으로 파문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다.'''[1]
장나라의 안티와 기아 일부 팬들의 장나라가 1시간 또는 30분(각 글마다 다르다) 지각을 해서 이종범과 관중석에서 짜증이 났다거나 장나라가 구두를 신었다 등에 '''헛소문'''도 나왔는데, 사실은 2002년 올스타전 경기가 오후 6시30분에 시작될 예정었으나 올스타전 경기전 행사인 퀴즈게임과 치어리더 경연대회, 그룹가수 공연 등 식전행사가 늘어지면서 40분이나 늦은 7시10분에 경기가 시작된 부분이 와전된 것이다. '''장나라는 당시 지각을 한다거나 불성실한 행동을 한 적이 없다.'''
게다가 지각을 했다 쳐도 선수도 아닌 일반인에게 굳이 타구를 한 것은 명백한 '''위협'''이다. 단순히 기분 나쁜 수준이 아니며 프로 야구선수의 타구에 제대로 맞으면 크게 다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덩치 크고 근육질인 프로야구선수들도 야구공에 맞고 부상당해서 수 개월을 쉬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마른 여성의 몸으로 저렇게 코 앞에서 타구를 맞으면 정말 심한 부상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펜싱 선수가 펜싱 검으로 상대를 찌르는 듯한 행동을 하거나, 유도 선수가 상대를 잡아메치려는 듯한 동작을 했다고 생각해 보면 이종범의 타구가 절대 장난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2]
홍드로 같은 현재 시구문화 등에 거론도 있는데, 이 시기에는 시구자가 어떤 분야의 인물이든 '''공을 잘던지는 거보다 시구를 한 것에 의미를 두었다.''' 아니, 원래 시구 자체가 각계각층의 인물들을 섭외해서 화제를 모으기 위한 '''쇼'''다. 홍수아가 멋진 투구폼을 보여주었던 것은 정말 칭찬받아 마땅할 일이지만 장나라가 그러지 않았다고 해서 타구를 마주보는 위협적인 상황에 처해야 할 이유가 없다. 애초에 투구폼 가지고 지적할 거면 그냥 현역 투수한테 던지라고 하지 뭐하러 연예인을 섭외하겠는가?
이 시구 논란에서 큰 문제는 공을 친후 바로 덕아웃으로 가면서 '''즉각적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터넷에서 논란이 되자 장나라의 아버지이자 배우 겸 성우 주호성은 "이 선수가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고 사고도 없었으니 진정하라"는 글을 올렸다. 이종범은 이후“팬들에게 깜짝 놀랄 만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싶어 순간적인 충동으로 타격했다. 장나라씨가 놀랐다면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으며 장나라는 공식홈페이지(나라짱닷컴)에서“놀라긴 했지만 상당히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시구 직후 곧 안정을 찾았다”는 글을 올렸다.
이후 이종범은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이 사건에 대해 회상했는데, '''(장나라가 잘못됐으면) "결혼했는데 데리고 살아야 하나"'''라는 발언을 했다.
후에 kbs 관계자는 당시 진행자였던 이창명이 타구를 쳐야 재밌지 않겠냐는 말에 카메라가 없는 쪽으로 친다는 것이 장나라 쪽으로 간 것 같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 의견은 타구를 쳐놓고 당장 걱정스러운 표정도 짓지 않고 그냥 뚱한 표정을 지은 채 덕아웃으로 걸어들어갔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당시 행사에 참석했던 기자들 역시 추후 10여년이 지나 이종범이 예능에 나와 이런 해명을 하는것을 두고 '그 날 분위기를 우리가 다 아는데 그런 거짓말은 너무 뻔뻔하다'는 논조의 기사로 맞받아치기도 했다.
사실 이 당시 월드컵 시기라 야구 인기가 없었고 하니 묻힌게 크지, '''요즘 시대였음 정말 엄청나게 까였을 것이다.''' 이승엽 싸인 안해준다고 범죄자 운동선수[3]보다 나쁜 놈 취급인데 말이다.
그리고 이종범은 며칠 후 롯데 자이언츠와의 광주 홈경기에서 상대 투수 김장현의 빈볼에 얼굴을 직격당했다.

2. 인터뷰의 대가로 돈 요구 사건


이종범이 주니치 시절 KBS 한성윤 기자 외 취재진에게 인터뷰의 대가로 2만엔을 요구한 사건. 섭외 후 인터뷰를 하러 취재진이 일본에 갔는데 "정말 중요한 시기이니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다"라고 했다가 출장비를 털어 2만엔을 주니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가 바로 바뀌어 인터뷰가 성사되었다고 한다. 사실 공식 기사는 아니었고 기자가 취재후기라며 게시판에 끄적거린 글이며, 실명은 거론되지 않았지만 일본에서 활동, 선수협, 위의 장나라 시구 사건에 대한 내용이 있어 당사자가 이종범임을 금방 파악할 수 있다.
내용 중 이종범에게 선물하려던 기념품을 그냥 버렸다는 내용에 한성윤 기자의 배신감이 절로 묻어난다. 하지만 이 사건은 기자가 일본야구의 인터뷰 룰을 몰라서 벌어진 사건일 가능성이 크다. 이후 이와 유사한 일이 이병규에게도 발생했다. 기사를 참조하자 이 사건은 이종범이 국내 복귀팀으로 삼성 라이온즈를 원했었다는 사실(그의 타이거즈로의 국내복귀는 KIA가 해태를 인수하고 난 뒤 이루어졌다.)과, 말년에 은퇴하지 않으려한 것과 합쳐져 돈을 지나치게 좋아한다는 비난을 받을 때 사례로 자주 쓰였다.
한편 2013년 임찬규 물벼락 사건이 터지고 한성윤 기자의 소위 "못배운 야구인들" 발언이 논란이 되면서, 이 사건도 재조명되었다.

3. 전준호와의 도루왕 경쟁 사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1993.9.27 경향신문)
93년 신인시절 73개의 도루로 75개의 롯데의 전준호에 이어 도루 2위를 기록했다. 둘 모두 기존 최다도루 기록이었던 김일권의 62도루를 초월한 훌륭한 기록이긴 했는데 문제는 시즌 막판 도루왕 경쟁이 붙으면서 둘 다 팀 차원에서 기록 밀어주기로 쌓은 도루였다는 점.
시즌 막판 해태는 정규리그 1위, 롯데는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된 상태였다. 그 와중에 둘의 도루왕 경쟁이 불이 붙자 팀 차원에서 기록 밀어주기가 시작되었으며 시즌 끝날 무렵에는 양팀 모두 아래와 같이 지금은 상상도 못할 추태를 보여줬다.
1. 전준호와 이종범은 선발 출전하지 않고 벤치에서 헬멧을 쓰고 대기
2. 처음으로 출루한 타자가 나올 경우 그게 누가 되었든 바로 대주자 교체 → 도루 1개 추가
3. 도루 시도시 타석에 선 타자는 볼은 물론 충분히 칠 수 있는 스트라이크마저 일부러 헛스윙해 포수의 시야를 방해
심지어 타석에서 2루타성 타구를 날리고도 일부러 2루로 가지않고 1루에 멈춰서서, 2루도루 3루도루로 도루 2개를 추가하는 기행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특히 이종범이 이 방법으로 한 경기에서 무려 6개의 도루를 쌓았을 정도.
2006-2007 시즌 프로농구에서 벌어졌던 문경은과 우지원의 3점슛 몰아주기와 비교할 수 있는 행태였음에도 이 당시 언론들은 죄다 둘의 도루왕 경쟁을 아름다운 선의의 경쟁으로 포장하기에 바빴다.당시 스포츠언론의 수준을 볼 수 있었던 사건. 단 한 명의 기자만이 별도의 칼럼에서 직설적으로 추하다는 단어를 써가면서까지 둘을 디스했다.
당시는 지금처럼 인터넷은 물론이고 미디어의 영향또한 크지 않던 시절이라 묻힌감이 있지만, 지금 저런짓을 했다간 역대급 비난을 받을만한 수준의 추태임은 분명하다. 혹자는 신인왕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었다고도 하나 당시 신인왕은 양준혁으로 거의 굳어졌던 상황이었다.

4. 선수협 관련


2차 선수협파동 당시 일본에 있었던 관계로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하지만 회장인 송진우가 운영자금이 부족해 해외파에게 손을 벌렸을때 모른척하는등 철저하게 방관자로만 남았다. 덕분에 정민태와 쌍으로 까였다. 도움을 준거라고는 선수 소장품 경매에 주니치시절 물건들을 몇개 내놓은것 뿐. 당시 해외파 선수중 박찬호, 김병현, 조성민등 한국프로야구를 거치지 않은 선수들에게 책임은 물을수 없다. 2001시즌 도중 한국으로 복귀하면서 회장직을 맡을거라는 보도가 나왔으나 이종범은 이사회에 불참하고만다. 당시의 이종범은 3년반의 일본생활을 한 후 복귀 1년차인탓에 명성에 비해 선수단 내에서의 입지는 그리 강하다고 보기 힘들었고 구단과 이호성(...)의 협박이 있었을거라는걸 감안하면[4] 마냥 비난할 일만은 아니지만 이후 나온 변명이 '''한 팀에서 연속으로 선수협 회장이 나오는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 였기에 많이 까였지만 따지고 보면 틀린말도 아니다. 애초에 반대한것도 아니고 의욕이 없었던 것이 잘못이라 할수도 없는것 아닌가.
2005년 말에 선수협 4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선수들의 권익신장을 위해서 한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활동이 없었다. 외국인 엔트리 확대저지, 동대문야구장 철거 반대운동정도가 업적의 전부. 선수협 홈피가서 06,07년 연혁을 보면 기겁을 할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크게 두가지인데 첫째는 2차 선수협파동 당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애초에 이종범이 구단과의 마찰을 부담스러워했다는것이고 둘째는 재임기간 2년이 야구인생 최악의 성적이었던만큼 자기 앞가림하기도 바빴다는데 있다.[5] 이 당시 이종범이 취한 미온적인 태도는 다음 회장인 손민한이 팬들의 반대까지 나올 정도로 초 강경한 태도를 취하게 된 원인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이종범의 선수협 회장 재임 당시 억대의 금전사고가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강병규 트위터에 따르면 이종범회장은 선수회비를 펀드에 투자 결정했고 그걸 모든 선수들에게 공표하지 않았고 결국, 손실처리난 억대의 금액을 쉬쉬하고 넘어갔으며 결국, 이종범은 회장으로서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이 때, 손민한이 회장에 취임하며 전임 나진균 선수협 사무총장을 강제해임 하는 걸로 이 일을 마무리 짓고 8개구단 대표선수중 그 어느 누구도 금전적인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 선수협은 선수협 공금을 일부 고참 선수들에게 빌려주었던 사실도 문제가 되어 선수협 집행부의 자질 문제도 심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진균 전 사무총장[6]의 말에 따르면 펀드로인한 손실은 계약을 해지하는 과정에서 500만원 가량이라 하며 선수협이 펀드를 투자한것은 각 구단 대표 8인의 통보 빛 승인을 받은 사항이라고 한다. 강병규 역시 이후 인터뷰에서 억대의 손실을 600만원의 손실이라 말을 바꾸었으니 결국 본인도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꼴.

5. 사건


한때 빵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되며 빵종범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기아 구단이 당시 빵을 먹은 선수는 지금 팀에 없는 선수라고 기사를 냈으며, 마해영은 본인의 책 '야구본색' 출간 후 식사 자리에서 빵 사건 자체가 금시초문임을 밝혔다. KBS의 옐로우카드라는 프로그램 51회에서는 이재국 야구전문기자가 당시 빵 사건을 언급하면서 빵을 먹은 인물에 대해서 밝혔다. 당시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 들어있었던 사람인데 대패를 하고 난 뒤 "야, 빵없냐?" 라면서 빵을 먹은 선수는 FA로 영입되어 팀에 융화되지 못하던 선수로, 2009년에 현역이 아니고 은퇴한 선수라는 것을 암시한 것인데...
재밌는 건 같은 오해에 휘말린 박재홍의 경우엔 오히려 팬들이 더 "빵형", "빵신" 등으로 친근감 있게 부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종범은 빵 먹을 수 있지 않냐면서 자신이 옆에서 그 장면을 목격했다면 물이라도 갖다주라고 했을 것이라 했다.
이후 2012년 이야기쇼 두드림에 출연하여 본인은 빵을 먹지 않았다고 직접 언급하였다.
그렇긴 한데, 빵 사건의 최초 발설자인 정철우 기자가 진범이 마해영임을 밝히면서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갔다고 진범보다 더 욕을 먹었다.

6. 해설 관련


2015년 4월 21일 두산넥센의 경기에서 해설을 맡았는데 한명재 캐스터, 정민철 해설과 함께 방송에서 했다는 게 믿을 수 없는, 편파적이다 못해 대놓고 두산을 싫어하나 싶은 발언들과 해설로서 부적격한 언행으로 논란이 되었다.
'''당시 발언 내용 정리'''
  • 2회 말
    • 김지수 선수의 스퀴즈 장면 리플레이 때
      : 염경엽 감독의 그런 눈빛을 보면 마야의 성격을 다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아요.
      조금 흥분시키면 지 혼자 무너지는 선수이기 때문에... (중략) 제가 잠시 언급했지만 이 친구 상당히 흥분을 진짜 빨리 하는 상태기 때문에...
    • 윤석민 선수에게 투런 허용, 이전에 정민철 해설이 "마야가 목동구장에서 방어율이 너무 높다"고 언급했었음.
      정민철: 제 멘트 때문에 점수 준 건 아니죠?
      한명재: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이종범: (굉장히 비꼬는 말투) 그런 건 아니에요, 실력이에요.
    • 윤석민 선수의 투런 리플레이, 빠던에 불편해하는 마야를 보고: 일단 한국에 왔으니까 한국 문화에도 적응을 해야 한다는 거죠.
      (당시 한명재: 여기는 미국야구가 아니라, 메이저리그가 아니라 한국 야구잖아요.)
  • 4회 말
    • 저는 염경엽 감독하고 군대를 같이 나왔고, 여러분이 아는 그 선배의 따까리죠.
  • 6회 말
    • 두산의 1년차 신인 투수인 남경호 선수의 데뷔 첫 1군 등판, 본인 아들의 친구라며 해설하는 내내 선수를 이 친구라고 지칭
  • 7회 말
    • 두산의 유민상 선수가 데뷔 첫 1군 경기에 출전했는데 수비할 때 껌을 씹는 모습이 중계화면에 잡힘
      : "저는 솔직히 저렇게 껌을 씹는다고 생각도 못 했는데.. 저 정도는 하면 안 되는 줄 알고 시합을 뛰었어요."
  • 8회 초
    • 덕아웃에서 종이접기를 하고 있는 두산 선수의 손이 중계화면에 잡히자 비웃으면서
      한명재: 저기요, 오늘 선발투수 아닙니까?
      이종범: 마땅히 할 일도 없구요...
      한명재: 마야 아닙니까? 마야?
      이종범: 네... 그런 좀 위안거리를 하나 삼으려나 봐요.
      참고로 종이접기 하고 있던 사람은 마야가 아닌 니퍼트였다.
위의 말들은 이종범이 관련된 말만 쓴 것이고, 다른 중계진들이 한 말들도 많다.[7] 무슨 아프리카TV BJ도 아니고 방송사의 해설위원이라면 당연히 발언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 날은 아예 망언대잔치 수준이었고, 이 경기가 끝난 이후 엠스플 시청자 게시판이 난리가 났다.
이후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가 넥센에 입단해 17시즌부터 주전이 되어 1군 붙박이가 된 뒤로도 죽 해설을 하게 되었는데 넥센전마다 이순철과 달리 칭찬과 잡담으로 일관했고, LG 대 넥센전에서 상대 만루홈런이 나오자 전 넥센 투수코치 손혁과 30초간 침묵하는 등 충분히 편파 논란이 일 해설을 해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7. 기타


  • 정준하가 은퇴파티 사진을 올리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술자리를 만든 취지는 좋으나 이종범의 은퇴과정에서 구단, 코칭진과의 마찰이 드러나고 은퇴식 일정도 불투명해 야구계 전체가 어수선할 때 이런 술자리 사진이 올라왔으니 좋게 볼리는 만무. 다만 이건 이종범의 잘못보단 이런 사진을 올린 정준하의 잘못이 크다. 애초에 논란이 가라 앉은 다음에 올라왔다면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을 사진이기 때문.


[1] 참고로 2002년의 장나라는 거의 사기급이었다. 2003년의 이효리가 있다면 2002년은 장나라일 정도. 물론 이효리는 현재 장나라와는 다르게 가수로서 지금 꾸준히 롱런한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겠지만....여튼 이 때의 장나라는 '''지금의 아이유보다도 훨씬 인기가 많았다.''' 가수와 연기자로서 모두 흥하고 가수로서는 가요대상만 2개를 탔고, 연기자로서도 명랑소녀 성공기내사랑 팥쥐로 대박을 터트렸다. 사실 2002년은 지금처럼 스마트폰, SNS나 유튜브같은게 발달하지 않은 시점이고, 온 국민이 히딩크호의 기적적인 월드컵 4강 진출 신화로 축구에 빠져있던 시절이다. 야구의 인기는 매우 심하게 없던 시절이고 말이다. 사실 지금처럼 SNS가 발달하고 야구의 인기가 많은 시절이었으면 아마 이종범은 '''지금 까이는 거에 100배 까일것이다.''' 이 뒤로 선수들은 시구를 던지면 대부분 헛스윙을 하거나 쇼맨십으로 번트를 대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신조 츠요시가 시구 던지면 치기로 유명했다.[2] 추성훈이나 김동현이 일반인보다 힘이 넘사벽으로 세지만 최소한 예능에서 대놓고 힘을 풀파워로 보여주진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사람 다치기라도 한다면 선수 이미지가 엄청 손상되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렇게 했다간 운동선수들의 예능 진출은 힘들어질거고. 추성훈은 연예인들에게 팔씨름이나 딱밤으로 힘을 보여준다. 딱밤만 때려도 위력이 엄청나다. 과일을 부술 정도니깐. 성인남자(예능에서 유재석, 데프콘, 유희열, 홍진호가 딱밤을 맞았다. 그 약하다는 유희열도 최소한 성인 여자보단 힘이 있다.)가 추성훈 딱밤맞아도 얼얼한데 연약한 여자한테 딱밤을 때린다면 엄청난 트라우마가 될 것이다.[3] 허재는 무면허 음주운전에 상습인데도 이미지가 좋다. 서장훈도 마찬가지.[4] 나이차이는 나지만 김기태 - 이승엽과 비슷한 경우. 그렇긴 한데 막상 이종범이 되돌아 온 시기는 이호성이 '''선수협 회장으로서 열심히 활동하다가 강제로 은퇴당한 시기'''였다는 점에서 이호성 보다는 구단의 압박이 문제였을 것으로 보인다.[5] 더군다나 이종범이 커리어 로우를 찍던 시기는, 기아가 이강철, 조규제, 마해영, 홍현우 같은 이종범의 선배들이나 동기, 후배들을 쳐내던 시기였다. 이종범 본인이 여기서 성적은 성적대로 안 나오면서 선수협 활동에 열중했다가는 팬들의 여론과는 반대로 리빌딩을 시도하던 구단의 희생양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6] 후일 사무국장으로 복귀했다.[7] 한명재가 마야의 평균자책점이 오른 것을 보고 계속 웃으면서 해설을 한다거나(이 때 해설위원 세 명이 모두 웃었다.), 정민철이 넥센 박동원 선수가 뜬공 타구를 잡아보겠다고 열심히 뛰는 것을 보고 "허슬플레이를 의식하고 하는 것과 자의적으로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야구를 조금이라도 알면 두산이 구단 차원에서 미는 팀 컬러 중 '허슬 두'가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안다.) 라고 한다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