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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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프로야구 선수이자 前 MC.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성남고 시절 전설적인 우완 에이스로 활약했다. 1990년 제20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전 경기 완투하는 투혼으로 성남고를 결승까지 올려놓았던 것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3] 1991년 신인 지명에서 LG와 OB(지금의 두산)가 모두 강병규를 1차 지명하는 바람에 결국 제비뽑기로 결정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4]
2.2. 프로 시절
140km/h대의 직구 위력은 평범한 수준에 위력적인 결정구 부족으로 안타를 많이 허용하는 타입(통산 피안타율이 .278)이었지만, 구위에 비하면 공격적인 피칭으로 이닝을 많이 먹던 투수였다.
통산 성적은 56승 63패 평균자책점 4.15. 패가 승보다 많지만[5] 그래도 선발 투수의 지표인 시즌 10승을 두 번이나 기록했다. 게다가 1990년대는 우승한 1995년을 제외하면 베어스의 암흑기였던 점이 크고, 타선도 우동수 트리오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강하다고 볼 수 없는 타선이었다. 통산 247경기 중 137경기가 선발이었는데 완투를 15회 기록하였고, 선발 투수 등판시 평균 6이닝을 먹어주는 이닝 이터형 투수였다. 9회 2사까지 무실점으로 막다가 백투백 홈런을 맞고 2:1로 진 경우도 있었다.[6]
즉 방송에서 유머소재로 삼던 것처럼 형편없는 실력의 선수는 절대 아니었던 것.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1, 2선발을 맡을 만한 선수는 당연히 아니었고 어느 팀에 가도 3, 4선발 정도는 할 수 있는 쓸모 있는 투수였다. 이닝을 많이 먹었다고 하지만, 평균자책점[7] 이 4.15라는 것은 선발 투수로서 아주 뛰어났다고 볼 순 없다. WAR로 볼 때, 보통 1선발급 선수는 5~6 WAR를 먹어주는데 강병규는 1~2점대의 시즌 WAR을 기록한 편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삼성의 전병호와 통산 누적 WAR이 비슷한 편인데 누적스탯은 두 시즌을 더 오래 뛴 전병호가 약간 더 쌓았고 방어율은 강병규가 좀 더 낫다.
유독 삼성에 강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승엽에게는 약했다고 한다. 특히 이승엽이 1999년 54홈런을 치던 시즌에 그가 3개를 맞았는데, 그걸 가지고 토크쇼에서 참 많이 써먹었다.[8] 이승엽이 비타민 게스트로 나왔을 때 이런 아픈 기억을 웃으면서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이승엽에게 가장 많은 홈런을 허용한 투수는 태평양-해태/KIA에서 활약했던 최상덕(7개)이다. 하지만 이승엽에게 3홈런을 허용한 시즌이 그의 커리어 하이였다는 게 함정.
평소 '''장호연'''을 롤 모델로 삼았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연봉 협상을 질질 끌어서 임의탈퇴 위기에 가기도 할 정도로 구단에 민폐를 많이 끼쳤다. 그렇다고 장호연의 피칭 스타일이나 자기관리를 본받았냐 하면, 전혀 아니올시다. 적어도 자기관리는 충실했던 장호연과는 달리 놀기 좋아한 탓에 스프링캠프에 늦게 합류하면서 이게 체력 부족으로까지 나타나 전반기에는 나름 괜찮은 선발이었다가도 후반기에는 폭망하는 시즌의 반복이었다. 그나마 괜찮게 한 게 1993년과 1999년. 이 때가 강병규 역사상 유이한 두자리 승수시즌이다. 뭐 이런 상황에서 장호연처럼 구질을 연마하거나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노릇이겠고...
선수협 파동이 터지자마자 2000년 시즌을 단 1주일 앞두고 SK 와이번스로 광속 트레이드되었다. 그 말고도 타 팀의 선수협 관련자들은 대부분 트레이드되었다. 살아남은 회장님이 특이한 케이스.[9]
SK 와이번스로 이적한 후, 강병철 감독이 낮 경기에 강병규를 중간계투로 등판시키려 했으나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서 낮 경기에는 뛰어서는 안 된다."'''라는 드립을 날려 SK 코칭스탭은 물론 프런트에게도 완전히 찍혔다. 두산에서 내쳐지면서 야구에 대한 열정이 완전히 식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00 시즌을 날린 후 박재용, 박정현, 김정수, 장광호 등과 같이 SK에서 방출당했다.
한국야구선수협의 선수협 파동에서 송진우, 김재현, 마해영 등과 함께 선수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선 공로가 있다. 다만 나중에 보인 막장 행각으로 다 까먹었다. 강병규/사건사고 참조.
2.3. 연도별 주요 성적
3. 방송인 강병규
두산 베어스 시절인 1999년, 출발 드림팀에 나온 적이 있었는데, 정수근, 홍성흔 등과 함께 개그맨 뺨치는 입담과 꽤 준수한 외모 덕에 예능계에 도장을 미리 찍어두었다. 해당 방영분[10] 이로 인해 선수 시절부터 연예계 진출 제의를 여러번 받게 되었고, 그 덕에 야구선수 은퇴 후 KBS 시트콤 "멋진 친구들"[11] 로 첫 데뷔해 여러 방송사의 주말 버라이어티 MC를 맡으면서 단기간에 성공적으로 연예계 진출을 이룬다. 본인은 연예계 진출 초창기 자신이 연예계 롤 모델로 같은 야구선수 출신으로 스포츠와 버라이어티를 접목해 큰 인기를 끌었던 일본 야구해설가 에가와 스구루를 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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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연예인 못지 않은 준수한 외모[12] 와 186cm, 81kg의 모델 뺨치는 허우대를 바탕으로 제법 나쁘지 않은 진행 능력까지 뽐내며 방송인으로서 무난한 이미지를 구축하였으며, 자신의 야구 성적 등을 끌어내 망가지는 등, 주로 '망가지는 MC' 컨셉을 밀어 붙였다. 위험한 초대에서 허구한 날 물에 빠진다든가[13] 해서 '위대한 밥상'에는 손도 못 대는 비타민 MC[14] 등이 그런 역할. 서장훈이나 강호동처럼 딱히 선수로서 입지가 좋았던 게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예능 프로에 순탄히 캐스팅 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예능인으로서 재능과 포텐이 높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실제로도 그러하기도 했고.
무한도전의 초창기[15] 시절 표영호의 원래 자리는 강병규가 맡을 뻔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강병규는 당시 출연 제의를 받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하필 당시 출연 중이던 비타민의 녹화 시간이 겹치던 관계로 과감하게 무모한 도전 출연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 후 무한도전이 뜨고 나서 강병규가 속으로 배아파했다는 후문.
이경규가 2001년 봄 개편부터 KBS 2TV <夜!한밤에> 메인 MC로 합류할 당시 보조 진행자 물망에 한때 거론되기도 했다.
2012년 1월 경에는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와 TV조선 토크쇼 노코멘트에 게스트로 나오기도 했다. 또한 10월 19일에는 채널A의 스포츠 프로그램인 '스포츠 베토벤'에 출연. 함께 나온 사람은 정수근.
'''하지만 여러 사건사고들로 물의를 빚은 결과 사실상 방송인으로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2020년 KBO LG U+ 야구앱 해설위원을 하다가, 2021년 1월 10일 TV조선 시사 교양 프로그램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박철순이 만난 사람으로 8년 만에 TV 방송에 나왔다.
3.1. 과거 진행한 주요 프로그램
- 일요일은 즐거워 (KBS 2TV)
- 99초 스탠바이 큐
- MC대격돌 1, 3, 4기
- 일요일은 101% (KBS 2TV)
- 골목의 제왕
- 대결 흑과 백
- 두 개의 탑
- 슈퍼챔피언
- 운명의 바퀴
- 후아유
- 자유선언 토요대작전 (KBS 2TV)
-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
- 위기탈출 넘버원 (KBS 2TV): 강병규가 공동 MC를 맡았을 때는 토요일 밤 10시 5분에 방영되었지만, 일요일 같은 시간에 방송된 비타민의 공동 진행을 맡아왔던 탓에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준다는 지적을 샀으며, 결국 2006년 가을개편 때 이혁재와 동반 하차했다.
- 비타민 (KBS 2TV): 강병규는 <비타민> 때문에 2005년 7월 부분개편부터 채널과 시간대를 변경한 KBS 2TV <싱싱 일요일> 메인 MC 제의를 고사했고 상습도박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탓에 KBS·EBS·MBC 뿐 아니라 나중에는 SBS에서도 출연정지 연예인 명단에 올라야 했다.
- 좋은 친구들 (SBS)
- 도전 1000곡 (SBS)
- 테마쇼 환상특급 (KBS)
4. 사건사고
5. 여담
- 한창 이병헌과 갈등이 있을 때 자신에게 깐족대던 김용호 기자를 번호까지 털어버리는등 트위터로 제대로 역관광을 먹인 적이 있다. 연예인으로서는 더이상 잃을게 없었던 강병규라 그런지 작정하고 온갖 욕설을 다 내뱉는 게 압권. 이때 강병규가 그다지 이미지가 좋지 못한 인물임에도, 그 트위터로 싸웠다던 김용호 기자가 연예계, 특히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공공의 적으로 취급될정도의 악명높은 기레기라 네티즌들이 강병규를 옹호했다.[16]
- 훗날 가로세로연구소에서 김용호 전 기자가 밝히길 조폭두목하고 싸워서 강병규가 그냥 이겼다 한다. 실제로 싸움을 잘한다고 한다.
- 마구마구에서는 실명으로 있었다가 은퇴 선수 초상권 및 이름 사용 문제로 2011년 2월 16일자 업데이트 때 강경호로 바뀌었다. 흑역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직 선수들의 경우는 KBO에서 일괄 관리하는 초상권 및 이름 사용권을 은퇴 선수의 경우는 선수 개개인이 갖고 있기 때문에 합의가 되지 않아 발생한 일이다. 다만 슬러거나 프로야구 매니저에서는 협의가 잘 이뤄졌는지 본명으로 나온다. 자세한 내용은 마구마구 문서 참조.
-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이름은 강병규tv. 시사적인 얘기랑 연예계에 관련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곳 같다. 구독자수는 비공개[18] .
- 정치 성향은 친민주당, 친문, 친조국 성향이다. 평소 트위터에서 민주당을 지지하고 미래통합당과 보수 진영을 비판하는 발언을 자주 하며 # 조국 수호 집회에 참가해 인증하고 조국이 법무부장관에서 사퇴하자 "문재인이 조국을 버렸다#" 라고 주장 할 정도로 극단적인 친조국 성향을 보여주었다.
- 2008년 말 연예계에서 물러났는데, 그가 물러난 직후인 2009년 초 KBS에서 야구 예능 프로그램인 천하무적 야구단을 런칭했다. 만일 그가 08년 사건 사고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이 프로그램에 감독으로 합류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을 것이다. [19] [20]
- 특이하게 MBC에서는 한 번도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없다. 2005년 무모한 도전의 영입 대상으로 오른 적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 성사되지는 않았다.
- 유승사자의 저주의 예로 통한다.
6. 관련 문서
[1] 음력 5월 20일.[2] 이 계약 과정은 후술된 문서 참고.[3] 결국 성남고는 결승에서 대전고에 패배하며 준우승에 그쳤다.[4] 출처: 이종남 기자의 사람 좋으면 꼴찌[5] 슈퍼 TV 일요일은 즐거워 코너인 돌격 앞으로라는 코너에서 강병규에 대한 문제가 나왔는데 문제내는 성우가 승이 많냐 패가 많냐고 하면서 강병규를 디스하기도 했다.[6] 1993년 대구시민구장에서 열린 대 삼성전이었는데, 당시 상대 투수는 박충식. 신인왕 후보로 주목 받고 있던 박충식과 피칭 대결을 벌여 8회까지 무실점으로 삼성 타선을 봉쇄. 9회에 올라 선두 타자를 내보낸 뒤 맞이한 타자는 괴물 타자 양준혁. 큰 위기였으나 다행히도 양준혁을 병살타로 잡아 내어 순식간에 투 아웃을 남겨 두었다. 그러나 후속 타자인 김성래에게 솔로 홈런, 그 다음 타자인 정영규에게 연속 타자 홈런을 맞으며 결국 패전 투수가 되었다.[7] 평균자책점이 전부는 아니지만 수비지표가 없던, 그리고 현재까지도 부족한 KBO 리그 기록에선 평균자책점으로밖에 따질 수 없다.[8] 좋은 친구들의 코너인 기막힌 대결에서 강병규가 벌칙의상으로 이승엽 유니폼을 입게 됐는데 강병규가 나 차라리 여장할래라고 하면 강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강병규가 은퇴를 안 했더라면 당시 300홈런을 친 이승엽이 400홈런도 빨리 나왔을 거라고 디스하기도 하였다.[9] 다만 송진우는 FA 때 삼성과 한화 두 구단에서 제안을 했을때 한화를 선택한 이후 구단 측과는 다시 사이가 좋아졌다. 그래서 원클럽맨으로 선수 생활을 마쳤다.[10] 같이 출연한 두산 선수들은 강병규를 포함해 진필중, 심정수, 정수근, 홍성흔 이 다섯이다.[11] 유재석, 남희석, 이휘재가 주연을 맡은 일일 시트콤이다. 임현식, 윤해영도 출연하였다.[12] 위기탈출 넘버원에서 초대 MC를 공동으로 맡은 이혁재보다 연하 같지만, 사실 강병규가 1살 위다.[13] 플라잉체어 도입 이후 큰 신장과 더불어 타고난 운동신경 덕분인지 다른 MC들과 비교시 묵직하면서도 시원하게 날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마지막회 게스트로 출연한 김선아의 경우 강병규의 플라잉체어로 날아가는 모습이 가장 멋있었다며 우승자로 선택하기도 했다.[14] MC팀이 이기는 날이 거의 없었지만 그 대신 개편된 이후에는 시식 권한이 많이 늘어났다.[15] '무모한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유재석, 노홍철, 정형돈, 표영호 등이 주축 멤버였던 시절.[16] 김용호 기자는 현재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서 활동중이다. 강용석, 김세의가 주축인 가로세로연구소의 고정 멤버이기도 하다.[17] 구자운, 오상민 편에서 언급되었다.[18] 다만, 2020년 초 커뮤니티에 구독자 1만명이 돌파되었다고 알린 것을 볼 때, 구독자가 최소 1만명 이상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19] 게다가 연예계 데뷔 후 KBS를 주 무대로 활동했던 그였기 때문에 본인 입장에서도 KBS 입장에서도 아쉬운 일.[20] 선수 시절 통산 성적이 247경기(137선발) 56승 63패 평균자책점 4.15, 통산 WAR도 12.6으로 나름 족적을 쌓았고 예능감도 상당히 괜찮았기 때문에 야구와 예능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