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

 



'''이정후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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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8'''



'''KBO 포스트시즌'''
'''2019 플레이오프 MVP'''


'''2017 KBO 리그 신인왕'''

[image]'''2017 플레이어스 초이스 어워드 올해의 신인상(넥센)'''



보유 기록
데뷔 시즌 최다 안타
179개[63]
데뷔 시즌 최다 득점
111점[64]
최소 경기 통산 500안타
369경기[65]
단일 시즌 최다 2루타
49개[66][67]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41번'''
정회찬
(2014~2016)

'''이정후
(2017)
'''

안우진
(2018~)
'''넥센 / 키움 히어로즈 등번호 51번'''
양훈
(2017)

'''이정후
(2018~)
'''

현역



<colbgcolor=#820024><colcolor=#FFFFFF> '''키움 히어로즈 No.51'''
'''이정후
李政厚[1][2] / Jeong-Hoo Lee'''
'''출생'''
1998년 8월 20일 (25세)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3]
'''국적'''
[image] 대한민국
'''본관'''
함평 이씨[4]
'''가족'''
아버지 이종범(1970년생), 어머니 정연희(1971년생)
여동생 이가현(1999년생)[5], 고종사촌형 윤형준(1994년생)[6]
할아버지 이계준, 할머니 김귀남
'''학력'''
광주서석초[7] - 휘문중[8] - [image] 휘문고
'''신체'''
185cm, 84kg, O형
'''포지션'''
외야수[9]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2017년 1차 지명 (넥센)
'''소속팀'''
'''[image] [image] 넥센-키움 히어로즈 (2017~)'''
'''등장곡'''

'''응원가'''
크라잉 넛 - 취생몽사[10][11]
'''병역'''
예술체육요원[12][13]
'''에이전트'''
[14]
'''연봉'''
5억 5,000만원[15] (41%↑, 2021년)
'''종교'''
가톨릭[16][17]
'''SNS'''
반려견 까오의 인스타그램[18]
'''수상'''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3회 (2018~2020)
플레이오프 MVP (2019)
KBO 신인상(2017)
'''별명'''
바람의 손자[19], '''킹짱후'''
1. 개요
3. 플레이 스타일
4.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
5. 여담
6. 기타
7. 응원가
8. 연도별 성적
9. 주요 기록

[clearfix]

1. 개요


KBO 리그 키움 히어로즈 소속의 야구 선수. 포지션은 외야수다.
부친이 KIA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이종범'''이라 데뷔 이전부터 많이 주목받았던 선수. 2017년 넥센에 1차 지명된 이후 신인왕을 수상하게 되며 10년만의 순수 신인왕 및 순수 고졸 신인왕이 되면서 어느덧 이제는 '''고척 시대 히어로즈의 상징이 된 선수'''이기도 하며, 실력, 인품에 외모까지 완벽한, '''대한민국 대표팀의 차세대 교타자'''로 평가받고 있다.

2. 선수 경력


'''이정후의 선수 경력'''
<^|1> {{{#!wiki style="margin: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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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선수 경력''' : '''이정후/선수 경력'''
'''KBO 경력'''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KOR 경력'''
2017년
2018년
2019년



3. 플레이 스타일


'''사기에요. 정말 사기 캐릭터에요. 그렇게까지 잘 할 거라곤 생각 못 했어요. 가족들도, 삼촌도 ‘1군에서 좀 뛰다가 2군에 내려가겠지’라고들 얘기했어요. 물론 나중에는 잘 할 거라곤 생각했지만, 정후처럼 바로 1군에 적응해서 전혀 신인 같지 않은 모습으로 활약할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 사촌형 윤형준 #

'''특유의 부드러운 스윙'''
그야말로 사기 캐릭터 그 자체. 남들은 매우 힘들게 습득하거나 중도에 포기하는 것을 호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 해낸다.
정교한 타격과 경쾌한 몸놀림을 앞세운 시원시원한 플레이, 그리고 뛰어난 야구센스 면에서 아버지를 빼다 박은 느낌을 준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에 좌타자라는 점에서 구자욱의 모습이 겹친다. 특히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듯이 배트 컨트롤을 사용하여[20] 안타를 만들어낸다. 이런 컨택능력 덕분에 이정후는 2020시즌 기준, KBO리그 역사상 만 21세 이하 선수로서 최다 안타 1위(3시즌 535안타), 최다 루타 1위(3시즌 711루타), 최다 2루타 2위(3시즌 94개), 최다 3루타 1위(3시즌 20개)최다 타점 8위(172타점) 등 각종 타격 기록을 갱신했다.
'''KBO 리그 만 21세 이하 안타 기록'''
2020년 7월 11일 기준 / 출처 : 스탯티즈
'''순위'''
'''이름'''
'''당시 소속팀'''
'''안타 갯수'''
'''시즌'''
'''1위'''
이정후
[image] 키움 히어로즈
535안타
3시즌
'''2위'''
김현수
[image] 두산 베어스
427안타
4시즌
'''3위'''
이승엽
[image] 삼성 라이온즈
413안타
3시즌
'''4위'''
정수근
[image] 두산 베어스
394안타
4시즌
'''5위'''
강백호
[image] kt wiz
353안타
3시즌
'''6위'''
김재현
[image] LG 트윈스
348안타
3시즌
'''7위'''
안치홍
[image] KIA 타이거즈
340안타
3시즌
'''8위'''
홍현우
[image] 해태 타이거즈
336안타
4시즌
'''9위'''
최정
[image] SK 와이번스
325안타
4시즌
'''10위'''
김태균
[image] 한화 이글스
311안타
3시즌
발전 속도도 상당하다. 매년 진일보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시즌 초에는 안타 생산에만 치중하여 볼넷을 잘 고르려 하지 않고 나오는 타구도 대부분 단타였는데, 타율을 까먹지 않으면서도 장타 비중을 조금씩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으며 타율과 출루율간의 격차도 점점 커지고 있다.[21] BB/K 역시 좋다. BB/K가 0.89개로 거의 0.9개에 육박한다. 이제 선수생활 4년차에 접어드는 선수가 이정도 볼삼비를 기록하고 있다. 추후 경험이 더 쌓이면 가히 양신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까지 선구안이 좋아질 수도 있다.
아버지가 KBO 역사에 남을 수준의 대도였던 점과는 대비되게 이정후의 순수 주력은 리그 평균 수준이고 도루 능력도 특출나지는 않다. 평균 10개 초반의 도루 개수를 보여주며 2019년에는 어깨 부상 후유증으로 슬라이딩에 지장이 생겨[22] 성공률은 65%까지 떨어졌다. 세이버메트릭스의 확산 이후 도루성공률이 75%는 넘겨야 생산성이 있고, 못해도 70%는 찍어줘야 써먹을만 하다고 평가하는걸 생각하면 도루 시도가 오히려 팀에 마이너스가 된 셈. 하지만 주루 센스는 좋은 편이라 한 베이스 더 가는 주루 플레이를 자주 보여주며, 때문에 타구 질을 향상시키고 여기에 좋은 주루 센스를 결부해 추가 진루를 노리는 방식으로 도루를 대체하고 있다. 그래서 주루RAA는 꾸준히 양수를 기록하는 중. 슬라이딩 문제를 해결한 2020시즌에는 도루 숫자 자체는 12개로 많지 않으나, 도루사를 단 2번만 기록해 85%를 넘는 성공률을 찍으면서 생산성이 있는 도루를 했다.
원 포지션은 3루수였지만 프로에 와서는 외야수로 전향했다. 이는 송구에 대한 부담[23]도 있고, 내야수는 이정후처럼 키가 크면 무릎에 피로가 비교적 크게 쌓여 선수생활을 빠르게 갉아먹기 때문이기도 하다.[24] 외야수 전향 이후에는 신장도 좋고 어깨도 강한 덕분에 경력이 일천함에도 불구하고 매우 안정감있는 수비를 선보였다.
프로 지명 당시에는 유격수 수비가 부족했지만 타격 재능이 뛰어난 엄청난 컨택터로 그해 야수들 중 방망이만 보면 실질적인 타자 넘버 1으로 뽑혔다. 청대 국가대표에서 유일하게 한국 선수들 중 베스트 10에 올랐으며 일본전, 대만전 포함 타율 6할 이상을 기록했다. 게다가 프로 적응력과 성장 속도가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어 마무리캠프-스프링캠프-시범경기 내내 고졸 1년차 신인으로서 꾸준히 씹어먹는 것도 모자라 정규시즌 내내 압도적으로 치고나가 신인왕 경쟁자도 없었다.
이는 수많은 예를 통해 드러나는데, 프로 세계에서도 이정도는 노력을 한다 해서 아무 선수나 보여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주목을 많이 받아온 영향인지 긴장도 잘 하지 않아서 큰 경기에 굉장히 강하다. 멘탈 스포츠 소리를 듣는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멘탈은 팀 내 최고라는 평. 이때까지 정규시즌에서 날라다니던 키움 선수들이 PS만 되면 하나같이 침묵하며 팬들의 속을 태웠으나 이정후는 큰 경기와 정규 시즌과 차이가 거의 없다. 오히려 큰 경기 성적이 더 좋을 정도. PS뿐 아니라 국가대항전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록해 향후 국대 에이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아직 어린 나이 때문인지 키(187cm)에 비해 체중(85kg)이 덜 나가서 호리호리한 체형이며, 따라서 아직은 홈런을 뻥뻥 때려내는 타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본인도 파워 부족을 절감하고 있지만 아버지를 닮아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이라 꾸준히 신경쓰고 있다고 한다.[25] 85~90kg까지 증량을 하는게 목표라고. 그래도 아버지에 비해 체격 자체는 확실히 큰 편이며, 본인보다 체격이 작았던 아버지 이종범이 전성기 시절 20개 전후의 홈런을 꾸준히 기록한 중장거리포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정후 역시 벌크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어느정도 경력을 쌓는다면 풀타임 10개 정도는 넘길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 역시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해가 갈수록 장타력 역시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2017시즌부터 장타율 순위가 44위-35위-18위-11위로 점점 상승 중이며 타구 속도도 데뷔시즌부터 20시즌까지 꾸준히 상승중이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좋은 주루 센스가 더해지면서 2루타는 물론이고 3루타를 상당히 많이 생산해내는 중.[26] 특히 2020시즌에는 개인 커리어 최다인 15홈런을 기록할 정도로 힘이 붙었으며, 홈런을 제하더라도 2루타를 49개나 양산해내며 '''역대 KBO리그 단일시즌 최다 2루타 신기록'''을 작성하며 똑딱이에서 벗어나 어엿한 중장거리포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여기에 박병호의 부진으로 4번타자에 배치되어 결승타도 잘 때려내고 그 영향으로 고의사구도 적잖게 얻어내는 등, 무서울 정도의 성장 속도를 보여주는 중.
여러모로 현대 야구에서 요구하는 상위 타선의 역할에 가장 적합한 스타일로 진화하고 있으며, 여전히 준수하게 유지중인 볼넷/삼진 비율과 수준급의 수비능력까지 더해지며 아직 포스팅까지 3년의 시간이 남았음에도 메이저 리그에서 주목하고 있는 선수로 꼽힌다.

4.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


'''신생아 시절 김포국제공항에서 '''
'''2000년 3살 시절'''
'''2001년 6월 20일 4살 시절'''
'''유치원 시절'''
'''2008년 올스타전에서'''
'''2009년 기아 타이거즈가 정규시즌 우승했을 때'''
'''2012년 5월 26일 무등 야구장에서 열린 아버지 은퇴식에서'''
'''2016년 7월 5일 넥센 1차 지명 입단식'''
'''2017년 3월 17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린 한화-넥센 전을 중계를 앞두고 이종범이 해설위원으로써 아들의 경기를 해설하는 것은 처음이였다.'''
'''2018년 12월 29일 4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퇴소하는 날'''
이종범은 프로로서, 사회인으로서 기본적인 예의나 자기 관리에 대해서만 조언할 뿐 야구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 한다고 한다. 프로와서는 물론 아마추어 시절 때도 단 한 번도 안했다고. 가만히 있어도 주변에서 한마디씩 던지는 위치인지라 엇나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저렇게 해 주는 게 맞긴 한데 이종범 정도 되는 대선수가 그러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서 이 기사를 읽은 팬들은 모두 현명하다며 감탄했다. 유일하게 야구에 대해서 조언한 것이라고는 타석만큼은 왼쪽에 서라는 것이었는데, 아버지 이종범이 왼손잡이였음에도 우투좌타[27] 의 개념이 없었기에 우투우타가 된 아쉬움을 담아 우투좌타[28]로 정착시키게 했다고 한다.
프로 선수로서 목표는 아버지의 통산 기록을 넘는 것이라고 한다. 반응은 팬이든 아니든 '''그거 진짜 힘들텐데...''' 로 단결. 이종범KBO 최강의 1번 타자였던 만큼, 이종범을 넘으려면 15년은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줘야 한다. 이정후가 아버지 이종범을 넘으려면 KBO 기록만으로도 통산 '''1797안타 194홈런 510도루 1100득점 730타점 716사사구'''[29]를 넘어서는 성적을 거두어야 한다. 매년 120안타 15홈런 80득점 50타점 50사사구 35도루를 15년 연속 기록하면 아버지 이종범을 넘을 수 있다. 그나마 일본 갔다 온 공백기를 제외한 견적이다. 이종범의 위대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 기록 중 한두 종류만 골라서 집중적으로 성적을 쌓는다고 가정해도 쉽지 않은 기록이지만, 가장 가능성이 점쳐지는 항목이라면 역시 안타와 득점. 교타자라는 스타일과 현 페이스를 유지해 전성기를 무탈히 마친다면 2천 안타 및 1천 5백 득점을 넘길 것으로 예상한다. 타점과 사사구는 비슷하거나 약간 넘을 것으로 보이며, 홈런과 도루는… [30]
단일 시즌 야수 WAR 1, 2위를 다투는 이종범 최전성기 MVP 시즌인 94년 기록은 4할에 육박하는 타율(0.393, 시즌 1위)에 196안타(1위)[31] 출루율(0.452, 시즌 1위), 19홈런(시즌 4위), 113득점(시즌 1위), 84도루(시즌 1위, KBO 단일 시즌 최다 기록)이며, 그에 버금 가는 97년에는 157안타(시즌 2위) 30홈런(2위) -30도루(64도루, 시즌 1위), 112득점(시즌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유격수로 출전하며 1번 타자로 기록한 것이라 더욱 돋보이는 기록이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생긴 깊은 그늘에 빠지지 않도록 키움에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가장 잘했던 시즌인 94년의 절반만 한다고 쳐도 10홈런에 42도루를 해야 한다. 참고로 2016년 손아섭이 16홈런 42도루다. 반만 했는데 골든글러브를 다툴 수준이다.
2017년 6월 2일자 야덕일지에 의하면, 데뷔 후 지금까지의 페이스가 계속 유지된다는 전제 하에 아버지의 기록을 넘기까지 안타는 10.5년, 홈런은 32.3년, 도루는 67.3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미 신인왕 확정 급의 페이스인데도 이렇다. 야덕일지 KBO 역사를 바꿀 기록의 사나이들
하지만 데뷔 7경기만에 아버지와 나란히 선 기록도 있다. 바로 잠실 야구장에서 한 경기 2홈런 치기인데, 이종범은 일본에 갔다 온 이후 2004년 8월 28일 LG를 상대로 잠실구장에서 2홈런을 친 것이 유일한 기록이다. 이정후는 이걸 두산 상대로 해냈다. 첫 홈런은 유희관에게, 두 번째는 김성배한테서 뽑아냈는데, 이 경기에서 무려 5타점을 쓸어남았다.

''''''아버지'''가 수상하지 못한 '''신인왕'''을 고졸 프로 1년차 신분으로 달성했다.[32]'''

아버지, 저는 지금 고척 스카이돔 라커룸에서 선수단 미팅 준비를 하고 있어요. 아버지도 선수셨을 때 늘 이런 준비를 하셨겠죠. 행동 하나 하나에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제가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는 야구 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라고 반대하셨죠. 3학년 때까지는 기다려 보라고 시간을 주셨잖아요.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하면 할수록 어렵고 힘든 게 야구라고, 잘 생각해 보라고도 하셨고요.

그래도 전 야구가 너무 좋았어요. 아버지가 야구 하시는 모습을 보면 정말 멋있었거든요. 사촌형(LG 윤대영·현재 경찰청 소속) 야구하는 데 따라가서 같이 하면 진짜 재미 있었어요. 골프도 해 보고 축구도 해 봤지만 야구만큼 신나지는 않았어요. 지금도 야구가 왜 좋은지, 왜 재미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보고 자란 게 야구니까 그렇지 않을까도 싶네요. 야구장에 처음 갔던 생각은 잘 나지 않지만요.

아버지께 "정말 잘할 자신이 있다"고 다짐하고 야구를 시작했지만 정작 아버지는 "왼손타자를 하라"(이정후는 원래 오른손잡이다)고만 조언해 주셨잖아요. 다른 말씀은 전혀 안 해주셨고, 기술 같은 것도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죠. 감독님, 코치님 지도대로 하라고. 그리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고만 하셨죠. 그래도 전 하나도 안 섭섭했어요. 아버지는 그냥 우리 아버지니까…. 나름 많이 참으셨던 것도 알아요. 하긴 제가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것도 있는 것 같네요.

아버지는 제가 경기에서 못 하거나 잘 하거나 집에 돌아오면 항상 "잘했다"고 칭찬과 격려만 해주셨잖아요. 생각해보니 야구 시작하고 지금껏 아버지께 야구로 혼난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알고 계셨던 거죠. 경험상 경기를 망치면 가장 속상한 게 선수 본인 자신이라는 것을. 승부 근성은 아버지보다 더 강하다고 늘 주변에 말씀하셨으니까 제 마음을 헤아리셨던 거겠죠.

"잠 많이 자고 밥 많이 먹어라." 프로에 입단한 뒤 아버지가 유일하게 강조하신 말씀이죠. 144경기를 치르려면 가장 중요한 게 체력 관리, 컨디션 관리라고. 그래서 경기에 져서 분하고 화나고 그래도 잠은 꼭 많이 자려고 해요. 몸무게도 4년 내 90㎏(지금 78~79㎏)까지 늘리려고요. 그래야 타구에 힘이 실릴 테니까요. 지난 겨울에 그랬던 것처럼 비시즌에 하루 6끼 먹어야죠. 그러니까 아버지도 고기 많이 사주셔야 해요.

어릴 적에 아버지가 가끔씩 하셨던 말씀이 기억 나요. 아버지는 집이 가난해서 ‘헝그리 정신’으로 야구를 했다고. 사실 그때는 어려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몰랐어요. 지금은 그게 가족을 위해 선택한 아버지의 길이었다는 것을 잘 알지만요.

한 달간 1군 경기를 뛰어보니 프로라는 세계가 얼마나 힘든 곳인지 알게 됐어요. 처음 야구 선수가 된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걱정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잘 알 것 같고요. 그런데 아세요? 이제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알 것 같다는 것. 아버지가 프로 유니폼을 입으면서, 그리고 그라운드로 뛰어 나가면서 어떤 마음이었을지 감이 와요.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것은 모두 부모님 덕분입니다. "아버지처럼만 하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지만 사실 아버지의 야구 명성은 생각하지 않으려고요. '바람의 손자'가 아닌 '야구 선수 이정후'로 한 번 당당히 나아가 보려고 합니다. 일희일비도 하지 않으려고요. 그게 아버지를 닮아 같은 길을 가려는 제 나름의 방식입니다. 어머니께는 문자로 가끔 말씀드린 것 같은데 아버지께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것 같네요. 아버지…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아들 정후 드림

ㅡ 2017 시즌 중반 '야구 선수 이정후'가 아버지 이종범에게 띄우는 편지. 한겨레 (인터뷰)[33]

2017년 11월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에서 사상 최초로 부자 동반 태극 유니폼을 입었다. 이정후는 “아버지와 함께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는 어릴 적 꿈이 일찍 실현됐다. 정작 야구장 안에서만 아버지를 봤다. 도쿄 숙소 내 방에 단 한 번도 안 오셨고 카톡으로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며 기뻐했고, # "이번에 한 번 이뤘다. 앞으로 자주 했으면 좋겠다. 이번에도 하면서 1루에서 아버지가 내 장비를 받아주실 때 신기했다. 사인을 잘 보라고 하셨다. 우리가 뒤에 있다고 하셨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

2017 카스포인트 어워드 신인상을 수상하면 아빠인 이종범이 춤을 추고 이정후 본인이 남진둥지를 부른다는 공약을 했는데, 실제로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공약을 이행했다. 문제의 부자 공연 영상. 현장에 있는 모든 해설위원들, '''양준혁까지 포함해서''' 빵 터졌다. 여담이지만 이 동영상이 2017 카스포인트 어워드 동영상 중 조회수가 가장 많다.
2017년 12월에 열린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에 '양신팀' 소속으로 출전해서 아버지의 팀인 '종범신팀'과 맞붙었다. 이종범이 직접 타석으로, 이정후가 투수로 나오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그러다 이정후의 투구가 이종범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빈볼이 나와 버렸다. 이 때 이종범의 표정이 볼만하다. 해당 장면
살짝 찡그릴때의 표정이 아버지와 많이 닮았다.
아버지의 친정 팀이었던 KIA전에서 꽤 높은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34] 본인은 기아에 악감정이 없다는데 워낙 잘치다보니 사실 악감정 있는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농담조로 나온다.
KBO 와일드카드 결정전/2018년에는 7회초 무사 1루에서 최형우의 타구를 기가 막히게 잡았다는거... 팀의 준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시켰다. 경기후 아버지는 베이스볼 투나잇에 출연해서 분석..
아버지 이종범과 연관 있는 팀을 상대로는 유독 강한 모습을 보여 의문의 효자 소리를 듣고 있는데, 이종범의 친정팀 KIA 타이거즈를 상대로는 2시즌 통산 타율 0.396 OPS 0.940을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KBO 와일드카드 결정전/2018년에는 5회 만루 상황에서 희생플라이로 1타점, 7회 무사 1루 동점 상황에서 최형우의 타구를 슈퍼캐치로 잡아낸 후 곧장 2루로 송구해 나지완까지 잡아내며 동점을 허용해 묘해진 경기 분위기를 다시 뒤집는 등 4타수 1안타 1타점 2득점의 맹활약을 펼쳐 KIA 침몰의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냈다. 과거 싸이월드에 했던 말이 다시 한번 재평가를 받으며 갸갤 등지에서는 제발 용서 좀 해달라며 비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아버지가 코치로 있다가 옷을 벗었던 한화 상대로는 더욱 강한 모습을 보이는데, 2시즌 통산 타율 0.452 OPS 1.099로 KIA전보다 상대 전적이 더 좋을 뿐만 아니라 18년 한화 상대 최고 타율+최고 안타를 기록했으며, 아버지의 신인왕을 뺏어간 선수가 소속되어 있었고 아버지의 유니폼을 벗겼던 감독이 맡았던 팀인 삼성을 상대로는 타율 0.391 OPS 0.998을 기록했다. 아버지랑 별로 연관이 없어보이는 두산 상대로도 18시즌 타율 0.393 OPS 1.032을 기록했는데 알고 보니 이종범이 빵 사건의 주범이라고 누명 썼던 그 경기 날 상대 팀이 두산(...).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항목 참조.
동일 종목에서 대를 이은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이다. 아버지인 이종범이 2002 부산 AG 야구 대표팀 소속으로 금메달을 땄고, 16년 후 그 아들인 이정후가 선동열호에 속해서 자카르타 팔렘방 AG 야구에서 금메달을 땄기 때문. 여기에 이번 대회에서는 아버지인 이종범이 코치로 참가해서 더욱 뜻깊은 대회가 되었다. 참고로 모자 금메달리스트인 황재균은 어머니가 테니스 선수여서 동일종목까지는 아니었다. 이종범-이정후 부자와 같은 경우가 있다면 여홍철 - 여서정 부녀의 케이스다.[35] [36]
2019년 이종범이 LG 트윈스 2군 코치로 가게 됐을 때 해설자로 버는 돈보다 적을 돈을 주게 되는 것이 마음에 걸린 차명석 단장은 이종범의 아내이자 이정후의 모친에게 연락했는데, 그 대답이 '돈은 우리 정후가 벌어다주니까 그 양반 좀 빨리 제 눈 앞에서 치워주세요.'(...)라고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37]
[image]

'''2019년 12월 20일 KBS 스포츠뉴스 인터뷰에서 따라한 '''
2020년 아버지와 함께 컴투스 프로야구라는 야구게임에 광고를 찍었다.


5. 여담


  • 출생지가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이다. 사실 특이하다고 볼 수 없는 게, 아버지인 이종범이 일본프로야구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활동 중인 1998년에 태어났고 이 때 어머니[38]주니치 드래곤즈의 연고지인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에 있었기 때문이다. 홍희정 기자가 이정후를 인터뷰 했을 때 이정후 본인이 자신의 고향은 일본이라고 밝혔다.[39] 이 인터뷰로 지역감정을 들먹이는 무리들이 있는데, 이정후 본인은 오히려 지역감정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한다. 굳이 일본을 고향으로 지목한 것은 그런 의도가 있다. 어쨌든 이정후 본인은 개의치 않고 인터뷰에서 광주는 아버지의 고향이고 내 고향은 일본이다.라고 못박는 편이다. 이런 인터뷰와 예전 싸이글 덕에 기아광주를 싫어한다고 몰고가는 팬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본인도 부정한 바 있으니 괜히 오해할 필요가 없다.
  • 덧붙이자면, 보통 운동선수들이 고향을 이야기할 때는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곳, 흔히 엘리트 체육인의 경우 초등학교 때 운동을 시작하므로 초등학교가 위치한 곳을 고향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정후는 야구를 시작한 광주가 아닌 굳이 출생지이고, 3년 전후로 지내서 기억도 가물가물할 일본 나고야시를 고향으로 들고 있다. 매우 특이한 케이스인데, 명백히 본인은 특정 지방과 관계없다고 공식적으로 선을 긋는 의도가 담겨 있는 무브먼트. 그러나 본인이 KIA 타이거즈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도의 인터뷰도 했던 만큼, 특정 지방이 싫어서라기보다는 특정 지역 팀의 레전드의 아들로서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지역감정에 휘말리는 것이 싫기에 굳이 대외적으로는 일본을 고향으로 내세우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유명인의 아들로서 고충이 많았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임과 동시에 유명인으로서 현명한 처사이기도 하다.
  • 원래 이름은 광현이였던 것이 아니냐는 추측들이 있었다. 경향신문 1998년 8월 24일 기사 참고 단, 광현이라는 이름이 단순히 태명인지 아니면 출생신고 때 정식으로 올렸다가 개명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의 여동생 이름인 이가현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자 돌림인 것을 보아서는 개명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다. 또한 함평 이씨 29대 '載'(재) 항렬이지만 항렬자를 쓰지 않았다.[40] 하지만 아기 시절에서부터 정후라고 방송에서 노출된 것으로 볼 때는 사실무근일수도.
  • 인스타그램에서 강백호디스전(...)을 펼치기도 했다.[41]
  • 그 외에 사람들이 게이[42]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았는데, 여기에 대한 대답이 멋진 선배님이죠(...).[43] 당연히 성소수자인 게이에 대해서 물어본 건데, 자신이 오해를 하는 덕분에...관련 글 그 외에 1차지명을 받고 계약금으로 2억을 받았을 당시에, 이종범이 했던 말이 아빠보다 1억 3천 더 받았네...[44] 이쯤되면 집안이 조금 개그끼가 있나보다. 사실 이종범 본인도 근엄하기보단 쾌활하고 말이 많은 편이라 방송 나가서 이런저런 드립도 꽤 쳤다. 다만 방송특유의 과장과 합쳐져 부적절한 발언이 좀 있어서 논란을 만들기도 했다.
  • 스윙 폼과 궤적이 정말 이쁘다. 오죽하면 SBS Sports에선 그림으로 만들었을 정도. 사진 보기
  • 선동열이 이종범을 강제 은퇴시켜 이종범 일가가 서울로 이사하지 않았으면 이정후가 기아에 입단할 수도 있었다는 의견이 일부 기아팬들 사이에서 나온 적도 있다. 그러나 이종범이 은퇴한 2012년 이종범은 만 42세였고 이정후는 겨우 중학교 2학년이었다. 아무리 이종범의 은퇴가 늦어졌어도 이정후가 고등학교 때는 은퇴를 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이사의 결정적인 원인은 딸의 교육 문제였기 때문에 이 의견은 딱히 설득력이 없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먹히는데, 해태 왕조 공신이자 동료이던 이종범을 친정팀에 감독으로 돌아온 선동열이 은퇴를 종용한 것과 기대이하의 성적 등이 겹친 선동열에 대한 괘씸죄와 이정후에 대한 타이거즈 팬덤의 미련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로 보인다.
  • 프로 입단 초기 타팀 KIA 타이거즈 레전드 선수였던 아버지 이종범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아들 이정후에 대한 과한 애정과 관심이 일부 기아 팬들에게서 표출되고 있다. 기아에 이종범이 가지는 의미가 워낙 크다보니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넥센에서 데뷔한 선수인데 언젠가는 기아에 와야한다는 둥 듣는 넥센팬들이 기분나쁠 법한 언동을 보이는 사람들이 꽤 있다. 기아팬들 사이에서도 올스타 투표 때 이적해와서 잘하는 이명기를 거르고 이정후에게 투표하는 사람들이 도마에 오른 바 있고...[45]
  • 과거에 레드벨벳열혈 팬이였다. 입단 당시부터 Rookie를 등장곡으로 썼으며, The Red Summer 발매 이후로는 추세에 맞춰서 타이틀곡인 빨간 맛으로 바꾸었다. 이 밖에도 레드벨벳 SNS 페이지에 꾸준히 좋아요를 누르는 등 상당한 팬심을 보이기도 했다. # 이후 갤럭시아SM 소속 자격으로 SM 엔터테인먼트의 할로윈 파티에 초대 받고 레드벨벳 멤버들과 사진을 찍으면서 성덕 등극. 다음 달에는 엑소 콘서트에도 다녀왔다. 2018년 1월 6일 SMTOWN FRIENDS 식구들과 봉사활동을 하며 슬기와 사진을 찍었다. 다만 최근 인터뷰에서 연예인에 관심 없다면서 걸그룹 레드벨벳 슬기와 사진을 찍었냐는 질문에는 "팬이었다. 내 등장곡이 레드벨벳 노래였다. 이제 강렬한 걸로 바꾸고 싶다. 응원가는 괜찮은 것 같다."라고 답했다. # 그리고 2018 시즌 개막이후 등장곡을 레드벨벳 노래 대신 다른 노래를 택했다. 이외에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보고 김태리 팬이 됐다고 인터뷰하였고, # 좋아하는 걸그룹 멤버는? 질문에 아이오아이 김도연이 예쁜 것 같다고 언급했다. #
  • 가족들과 반려견 까오를 키우고 있다. 여동생이 SNS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까오의 일상을 공개하고 있다. 2019년 12월 11일 절친한 동료선수 고우석, 강백호와 은퇴 특수견을 위한 기금마련 행사에 참석했다.

  • 2017년 11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APBC)을 기점으로 구자욱, 김하성, 박민우 등과 두터운 친분을 쌓게 되었다.[46] 어린 선수들 위주라고 해도 당시 막내였던 탓에 어려움도 있었을 듯 한데 모든 형들이 살뜰히 챙겨주며 너무 잘 해줬다고 한다. 특히 박민우는 이정후에게 "너 나이때에는 다 얻어먹는거야. 나중에 후배들 사줘."라며 돈을 못쓰게 했다고. 그 영향인지 후배들과의 만나는 자리에서는 절대 동생들 지갑을 못 열게 한다는 후담들을 들을 수 있다.
  • NC 다이노스 선수이자 이정후의 고등학교 선배 박민우는 자기가 여자면 이정후에게 대시했다는 발언을 하였다.
  • 2018년부터는 사촌형인 윤대영이 경찰 야구단 복무를 마치고 1군 무대에 합류할 예정[47]이기 때문에 형제간의 대결 또한 큰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였지만(...)
  •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축구를 했었다고 한다. 쇼트트랙도 했었다고. 그 외에도 골프 등 다양한 종목을 했었다고 한다.[48] 그 중 축구가 가장 재미있었지만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야구였다고. 영상 보기
  • 1998년생 동기인 축구선수 이승우와 친구 사이다.[49] 다만 오래 전부터 친한 것은 아니고 둘 다 프로 선수 생활을 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에는 서로 같은 등번호(17번)를 달고 경기를 뛰었는데 이정후가 이승우에게 17번을 같이 달고 뛰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 2018년이 겨우 입단 2년차 되는 해이지만 팀에 대한 대단한 애정표현으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인터뷰마다 팀에 대한 자랑 멘트는 물론이고 해외진출을 하지 않는다면 원팀맨으로 남고 싶다고 한다던지, 2018 플레이오프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출전할 수 없으니 그냥 집에서 쉬라고 구단에서 권유했지만 끝끝내 경기장에 나와서 카메라 부스에서라도 끝까지 팀과 함께한다든지...[50]
  • 2019년 1월 28일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와 공식후원 계약을 맺으며 아디다스 브랜드 한국 앰배서더로 발탁됐다. #

  • 2019년 프로야구 개막 전 MBC 스포츠매거진에서 중화반점을 열창하는 모습으로 놀림받았다. 영상 보기
  • 2019 시즌 페넌트레이스 종료 시점 기준으로 퓨처스 리그를 통산 단 3경기를 출장했다. 그것도 프로 2년차인 2018년에 뛰었다. 아시안 게임 병역 특례로 상무에서 활약할 일이 없어졌으므로, 앞으로 기량이 쇠퇴하거나 부상 이후 컨디션 점검 차원이 아니라면 퓨처스 리그에서 보기 힘들 듯하다.
  • 더그아웃 매거진 100호 표지 '각 구단의 향후 10년을 책임질 라인업'[51]
  • 다른 팀 선수들하고도 굉장히 친한 편. 사회성과 친화력이 매우 좋아 보인다. 특히, 한화 이글스김성훈과는 같은 야구인 2세인지라, 공감대도 많았다고 한다. 아버지보다도 유명해지자며 약속을 했다고 한다. 김성훈이 21세로 요절하자,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추모글을 올렸다.# 그리고, 발인식까지 자리를 지키며 마지막을 함께 했다.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도 수상소감에 김성훈을 언급했다. 영상 보기
  • 10살 차이가 나는 기아 타이거즈의 양현종과는 보통은 어려운 선후배 사이여야 맞겠지만 이정후가 워낙 어린 시절부터 야구장에서 봐오고 [52] 그저 잘 챙겨주는 동네형 같은 느낌이라 양현종을 상대할때는 다소 편안해지는 것 같다고 한다. [53] # 양현종은 어린시절부터 본 꼬마 정후가 상대팀 주전 선수로 출전해서 자신과 맞대결하는 자체가 신기하고 대견하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된 고종욱과는 입단 초때부터 2년 동안 원정 룸메이트로 함께 지낸 사이다. 고종욱은 당시 갓입단한 이정후에게 “어린 선수들이 널 롤모델로 삼을 수 있다. 항상 프로답게 행동하라”고 강조했고, 이정후는 “아마추어 선수였던 나에게 ‘프로 마인드’를 심어준 정말 고마운 은인”이였다고 한다. # 그래서인지 고종욱의 이적 소식을 접했을때 너무 슬펐다고 한다. 이후 네이버 라디오볼에서 진행한 전화 인터뷰에서는 고종욱 선수에게 음성 편지를 남기며 눈물을 보이며 울먹거린 게 화제가 됐었다. 영상 보기
  • 계약금, 연봉 및 수입에 관하여 모든 돈 관리는 부모이 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매달 용돈을 받아 쓰고 있는데 매년 상승하는 연봉으로 용돈도 함께 협상하고 있다고(...) 2020년 1월 기준 용돈은 아직 2019년과 같은데 2018년 삭감을 당하고[54] 2018년, 2019년은 똑같아 올해는 꼭 협상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인터뷰했다. 영상 보기
  • 인터뷰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아버지의 영향(!)으로 말투가 광주사투리 억양이 입에 베어있다.
  • 롯데 자이언츠에게 매우 약하다. 상대타율 3할을 넘긴 시즌은 2019 시즌 뿐이고, 특히 브룩스 레일리에게 17타수 무안타로 호구잡혔다. 지금은 레일리의 이름을 이어받은 댄 스트레일리 상대로 무안타로 호구잡히고 있다. 반대로 삼성 라이온즈에게 극강한데, 혼자서 박병호 모드로 각성하며[55] 팀을 이끈다. 따라서 삼성팬들은 이정후가 타석에 들어서면 질겁한다고(...)
  • 2019년부터 어린이병원에 꾸준히 기부를 하며 선행 활동을 하고 있다.
    • 2019년 5월 7일 푸르메 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 기부에 앞서 "프로가 되기 전부터 꾸준히 생각해오던 것이다. 프로 선수로서 성공하게 된다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매해 어린이날에 장애 어린이들을 위해 1000만원씩 기부를 할 예정으로, 프로스포츠는 팬이 있기에 존재함을 잘 알고 있다. 앞으로 보다 더 야구를 잘 해서 더 많은 어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
    • 2019년 12월 25일 박찬호가 운영하는 박찬호장학회에 기부금 500만 원을 전달했다. #
    • 2020년 12월 29일 아버지 이종범과 함께 장애어린이 치료와 재활을 돕는 푸르메재단의 홍보대사로 위촉됐고, 푸르메 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 1000만 원을 기부했다. #
  • 어린 나이에 주전에 들어서서 좋은 컨택을 보여줘서 그런지 통산 안타수가 매우 많다. 2시즌이나 더 뛴 구자욱보다 170개의 안타 수가 모자라며, 비슷한 타율을 기록하는 박민우보다는 3시즌을 덜 뛰었는데 안타수가 300개 정도 모자라다. 현재로써는 박용택의 안타 기록을 깰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이다. 물론 기록을 깨려면 최소 15년 이상 지나 이정후가 노장이 되어야 하지만...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코치 카운셀러로 일하고 있는 김성근이 전하는 얘기에 따르면 일본에서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아버지가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뛰기도 했고 2019 WBSC 프리미어 12에서의 일시적인 인기로 보였으나 2021년 기사를 보면 여전히 관심이 있는 모양. 아버지도 이정후의 스타일이 일본 야구에 맞다고 했지만 본인은 여전히 메이저리그를 꿈꾼다고 했으니 일본 팬들의 이정후가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는 염원은 이루어지지 않거나 메이저리그를 경험하고 먼훗날에 이루어질 듯 하다.

6. 기타



6.1. 논란 및 구설수


  • [image]
    아버지 이종범이 은퇴했을 때 자신의 싸이에 이종범 은퇴시킨 기아 X같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정후가 왜 아버지의 은퇴에 이런 반응을 보였었는지 이 문단을 참조. 이종범이 은퇴할 당시 98년생 이정후는 중학교 1학년의 어린 학생이었다.[56] 지금은 어린 마음에 감정적인 글을 쓴 걸 후회한다고. 언행프로필 사진으로 쓰인 스즈키 이치로는 가장 존경하고 따라잡고 싶은 야구선수, 즉 롤모델이다. # 데뷔 시즌 선택했던 41번도 51번을 선택한 양훈이 있어서 선택한 번호고 2018 시즌 선택한 등번호도 스즈키 이치로의 51번. 소속팀뿐만 아니라 국대에서도 51번을 달고 뛰고 있다. 여담이지만 이 글이 발굴되고나서 기아 상대로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기아팬들이 용서해줘라면서 단체로 글을 올리는 것이 하나의 밈이 되었다(...)
  • 선배와 sns에서 한 대화중 "저 줘요 딸 낳으면 그때까지 기다릴게요 좋은거 많이 드시고 좋은놈으로 아내분께 뿌려주세요' " 라는 충격적인 섹드립으로 물의를 일으킨적도 있다.
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p=1&b=kbotown2&id=3516517&select=title&query=&user=&reply=
  • 친구인 윤성빈에게 SNS에서 '김치년'이라고 발언한 것이 알려져 아버지에게 맞기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2017년엔 아버지에게 쓴소리를 들었다. '프로는 관리' 이종범이 아들 이정후에게 전하는 메시지 2017 시즌에 1군 주전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이후 풀타임으로 활약하는데 체력관리와 회복이 중요하다며 잘 먹고 수면을 충분히 취하라는 조언을 자주 한다고.
LG 트윈스 차명석 단장이 진행하는 팬과 소통하는 엘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전화 통화하던 중 LG로 데리고 가달라고 해서 논란이 일었다.https://www.youtube.com/watch?t=77&v=YU4Eu74tuFQ&feature=youtu.be

6.2. 외모


태생부터 '''잘생긴 얼굴'''을 타고 났다. 대개 야구계에서 잘생겼다고 하는 것은 야구를 잘 해서 잘 생겨 보이는 효과와 그냥 태어날 때부터 잘생김을 타고난 것이라는 두가지인데 이정후의 경우는 전자와 후자에 모두 포함된다.

어릴때 아버지와 함께 간간이 매스컴을 탔었는데 어린 나이인데도 뚜렷한 이목구비가 눈에 띌 정도.(윗상단 사진 참고 바람)
광주서석초 야구부시절 한준수와 함께. 이때부터도 눈썹이 매우 짙다.
광주무등중 야구부시절
데뷔시즌부터 터지고 연일 화제에 오르면서 자연스레 외모도 대한 언급들도 많다. 아버지 얼굴도 보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외탁 소리가 많이 나오는 편이였는데 요즘은 아버지 얼굴도 점점 나오는 것 같기도.
민경훈과 닮았다. 이미 충만한 스타성에 방점을 찍는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이돌 대포캠 사진이 돌고 있을 정도이다. 진한게 생긴 탓에 중화권 배우 유덕화와 닮았다는 소리 또한 듣고 있는데 어린 나이탓인지 유덕화를 모르는게 함정(...)

솔직히 유덕화가 누군지 모르겠다. (사진을 보고) 약간 그런 소리는 들었다. 눈썹이 진해서 그런 것 같다. 기사 참조

하지만 피부가 안 좋은 편이다. 20살이 지났음에도 없어지지 않은 트러블 자국뿐만이 아니라 아직 현재진행형으로 생겨나는 트러블도 꽤 있는 것으로 보아 단순히 나이 때문은 아니고, 지성에 민감성이 겹친 형태의 피부로 보인다. 같은 팀 후배 안우진도 피부가 안 좋은 편이다. 최근 사진들이나 영상들을 보면 피부가 굉장히 좋아졌으며 피부과를 열심히 다닌 탓에 나날히 외모는 업그레이드 되는 중.

2019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상 받으러 가는 모습
단점이라면 좁은 이마가 다소 흠(...)이지만 그냥 얼굴이 다 커버해준다. 매력포인트로는 고소영, 한가인, 전지현 부럽지 않은 코위 점.
이번 프리미어 12에서 화제성 甲이였던 공항짤
아무래도 아버지보다는 미모가 상당한 어머니를 많이 닮아서 그런걸로 보인다. 나이가 한두살 먹으면서 아버지 얼굴이 점점 나오고 있다는 반응들이 나오는 중.

6.3. 별명



아버지의 별명이 '''바람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이정후의 별명은 '''바람의 손자'''로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세상의 무수한 야구 선수들 중 야구공 잡기 전부터 별명이 결정되어 있던 유일한 선수일 것이다. 물론 사촌형 바람의 외손자 윤대영을 제외하고 말이다.
야갤 등지에서는 '반투명갑'(...)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이종범을 투명드립과 엮어 '투명갑'이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투명한 아버지와 투명하지 않은 어머니 사이의 자식이므로 반투명이라는 논리이다.
2019시즌에 불꽃 남자라는 별명이 추가되었는데 본인은 바람의 손자가 더 좋다고 한다.

6.4. 팬 서비스


“'''팬들이 없으면 야구선수들은 공놀이하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야구대표팀 훈련을 앞두고 응한 인터뷰 中 #

국내 야구선수 중에서 팬서비스 좋기로 평판이 아주 좋다. 야구장 외에 출국장, 기타 행사장 등에서도 팬들의 사인 요청에 사인, 셀카까지 친절하고 성실하게 잘 해준다고 한다. [57] 팬서비스에 관련된 말이 많은 요즘인데 일찍히 데뷔 시즌때부터 팬서비스가 좋은 야구선수로 뉴스에 출연도 했다. #
팬서비스가 좋은 특별한 이유가 있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엄지척이 절로 나온다. 아버지 역시 팬서비스가 좋은 편인데 가정교육을 잘 받은 듯.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야구를 보러 다녔다. 나는 아빠랑 같이 가다보니 선수들을 보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친구들은 선수들이 공 하나 던져주거나 사인 한 번 해준 걸 아직도 기억하더라. 어린 친구들에게 사인을 해주면 평생 가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잘해주고 싶다.”

2019년 7월 21일 창원 NC파크에서 열린 올스타 팬사인회에서 이정후는 최근 KBO리그 인기, 관중 감소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58]

팬들이 기대하는 만큼 그라운드에서 좋은 플레이를 보여드리고 친절한 팬서비스로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선수들이 팬들과 더 가까이 다가가야한다고 생각한다.

ㅡ OSEN (인터뷰)[59]

소속팀 키움 선수들이 대체적으로 팬서비스가 좋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출퇴근 때마다 미소를 지으며 팬들의 요청에 일일이 응하고 있는 듯. 지난 2019년 10월 17일 경기가 끝난 후인 1시간이 지난 시간에도 일부 팬들이 선수들의 퇴근길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모여들자 경호 요원이 이정후의 즉석 팬 사인회를 마무리 짓고 빠른 귀가를 도우려고 해도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팬들에게 시간을 할애하는 모습을 보였다.  

6.5. 라이벌




1980년대 최동원 vs 선동열, 1990년대 양준혁 vs 이종범, 2000년대 류현진 vs 김광현 이후로 오랜만에 나온 걸출한 대형 스타에 향후 10년 이상 KBO리그를 이끌어갈 타자이다 보니 발전적 경쟁관계를 이어나가며 비교대상이 되고 있다.

7. 응원가



'''▲ 이정후 응원가'''

8.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출루율
장타율
wRC+
2017
넥센
'''144'''
'''552'''
(5위)
.324
'''179'''
(3위)
29
'''8'''
(2위)
2
'''111'''
(3위)
47
12
60
67
.395
.417
111.3
2018
109
459
'''.355'''
(3위)
163
34
2
6
81
57
11
42
58
.412
.477
127.4
2019
키움
140
574
'''.336'''
(4위)
'''193'''
(2위)
31
'''10'''
(1위)
6
'''91'''
(4위)
68
13
45
40
.386
.456
135.1
2020
140
544
.333
'''181'''
(5위)
'''49'''
(1위)
5
15
85
101
12
59
47
.397
.524
143.6
<rowcolor=#373A3C> '''KBO 통산'''
(4시즌)
533
2129
.336
716
143
25
29
368
273
48
206
212
.397
.468
128.5

9. 주요 기록


[image]
[image]
  • 2019년
    • 8월 22일 고척 기아전, 역대 최연소-최소 경기(369경기 만)로 통산 500안타 달성[61]
  • 2020년
    • 10월 16일 고척 두산전, KBO리그 역대 1번째로 한 시즌 최다 2루타(48호) 달성[62]
[1] 족보에는 이름의 한자가 쓰여 있지 않고, 한글로 정후라고만 쓰여 있다. 다음은 출처 사진이다. [image] [2] 국제대회 공식 등록명은 李政厚로 되어 있다.[3] 아버지인 이종범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활동할 때 태어났다. 동아일보 1998년 8월 21일 <"날 꼭 빼닮았네"...득남 기쁨> 기사 참조.[4] 29세손. 원래 함평 이씨 29세손의 항렬자는 '재(載)'자이지만 항렬자를 쓰지 않았다. 다만 할아버지 이름이 이계준(李啓準)이며, 아버지 이름이 이종범(李鍾範)이라 항렬을 알 수 있다.[5] 연년생 남매로 연세대학교를 졸업했고, 각종 콩쿠르, 연주회에 출전하는 것으로 보인다.[6] 윤대영에서 개명. 이종범의 생질(甥姪, 누이의 아들을 이르는 말.).[7] 살레시오초등학교에서 전학. 아버지 이종범이 스프링 캠프를 떠났을 때 어머니와 야구부가 있는 학교(광주 서석초)에 가서 테스트를 봤고 3학년 때부터 야구부에 들어갔다고 한다.#[8] 무등중에서 전학.[9] 프로 입단은 내야수로 했으나 고교 시절부터 내야 수비는 영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고, 끝내 내야 수비 불가 판정을 받고 외야수로 전향했다. 현재 주 포지션은 중견수이지만 임병욱이 엔트리에 오르면 우익수로 가고 2019시즌에는 제리 샌즈우익수를 봐서 주로 좌익수를 봤다. 2020시즌에는 박준태와 함께 중견수, 우익수를 번갈아 본다.[10] 안타! 안타! 날려버려라! 키움 히어로 이정후! 안타 안타 안타 안타 날려버려라! 키움 히어로 이정후![11] 데뷔 초 가사는 '안타! 안타! 날려버려라! 힘차게 달려라 이정후! 안타 안타 안타 안타 날려버려라! 더 높이 비상하라 이정후!' 였지만, 반응이 너무 별로라 2017 시즌 중반에 '넥센 히어로'로 고쳤다. 이후 넥센타이어와 계약이 만료되며 비시즌 잠깐 데뷔 초 가사를 쓸 가능성도 있었으나, 키움증권과 계약을 맺고 넥센만 키움으로 바뀌었다.[12]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부문 '''금메달''' 획득.[13] 현재 복무중, 타 아시안게임 멤버들과 동일하게 2021년 10월에 복무가 만료되면 예비역으로 편입된다.[14] 팀 동료 박병호, 서건창, 조상우, 한현희 등이 소속되어 있다. 아버지 이종범도 리코스포츠 소속이다.[15] 2018년 김하성의 3억 2천만원을 넘은 5년차 최고 연봉이다.[16] 우디와 같은 성당을 다닌다고 한다.[17] 어머니 종교도 카톨릭으로 아버지 이종범은 불자였지만 카톨릭으로 개종하였다.[18] 종은 포메라니안.[19] 바람의 아들이었던 이종범의 별명을 따라서 바람의 손자로 이름 붙은것. 다만, 아버지와 달리 주력은 잘쳐줘서 리그 평균수준으로, 도루가 많은 선수는 절대 아니다. 대신, 특유의 주루센스로 한베이스 더 가는 플레이는 아버지와 닮았다. [20] 양준혁KBO 역사상 저런 배트컨트롤을 보여준 선수는 자기 생각엔 장효조밖에 없다고 말했을 정도.[21] 단타형 타자에서 OPS형 타자로 전향하려는 선수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가 장점인 타율이 떨어지면서 OPS가 횡보한다는 것이었다. 구자욱의 경우도 홈런타자로 변신을 시도하면서 순장타율은 늘었지만 타율이 떨어지면서 오히려 OPS가 줄어드는 상황을 겪었다.[22] 신체가 아닌 심리적인 문제였다고 밝혔다. 슬라이딩시 무의식적으로 머뭇거리게 되었다고.[23] 팀 동료인 오주원이 스톡킹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내야시절 어깨 자체는 강하지만, 던질때 자기도 모르게 손이 곱아서 송구를 제대로 못하는 닭발(...)의 피해자중 하나였기 때문. 실제로, 이런 송구 문제때문에 송구부담이 적은 포지션으로 전향하는 선수가 많다. 같은 팀의 선배였던 유한준 역시 내야수 출신이었지만 송구문제로 외야수로 전향한 대표적 사례.[24] 특히나, 체구가 큰 거포형 내야수들이 이러한 이유로 외야로 전향 하는경우가 많다. 김상현이 무릎 문제로 인해 외야수로 바꾼게 대표적.[25] 운동선수들은 운동을 그만두면 먹는건 그대로인데 운동량이 급감해서 체중이 늘어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이종범은 은퇴한지 8년여가 지난 2021년 현시점에도 현역시절과 크게 다름없는 몸을 유지하고 있다.[26] 3루타 통산 1위가 전준호의 100개인데 이정후는 4시즌동안 벌써 25개나 때리고 있다.[27] 어쩔 수 없는게, 좌투인 야수는 포지션 선택의 폭이 확 좁아지기 때문. 당장 본인의 포지션이었던 유격수를 좌투가 하려면 모든 수비모션에서 1루 송구시 우투랑 달리 한바퀴 돌아서 던져야하기 때문에 스텝 한번, 험블 한번에 아웃과 세잎이 결정되는 야구에서는 엄청난 핸디캡이다. 그걸 커버하려면, 압도적인 강견이어야 하는데, 그정도 강견이면 좌완 투수를 시키는게 더 낫다(...) 이는 2루수, 3루수 또한 마찬가지. 그래서 좌투인 야수는 외야수 or 1루수 말고는 극도로 보기 힘들다.[28] 좌타자는 일단 왼쪽 타석이 오른쪽 타석보다 1루까지의 거리가 한 발짝 가량 가깝고, 스윙 후에도 우타자는 몸이 3루 쪽으로 쏠리는 반면, 좌타자는 자연스럽게 1루를 향하게 된다는 점에서 주루상의 이점을 깔고 들어가며, 또, 일반적으로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당연히 야구선수 중에서도 오른손잡이, 즉 우투수가 더 많을 수밖에 없는데, 우타석에 들어설 때 보다 좌타석에 들어설 때 우투수가 던지는 공을 특히, 반응을 빠르게 해야되는 몸쪽공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볼 수 있기 때문에 타격 시 유리하다.[29] 고의사구 포함[30] 2019년에 두 자릿수 도루를 달성하긴 했지만, 비교대상이 이종범이다 보니...이종범은 전성기때 도루 4~50개는 기본으로 해주던 선수였고 80개를 넘긴 시즌도 있다.[31] 2014년 서건창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는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이었다. [32] 이종범이 실력이 안 되어서 신인왕을 못한 게 아니다. 하필이면 그 해 도 같이 데뷔(…)해서 그렇다. 대신 1993년 한국시리즈 MVP는 이종범이 차지했다. 1993년은 꽤 좋은 선수들이 많이 배출된 해다. [33] 출처[34] 2017시즌 .397, 2018시즌 .395, 2019시즌 .354[35] 기계체조 도마 부문에서 여홍철1994년, 1998년에 금메달을 따고 20년 만에 그 딸이 메달을 땄다. 여담으로 여홍철은 이종범과도 아는 사이라고 한다.[36] 정작 이종범은 방위병으로 복무했다.[37] 이정후의 계약금은 2억으로 적은 금액이 아니며, 게다가 2년차 부터 이미 억대 연봉에 진입했다. [38] 이름은 정연희. 본래 이름은 정정민이였는데. 현재는 개명했다.[39] 눈썰미가 있는 사람은 눈치챘겠지만 인터뷰 영상에서 이정후가 입고 있는 언더슈트엔 한화 이글스 로고가 박혀있다. 아마 이종범이 한화 이글스 코치 시절에 지급 받은 것을 입은 게 아닌가라고 추정된다.[40] ???: 광현이 어때서!!![41] 이정후 vs 강백호 문서에도 나오지만, 야구팬들이 틈만나면 비교논쟁을 벌이는 것과는 별개로 둘은 상당한 절친이다.[42] 강정호의 하이퍼링크가 아니다![43] 혹은 야구선수 이가와 게이일 가능성도 있긴 하다. 누구를 생각했는지는 확실하게 안나왔기 때문. [44] 그러나 이걸 개그로만 볼 점이 아닌게 이종범이 프로에 입단할 당시 신인 입단 계약금 7000만원도 상당한 거금이었다는 점이다. 지금으로 치면 억대에 달하는 금액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종범의 소속 구단이 다른 팀보다 자금력이 딸리던 해태 타이거즈였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참고로 이종범의 1년 선배인 정민태가 1992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할 때 받았던 신인 계약금 1억6000만원이 그 당시 신인 역대 최고 대우였다.다만 그때 당시 OB양준혁을 잡기 위해 백지수표를 제시 했다고 한다. 양준혁은 삼성으로 갔지만...[45] 물론 팬투표는 자기 맘대로 하는 거지만 잘해주는 우리 팀 선수는 이적생이라고 거르고, 상대팀 선수를 레전드 아들이라고 예뻐하는건 팬 입장에서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특히 갸갤에서는 이명기를 거르고 이정후를 픽한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46] 야구에서는 흔치 않은 연령별 제한이 있는 성인 국제 대회인터라 만 25세 이하, 프로 3년차 이하라는 선수 선발 조건이 달려 있었다.[47] 본래 NC 다이노스에서 데뷔했지만 1군 경험은 없었고, 입대를 앞두고 KBO 리그 2차 드래프트에서 LG 트윈스의 지명을 받은 채로 군 복무를 수행했다. 따라서 1군 데뷔는 LG 트윈스에서 하게 된다.[48] 이유는 아들이 야구선수로 성공을 했을때는 상관이 없지만 잘 되지 않았을때 아버지의 유명세에 비참한 인생을 살까봐 아버지 이종범이 어떻게든 야구만은 시키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재미있는 것은 아버지 이종범도 어린 시절 축구에 소질이 있었다는 점이다. 하일성 해설위원의 전언으로는 이종범이 축구선수가 될 뻔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49] 야구선수와 축구선수가 서로 친한 사례는 종종 있다. 신태용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영남대학교 동기 양준혁 해설위원과 절친인 것이 가장 유명한 축구선수-야구선수 친분 관계.[50] 시즌 종료 후에는 엔트리에 올라와 있지 않으면 덕아웃에 출입할 수 없다.[51] 2019년 8월호에 공개된 표지사진인데 나이는 어리지만 현재 이정후 커리어만 놓고 보면 이미 어나더 레벨인지라 왜 저기에 이정후가(...) 라는 반응들이 많았다. 게다가 또 다른 한국야구의 미래 강백호는 없는 게 미스터리.[52] 프로 데뷔전부터도 꼭 한번 상대해보고 싶었던 투수였다고 한다.[53] 통산 전적이 25타수 10안타이다.[54] 오히려 연봉은 올랐는데 집안 반항이라도 한 건지는 불투명.[55] 여담으로 박병호도 삼나쌩의 선두주자 중 하나이지만 이정후보다는 덜하다.[56] KIA 팬들은 이정후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 그것 때문에 항상 자신의 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경향이 크다. 그런데 이정후에게 KIA로 오라는 무슨 의도인지 모를 말도 나오는데, 이정후가 단지 아버지가 있던 팀이라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KIA로 가야할 의무가 전혀 없기에 실례되는 발언이다. 이정후에게 있어 KIA는 아버지가 몸을 담은 걸 제외하면 그냥 KBO 구단 중 하나다.[57] 아무래도 자신과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야구장에 많이 다니고 느낀 영향도 없지 않아 큰 듯하다. 사인 요청을 거절 당할을때 그 상실감이란(...)[58] 사실 선수들 식성을 생각하면 그걸 나눠먹긴 좀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갈수록 선수들이 식단관리, 몸관리에 철저해지는 추세라 가급적 음식 선물은 자제하는 편이 좋다. 쿠키 같은 건 그나마 한두개 깨작깨작 집어먹으면 그만이지만 도시락 선물 같은 건 정말 처치곤란이다.[59] 출처[60] 2017 KBO 올스타전 나눔 올스타 외야수 부문에서 총점 39.91점을 얻어 최형우, 버나디나에 이어 3위로 프로 데뷔 첫 해부터 올스타전 무대에 서게 됐다. 고졸 신인의 베스트 선정은 2009년 KIA 안치홍에 이어 두 번째로 올스타전이 열리는 7월 15일 기준으로 이정후의 나이는 18세 10개월 7일로 2009년 당시 19세 23일이었던 안치홍의 최연소 베스트 출전 기록도 경신했다.[61] 종전 기록은 한화 이글스의 전 외국인 타자 제이 데이비스의 386경기이다.[62] 종전 기록은 한화 이글스의 전 외국인 타자 제라드 호잉이 기록한 47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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