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령 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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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 왕국이 리비아에 건설한 식민지다. 이탈리아령 북아프리카나 4번째 해안이라고도 한다.
2. 역사
1911년, 이탈리아 왕국은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빼앗기 위해 이탈리아-튀르크 전쟁을 일으켰다. 오스만 제국은 저항했으나, 발칸전쟁 중이었던데다 강대국들도 이탈리아를 지지했기 때문에 꺾지 못했다. 이탈리아는 1912년 로잔 조약에서 오스만령 트리폴리타니아(현 리비아)와 지중해의 도데카니사 제도를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넘겨받았다.[1]
이탈리아 왕국군은 리비아에 주둔했다. 그러자 기독교도가 자신들을 통치하게 된다는 것은 이슬람을 믿는 현지인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으며, 오마르 무크타르가 이끄는 게릴라가 이탈리아군을 괴롭혀서 초기 이탈리아의 영향권은 북부 해안 부분에 그쳤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이탈리아에게 보상을 주기 위해 영국령 수단과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와 알제리에서 영토를 일부분 할양하였다. 이탈리아에서 베니토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들이 집권하자,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리비아의 남부를 점령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고, 그 결과 1931년 리비아 전체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으며 리비아 게릴라 지도자 오마르 무크타르는 처형되었다. 또 게릴라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겨자가스 공격을 하고 225,000명의 리비아 민간인이 이탈리아군에 의해 죽었다. 오마르 무크타르의 항쟁을 다룬 영화 사막의 라이온이 유명하다.[2]
1934년에는 이탈리아령 트리폴리타니아와 이탈리아령 키레나이카로 통치하던 리비아를 통합된 식민지인 이탈리아령 리비아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리비아에 강압책과 동화정책을 실시하였다. 리비아의 해안 도시에 이탈리아인의 이주를 장려해 많은 이탈리아인들을 이주시켰다. 동시에 식민통치를 어떻게든 정당화하려 무솔리니를 이슬람의 수호자라고 선전했다. 또 리비아 북부가 로마 제국의 일부였기 때문에 이 부분도 선전에 써먹었고, 로마 시대의 유물들을 대거 발굴하기도 한다. 1939년에는 국가 파시스트당 리비아 지부인 무슬림 릭토르[3] 협회가 생기면서 리비아인들에게 파시즘을 장려했다.
1940년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추축국의 편을 들어 뛰어들었다. 그해 9월 이탈리아는 영국군이 주둔한 이집트 왕국을 침공했다가 패배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나치 독일이 개입하면서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군과 독일군은 패배했고, 리비아는 영국과 자유 프랑스가 분할 점령했다. 이후 리비아는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을 위한 기지가 되었다. 1947년 이탈리아는 이곳을 공식적으로 포기했으며 영국과 프랑스에게 양도했다. 1951년 영국과 프랑스는 리비아를 독립시켰고, 리비아 왕국이 수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