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군
1. 개요
문자적인 뜻은 인민의 군대. 사회주의 국가들이 대체로 군대의 이름 앞에 인민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예를들어 헝가리 인민군, 동독의 국가 인민군, 루마니아 인민군...
2. 공산주의 국가의 인민군
2.1. 기원
마르크스주의에서는 군대를 부르주아지들과 정부 관료들의 충견(忠犬) 정도로 보고있다. 쉽게 말해 군대는 자신들을 위협하고 탄압하는 존재로 생각했던 것. 그렇기에 경찰과 군대를 공산주의자들은 타도 대상 제1순위로 뽑아놓았다. 그러나 단순히 군대가 사라지게 되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는 공산주의자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혁명을 완수하고, 외부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들에게 충성하는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처음 구체적으로 구현된 곳은 러시아 혁명 직후의 러시아였다. 이전에도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정치변혁운동은 많았지만 제대로 성공해본 적은 하나도 없었는데 러시아 혁명이 성공해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비에트 러시아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러시아 내부에서도 러시아 외부에서도 공산주의 혁명을 달갑지 않게 보는 눈은 많았고, 이 때 블라디미르 레닌은 자신의 저서인 '우리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1] 에서 "경찰의[2] 회복을 막을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인민의 민병대를 만들어 군대와 융화해 상비군을 모든 인민의 군대로 바꾸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의 전황이 불리해지고 각지에서 혁명에 반발하는 세력이 백군이라는 이름으로 혁명을 진압하려 하자 혁명을 수호할 군대의 필요성은 현실화하였다. 이에 인민위원회의[3] 는 1918년에 혁명을 호위할 목적으로 노동자와 농민의 붉은 군대[4] 를 창설하고 계급의식적이며 가장 우수한 노동자 계층으로 구성된 군대를 지향했다. 이렇게 첫 공산주의 국가의 군대인 노동자와 농민의 붉은 군대(소련군)은 인민군을 지향하게 되었다. 그렇게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 소련의 소련군도 한 때 인민군을 지향했다. 붉은 군대 시절이었던 1946년까지는 말 그대로 인민을 위한 부대였지만, 1946년에 이름을 소비에트 연방군으로 바꾸면서 국군이 되었다.
소련의 성공으로 인해 예외도 있지만, 사회주의 국가들은 모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초해 국가를 경영했고 이에 따라 자신들의 군대도 인민군을 지향하였다.[5]
2.2. 현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의 인민군은 그 정치체제의 한계로 인해 진정한 '인민의 군대'가 되지 못했다. 공산주의 국가는 레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민주집중제 논리에 따라 공산당 일당 독재 국가가 되었고, 이로 인해 인민군도 말이 '인민을 위한 부대'일 뿐, 실질적으로는 국가 유일 정당인 공산당의 군대로 편성되어 그들이 타도하고자 했던 부르주아지 권력자들의 충견(忠犬)인 국군의 역할을 그대로 계승했다. 또한 공산당이 믿고 부릴 수 있는 수족으로서 억압과 탄압, 타국 침공, 선전선동, 감시의 선봉으로 활동한다. 공안이나 경찰, 행정, 사법기관들도 활동하지만 굳이 여기에까지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인민군들도 활동한다.
이는 20세기 공산주의가 지향했던 정치체제인 민주집중제의 한계 때문이다. 민주집중제는 '국민 다수의 의견에 따라 군림하는 권력'을 견제하는 세력이 결여되어 있다. 소련에서 민주집중제의 성립 초기에는 멘셰비키와 같은 야권세력도 있고 사회혁명당과 같은 연립여당 등이 정부에 참여해 다당제로 굴러갔지만, 볼셰비키가 여러 야권세력들을 말살하고 레닌의 분파금지명령으로 공산당 당내민주주의마저 파멸하자 당내 견제세력도 없어지고 당 외부의 견제세력도 없어졌다. 그리고는 '계급대립이 없는, 단일한 이해관계를 지닌 노동자'가 '독재'를 하여[6] 공산주의를 완성해야 한다는 이념을 이용해 대놓고 일당제를 지향하게 됨으로써 자본주의같은 반공적 사상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내 분파, 예를 들면 조합주의(생디칼리즘), 아나키즘, 트로츠키즘 등등의 반대파마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없애버렸다. 군대를 당이 가지고, 그 당이 '인민이 우리를 지지한다'는 논리와 함께 야당을 무력으로 쓸어버리니 반대파가 뿌리내릴 방법이 없었다.[10]
그리고 본래 반정부단체였던 공산당과 사회주의 정당의 무력으로 만들어진 인민군들은 그들의 목적인 체제전복과 그들이 원하는 체제를 구축한 후에도 인민군의 통수권을 넘겨주지 않고 그들이 가진다. 어차피 일당제 국가라 공산당과 정부가 한 몸이니까.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일반적인 국가처럼 국방부의 수장이 군의 최고서열이거나 최고서열이었던 적이 없다. 권력서열도 권력투쟁 때도 국방부의 역할을 하는 조직들(인민무력성 등)은 개인 단위가 역량이 돼서 나선 것 외에는 조직단위로는 역량이 안돼서 제대로 나서지도 못했다. 예를 들면 중국 인민해방군은 중국의 국군(國軍)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당군(黨軍)이다. 따라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모든 통수권을 가진다. 심지어 중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사용 결정권도 이 중군위 주석에게 있다.
또한 인민은 공통의 관심사나 정체성 등을 전제한 '결속된 연합'으로 쓰이는 용어라 일단 그 나라 정부의 마음에 안들더라도 같은 나라 사람이라면 보호해줘야 하는 의무를 가진 국군과 달리 인민군은 공산당의 마음에 안들면 같은 나라 사람이든 뭐든 그 날로 보호는 둘째치고 인민군의 공적이 되어버어 생존투쟁을 벌여야 할 처지에 내몰렸다. 공산당 일당독재고 정부가 사실상 공산당의 도구 내지 장식품이라서 공산당이 곧 국가를 통치하는 유일한 집단이므로 이들에게 거역하는 순간 온 세상이 적이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공산주의 국가들의 인민군의 현실은 그냥 좌파 운동가들이 자신들의 의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군대에 프로파간다 효과를 위해 '인민군'이라는 타이틀을 붙여둔 것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일단 편제부터 국민, 좌파운동가들의 표현으로는 인민들의 집합체인 국가 소속이 아니라 자기네 당[11] 의 수족인 '당군'으로 편제되어 있으며 활동도 그들이 그렇게 타도하고자 하였던 권력자들이 했던 것들은 기본이요 플러스 알파까지 더한 당의 '충견(忠犬)'이 바로 인민군의 실제이다.
2.3. 의외의 면모
사회주의 국가에서 시도된 인민군은 사상적으로는 '평등한 인민의 군대'라서 초기 인민군에는 일반적인 군대에서 생각하기 어려운 의외의 면모도 있었다. 예를 들면 붉은 군대에는 1935년까지 계급이 장군과 병사뿐이었고 장교는 계급이 아닌 직책에 불과했다. 중국 인민해방군도 초기에는 계급이 없었다.
또한 많은 사회주의 국가의 군대는 공산당의 수족이 되었지만 여전히 '인민을 위한 군대'라는 이념은 남아있었다. 예를 들면 1989년 동유럽 혁명 당시 동독의 국가유일정당인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은 국가인민군 투입을 통한 진압을 고려했으나 초급 장교들 사이에서 '인민을 위한 군대가 인민을 공격한다는 게 말이 되나'라는 생각이 만연해 포기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중국 인민해방군의 천안문 6.4 항쟁 유혈 진압이 큰 충격을 가져다준 이유 중 하나도 인민군이 인민을 억압했다는 것이었다.
3. 기타 국가의 인민군
나치도 "인민"(Volk)라는 말을 매우 애용했는데, 이들은 제2제국때부터 내려오는 군부를 "귀족출신이 지배하는 낡은 유산"이라고 매우 경멸했으며, 에른스트 룀같은 나치당 좌파들은 이들을 청산하고 "인민의 군대"를 만들려고 했다. 이것이 바로 SA였고, 룀은 이를 위해 SA와 독일 국방군의 합병을 추진하다가 국방군의 반발을 사서 히틀러에게 숙청된다. 그러나 히틀러도 나중에 전황이 급박해지자 인민돌격대 (Volksturm)를 창설한다. 인민돌격대는 아이러니하게도 법제상 히틀러가 귀족출신이 장악했다고 불편한 국방군 소속이었다. 물론 당시 전황이 막장이었으므로 법제상 어떻게되든 상관도 없었지만...
4. 실제 존재하는 인민군
5. 존재했던 인민군
6. 같이보기
[1] 영제 Tasks of the Proletariat in our Revolution[2] 소련 공산당을 창당한 공산주의자의 눈에는 러시아 제국의 보통경찰 역시 부르주아지의 충견이었다. 그래서 케렌스키 정부는 사회주의 세력의 주장을 받아들여 내무부의 경찰국을 폐지하면서 보안관 기능의 인민경찰(밀리치야)을 창설했다. [3] Совет народных коммиссаров[4] Рабоче-крестьянская Красная армия[5] 개념상 공산-사회주의 국가들에서 혁명의 중심인 '''당'''이 먼저 만들어지고, 압제된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하여서 '''무력조직'''들이 구성 되어야 하며, 이후에 성공하고 나서야 '''국가/정부'''가 조직된다. 상식적으로 먼저 조직된 무력단체가 후대에 나오는 조직인 국가와 정부에 예속될 일은 거의 없다.[6] 프롤레타리아 독재[7] 물론 백군과 외국군이 1차세계대전 종전후에 공산당을 제거하고자 움직였기에 이를 막겠다고 비밀경찰 '체카'를 만들기도 했다.[8] 가장 처음에는 트로츠키[9] 중국은 대장정을 겪으면서 마오쩌뚱이 당과 군의 1인자 위치를 확립하였다는 점이고, 김일성은 비교적 오랜기간을 거쳐서 자신의 직계세력만 남기고 독재권력을 구축하였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10] 사실 레닌 생존시기까지만 하더라도 소련공산당 내에는 여러 계파들이 뒤섞여있었다. 특히나 혁명 이후 레닌의 급진적 공산주의 경제정책은 후진적 농업국가였던 러시아에서 큰 부작용이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기도 했다. 이에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하는 신경제체제를 시행하면서 비교적 다양한 색체를 가지고 있었다.[7] 그러나 레닌 사후 계파들간에 권력다툼 속에서 레닌의 비서역할이고, 각 세력들의 조정자 위치였던 서기장 스탈린이 가장 강한 세력[8] 을 다른 세력들과 연합으로 제거하는 방식을 통하여서 다른 세력들을 제거하고, 1인 독재권력을 구축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는 중국과 북한에서도 비슷하게 진행되었다[9] .[11] 명목상 노동자, 농민의 결사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