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페라트리차 마리야급 전함
1. 제원
참고로 왠지 잘 모르지만 임페라트리'''사''' 마리야급으로 알려져있다. '사'는 틀린 발음으로 임페라트리차 마리야라고 읽어야 한다. 키릴 문자로는 'Императрица Мария'로 로마자로 치환해도 'Imperatritsa Mariya'이다. 아무래도 'ц'를 'ts'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잘못 읽었거나 과거에 'ц'를 'ch'로 치환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문서는 임페라트리사 마리야급 전함으로도 들어올 수 있다.
2. 개발, 구식만 있는 흑해
한때 세계적 규모의 해군을 보유했던 러시아 제국은 러일전쟁 당시 태평양 함대와 발트 함대가 싹 쓸려나가서(...) 보로디노급 전함 5번함 슬라바[7] 나 안드레이 페르보즈반니급 전함 정도만을 보유한 상황이었다. 신형 드레드노트 전함으로 강구트급 전함을 건조하곤 있었으나, 이들은 전부 발트 함대 전용으로 쓰일 예정이었고, 맛이 간 오스만 제국만이 적수로 있는 흑해에서는 포템킨과 에프스타피급 전함 2척만을 운용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스만 제국이 13.5인치 포 10문으로 무장한 드레드노트 전함 레샤디에[8] 를 주문하자, 흑해에서의 러시아 제국의 제해권이 위험해지게 된다. 이에 위험을 느낀 러시아는 강구트급 전함을 기반으로 해서 좀 더 튼튼하고 느린 전함을 계획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임페라트리차 마리야급 전함이다. 임페라트리차 마리야급은 발트해의 강구트급 전함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건조비용을 절약해서 건조했으며[9] 이러한 이유로 임페라트리차 마리야급의 최대속력이 이 강구트급의 최대속력보다 느린 이유가 되었다. 그중 2번함 임페라트리차 예카테리나 벨리카야 경우는 좀 더 크게 설계했고 1914년, 3척 다 현역으로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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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준으로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12인치 52구경장 3연장 함포
3. 활동, 비참한 최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독일 제국의 순양전함인 SMS 괴벤과 경순양함 브레슬라우가 오스만 제국으로 도망쳐서 그대로 오스만의 배가 됨과 동시에 독일 편으로 참전하게 되자, 임페라트리차 마리야급도 활동을 시작, 세바스토폴을 모항으로 하여 임페라트리차 마리야급은 러시아 제국이 흑해의 제해권을 장악하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오스만의 해안가를 포격하고 다니며 오스만 해군을 압박했다. 독일이 세바스토폴을 기습하고, 괴벤(야부즈 술탄 셀림)이 포템킨과 교전하는 등 흑해 전역이 격화되는 와중인 1916년, 2번함 임페라트리차 예카테리나 벨리카야가 야부즈 술탄 셀림과 조우해 교전하게 됐으나[10]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고, 증원을 요청해 1번함 임페라트리차 마리야도 출격하나 무선을 감청한 독일 수병의 보고로 야부즈 술탄 셀림이 후퇴하는 걸로 교전이 종료된다. 그와중에 임페라트리차 마리야는 후퇴하는 순양함 브레슬라우(미달리)를 발견해 사격을 가했지만 명중타를 내지 못했다.
한편 1916년 10월, 1번함 임페라트리차 마리야가 탄약고 화재로 좌초되는 피해를 입었고[11] 1918년, 2월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 해군의 활동이 사실상 종료된다. 이때 임페라트리차 예카테리나 벨리카야는 스바보드냐 라씨야(자유로운 러시아)로, 임페라토르 알렉산드르 III는 볼리아로 개명되어 혁명군 소속이 되었으나 이미 전황은 나쁜 상황이었다. 10월 혁명이 일어나고, 휴전조약인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맺어지자, 독일은 대가로 임페라트리차 예카테리나 벨리카야(스바보드냐 라씨야)의 자침을 요구했고 벨리카야는 결국 자침된다. 한편 3번함 임페라토르 알렉산드르 III(볼리아)는 독일군에게 나포되었다가 제1차 세계 대전이 종결되면서 보스포루스 해협을 장악하고 있던 프랑스에게 넘어간다. 프랑스는 러시아 내전이 발발하자 크림 반도의 백군 표트르 브란겔 남작[12] 에게 팔았고, 브란겔은 이름을 게네랄 알렉세예프(Генерал Алексеев)[13] 로 고쳐 물밀려오듯이 오는 적군에 대항해 써먹었다. 하지만 백군은 패배했고, 프랑스는 이 배를 다시 가져가 다시 소련에 되팔지 않았다. 좌초된 2척은 1926년, 30년에 각각 스크랩되고 임페라토르 알렉산드르 III는 1936년에 스크랩된다.
4. 자매함 목록
5. 기타
참고로 세바스토폴 공방전때 독일군을 엿먹인 막심 고리키 포대의 포신이 임페라트리차 마리야에서 뜯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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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프랑스가 들고간 3번함, 임페라토르 알렉산드르 III의 주포는 1940년에 핀란드에 팔아서 겨울전쟁때 해안포로 활용되고,[14] 나머지 주포는 독일이 프랑스 점령이후 가져가서 노르웨이의 해안포 기지를 만들때 썼다.
[1] 건조 중단[2] 임페라트리차 예카테리나 벨리카야는 28.07m[3] 임페라트리차 예카테리나 벨리카야는 8.7m[4] 임페라트리차 예카테리나 벨리카야는 25,039톤[5] 2번함 예카테리나는 3기[6] 수선하 선체고정형 발사관[7] 건조가 늦어져서 러일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8] 하필 영국에서 건조되고 있던지라 제1차 세계 대전으로 HMS 애진코트하고 함께 압류되고 HMS 에린(Erin)으로 운용된다.[9] 이유는 예산은 예산대로 부족하고 건조자체는 빨리 해야했기 때문이다.[10] 야부즈 술탄 셀림이 먼저 사격했다. 참고로 이때 임페라트리차 예카테리나 벨리카야가 일제사격을 여러번 했지만 돌진해오는 야부즈 술탄 셀림의 우수한 기동에 의해 명중탄은 거의 없었다.[11] 원래 임페라트리차 마리야의 침몰이 독일의 공작이라고 다들 생각했지만 나중에 침몰한 임페라트리차를 조사한 결과 탄약고에서 자연발화가 일어났다고 한다.[12] 소련 군가 붉은 군대는 가장 강력하다에서 나오는 그 검은 남작이다.[13] 남러시아 백군의 초기 지도자 중 한명이었던 미하일 알렉세예프(Михаил Алексеев)의 이름을 땄다.[14] 이 해안포는 지금도 '''발사가 가능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 2017년에는 핀란드 독립 100주년을 맞아 축포를 발사하기도 했다.https://youtu.be/P1Hgzi1VOo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