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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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LG 트윈스의 투수.
대구상고(현 상원고등학교) 출신으로 2000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 후보로 유력한 선수였는데, 대구상고 시절에는 '''당시 경북고의 투수인 배영수보다도 더 뛰어난 선수였다.''' 당시 대구상고의 에이스로 1999년 대구 개막전에서 고교야구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시구를 했고, 1999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는 1년 후배 이정호와 함께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로 선정됐고 청소년 국가대표팀에도 뽑혔다.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는 잠재성을 높이 평가한 배영수를 1차 지명했으며,[1] LG 트윈스가 그를 2차 1순위로 지명했다.
계약금도 2억 8천만 원으로 배영수보다 3천만 원을 더 받았다. 하지만 첫 해부터 1군 20경기 2승 평균자책점 5.14로 부진하면서 이후로는 1군에 올라와도 계투로나마 간간히 등판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2007년 1군에서 겨우 3경기 등판한 게 1군에서의 마지막이었다. 그 뒤 오버핸드에서 사이드암으로 변신을 시도했으나 별 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서 2008년 6월에 신윤호, 박석진 등과 함께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당했다.
은퇴 후 모교인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에서 코치를 하고 있다. 2014년 경 LG 트윈스 갤러리에 본인인증을 했다.
당시 LG 트윈스의 상위픽 흑역사 선수 중 하나로, LG는 1996년 이정길, 1997년 김민기, 1999년 김상태, 2000년 최경환, 장준관 2002년 서승화, 김광희, 2004년 장진용, 2005년 박병호, 정의윤, 2006년 김기표, 신창호 2007년 김유선, 등, 1996년부터 2008년까지 1차~2차 2라운드로 지명한 선수들을 보면 박용택 같이 성공한 케이스도 있지만 망한 사례가 많다.
1. 개요
전 LG 트윈스의 투수.
2. 아마추어 시절
대구상고(현 상원고등학교) 출신으로 2000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 후보로 유력한 선수였는데, 대구상고 시절에는 '''당시 경북고의 투수인 배영수보다도 더 뛰어난 선수였다.''' 당시 대구상고의 에이스로 1999년 대구 개막전에서 고교야구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시구를 했고, 1999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는 1년 후배 이정호와 함께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로 선정됐고 청소년 국가대표팀에도 뽑혔다.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는 잠재성을 높이 평가한 배영수를 1차 지명했으며,[1] LG 트윈스가 그를 2차 1순위로 지명했다.
계약금도 2억 8천만 원으로 배영수보다 3천만 원을 더 받았다. 하지만 첫 해부터 1군 20경기 2승 평균자책점 5.14로 부진하면서 이후로는 1군에 올라와도 계투로나마 간간히 등판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2007년 1군에서 겨우 3경기 등판한 게 1군에서의 마지막이었다. 그 뒤 오버핸드에서 사이드암으로 변신을 시도했으나 별 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서 2008년 6월에 신윤호, 박석진 등과 함께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당했다.
은퇴 후 모교인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에서 코치를 하고 있다. 2014년 경 LG 트윈스 갤러리에 본인인증을 했다.
당시 LG 트윈스의 상위픽 흑역사 선수 중 하나로, LG는 1996년 이정길, 1997년 김민기, 1999년 김상태, 2000년 최경환, 장준관 2002년 서승화, 김광희, 2004년 장진용, 2005년 박병호, 정의윤, 2006년 김기표, 신창호 2007년 김유선, 등, 1996년부터 2008년까지 1차~2차 2라운드로 지명한 선수들을 보면 박용택 같이 성공한 케이스도 있지만 망한 사례가 많다.
[1] 장준관이 고등학교 3학년 때 계속 슬라이더 위주로 피칭을 한 것과 계약금을 올릴 목적으로 미국행을 추진하려고 하자 배영수로 선회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