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야구)
1. 소개
전 프로야구 선수이자, KIA 타이거즈, SK 와이번스, NC 다이노스, 두산 베어스의 코치이다.
2. 선수 경력
성남고[1] 와 경희대를 거쳤는데, 아마추어 시절에는 꽤 이름있는 타자로 활약하며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다. 1995년 LG 트윈스의 2차 5순위 지명을 받았지만,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제의를 받고 1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으며 입단했다. 그러나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며 팀에서 방출되어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 있었고, 이후 멕시칸 리그와 호주 리그를 전전하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 갔다. 다만 도중에 멕시칸 리그에서 뛰게 된 건 마이너리거 시절 미국 워킹비자 발급 문제로 인해 팀 합류가 불가능해지자 자매 구단이었던 멕시칸 리그 구단에 임대 형식으로 합류해 시즌을 보내게 된 것.[2] 여담으로 멕시칸 리그에서 뛰던 시절, 2007년 한화 외국인 타자로 뛰다 간 제이콥 크루즈와 같은 팀에 있었다.
결국 메이저리그에 오르지 못했고, 아버지의 건강 문제로 인해 귀국을 결정했다. 아버지는 그가 LG에서 첫 시즌을 보낸 후인 2000년 12월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2000년에 입단할 신인 선수를 선발하는 드래프트에서 도저히 서울 지역에서 유망주를 찾기 힘들자, 고민하던 LG 트윈스는 당시 귀국을 결정한 최경환을 1차 지명하여 입단시켰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LG에서 이렇다 할 활약은 거의 없었고, 2001 시즌 후 방출되고 말았다.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해 밝힌 바에 따르면 LG 입단 첫 해에는 이광은 감독이 나름 기회를 많이 줬으나, 이광은이 경질된 후 후임으로 부임한 김성근 감독과 야구관이 맞지 않아 제대로 된 기회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LG에서 방출당한 뒤 선수 생활이 거의 끝날 뻔했지만 두산 베어스의 김인식 감독이 그를 부르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 갔고, 여기서 그의 반전이 시작되었다.
두산 입단 첫 해인 2002년, 주전 외야수로 자리잡아 126경기에 출장해 타율 0.274, 13홈런을 기록하면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이후 2005년까지 두산의 외야 한 자리를 책임지며 정수근, 심재학 등이 이적해 공백이 생긴 외야진에서 주전으로 쏠쏠하게 활약을 펼쳤다. 3할 가까운 컨택과 쏠쏠한 클러치 능력을 앞세워 화수분 야구가 펼쳐지기 전 두산에서 나름 쏠쏠한 활약을 보이면서 이름을 알렸다. 특히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적인 허슬 플레이가 인상적이라, 두산의 팀 컬러 중 하나인 '허슬두'의 원조격 선수였다.
2006년 5월 17일, 두산과 롯데 간 2:2 트레이드를 통해 이승준과 함께 롯데 자이언츠로 건너갔다. 반대급부로 두산에 넘어온 선수들은 최준석과 김진수. 그러나 노쇠화가 찾아오며 롯데에서는 기대한 만큼 활약하지 못하면서 폭망했고, 결국 2007 시즌 종료 후 롯데에서 방출당했다.
롯데에서 방출된 후 은퇴 위기에 몰렸으나, 입단 테스트를 받아 KIA 타이거즈에 이적하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 갈 수 있었고, KIA에서 왼손 대타 요원으로 쏠쏠한 활약을 보이면서 2년 더 뛸 수 있었다.[3]
최경환이 KIA에서 남긴 족적은 크게 2가지인데, 하나는 2008년 저 유명한 윤길현의 욕설 파동의 당사자인 것이다. 만일 최경환이 아니라 다른 선수였다면 일이 커지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하필이면 가는 팀마다 허슬 플레이로 팬들의 인기를 사던 최경환이라 일이 커졌다는 분석도 있다.
그리고 2번째는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7회말 5:4로 1점 뒤진 상황에서 작렬한 3루타다. 한국시리즈 엔트리도 홍세완의 부상으로 인해 막판에야 합류한 최경환이 작렬한 선수 생활 마지막 안타를 발판으로 KIA는 7회 말 동점을 이뤘고,[4] 그 뒤에 김원섭의 동점타, 이후 9회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으로 KIA가 우승했다. 어쨌거나 현역 마지막 시즌에 우승 반지를 껴보면서 좋게 마무리지었다.
2009년 시즌 종료 후 은퇴하였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KIA의 코치 제의를 수락하면서 곧바로 KIA 타이거즈의 1군 타격코치로 부임했다.
하지만 지도자로써의 평가는 좋지 못한 편. 연수도 가지 않았던 초보 코치가 처음부터 메인코치직을 맡다 보니 한계가 있이 마련이었고, 더군다나 KIA 타선이 2010년 이후 물타선으로 회귀해버리면서 당시 타격 파트를 맡던 이건열 코치와 함께 세트로 욕을 먹었다. 결국 조범현이 물러나고 선동열이 새 감독으로 부임한 뒤 코칭스태프 개편이 이뤄지면서 해임되었다.
KIA에서 해임된 후 이만수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12년 시즌을 앞두고 SK 와이번스의 타격코치로 옮겼다. 하지만 윤길현과의 사건 때문에 처음부터 SK 팬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고, 역시나 타격 코칭에 있어서는 2012년 이후 SK 타선을 물방망이로 만든 주범으로 지목되며 정말로 '''최악'''이란 평을 들었다. 결국 시즌이 시작된 지 한 달 만인 5월 중 김경기 2군 코치와 보직을 맞바꿔 2군 타격코치로 내려갔다. 실제로 최정을 제외한 SK 타자 전원의 타격 성적이 2011년까지의 스탯과 비교했을 때 단순히 노쇠화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심각할 정도로 막장인 상태로 전락한 상태. 한편 2013 시즌을 앞두고 1군 타격보조코치로 보직을 바꿔 메인 타격코치로 영입된 맥스 베너블 타격코치를 보좌하는 형태로[5] 다시 1군으로 올라왔으나, 여전히 문제점을 보완하지 못했고, 결국 2013 시즌 종료 후 SK에서 해임되었다.
그리고 2013년 11월 12일 부로 NC 다이노스의 코치로 영입되었다. 기존 김광림 코치와 함께 1군 타격 파트를 담당한다. 한편 과거 KIA와 SK 코치 시절 악평으로 인해 최경환 코치를 영입할 당시 기사의 댓글에는 비판글이 수두둑하게 달렸는데, 본인도 이 악플에 대해 답글을 달았다고 한다.
그 후로 기사에 관련된 악플을 보고 본인도 각성한 탓인지, 물방망이 타격으로 욕을 먹었던 이전 구단의 코치 시절과 달리 2014년 NC의 타선은 점점 다시 불망망이를 제대로 피우며 코치로써의 평가가 상승했다. 기존 타격코치를 맡던 김광림 코치와 시너지가 나름 잘 맞는 걸로 보인다.
하지만 2015년에 2군 타격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고, 2016년 시즌 종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NC 다이노스를 떠났다.
2017년 시즌을 앞두고 두산 베어스의 코치로 영입되면서 11년 만에 두산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2017년 한 해는 1군 타격코치를 맡았고, 이후 인스트럭터 신분이었던 고토 코지가 1군 타격코치로 영입되면서 2군 타격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
2020년 시즌 후 두산과 재계약에 실패하였다.
4. 연도별 성적
5. 기타
- 은퇴 후 가장 애정이 있는 팀으로는 곧바로 KIA 타이거즈를 꼽았다. 아무래도 우승과 별 인연이 없었다가 마지막에 우승을 한번 경험해 보고 은퇴한 것도 있고,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의 임팩트를 잊지 못해 KIA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 자기관리에 철저해서, 술과 담배는 아예 입에 대지 않는다고 한다.
- 서울 출신이지만, 초등학교 시절에 잠시 살았었던 포항시에서 야구를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 가수 이세준과는 성남고등학교 동창이다.
- 채널A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에 아내와 출연하였다.
- 2020년 12월 두산 시절 후배였던 박명환이 진행하는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해 입담을 보였다. 마이너리그와 멕시칸 리그에서 뛰던 시절과 당시 애로사항, 그리고 2008년 윤길현과의 욕설 사건 등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썰을 풀었다. 동시에 영어와 스페인어 실력을 뽐내면서 아직 기량이 죽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1] 고교 동기생 강병규과는 콩 한쪽도 나눠먹는다는 말을 들을 만큼 절친이다.[2]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하여 이 당시를 술회하길 이러한 처지 덕에 당시 연봉을 마이너리그 구단, 그리고 임대 형식으로 간 멕시칸리그 구단 양쪽에서 모두 받았다고 한다.[3] 대표적으로 후술할 2009년 한국시리즈 3루타 외에도 2009년 마지막 정규시즌 우승 레이스때 매직넘버를 1로 줄이는 9/20 LG전 대타 끝내기 안타 등이 있다. 참고로 본인의 유일한 끝내기이다.[4] 정작 본인은 홈으로 들어오려다가 런다운에 걸려 아웃됐다. 다만 이는 병살타를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홈으로 쇄도했을 가능성이 크고, 은퇴 후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해 당시 3루 코치의 지시로 병살 아웃을 막기 위해 그런 거라고 밝혔다.[5] 베너블 코치가 외국인 코치다 보니 기존 한국인 선수들과 의사소통 면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영어가 능통한 최경환 코치를 1군으로 올려 가교 역할을 하게끔 한 걸로 보인다.[6] 실제로 윤길현과 빈볼 시비가 있었던 SK와의 3연전 도중, SK의 외국인 투수였던 케니 레이번이 그가 영어를 못 하는 줄 알고 아웃되고 들어가는 그의 뒤에서 영어로 욕을 했다가 이를 들은 최경환에게 영어로 항의를 들었다. 실제로 최경환의 격렬한 항의에 레이번은 같이 크게 반응하지 않고 약간 대화만 나누며 상황이 마무리되었다. 정황상 최경환이 영어를 알아듣지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욕을 했다가 알아듣는 순간 잘못된 걸 안 듯. 참고로 레이번은 전년도인 2007년 시즌 중 이대호에게 빈볼성 투구를 던져 항의를 받자 뭐가 문제냐고 같이 항의하며 맞설 정도로 다혈질적인 선수였다. 이대호보다 덩치도 훨씬 왜소한 최경환이 항의하는데도 얌전히 대응했다는건 레이번 본인이 찔리는 게 있었는 듯.[7] 또한 보스턴 마이너리그 시절 룸메이트였던 조진호가 미국에서 적응을 못해 팀내 선수단에서도 따돌림을 당하는 등 힘들었을때, 조진호가 사실은 깡패출신인데 개심하고 야구시작했으니 건드리지 말라며 적절한 거짓말로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8] 걸그룹 연습생 출신이다.[9] 사실 한번 이혼을 한적이 있어 재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