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X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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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guar XK'''
영국의 자동차 제조사 재규어에서 1948년부터 1961년까지, 그리고 1996년부터 2014년까지 생산한 2도어 쿠페 및 컨버터블이다. 보통 XK라 하면 1996년에 나온 XK8과 2006년에 나온 X150형을 의미한다.
XK의 역사는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후 재규어에서는 민수용 차를 만들기로 한다. 우선 계획한 것은 재규어의 주력이었던 세단 모델이었는데, 전쟁 전에 만든 마크 IV 세단의 뒤를 이을 마크 V 세단을 가장 먼저 선보일 예정이었다. 이 마크 V를 1948년 런던 모터쇼에 선보는 것이 목표였으나 예상보다 개발이 늦어졌다. 재규어의 창업주인 윌리엄 라이언즈 경(Sir William Lyons)은 회사 입장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새 차도 중요하지만 새로 개발한 엔진의 우수성을 먼저 시험해 봐야겠다는 대안을 내놓게 된다. 이 대안은 재규어에서 전쟁 전에 만든 SS 재규어 100이 단종된 1940년 이후 8년만에 2도어 스포츠카가 나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새로 개발된 2도어 스포츠카는 당시 개발이 지연되고 있던 마크 V 세단의 철제 상자형 프레임 섀시 길이를 줄이고 애시우드로 만든 틀 위에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보디를 씌웠다.[1] 직렬 6기통 3.4L XK엔진[2] 을 얹었고 4단 수동변속기와 맞물려 뒷바퀴를 굴리도록 설계되었다. 그리고 이 차에 탑재된 엔진의 형식명인 XK와 추정 최고속도인 시속 120mph(약 193km/h)을 합친 '''XK120'''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1948년 런던 모터쇼에 출품했다. 미려하면서도 섹시한 스타일링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메이커들이 앞다퉈 벤치마킹할 정도로 당시 스포츠카 시장에서 이름을 날렸다. 이후 이러한 스타일링은 개량형인 XK140과 XK150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 차에 탑재된 직렬 6기통 3.4L XK엔진은 최고출력 162마력을 자랑했다. 당시 XK120보다 몇 배는 비싼 차들과 맞먹는 성능이었다. 서스펜션은 당시 스포츠카들에 흔히 볼 수 있었던 구조로, 전륜은 토션빔으로 좌우 바퀴를 연결한 독립식이었고 후륜은 리프 스프링을 사용한 라이브 액슬 방식이었다.
120이라는 숫자에 관해 일화가 있다. 당시 120mph란 속도는 일반적인 차량으론 도달하기 어려운 꿈의 속도였는데,[3] 언론에서는 이 조그만 회사가 만들어낸 차량이 과연 그 속도에 도달은 커녕 기계적 신뢰성을 유지할 수나 있는지에 대한 의심을 쏟아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언론의 의심에 격분한 윌리엄 라이온즈는 직접 XK120을 끌고 벨기에의 Jabbeke에 위치한 2차로 도로를 폐쇄해, 거기다 기자들을 불러놓고 성능 시연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날 시연 중에 기록한 최고속도는 원래의 목표였던 120mph를 상회하는 '''132mph(약 213km/h)!!'''[4] 그리고 이 날 시연으로 인해, 의심 많던 언론에게 크게 한 방 날려주며 재규어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가성비를 자랑한 XK120의 인기가 많아지자, 1950년부터는 강판 수급이 원활해진 시기에 맞추어 차체를 알루미늄 대신 강판으로 교체함으로써 XK120을 대량 생산 체제로 전환했다. 다만 무게를 고려해 도어는 여전히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출시 초기에는 로드스터만 있었으나, 1951년에는 둥근 지붕을 갖춘 픽스드 헤드 쿠페(fixed head coupé) 모델이, 1953년에는 드롭헤드 쿠페가 추가되었다.
XK120은 모터스포츠에도 활약하면서 재규어의 명성을 높여주었다. 첫 출전은 1949년 8월 30일 잉글랜드의 실버스톤 서킷(Silverstone Circuit)에서 열린 One-Hour Production Car Race에서였다. 거기에서 XK120 초기형 모델이 우승하면서 모터스포츠 데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1950년 1월에는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열린 레이싱에서도 우승했고, 그 해 5월에는 페블 비치 컵에서도 2대가 출전해 각각 1위와 2위를 했다. 특히 1950년에 열린 르망 24시에서 XK120 3대가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는데, 재규어에서는 이 경험을 토대로 XK120의 레이싱 버전인 XK120C, 일명 '''C-타입'''을 만들었다. 그리고 1951년 르망 24시에서 우승을 거머쥐게 되었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 영국 스포츠카의 인기가 급증했고, 나아가 1950년대 영국 자동차 산업에 활기를 띄워 주기도 했다. 또한 C-타입의 성과를 양산차에 반영해 1951년에는 XK120에 SE 트림[5] 을 추가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C-타입과 그 발전형인 D-타입의 성과는 계속 이어져, 르망 24시에서 1951년~1957년까지 통산 5회에 걸친 우승을 하며 성능을 입증할 수 있었다.
D-타입도 XKSS라는 로드카 버전이 있었는데, 1957년에 16대가 제작되었고, 이 중 북미 수출용으로 지정된 9대의 차량이 영국 중부 브라운스 레인에 보관중 화재로 손실되었다. 이후 2016년 LA모터쇼에서 소실된 XKSS를 부활시키겠다고 밝혔고 2017년에 9대가 생산될 예정이다. 참조
XK120은 개량형인 XK140이 후속으로 나오기까지 6년 동안 12,078대[6] 가 생산되었고, 재규어뿐만 아니라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자동차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여담으로, 재규어에서는 XK120의 차체에 2.0L 4기통 엔진을 얹은 XK100이라는 파생 모델을 영국 시장에 판매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재규어의 임원들이 엔진에 만족하지 못했고, 결국 프로젝트가 사장되면서 양산에 이르지는 못했다.
1954년에 XK120을 개량한 버전인 XK140이 출시되었다. 실내 공간이 넓어졌고 브레이크 성능이 향상되었으며, 랙 앤드 피니언 스티어링을 적용하고 텔레스코픽 쇼크 업소버를 적용했다. 엔진은 기존의 XK엔진을 업그레이드해 최고출력을 190마력으로 향상시켰으며, XK120에 이어 XK140에도 210마력 엔진이 탑재된 C-타입 헤드 옵션을 제공했다.
1957년에 출시된 XK150은 이전 모델과 달리 드롭헤드 쿠페와 픽스드 헤드 쿠페를 먼저 제공했다. 기존의 2분할 방풍 유리(윈드실드)를 일체형으로 변경했고, 도어 라인을 곡선형 대신 직선형으로 채택하면서 문짝이 얇아졌고, 이는 넓은 실내 공간으로 이어졌다. 대시보드 재질은 기존의 호두나무에서 가죽 재질로 변경되었다. 이전에 있던 파워스티어링 옵션은 삭제되었다. XK140의 엔진을 그대로 썼으며, 이전에 쓰던 C-타입 헤드 이름 대신 그냥 SE라는 트림명을 이용했다.
1958년에는 로드스터를 추가하면서 출력을 250마력으로 올린 S 트림을 추가했다.
1959년에는 3.8L 엔진이 추가되었다. SE 트림은 220마력, S 트림은 265마력이었다.
1960년 10월에 단종되었고, 후속은 E-타입이다. 다만 북미 시장에서는 E-타입을 XKE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면서 XK 이름을 이어가게 되었다. XK150은 총 9,382대가 생산되었다.[7]
E-타입은 1975년에 재규어 XJ-S에게 자리를 넘겨주었고 한동안 XJ-S가 재규어의 2도어 라인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XJS가 너무 노후화되면서 새로운 모델의 필요성을 느끼고 X100을 개발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XJS의 그랜드 투어러 성격을 이어받은 후속 모델을 1996년에 XK8이라는 이름을 붙여 출시했다. 보통 이 XK8을 XK의 1세대로 보고 있다.
엔진은 V8 4.0L AJ26/27형과 4.2L AJ34형이 있었고 변속기는 ZF제 5HP24형 5단 자동변속기가 탑재되었다.
1998년에는 고성능 버전인 XKR을 추가했다. 4.0L AJ26과 4.2L AJ34형에 수퍼차저를 얹은 모델로, 당대에 같은 포드 산하 애스턴 마틴 DB7과 유사점이 많았다.[8] 변속기는 자연흡기 모델에서 쓰는 ZF제 대신 메르세데스-벤츠에서 가져온 W5A580형 5단 자동변속기가 탑재되었다.
2002년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변속기를 ZF 6HP26형 6단 자동으로 교체했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XK의 2세대 모델이 공개되었다. 컨버터블은 2006년 북미 국제 오토쇼에서 공개되었다. 이안 칼럼(Ian Callum)이 디자인을 맡았고, E-타입에서 영감을 얻은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을 적용했다. 차량의 플랫폼은 알류미늄 모노코크 바디를 쓰던 XJ X350과 공유하지만 XJ는 클래식하게 생긴방면 XK는 상당히 세련된 디자인으로 이목을 끌었다. 어찌보면 재규어 디자인의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온게 XF가 아닌 XK일지도... 하지만 출시당시 고가의 헤일로 모델인지라 대중들에게는 변화된 디자인이 안 와닿았을수도 있다. 단지 헤일로 모델의 상징성 때문에 디자인이 다른 재규어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을수도...쿠페형은 뒷유리가 해치게이트에 포함된 3도어 형태였다. 엔진은 V8 3.5L와 4.2L가 있었고, 변속기는 1세대 후기형에서 쓰던 ZF제 6HP26형 6단 자동이 탑재되었다. XKR은 4.2L 엔진에 수퍼차저를 얹었다.
2009년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기존의 4.2L 엔진을 대체하는 5.0L 엔진이 추가되었다.
2011년에 2차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라인업이 확장되었다. 이 때 새로 추가된 XKR-S는 V8 5.0L 슈퍼차저 엔진이 탑재되었고 최고출력은 550마력이었다.
2010년 들어서 재규어에서 새로운 스포츠 모델의 소식이 슬슬 흘러나왔었으나, GT카인 XK의 후속이 아니라 정통 퓨어 스포츠카인 E-타입의 정신적 후속모델이라는 의미의 F-타입[9] 이 출시되고 2013년에 판매를 시작했으며, XK는 2014년에 단종되었다. 이로써 재규어의 GT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탑기어에서는 훨신 저렴한 닛산 GT-R[10] 보다 랩타임도 느리면서 애스턴 마틴보다 편하지도 않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다고 평했다. 특히 제임스 메이는 '''재규어가 "어? 애스턴 마틴이 GT카를 만들잖아? 그럼 우리도 만들어야지"라면서 생각도 안하고 만든 차'''라며 영국차임에도 처참하게 깠다. 데뷔 초기부터 이미 다른 매체들 역시 평가는 비슷한 편이어서, 동급에서 가장 좁은 실내와 불편한 편의장비등을 매우 꾸준히 지적 받았던 바 있다.
몇 년 이내로 부활한다고 한다. F-타입과 플랫폼을 공유하지만, GT답게 크기를 커다랗게 부풀려서, 그간 XK의 아킬레스건에 가까운 단점으로 지적받았던 좁은 실내를 키워 제대로된 거주성과 편의장비를 대거 탑재한 중량급 럭셔리 2+2인승으로 내놓는다고 한다.
...라고 알려졌으나 2021년 2월 재규어 라인업이 전기차로 전면 전환된다고 발표되면서 계획이 사실상 백지화되었다. 스포츠카가 전기차 시대에 출시될 것이냐는 질문에 플랫폼 단일화로 인해 신중히 논의하여야 한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2002년작 007 어나더데이에서 얼굴에 다이아몬드 박힌 문 대령의 심복 자오가 녹색 X100 컨버터블 모델을 타고 다니며 007의 애스턴 마틴 뱅퀴시에 미사일과 미니건을 난사하는 추격전을 벌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00년작 영화 메멘토에서 1999년식 재규어 XK8 컨버터블이 주인공 레너드의 차량으로 나온다. 물론 레너드의 차가 아니라 레너드가 죽인 사람의 차량이지만 기억을 까먹고(...) 자기 차인 양 타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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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A 5에 X100 또는 X150모델을 모티브 삼은 오셀럿 '''F620'''이라는 차량이 등장한다.
'''Jaguar XK'''
1. 개요
영국의 자동차 제조사 재규어에서 1948년부터 1961년까지, 그리고 1996년부터 2014년까지 생산한 2도어 쿠페 및 컨버터블이다. 보통 XK라 하면 1996년에 나온 XK8과 2006년에 나온 X150형을 의미한다.
2. 역사
2.1. 배경
XK의 역사는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후 재규어에서는 민수용 차를 만들기로 한다. 우선 계획한 것은 재규어의 주력이었던 세단 모델이었는데, 전쟁 전에 만든 마크 IV 세단의 뒤를 이을 마크 V 세단을 가장 먼저 선보일 예정이었다. 이 마크 V를 1948년 런던 모터쇼에 선보는 것이 목표였으나 예상보다 개발이 늦어졌다. 재규어의 창업주인 윌리엄 라이언즈 경(Sir William Lyons)은 회사 입장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새 차도 중요하지만 새로 개발한 엔진의 우수성을 먼저 시험해 봐야겠다는 대안을 내놓게 된다. 이 대안은 재규어에서 전쟁 전에 만든 SS 재규어 100이 단종된 1940년 이후 8년만에 2도어 스포츠카가 나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2. XK120 (1948~1954)
이렇게 해서 새로 개발된 2도어 스포츠카는 당시 개발이 지연되고 있던 마크 V 세단의 철제 상자형 프레임 섀시 길이를 줄이고 애시우드로 만든 틀 위에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보디를 씌웠다.[1] 직렬 6기통 3.4L XK엔진[2] 을 얹었고 4단 수동변속기와 맞물려 뒷바퀴를 굴리도록 설계되었다. 그리고 이 차에 탑재된 엔진의 형식명인 XK와 추정 최고속도인 시속 120mph(약 193km/h)을 합친 '''XK120'''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1948년 런던 모터쇼에 출품했다. 미려하면서도 섹시한 스타일링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메이커들이 앞다퉈 벤치마킹할 정도로 당시 스포츠카 시장에서 이름을 날렸다. 이후 이러한 스타일링은 개량형인 XK140과 XK150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 차에 탑재된 직렬 6기통 3.4L XK엔진은 최고출력 162마력을 자랑했다. 당시 XK120보다 몇 배는 비싼 차들과 맞먹는 성능이었다. 서스펜션은 당시 스포츠카들에 흔히 볼 수 있었던 구조로, 전륜은 토션빔으로 좌우 바퀴를 연결한 독립식이었고 후륜은 리프 스프링을 사용한 라이브 액슬 방식이었다.
120이라는 숫자에 관해 일화가 있다. 당시 120mph란 속도는 일반적인 차량으론 도달하기 어려운 꿈의 속도였는데,[3] 언론에서는 이 조그만 회사가 만들어낸 차량이 과연 그 속도에 도달은 커녕 기계적 신뢰성을 유지할 수나 있는지에 대한 의심을 쏟아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언론의 의심에 격분한 윌리엄 라이온즈는 직접 XK120을 끌고 벨기에의 Jabbeke에 위치한 2차로 도로를 폐쇄해, 거기다 기자들을 불러놓고 성능 시연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날 시연 중에 기록한 최고속도는 원래의 목표였던 120mph를 상회하는 '''132mph(약 213km/h)!!'''[4] 그리고 이 날 시연으로 인해, 의심 많던 언론에게 크게 한 방 날려주며 재규어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가성비를 자랑한 XK120의 인기가 많아지자, 1950년부터는 강판 수급이 원활해진 시기에 맞추어 차체를 알루미늄 대신 강판으로 교체함으로써 XK120을 대량 생산 체제로 전환했다. 다만 무게를 고려해 도어는 여전히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출시 초기에는 로드스터만 있었으나, 1951년에는 둥근 지붕을 갖춘 픽스드 헤드 쿠페(fixed head coupé) 모델이, 1953년에는 드롭헤드 쿠페가 추가되었다.
XK120은 모터스포츠에도 활약하면서 재규어의 명성을 높여주었다. 첫 출전은 1949년 8월 30일 잉글랜드의 실버스톤 서킷(Silverstone Circuit)에서 열린 One-Hour Production Car Race에서였다. 거기에서 XK120 초기형 모델이 우승하면서 모터스포츠 데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1950년 1월에는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열린 레이싱에서도 우승했고, 그 해 5월에는 페블 비치 컵에서도 2대가 출전해 각각 1위와 2위를 했다. 특히 1950년에 열린 르망 24시에서 XK120 3대가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는데, 재규어에서는 이 경험을 토대로 XK120의 레이싱 버전인 XK120C, 일명 '''C-타입'''을 만들었다. 그리고 1951년 르망 24시에서 우승을 거머쥐게 되었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 영국 스포츠카의 인기가 급증했고, 나아가 1950년대 영국 자동차 산업에 활기를 띄워 주기도 했다. 또한 C-타입의 성과를 양산차에 반영해 1951년에는 XK120에 SE 트림[5] 을 추가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C-타입과 그 발전형인 D-타입의 성과는 계속 이어져, 르망 24시에서 1951년~1957년까지 통산 5회에 걸친 우승을 하며 성능을 입증할 수 있었다.
D-타입도 XKSS라는 로드카 버전이 있었는데, 1957년에 16대가 제작되었고, 이 중 북미 수출용으로 지정된 9대의 차량이 영국 중부 브라운스 레인에 보관중 화재로 손실되었다. 이후 2016년 LA모터쇼에서 소실된 XKSS를 부활시키겠다고 밝혔고 2017년에 9대가 생산될 예정이다. 참조
XK120은 개량형인 XK140이 후속으로 나오기까지 6년 동안 12,078대[6] 가 생산되었고, 재규어뿐만 아니라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자동차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여담으로, 재규어에서는 XK120의 차체에 2.0L 4기통 엔진을 얹은 XK100이라는 파생 모델을 영국 시장에 판매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재규어의 임원들이 엔진에 만족하지 못했고, 결국 프로젝트가 사장되면서 양산에 이르지는 못했다.
2.3. XK140 (1954~1957)
1954년에 XK120을 개량한 버전인 XK140이 출시되었다. 실내 공간이 넓어졌고 브레이크 성능이 향상되었으며, 랙 앤드 피니언 스티어링을 적용하고 텔레스코픽 쇼크 업소버를 적용했다. 엔진은 기존의 XK엔진을 업그레이드해 최고출력을 190마력으로 향상시켰으며, XK120에 이어 XK140에도 210마력 엔진이 탑재된 C-타입 헤드 옵션을 제공했다.
2.4. XK150 (1957~1961)
1957년에 출시된 XK150은 이전 모델과 달리 드롭헤드 쿠페와 픽스드 헤드 쿠페를 먼저 제공했다. 기존의 2분할 방풍 유리(윈드실드)를 일체형으로 변경했고, 도어 라인을 곡선형 대신 직선형으로 채택하면서 문짝이 얇아졌고, 이는 넓은 실내 공간으로 이어졌다. 대시보드 재질은 기존의 호두나무에서 가죽 재질로 변경되었다. 이전에 있던 파워스티어링 옵션은 삭제되었다. XK140의 엔진을 그대로 썼으며, 이전에 쓰던 C-타입 헤드 이름 대신 그냥 SE라는 트림명을 이용했다.
1958년에는 로드스터를 추가하면서 출력을 250마력으로 올린 S 트림을 추가했다.
1959년에는 3.8L 엔진이 추가되었다. SE 트림은 220마력, S 트림은 265마력이었다.
1960년 10월에 단종되었고, 후속은 E-타입이다. 다만 북미 시장에서는 E-타입을 XKE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면서 XK 이름을 이어가게 되었다. XK150은 총 9,382대가 생산되었다.[7]
2.5. 1세대 (X100, 1996~2006)
E-타입은 1975년에 재규어 XJ-S에게 자리를 넘겨주었고 한동안 XJ-S가 재규어의 2도어 라인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XJS가 너무 노후화되면서 새로운 모델의 필요성을 느끼고 X100을 개발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XJS의 그랜드 투어러 성격을 이어받은 후속 모델을 1996년에 XK8이라는 이름을 붙여 출시했다. 보통 이 XK8을 XK의 1세대로 보고 있다.
엔진은 V8 4.0L AJ26/27형과 4.2L AJ34형이 있었고 변속기는 ZF제 5HP24형 5단 자동변속기가 탑재되었다.
1998년에는 고성능 버전인 XKR을 추가했다. 4.0L AJ26과 4.2L AJ34형에 수퍼차저를 얹은 모델로, 당대에 같은 포드 산하 애스턴 마틴 DB7과 유사점이 많았다.[8] 변속기는 자연흡기 모델에서 쓰는 ZF제 대신 메르세데스-벤츠에서 가져온 W5A580형 5단 자동변속기가 탑재되었다.
2.5.1. 후기형
2002년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변속기를 ZF 6HP26형 6단 자동으로 교체했다.
2.6. 2세대 (X150, 2006~2014)
200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XK의 2세대 모델이 공개되었다. 컨버터블은 2006년 북미 국제 오토쇼에서 공개되었다. 이안 칼럼(Ian Callum)이 디자인을 맡았고, E-타입에서 영감을 얻은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을 적용했다. 차량의 플랫폼은 알류미늄 모노코크 바디를 쓰던 XJ X350과 공유하지만 XJ는 클래식하게 생긴방면 XK는 상당히 세련된 디자인으로 이목을 끌었다. 어찌보면 재규어 디자인의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온게 XF가 아닌 XK일지도... 하지만 출시당시 고가의 헤일로 모델인지라 대중들에게는 변화된 디자인이 안 와닿았을수도 있다. 단지 헤일로 모델의 상징성 때문에 디자인이 다른 재규어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을수도...쿠페형은 뒷유리가 해치게이트에 포함된 3도어 형태였다. 엔진은 V8 3.5L와 4.2L가 있었고, 변속기는 1세대 후기형에서 쓰던 ZF제 6HP26형 6단 자동이 탑재되었다. XKR은 4.2L 엔진에 수퍼차저를 얹었다.
2.6.1. 후기형(2009)
2009년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기존의 4.2L 엔진을 대체하는 5.0L 엔진이 추가되었다.
2.6.2. 후기형(2011)
2011년에 2차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라인업이 확장되었다. 이 때 새로 추가된 XKR-S는 V8 5.0L 슈퍼차저 엔진이 탑재되었고 최고출력은 550마력이었다.
2010년 들어서 재규어에서 새로운 스포츠 모델의 소식이 슬슬 흘러나왔었으나, GT카인 XK의 후속이 아니라 정통 퓨어 스포츠카인 E-타입의 정신적 후속모델이라는 의미의 F-타입[9] 이 출시되고 2013년에 판매를 시작했으며, XK는 2014년에 단종되었다. 이로써 재규어의 GT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탑기어에서는 훨신 저렴한 닛산 GT-R[10] 보다 랩타임도 느리면서 애스턴 마틴보다 편하지도 않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다고 평했다. 특히 제임스 메이는 '''재규어가 "어? 애스턴 마틴이 GT카를 만들잖아? 그럼 우리도 만들어야지"라면서 생각도 안하고 만든 차'''라며 영국차임에도 처참하게 깠다. 데뷔 초기부터 이미 다른 매체들 역시 평가는 비슷한 편이어서, 동급에서 가장 좁은 실내와 불편한 편의장비등을 매우 꾸준히 지적 받았던 바 있다.
2.6.3. RSR XKR GT2
2.7. 3세대(?)
몇 년 이내로 부활한다고 한다. F-타입과 플랫폼을 공유하지만, GT답게 크기를 커다랗게 부풀려서, 그간 XK의 아킬레스건에 가까운 단점으로 지적받았던 좁은 실내를 키워 제대로된 거주성과 편의장비를 대거 탑재한 중량급 럭셔리 2+2인승으로 내놓는다고 한다.
...라고 알려졌으나 2021년 2월 재규어 라인업이 전기차로 전면 전환된다고 발표되면서 계획이 사실상 백지화되었다. 스포츠카가 전기차 시대에 출시될 것이냐는 질문에 플랫폼 단일화로 인해 신중히 논의하여야 한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3. 미디어에서
2002년작 007 어나더데이에서 얼굴에 다이아몬드 박힌 문 대령의 심복 자오가 녹색 X100 컨버터블 모델을 타고 다니며 007의 애스턴 마틴 뱅퀴시에 미사일과 미니건을 난사하는 추격전을 벌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00년작 영화 메멘토에서 1999년식 재규어 XK8 컨버터블이 주인공 레너드의 차량으로 나온다. 물론 레너드의 차가 아니라 레너드가 죽인 사람의 차량이지만 기억을 까먹고(...) 자기 차인 양 타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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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A 5에 X100 또는 X150모델을 모티브 삼은 오셀럿 '''F620'''이라는 차량이 등장한다.
4. 둘러보기
[1] 이 방식은 당시 영국이 전후 복구를 위해 철 배급을 제한했는데, 소량생산 메이커였던 재규어로서는 정상 생산이 어려워서 대안으로 채택된 것이다.[2] 참고로 XK엔진은 이미 1942년에 개발이 시작되어 1945년에 개발이 완료된 엔진이었으나 1940년대 당시 혁신적이었던 DOHC 방식을 대량생산하기에는 기술적인 한계가 있어서 1948년이 되어서야 이 차를 시작으로 양산차에 사용되었다.[3] 당시 기준으로 스포츠카의 기준 중 하나가 100mph(160km/h)를 넘기는 것이었다.[4] XK120이 그 속도를 돌파할 수 있었던 가장 이유는, 공기역학적인 디자인과 고성능 3.4L 6기통 DOHC 엔진 덕이었다. 당시로서는 부가티 베이론 급에 해당하는 괴물같은 슈퍼카나 마찬가지였던 셈.[5] SE 트림은 최고출력을 180마력에 최고속도 220km/h으로 끌어올렸고, C-타입 헤드 옵션을 선택하면 210마력까지 뿜어낼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SE 트림이 M으로, C-타입 헤드가 MC 트림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6]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12,055대로 서술되어 있다.[7] 로드스터 2,265대, 픽스드 헤드 쿠페 4,445대, 드롭헤드 쿠페 2,672대[8] 애초에 플랫폼을 공유한 형제차다.[9] 재규어 XK의 플랫폼을 줄여서 사용한다.[10] 다만 얘는 슈퍼카에다 워낙 가성비가 출중한 녀석인지라... 비교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뉘르부르크링에서 얘네들도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