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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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투지의 아이콘'''
'''8년간 인천 좌측면의 주인이었던 인천의 전설, No.17'''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지도자로, 현역 시절 좌측 윙백을 주로 맡았다. 또한 '''인천 유나이티드의 초대 레전드'''로 임중용, 김이섭과 함께 인정받는 선수.
2. 선수 경력
2.1. 성남 일화 천마
1999년 U-20 대표팀의 일원으로 나이지리아에서 열린 대회에 참여하기도 했던 유망한 선수였고, 홍익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성남 일화 천마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전재호가 합류했을 당시의 성남은 상당한 수준의 강팀이었고, 따라서 데뷔한 시즌에는 거의 기회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꾸준히 노력해 온 전재호는 두 번째 시즌에 주전으로 도약하여 좋은 활약을 펼쳤다. 전재호는 2003년 성남의 리그 우승에도 공헌하였다.
2.2. 인천 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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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에서 곧잘 활약하던 전재호였지만, 새로 창단된 인천이 성남에서 '''무려 여섯 명을 영입'''[1] 하는 와중에 그 역시도 그 일원이 되어 인천에 합류하게 되었다.[2] 인천으로 이적한 이후 같이 온 김우재, 김현수와 함께 곧바로 팀의 주전이 되었다. 당시 쓰리백 전술에서는 좌측 미드필더를 맡아서 활약했고, 시즌 막판에는 포항 스틸러스를 상대로 극적인 결승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창단 첫 해의 활약을 통해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의 부름을 받아 국가대표 유니폼도 입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중도 낙마했다.
성남 출신 인천 창단 멤버 중 김현수, 김우재, 김정재가 한 해만에 인천을 떠났으나, 전재호는 권찬수, 황연석과 함께 팀에 계속 잔류했다. 그리고 2005년에도 변함없이 주전으로 활약하여 팀의 리그 준우승에 공헌했다. 인천에서 전재호는 차츰 임중용과 함께 팀의 중심을 잡는 베테랑 선수로 입지를 굳혔고, 4백에서는 좌측 풀백, 3백에서는 좌측 윙백 내지는 미드필더를 오가면서 활약하였다. 2010년에는 인천의 주장으로 선임되기도 하는 등 팀에서도 좋은 대우를 받았다.
2007년에는 임중용과 에두가 경기 중에 거세게 충돌하다가 임중용이 퇴장, 에두가 경고를 받은 경기가 있었는데,[3] 이 때 전재호는 판정에 큰 불만을 품고 거친 플레이를 보여주다가 이관우에게 거센 파울을 하여 퇴장을 당한 적이 있었다. 나가면서도 분을 삭이지 못한 전재호는 카메라가 있는데서 욕설을 하기도 했다. 9명으로 경기를 치른 인천이지만, 에두의 침 뱉는 장면 리플레이 등을 통해서 경기장 분위기가 달아오르며 경기 자체는 3 : 2로 종료되었다. 전재호는 벌금 처분을 받았는데, 이 사건 때문인지 인천은 여러 의미에서 예의주시 대상이 되었고 그것이 결국 이후 심판에게 항의한 방승환의 1년 출장 정지 징계로 이어지고 말았다.
허정무 부임 이후 주전에서 완전히 밀려난 임중용에 비해 전재호는 주장 완장을 배효성에게 넘기기는 했어도 2011 시즌에도 출장 기회를 계속 받았으나, 팀 사정에 따라 우측으로 옮겨가기도 하고 차츰 장원석에게 밀리기도 하는 등 과거에 비해서는 확실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시즌 종료 후 FA 대상자가 된 전재호는 '''8년'''을 몸 담았던 인천을 떠나 이적을 선택, 인천과 작별한다. 임중용도 2011 시즌 종료 이후 은퇴했고, 그 이전 2010년에 김이섭이 은퇴한데다가 노종건도 팀을 떠났기에 팀을 상징하던 창단 멤버들이 하나 하나 떠나가는 중이었고, 전재호의 이적은 그 종지부를 찍었다.
2.3. 부산 아이파크와 강원 FC
FA 자격을 얻은 전재호는 성남 시절 자신을 지도했던 은사 안익수 감독의 러브콜을 받고 부산으로 이적했다. 그래도 전 해까지 여전히 인천에서 많은 경기를 출장한 베테랑이기에 팬들의 기대를 받았지만, 피로골절이 겹치는 등 불운이 이어져서 전반기 3경기 출장에 그치고 말았다. 이에 스트레스를 받던 전재호는 반 시즌만에 강원으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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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에서는 다시금 과거 자신의 폼을 회복하며 주전 수비수로 경기를 치렀다. 골을 본래 많이 넣는 선수는 아니었으나, 2012 시즌에 멀티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3 시즌에는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어 팀의 중심으로 인정받았다. 강원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운 전재호는 2013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하며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의 후임으로 새 주장이 된 선수는 인천에서도 그의 후임 주장이었던 배효성.
3.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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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후 코치 전환 준비를 한 전재호는 2015년 인천대건고등학교의 코치로 부임하면서 다시 인천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대건고의 감독이 임중용이다보니 많은 팬들은 전재호 선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2017년 임중용이 성인 팀 코치로 승격됨과 동시에 전재호 역시 대건고의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2019년 베트남 비엣텔 FC 코치로 부임했다.
4. 국가대표
상기했듯 1999년 U-20 대표팀의 일원으로 FIFA U-20 월드컵에 참여하며 그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성인 대표로는 2004년 움베르투 코엘류가 그를 이관우와 함께 추가 발탁하면서 데뷔 기회를 잡았으나, 부상으로 낙마했고 이후로는 국가대표와의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5. 플레이 스타일
피지컬 조건이 우월하지는 않았으나, 악착같은 모습과 활동량을 갖춘 선수였고 거기에 돌파 능력과 왼발 킥력도 호평을 받던 선수였다. 전성기에는 확실히 리그 최고 수준의 측면 자원 소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인천의 팀 컬러와 워낙 잘 맞다보니 인천에서 오랫동안 부동의 주전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공격적인 재능이 돋보인 선수였으나, 이에 비해서 수비 능력은 다소 평범한 축이었다. 전재호가 뛰는 기간에 인천이 쓴 전술은 쓰리백이었으므로 윙백 자리에서는 상대적으로 이런 약점이 가려질 수 있었지만, 종종 수비력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는 팬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부족한 수비력을 메우기 위해 지나치게 거친 플레이가 잦았는데, 타 팀 팬들에게는 이런 행동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었다.
[1] 김우재, 김정재, 황연석, 김현수, 권찬수, 그리고 전재호[2] 인천이 성남에서만 많은 선수를 데려온 것은 아니고, 안양 LG 치타스에서 5명,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3명을 영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성남에서 온 선수 중 전재호, 김우재, 김현수, 황연석 네 명은 팀의 주전이었고, 권찬수도 로테이션 이상의 입지를 지닌 선수여서 특히 말이 많이 나왔다. 안양의 5명 중에는 최태욱과 이상헌, 전북이 3명 중에는 김이섭 정도만이 팀 내에서 일정 이상의 입지를 지닌 데에 비하면 성남이 피해를 많이 본 것이 사실이다.[3] 에두가 침을 뱉은 것은 카메라에 확실히 목격되었다. 다만 임중용도 뱉었다는 주장이 있고, 현재 진실은 당사자들만이 알기 때문에 무엇이 사실인지는 정확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