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헨리 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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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Henry "Jim" Webb, Jr.
1946년 2월 9일 출생 ~
1968년 미국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미합중국 해병대 소위로 임관했다. 해군참모총장합참의장을 지내는 마이크 멀린과 해병대사령관을 지내는 마이클 헤이지, NASA 우주비행사 출신으로 NASA 국장에 오르는 찰스 볼든과 동기이다. 임관년도인 1968년은 베트남 전쟁구정 공세 등으로 점입가경으로 치닫던 시기였으니, 당연히 그의 첫 복무지는 베트남.
아나폴리스 졸업 후 미 해병대 초군반 교육을 마치고 제1해병사단 5연대 1대대에서 소대장으로 복무를 시작한 웹은 종횡무진 전장을 누비며 온갖 험한 교전을 벌인 끝에 해군 십자장과 은성훈장, 2개의 동성훈장을 받은 뒤로 전쟁 영웅이 되었지만 상이기장 퍼플 하트를 두 개나 받을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고, 결국 해군장관실에서 행정직으로 근무하다가 대위 계급으로 전역했다.
이후 조지타운 대학교 법대를 나온 뒤 백악관에서 보훈 업무에서 일하며 참전용사들에 대한 복지혜택 증대를 추진했다. 해사에서도 자주 초빙되어 강의를 했다. 다만 워싱터니언 매거진에 기재했던 여성 비하성 칼럼(Women Can't Fight)으로 까이기도 했는데, 이는 훗날 그의 발목을 단단히 잡는 흑역사가 되었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전쟁영웅을 숭상하는 기조는 동일했던지라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도 그는 국방부에서 일할 수 있었다. 1987년에는 해사 출신으로는 최초로 해군장관에 오르는 기록을 썼다. 문민통제가 막강하여 국방부와 3군장관에 웬만하면 군인 출신을 쓰지 않는 미국인지라 사관학교 출신으로 그 자리에 오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이는 지금까지도 굉장히 보기 드문 사례이다. 다만 전임자였던 존 레만이 하이먼 리코버의 강제 전역과 미래 미 해군의 함정 운용 규모를 두고 국방관료들과 벌이던 의견대립이 심해지며 어정쩡한 임기를 남기고 그만두자 그 대타로 투입된 성격이었기 때문에 레이건 행정부가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로 넘어가면서 금방 그만두기는 했다.
이후 199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밥 케리를 지지했지만 아시다시피 이 선거에서는 아칸소 출신의 젊은이가... 그리고 1994년에는 버지니아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찰스 롭을 지지했는데, 이 당시 롭의 경쟁상대인 공화당 후보가 자신의 해사 동기인 올리버 노스[1]여서 말이 좀 있었다. 하지만 2000년에는 공화당의 조지 알렌 후보를 지지하여 당선에 일조했다. 그런데 2006년에는 민주당 소속으로 버지니아에 직접 출마하여 알렌을 버로우 태우고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평소 행적이나 정치적인 행보를 보면 네오콘까진 아니어도 공화당이랑 놀면 놀았지 절대 민주당이랑 어울릴 것 같지는 않은 양반이지만 '''이라크 전쟁을 반대한다'''는 딱 한 가지 이유로 공화당을 쌩까고 민주당에 입당했다. 좋게 말하면 정당 정치에 얽매이지 않는 소신 있는 싸나이, 나쁘게 말하면 회색분자(...)라서 리버럴 성향의 민주당에서 주류로 떠오를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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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고 부시는 가카와 아들 지미와 함께. 지미도 해병대에서 복무했는데, 집안 빽으로 어떻게 학위를 따서 장교로 복무할 수도 있었지만 그냥 이등병으로 입대해서 하사까지 올랐다. 2006년 선거 때는 참전용사들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는 취지에서 아들이 이라크에서 신었던 전투화만 신고 다녔다고.
2008년에는 버락 후세인 오바마가 대선에 출마하면서 러닝메이트로 지명할 것이라는 떡밥이 돌았으나 앞서 언급한 '''Women can't fight''' 칼럼 때문에 끝내 발목을 잡혀서 조 바이든에게 자리를 내줬다. 사실 꼭 저 흑역사가 아니더라도 민주당 내 주류와는 몇 광년 쯤 떨어진 인물인데다 결혼을 여러 번 한 전력도 문제가 되었으니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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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미국 상원 동아태소위원장 자격으로 방한하여 이명박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과 회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버지니아 상원의원 임기가 다 될 무렵 재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뜬금없이 '''201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충격과 공포... 뭐 2012년 오바마의 재선 이래로 힐러리 로댐 클린턴이 워낙 막강하다보니 큰 효과는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민주당 내에서는 일부에게나마 여전히 큰 호응을 얻는 사람이라서 공화당원들은 내심 힐러리에게 고춧가루를 뿌려달라는 기대를 한다나.
  • 하지만 2015년 10월 13일에 벌어진 제1차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에게 밀려 제대로 말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아 밀려나고 말았다. 시청자들이 기억하는 건 시간을 더 달라고 요청하던 모습 뿐이라 그야말로 안습. 결국 반응이 좋지 않자 20일에 민주당 경선에서 하차하고 필요하면 무소속으로 뛸 것임을 선언했다.
2000년작 영화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의 각본가이자 책임 프로듀서로 활동하여 영화 팬들에게도 어느 정도 익숙한 이름이다. 다만 이 영화의 제작 과정에서 각본의 수정을 두고 다른 관계자들과 마찰이 심했다고 전해지며 결국 이것만 만들고 영화 일은 그만뒀다.
결혼을 3번 했고, 2005년에 결혼한 현재 부인은 나이차가 상당한 베트남전때 사이공에서 탈출한 난민 출신 여성.


[1] 이란-콘트라 사건의 중요 인물이었지만, 자신의 그간 국가에의 헌신을 강조하고 사건 전후의 상황에 대해 알리며 읍소한 결과 더러운 반역자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호불호가 갈리는 선으로 크게 바꾸며 유명인사가 되었다. 해병 중령 예편 후 정치활동에 뛰어들기도 했지만 이 선거에서 물을 먹고는 그냥저냥 저술활동이나 폭스 뉴스 같은데서 방송활동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