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콘트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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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콘드라 사건 관련 풍자화. 일종의 언어 유희인데 contra diction을 직역하면 '콘트라 행동'이란 의미이지만, 두 단어를 붙여서 만든 'contradiction'은 '''모순'''이란 뜻이다. 즉 레이건 정부의 콘트라 정책은 말이 안되는 헛짓거리라고 비판한 것.
Iran–Contra affair
ماجرای مک‌فارلین
caso Irán-contras
1. 개요
2. 전개
3. 영향
4. 기타
5. 등장 매체


1. 개요




1986년 로널드 레이건 정권 당시 미국 CIA가 적성국이었던 이란에게 무기를 몰래 수출한 대금으로 니카라과의 우익성향 반군 콘트라를 지원하다 발각되어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

2. 전개


1979년 니카라과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서 사회주의 성향의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이 미국의 지원을 받던 우익독재 소모사 정권을 무너뜨린다. 이후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은 다당제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중도파 정당들과 연립정부를 구성해서 연달아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정권을 이어나간다.[1] 그리고 미국에서 로널드 레이건 정권이 들어서자 CIA는 산디니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소모사 가문의 잔당인 우익반군 콘트라를 지원한다.
이때 중동에서는 이란-이라크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이란의 이슬람 정권은 군사장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미제 무기들의 낮은 가동률로 곤란을 겪고 있었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친미 성향의 팔레비 왕조가 붕괴하고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자 미국 정부가 이란에 무기 수출금지 제재를 가하면서, 이란 입장에선 미제 무기부품 수급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2]
한편 같은 시기에 미국 정부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무장조직 헤즈볼라에 의해 레바논 미 대사관에 인질로 잡혀 있는 민간인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맞물려 미국은 이란과 탄약, 미사일 및 부품 판매와 인질석방을 맞바꾸는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이때 NSC에서 근무하던 미군 장교인 올리버 노스(Oliver North) 미합중국 해병대 보병 중령이 '''"이란에서 받은 돈으로 콘트라 지원하면 어떨까요?"'''라는 안을 냈고 이것이 실행되었다. 당시 볼랜드 법안의 통과로 공식적으로 미국 정부의 지원금을 콘트라로 보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편법을 쓴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불법적으로 돈을 쓰려면 불법적으로 벌어야 하는 거다.
이것이 1986년에 발각되어 의회에서 대통령 탄핵 직전까지 갈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일단 이란에 무기를 넘기는 대가로 대략 3배 정도 바가지를 씌웠는데, 여기까지는 적성국에 대한 수출이었으니 이해가 가는 일이다. 이때 CIA는 육군이나 해군 재고를 감가상각비까지 다 계산한 원가로 인수한 후 이를 국제 시장 가격보다 몇 배나 비싸게 팔았다.
문제는 차액을 CIA가 독식해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돈을 니카라과콘트라 반군에 지원하고, 그 대가로 콘트라 반군이 현지의 코카인 재배 농가들로부터 현물세로 걷은 코카인의 처분까지 위탁해서 처리해 주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코카인이 멕시코를 통해 미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수익은 CIA 중남미 지부들의 운영 예산으로 전용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CIA는 의회가 금지한 적성국에 비밀리에 무기를 팔고, 그 돈으로 역시 의회가 금지한 불법적인 해외공작을 했고, 이 과정에서 중남미 마약을 '''미국에 밀수하는 마약장사'''까지 한 것이다.
21세기에도 미국이 속앓이를 하게 되는 이유가 되며 라틴아메리카 전체를 말 그대로 생지옥으로 만든 마약 관련 범죄들은 다 이 때 급증했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정권은 겉으로는 마약과의 전쟁을 부르짖으면서[3] 실제로는 CIA를 이용해서 중남미 마약을 미국에 밀수하는 개막장 짓거리를 한것이다. 당연히 이 사실이 폭로되면서 레이건 정권과 미국의 도덕성은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사실 CIA가 마약 거래에 직접 개입했는지 여부는 의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CIA와 거래관계에 있는 소규모 민간항공사 및 해운사들이 마약을 운송하다가 적발된 사례가 제법 있다.[4] 때문에 CIA 윗선은 몰라도 지부 단위에서 직접 거래에 개입했을 가능성은 있다. CIA의 중남미 지부 부정부패상은 CIA 내부에서조차 치를 떨 정도였다. 결국 이걸 정리하기 위해 파나마를 공격해 중남미 마약 연결선에 있던 마누엘 노리에가를 정리해야 했다. 개입된 민간항공사와 해운사들은 현대 PMC(사설 군사 경비업체)의 원조 격인, CIA 출신자들이 만든 비밀 공작 전문 용역회사들이었다.
이게 또 웃기는게 CIA가 나서서 이리 마약장사를 하는 와중 미국 국내 정책은 또 60년대 카운터컬쳐 히피 문화에 대한 역풍을 불어 넣기 위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특히 흑인, 히스패닉이 다수였던 미국 내 빈민가들을 뒤엎으며 대량 체포, 구금을 통해 현대의 학교-감옥 파이프라인[5]의 토대가 쌓이는 중이었다. '''말하자면 같은 미국 정부 부서인 CIA와 미국 경찰, FBI, ATF, DEA가 서로 전쟁을 하는 그림이 나와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미국 경찰, FBI, ATF, 법무부, DEA 같은 미국의 준사법기관들은 CIA라고 하면 치를 떨었다고 한다. 마약과의 전쟁으로 엄청나게 고생했을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걸었는데, 심지어 그 과정에서 순직한 경찰들과 요원들까지 있는데''' 정작 CIA는 마약 들여와서 팔았다니 '''화가 안나는게 이상할 지경.''' [6]
올리버 노스는 주동자이면서도 의회에서 사건의 전말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 작전은 부도덕하며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지만, 순전히 조국을 위해 실행했다고 항변한다. 그래서 그에 대한 평은 크게 갈린다. 어쨌든 미국의 명예를 지킨 영웅으로 불리며 큰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물론 국민적 영웅급은 아니지만, 보수층에 한해서는 여전히 인기가 많다. 그가 무죄 판결을 받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콜린 패럴이 노스로 분한 드라마가 제작 중이라고 한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꽤 닮았다. 기사
이 난리에도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 정권은 1990년 선거에서 패할 때까지 잘 먹고 잘 살았다. FSLN은 아직도 니카라과의 양대 정당 중 하나이며 2006년에는 산디니스타 소속으로 출마한 다니엘 오르테가[7]가 대통령에 다시 당선되며 또다시 집권당이 된다. 2010년대 현재 니카라과에서 두 번째 산디니스타 정권은 60%대에 이르는 압도적인 지지속에서 계속 이어지는 중. 물론 니카라과를 포함하여 중앙아메리카 전체를 사실상 파탄국가로 전락시켜 한동안 미국 앞마당으로 만들었으니 콘트라 작전 자체는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당연히 2000년대 이후에 이들 나라의 반미 성향은 더욱 심화되었고 결론적으로 평범했던 니카라과를 반미국가로 만드는데에 기여한 사건이다.[8]

3. 영향


중남미와 남미 다수의 국가들이 좌파 반미 정부로 넘어가게된 큰 계기가 되었다.
민주주의를 전파하는데 큰 의미를 두었던 미국이지만, 냉전기 소련이라는 경쟁자의 영향력 제거라는 작은 목표에만 메달려 우파단체라면 독재는 몰론, 학살이나 마약재배를 해도 지원해줬고, 그런 고통에 신음하던 남미인들은 남미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에는 모조리 좌파 및 반미 정부를 당선시킴으로 써 미국의 외교 정책에 큰 악영향을 끼쳤다.
현대에서 돌아보자면 이룬 건 전혀 없고, 적은 쓸데 없이 많이 만들어낸데다 미국 국내 정치의 민주적 원칙은 심하게 훼손됐으며, 또 사회적으로 저소득층의 마약과 갱단, 조직 범죄 문제 고착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지극히 거대한 해악을 남긴 사건이라 평할 수 있다. 이런 행정부가 국민이고 의회고 권력을 견제해야 할 다른 민주적 제동 장치의 제약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며 대외 정책에서 떳떳하지 못한 짓을 자행하면서 적만 더 만드는, 미국식 대외 개입의 부정적인 사례로서 현대까지 큰 의미가 있다.

4. 기타


이란 콘트라 사건의 핵심인물인 올리버 노스는 이후 무죄 방면되고 폭스 뉴스의 레귤러 보수 정치 평론가로 활약하다가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전미총기협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런데 20대 인턴에게 매달 생활비를 '''몇만달러'''씩 준것이 밝혀지며 사임했다. 본인은 방학동안 기숙사에 나와서 갈 곳 없는 인턴이 불쌍해 지원해줬을 뿐이라고 한다.

5. 등장 매체


톰 클랜시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소설 '긴급명령(Clear and Present Danger)'을 썼다.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라울 메넨데즈는 니카라과에서 태어나서 유년기 시절 이런 광경을 보며 자랐다. 그리고 이는 미국과 자본주의에 대한 증오의 씨앗이 되고… 게임 내에서 올리버 노스도 나오는데 성우는 심지어 올리버 노스 본인.
월드 인 컨플릭트제레미 소이어가 1984년 니카라과에서 비밀 작전에 참여했다고 언급했는데 이 사건으로 짐작된다.
아메리칸 대드에선 올리버 노스가 미처 쓰지 못하고 묻어둔 금을 찾는다는 내용의 에피소드와 함께 해당 사건을 설명하는 뮤직 비디오를 담았다.
아메리칸 메이드가 이 시기의 미국과 CIA의 행각, 그리고 중남미 마약왕들의 웅대한 기상(...)을 블랙코미디스럽게 그리고 있다.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에서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직전 유니버셜 로고 뜰 때 각종 갱단 관련 뉴스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 마약 관련 뉴스 하나가 나온 직후 올리버 노스 중령의 청문회 육성이 잠깐 나온다. 이 사건과 미국의 마약 범죄가 관련이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
멘탈 오메가에서는 이 짓거리를 하다가 현실에서 대표적인 친미국가 브라질과 칠레를 포함, 남미 전체를 소련의 영향력에 놓이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9] 진영 이름은 라틴 연방.

[1] FSLN은 경제위기 때문에 1990년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야당으로 전락했다가, 2006년 선거에서 승리해서 정권을 되찾았고 이후 2011년, 2016년 선거에서도 계속 승리해서 현재도 집권당이다.[2] 당시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한국이 미제무기 부품 중계 무역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았다.[3] 영부인 낸시 레이건이 직접 마약 반대 캠페인 Just Say No을 주도하고 있었다.[4] 이런 회사들이 사실은 CIA 돈으로 만든 일종의 위장계열사라는 주장도 있다.[5] school-to-prison pipeline. 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는 예산이 잘 걷히지 않아 학교가 개판이고, 주변에 갱단 같은 범죄자들이 설치며 마약만 넘치니 애들이 시궁창만 보고 자라다가 알아서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자동으로 들어가는 게 마치 파이프라인에서 액체가 흐르는 것 같다고 하여 나온 시사 용어이다.[6] 나르코스 시리즈들을 보면 미국의 사법기관인 DEA가 얼마나 마약조직 소탕한다고 고생하는 지 다나온다. 이는 다른 준사법기관도 이와 비슷하다.[7] 산디니스타 해방전선 소속 첫 대통령으로, 1984년 대선(이게 1979년 이후 첫 자유선거다.)에서 67%의 득표율을 얻어 첫 당선되어 1990년까지 대통령으로 지냈다. 1990년 대선에서 경제난의 여파로 40%의 득표율을 얻는데 그쳐 낙선되었지만 1996년과 2001년 대선에도 연속 출마했다. 결선에서 2위에 그쳤으며, 이 시기에 사생활에 관련한 문제로 도덕성에 타격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2006년 대선에서 38%의 득표율을 얻어서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2011년 대선에서는 62%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하지만, 그 와중에 편법적으로 헌법을 개정한지라 논란이 거세기도 했다. 2015년 대선에도 또다시 승리해서 현재 세 번째 대통령직을 수행 중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1979년 혁명 이후의 모든 대통령 선거에 나섰고, 그것도 '''2위안에는 꾸준히 든 터줏대감인 셈이다'''. 사실 다니엘 오르테가가 상당 기간 대선에서 계속 2등에 그친 것은 1980년대 후반 미국의 봉쇄정책으로 경제가 파탄난게 매우 컸다. 즉 니카라과 유권자들 사이에선 오르테가가 다시 집권하면 또다시 미국의 경제제제가 들어올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8] 다만 니카라과는 경제적인 이유로 이란이나 북한급으로의 반미를 하진 않는다. 만일 니카라과가 완전 강경 반미국가였다면 니카라과는 중남미에서 가장 안정적인 국가중 하나가 되지 못했을것이다.[9] 이 짓거리가 얼마나 부도덕했는지 바닐라판인 유리의 복수에서 유리군에 맞서싸우던 헐리우드의 대표 마초 보수우파 액션배우들인 새미 스탈리온, 아니 프랑켄퍼르터(심지어 프랑켄퍼르터는 소련 강점기 오스트리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소련 강점기인 이유는 이 세계관의 소련이 나치 포지션이기 때문.), 플린트 웨스트우드가 멘탈 오메가 시간대에서는 라틴 연방에 투항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