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대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제6대 대통령 선거'''
[image][image]
선거 홍보 포스터

1963년 10월 15일
5대 대선

1967년 5월 3일
'''6대 대선'''

1971년 4월 27일
7대 대선
}}}
'''투표율'''
83.6%▼ 1.4%p
'''선거 결과'''
'''후보'''
'''신민당''']]
'''윤보선'''
'''민주공화당''']]
'''박정희'''
'''득표율'''

40.9%
'''51.4%'''
'''득표수'''
4,526,541
'''5,688,666'''
'''당선인'''
'''민주공화당'''
'''박정희'''
1. 개요
2. 배경
3. 결과
3.1. 지역별 결과
4.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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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취임 선서를 하는 박정희 대통령'''
'''당선 확정을 알리는 기사'''

'''대통령 취임 영상'''
1967년 5월 3일에 있었던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이다. 이전 대선에서 맞붙었던 대통령 '''박정희'''와 야당 '''신민당'''의 '''윤보선'''이 다시 한 번 대선에서 맞붙게 되었다. 지역적으로는 경북권 출신(경북 구미) 후보와 충남권 출신(충남 아산) 후보의 맞대결로 현직 '''박정희''' 후보가 당선되었다. 여기에 윤보선 후보 측은 호남 푸대접론을 내세워 호남 지역주의를 자극하기도 했다.

2. 배경



이번 선거는 비교적 커다란 이슈 없이 진행되었는데, 이는 박정희 정권 1기에서 가장 중점사안이던 '''한일기본조약''' 체결과 '''베트남 전쟁''' 파병 문제가 모두 임기 초, 중반기에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박정희 정권 하에서 진행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경제성장을 이룩하였고,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강압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도 아니라서, 박정희에 대한 지지도는 이전보다도 더욱 탄탄해졌다. 여기에 맞상대였던 윤보선이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여준 것도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비교적 싱겁게 박정희 후보의 재선이 확정된다.

3. 결과


'''대한민국 제6대 대통령 선거'''
'''기호'''
'''후보명'''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선여부'''
1
이세진

198,837
1.9%
6
낙선
2
전진한

232,179
2.1%
5
낙선
3
'''윤보선'''

4,526,541
40.9%
2
낙선
4
서민호

유세기간 중 자격 반납
5
김준연

248,369
2.2%
4
낙선
'''6'''
'''박정희'''

'''5,688,666'''
'''51.4%'''
'''1'''
'''당선'''
7
오재영

264,533
2.4%
3
낙선

3.1. 지역별 결과


[image]
[1][2]
'''대한민국 제6대 대통령 선거 지역별 개표 결과'''
지역
'''민주공화당
박정희'''
'''신민당
윤보선'''
전국
'''5,688,666
(51.4%)'''
4,526,541
(40.9%)
서울
595,513
(45.2%)
'''675,716
(51.3%)'''
부산
'''338,135
(64.2%)'''
164,077
(31.2%)
경기
525,676
(41.0%)
'''674,964
(52.6%)'''
강원
'''429,589
(51.3%)'''
349,807
(41.7%)
충남
489,516
(45.4%)
'''505,076
(46.8%)'''
충북
'''269,830
(46.6%)'''
252,469
(43.6%)
전남
652,847
(44.6%)
'''682,622
(46.6%)'''
전북
392,037
(42.3%)
'''451,611
(48.7%)'''
경남
<colbgcolor=#d2811a> '''838,426
(68.6%)'''
281,545
(23.0%)
경북
'''1,083,939
(64.0%)'''
447,082
(26.4%)
제주
'''73,158
(56.5%)'''
41,572
(32.1%)
박정희 후보가 동부 지역인 강원도, 충청북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부산광역시에 더해서 제주도에서 승리하고 윤보선 후보가 서부 지역인 서울특별시, 경기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에서 승리하였다.
박정희전라도, 제주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제5대 대통령 선거보다 높은 득표율을 받았다. 그리하여 충청북도강원도에서 이전과 달리 승리를 거두었고, 충청남도에서는 졌으나 보합을 이루었다. 수도권에서 패배했지만 5대 대선에서 2:1 정도의 참패를 겪은 것과 달리 약 5:4 정도로 근소하게 졌다. 5대 대선 때 박정희를 소극 지지해 줬던 전라북도과 적극 지지해 줬던 전라남도에서는 윤보선 후보 측이 강력하게 내세운 호남 푸대접론의 효과인지 윤보선이 이겼으며, 제주도는 이전보다는 득표율이 떨어졌어도 결과적으로는 박정희가 이겼다. 두 후보가 이긴 지역의 득표율 차이는 대략 5.5:4.5로 한 지역에서 일방적으로 몰표를 준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영남 전체에서는 타 지역보다 압도적인 박정희의 지지세가 나타났다.

4. 영향


워낙 이슈도 없고 결과가 비교적 쉽게 예측되는 선거다보니, 투표에 대한 관심이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당시 역대 대선 투표율 중 가장 낮은 '''83.6%'''를 기록했다.

[1] 현재 행정구역 기준으로, 당시 행정구역 기준이 아니다[2] 지도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 창원시는 윤보선이 아니라 박정희가 이겼는데, 미처 수정을 못하고 저장했다고. (제작자 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