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대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제8대 대통령 선거'''
[image]
선거 공고

1971년 4월 27일
7대 대선

1972년 12월 23일
'''8대 대선'''

1978년 7월 6일
9대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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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율'''
100%[1]▲ 20.1%p
'''선거 결과'''
'''후보'''
'''민주공화당''']]
'''박정희'''
'''득표율'''

'''100%'''
'''득표수'''
'''2,357'''
'''당선인'''
'''민주공화당'''
'''박정희'''
1. 개요
2.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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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취임 선서를 하는 박정희 대통령'''
'''당선 확정을 알리는 기사'''

'''대통령 취임 영상'''
1972년 12월 15일 대의원 선거를 치르고 2,359명의 초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선출했으며, 12월 23일 이 대의원들이 결원 없이 장충체육관에 모여 '''박정희 2,357표'''[2], 무효 2표('''"박정희" 한자를 잘못 쓴 것''')[3]로 박정희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일명 체육관 선거의 시작이다.
재밌는 것은 이 당시 대통령 선거는 재적 대의원의 과반을 득표한 후보가 당선되는 방식이었는데, 이는 보통의 선거처럼 투표수, 그 중에서도 유효표만 세는 게 아니라 무효표와 결석 대의원까지 다 합한 수의 과반을 득표해야 했다.[4]
10월 유신 이후의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는 '''단일 후보'''만 출마해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말 그대로 '''관제 간접선거'''였기 때문에 선거의 의미는 사실상 없었다. 유신 이전 대통령 선거는 원래 국민 직선이었지만 1972년 11월 이른바 '''10월 유신'''으로 불리는 제7차 헌법 개정이 국민투표를 통과하면서 대통령 선거는 간선제로 바뀌었다.
먼저 국민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선출한다. 대의원은 , , , , 을 지역구로 해서 투표로 선출하며, 농촌에서는 소선거구제, 도시에서는 중선거구제를 적용하였다. 문제는 이 때 대의원 후보로 출마한 사람들이 예비군 지휘관, 새마을 부녀회장, 한국반공연맹 지부장, 지역 농협 조합장, 한국노동조합총연맹[5] 계열 노동조합 위원장 등 모두 '''관변성향 후보들'''이었다. 자세한 것은 통일주체국민회의 항목 참조. 대의원의 임기는 6년으로, 장충체육관에 모여서 진행하는 통일주체국민회의 첫 번째 전체 회의에서 단일 후보에 대해 투표하는 방식으로 대통령을 선출한다. 간선투표제를 일컫는 이른바 '''체육관 선거'''의 어원.

2. 결과


'''대한민국 제8대 대통령 선거'''
'''기호'''[6]
'''후보명'''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선여부'''
'''-'''
'''박정희'''

'''2,357'''
'''100%'''
'''1'''
'''당선'''
선거인수
2,359
투표수
2,359
무효표수
2
투표율
100%

[1]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의 간접선거[2]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선거는 후보자의 이름이 적힌 투표 용지에 기표하는 것이 아니라 백지 투표 용지에 후보자의 이름을 쓰는 것이었다. 후보는 한 명밖에 없지만 찬/반 투표가 아니다.[3] 단, 당시 대의원 중 한 명이었던 송동헌은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일부러''' 박정''''의''''로 썼다고 회고했다. 선거 이후 정보 기관의 감시와 주변의 따돌림을 겪으며 살아야 했다고.[4] 원래 간접선거는 무효표수와 기권수도 세는 경우가 많긴 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한 대통령 선거나, 우리나라의 국회의장 선거가 그렇다. [5] 당시에는 관변, 어용 노동조합이었다.[6] 단독 후보라 기호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