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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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쌍영총 기마도의 조우관을 쓴 고구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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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관(鳥羽冠)'''
고구려, 백제, 신라삼국시대 한반도에서 공통적으로 쓰인 관모 형식.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변형모[1]깃털을 꽂아 장식한 관모다. 절풍모의 관모 부분과 조우 부분으로 나뉜다. 대개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이들이 썼는데, 작은 모자같은 것을 머리위에 올리고 양 옆에 깃털을 꽂아 턱아래로 줄을 묶어 썼다고 한다.
초기에는 여러가지 깃털을 사용한 천연 깃털 양식이 쓰인 것으로 보이는데 시대가 흐를 수록 고위 귀족들 사이에 금속제 양식의 조우관이 쓰였다. 이런 금속제 양식은 삼국 중 신라에서 주로 쓰였다.
조우관은 회화로도 모두 그 모습이 남아있는데, 고구려의 쌍영총무영총 고분벽화에서 조우관을 쓰고 말을 달리는 모습이 확인되며, 백제는 양직공도에 조우관을 쓴 백제 사신의 그림이 있으며, 신라는 1971년 중국 섬서성박물관이 발굴한 예빈도 그림에서 조우관을 쓴 신라 사신이 그려져 있다.
삼국에서 공통적으로 쓰인 관모라는 점도 재밌지만, 이 시기 한반도인들이 관모를 깃털로 장식한 이유는 과거 유목민족이 조류숭배를 한 샤머니즘적 요소가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를 깃털로 장식한 것은 동북아시아 북방 민족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모습이라고. 참고로 코에이에서도 여포에게 항상 이 조우관 비스무리 한 것을 씌운다(...)[2]
모자의 형태는 계속 바뀌었고 신라 중대부터는 관복을 중국식으로 바꿨다는 기록도 있지만 그 뒤에도 관모를 새의 깃털로 장식하는 것은 계속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에서 발견된 당나라 황태자 이현(李賢, 654~684)의 무덤 벽화 예빈도에서 신라 사신이 조우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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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중반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에서 조우관을 쓰고 환두대도를 찬 사신들이 발견돼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고구려 사신설로 알려져 있지만 환두대도나 조우관이나 삼국 공통 양식이다보니 신라 사신설도 존재한다.# 고구려 사신설로 본다면 그 시기상 아무래도 연개소문 집권당시 당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보낸 밀사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왠지 삼국시대 배경의 사극에서는 조우관을 쓴 인물들을 보기 힘든데, 실제 큰 새의 깃털을 사용해야 하는 조우관 소품의 제작과 장기적인 관리가 까다로운 점이 가장 큰 이유인듯 하다. 그래서 그냥 상투를 들고 이마에 두건을 두르는 걸로 처리하거나 중국식 관모나 쓰개를 쓰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KBS사극 삼국기에서도 엑스트라들이 잠깐 착용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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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사극 대조영에서 초기에 잠깐 나왔다. 고사계와 요동출신들이 이 조우관을 잠깐 착용했다.
MBC 사극 계백에서 김춘추가 이 조우관을 쓴 모습이 몇차례 나오기는 했다. 또한 초기에는 백제의 관모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재현해서 사용하는 모습이 보여 호평을 받았으나, 중후반대 이후로 자본의 압박인지 중국식 상투쓰개를 사용한다(…) 다행히 제왕의 딸 수백향에서 다시 상당수준으로 고증된 백제 관모와 금동관모가 등장해 중국식 상투쓰개 일색이던 고대사 사극에서 후술할 근초고왕, 대왕의 꿈과 더불어 좋은 선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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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초고왕에 등장한 오라관
대왕의 꿈에 등장한 조우관
근초고왕대왕의 꿈에서는 지위 높은 주,조연들이 하나같이 조우관을 포함한 삼국시대 관모를 쓰고 나오는 개념있는 고증을 선보였다. 중국식 상투쓰개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그간 변형모 자체가 등장조차 하지 않던 사극에 비하면 월등한 고증이라고 볼 수 있다.
[1] 삼국시대의 보편적인 고깔모자.[2] 중국내부에서 그려진 여포그림이 원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