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우즈베키스탄 관계
1. 개요
중국과 우즈베키스탄과의 관계. 소련 해체 이후 독립한 우즈베키스탄은 발전이 정체된 것에 비해 중국의 경제가 90년대 이후 발전을 거듭한 결과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에 의해 경제적 예속이 심화되고 있다.
중국에는 우즈벡인들이 수천여 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 중국내의 우즈베크인들은 주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거주하고 있고 아랍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2. 역사적 관계
2.1. 독립 이전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일대에 위치한 사마르칸드, 부하라 등은 고대부터 소그드인 상인들을 통한 무역과 교류가 활발했다. 중세 초 인도로 떠난 구법승들이 이 지역을 거쳐가면서 지리와 역사 관련한 기록을 남긴 바 있다. 우즈베키스탄 일대가 튀르크화, 이슬람화를 거친 이후에도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했는데 당나라의 안녹산이 소그드-튀르크계였던 점이 널리 알려져있다. 안녹산의 난 이후 소그드인들의 당나라 활동이 제한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우즈베키스탄과 중국과의 교류는 자주 이루어졌는데, 황소의 난 당시 당나라 측에서 사타족들을 동원하여 반란을 진압한 사례, 송나라가 요나라와의 전쟁에서 부족한 기병 전력을 보완하기 위해 이 지역 출신 용병들을 고용하고 중국에 정착시킨 사례 등이 역사 기록에 남아있다.
원나라 시절에는 차가타이 칸국과의 교류가 매우 활발했는데, 명나라 초 회회력은 차가타이 칸국 출신 천문학자 자말룻딘이 가져온 이슬람 천문학 서적 등의 영향을 직접 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원나라, 명나라 시기 사마르칸드와 부하라에서 중국으로 이주한 무슬림들은 간쑤성, 섬서성, 윈난성 일대의 후이족 일부 및 살라르족의 기원이 되었다.
근세 부하라 칸국의 상인들은 청나라와의 차 교역에 적극적이었는데 청나라에서 수입한 차와 대황[1] 을 러시아 제국에 수출하면서 많은 이익을 남겼다. 청나라가 준가르 칸국을 토벌하러 알티샤르 일대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우즈벡인들과 문화-언어적으로 유사한 위구르인들이 청나라의 신민이 되었다.
부하라 칸국의 이웃 국가 중 하나인 코칸드 칸국이 19세기 초반 청나라의 서쪽 변방을 침공하여 악탈하고 만주족과 한족 등을 노예로 끌고 가면서[2] 신장 지역의 행정이 잠시 마비된 적이 있었는데, 결국 청나라 측에서 코칸드 칸국에 보조금을 지불하는 형태로 불평등조약이 체결되었다. 해당 불평등 조약에서 청나라는 코칸드 칸국과의 무역 제재를 중단하고 코칸드 상인들에게 신장에서 세금 없이 무역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이 외에도 카슈가르의 코칸드 칸국 지지자들을 사면하고 코칸드 상인들의 몰수된 토지와 재화를 배상해주었다. 청 입장에서는 코칸드 칸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는데 이는 코칸드 칸국의 국력이 무서웠다기보다는 머나먼 변경으로 병력을 대규모로 동원하는 것보다는 코칸드 칸국 측의 요청을 들어주는 편이 더 비용이 적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코칸드의 칸들은 청나라로 서신을 보낼 때 청나라 황제를 친구(Dost)라고 표현했는데 통역들은 이런 내용을 직역하지는 못했다.
2.2. 소련 해체, 독립 이후
우즈베키스탄은 내륙국으로 주변국과의 교류가 필요하다. 우즈베키스탄 남쪽의 아프가니스탄 상황이 정상이면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우즈벡인들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순조롭게 인도, 파키스탄과의 교류를 늘릴 수 있겠지만, 현재 아프가니스탄 상황 때문에 힘들다.
우즈베키스탄으로도 중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오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우즈베키스탄은 러시아와의 교류가 더 많은 편이지만[3] , 우즈베키스탄 정부 차원에서는 중국과 교류를 늘리려는 상황이다. 양국은 상하이 협력기구의 회원국이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은 중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중국어(표준중국어)도 가르치고 있다. 신용카드 결제 인프라가 빈약한 우즈베키스탄이지만, VISA나 마스터카드[4] 보다 은련카드를 더 잘 받아주기도 한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친중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우즈베크인들은 카자흐인들과 같이 친중적이지는 않은 편이다. 다만 카자흐스탄보다는 민간 사이에서 반중감정이 약한 편인데, 범튀르크주의가 상당히 강한 카자흐스탄과 달리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현재 자국 경제 상황이 별로라서 민족주의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 아니다. 우즈베키스탄 내 반중감정은 범튀르크 민족주의보다는 위구르인에 대한 종교 탄압 관련한 부분이 더 크다.
중국과 국경을 직접 맞댄 나라는 아니라서 교류를 크게 끌어올리기엔 좀 애매한 편. 우즈벡인 개개인의 중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그렇게 좋다고 할 수는 없는 편이다. 신장 지역의 위구르, 그리고 다른 무슬림 소수민족들을 탄압하는 점 역시 반중으로 인한 중국에 대한 불신과 비판도 나타나고 있다.
BBC에서 위구르인 대상 집단 강간 폭로가 나온 후 2주 후에도 같은 내용을 증언하는 인터뷰 기사가 CNN에서 나왔다. 해당 증언은 수용소 내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던 우즈베키스탄 출신 교사로부터 나왔다.
'''열흘간 성고문 뒤 집단강간 중국 경찰 위구르족 여성 집단 강간 후 자랑하고 다녀 집단 강간에 전기 고문까지...''' 해당 기사 영어 원문
3. 문화 교류
우즈베키스탄과 중국은 상술했다시피 관계가 깊어지면서 문화교류도 활발해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아지면서 중국어교육이 일부 실시되고 있다.
4. 관련 문서
[1] 약재의 일종[2] 오늘날 구소련 국가들의 둥간족이 바로 이 때 코칸드 칸국으로 끌려간 한족의 후손들이다.[3] 오늘날 우즈벡인 상당수가 러시아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는 있는 상황이다[4] VISA는 시장 점유율 1위다 보니 그럭저럭 받아주지만, 마스터카드는 통용되는 곳이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