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Home Sweet Home | 홈 스위트 홈
1. 개요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은 19세기 미국의 가곡이다. 이 노래가 워낙 유명하여 '스위트 홈' 이라는 문구 자체가 관용어처럼 쓰이게 되었으며, 블랙 유머에서는 '전혀 즐겁지 않은 상황' 또는 '전혀 편안하지 않은 장소'를 반어법으로 나타낼 때 즐겨 사용한다.
곡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현관 초인종이나 휴대폰 컬러링, 오르골 심지어 자장가로 편곡되기도 하는 만큼 유명하며, 2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전세계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2. 설명
미국의 극작가이자 연극배우였던 존 하워드 페인(1791~1852)이 1823년에 직접 대본을 쓰고 영국 작곡가 헨리 비숍(1786~1855)이 작곡한 오페라 "클라리, 밀라노의 아가씨"(Clari, or the Maid of Milan)에 등장하는 한 곡으로 오페라는 잊혀졌지만 이 곡만은 살아남아서 '홈 스위트 홈'은 미국의 히트송이 되었다.
곡이 쓰여진 지 40년이나 지나 남북전쟁이 터지면서 북군이고 남군이고 가릴것 없이 이 노래를 불렀는데, 전쟁이 끝나서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반영했다고 한다. 링컨 미국 대통령도 이 노래를 좋아해 늘 즐겨 불렀고 백악관에 초청된 가수가 이 노래를 불렀으며, 심지어는 백악관에 한동안 Home Sweet Home을 자수를 놓아서 장식할 정도였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김재인이 번역했는데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제목도 그가 지은 것이라고 한다. 한국어 가사는 아래와 같다.
다카하타 이사오의 극장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에서 쓰이기도 했다.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집 내 집뿐이리
고요한 밤 달빛도 창 앞에 흐르면
내 푸른 꿈길도 내 잊지 못하리
저 맑은 바람아 가을이 어디뇨
벌레 우는 곳에 아기별 눈 뜨네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집 내 집뿐이리
정작 작사자인 하워드 페인은 살면서 단 한 번도 가정을 가지지 못한 채 방랑하며 살았다.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851년 3월3일 그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 여기에는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가정의 기쁨을 자랑스럽게 노래한 나 자신은 아직껏 내 집이라는 맛을 모르고 지냈으며 앞으로도 맛보지 못하겠지..." 라는 글이 비통하게 적혀있었다.
그는 조국 미국을 떠나 유럽과 아프리카를 골고루 방황하며 살았고 이 곡을 작사할때는 프랑스 파리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1842년 튀니지 영사로 부임했고, 그 곳에서 10년동안 튀니지 영사로 살다 1852년 튀니지 튀니스 시에서 만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그의 유명세 덕분에 1842년 튀니지 영사로 임명되었고, 덕분에 쪼들리며 살지는 않았던 게 그에게는 위안이었다. 이상하게도, 그가 튀니지 길거리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고 여전히 인터넷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90년대 초에 나온 이외수가 쓴 책자에서도 이렇게 나와있던 걸 보면 오래전부터 이렇게 알려져 있었다.
죽을 당시, 그는 후손이 없었지만 이런 말을 남겼다.
그리고 31년이 지난 1883년 조국인 미국 워싱턴 세인트 조지 교회 공동묘지에 안장됨으로써 그제서야 편히 쉴 곳을 얻게 되었다. 그래도 이때 페인의 탄생 92주년에 맞춰 페인의 안장식을 열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은 물론 당시 미국의 대통령인 체스터 A. 아서까지 참석해 그를 추모했다고 한다.“내게 돌아갈 가정은 없지만 고향 공동묘지에라도 묻어주시오."
사실 알려지지 않은 점이 그가 단순히 유럽을 떠돌며 이렇게 살았던 이유가 있다. 페인은 1830년대 미국으로 와서 당시 백인으로 무척 드물게 미국 원주민 체로키인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운동을 벌인 극소수 백인이었다. 원주민 차별과 탄압으로 수만여명이 비참하게 죽어갔고 분노한 페인은 원주민 탄압을 주도하던 앤드루 잭슨 대통령에 대해 미국 의회에 로비하면서 미국 연방 대법원을 무시한 독재자라고 탄핵까지 주장했으나 받아들이지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페인은 조국에 대한 실망을 느끼고 미국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던 거였다. 그래도 워낙에 이 곡이 유명해져서 튀니지 영사가 될 수 있었으나, 죽을 때까지 조국에 돌아가지 않았다. 미국의 체로키인들은 이런 인연으로 그를 존경하여, 작은 추모비를 손수 세워주며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작곡자인 헨리 비숍은 조국 영국에서 기사 작위도 받고 옥스포드 대학 교수가 되면서 부와 영예를 누리고 평온하게 살아갔다.
1992년~1998년 사이 자일대우상용차(대우자동차) BF105, BS105, BS106, BM090, BH115H, BH116과 1996년식 이후의 기아 콤비, 기아 코스모스, AM928(하차벨 달린 모델 한정), AM937/E/L(시제차를 제외한 차체가 높은 모델 한정.) 차량의 일부에서 하차벨 소리가 이 멜로디 앞 부분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1] 또한 화물차 후진음으로도 쓰인다. 삼성지게차(지금의 클라크) 후진음으로도 쓰였다.
1996년~1997년 사이에 LG전자에서 생산한 크린캡[2] 에어컨(스텐드형) 모델 한정으로 캡이 열릴 때와 캡이 닫힐 때 이 멜로디 소리가 나온 적이 있었다. 또 롯데리아 알바나 고객이라면 주문완료음으로 익숙하다.
피아노 학원에 다닌 적 있는 사람들이라면 교재로 쓰이는 피아노 소곡집의 첫 곡으로 알게 된 경우가 많을 것이다.
2004년 8월 26일, 해피투게더 쟁반노래방 146회 도전곡으로 등장했다. 도전자는 주현, 수애, 유진, 오주은. 여기서는 1,2절을 부른 후, 후렴을 부르는 방식으로 편집했다.
KBS 주말드라마 내 딸 서영이의 39화 엔딩과 49화(최종화) 엔딩에서는 기존 엔딩곡이 아닌 이 노래의 독일어 버전이 사용되었다.
'''트라우마 음악'''이기도 한데, 공익광고협의회의 공익광고 중 매우 섬뜩한 편인 '헌혈'편에서 이 음악이 배경에 깔렸기 때문이다.[3]
일본 철도 JR 큐슈의 이시우치댐역의 접근 멜로디에 이 곡이 쓰였는데 듣기 매우 섬뜩하다고 한다(...). 심지어 밤에도 이 진입음이 울리고 인근 주택가까지 들린다고 한다(...) 하도 민원이 많아서 결국 2018년 7월부로 열차접근 멜로디가 평범한 멜로디로 변경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시우치댐역 항목 참조.
원주혁신도시 인근에 있는 병원의 환자 배선카 후진음으로 이 멜로디가 쓰인다[4]
와플기계의 종료알림음이기도 하다.
인천공항 내에 있는 순환식 전동카트(...)의 주행 경고음으로 쓰인다.[5]
윤석민이 넥센 히어로즈에 있었을때 쓰던 응원가의 원곡이다.
3. 이름이 쓰인 작품
3.1. MBC의 수목 드라마
3.2. 게임
3.3. 머틀리 크루의 곡
3.4. neko hacker의 곡
3.5. 다음 만화속세상의 웹툰
3.6. 네이버의 웹툰
[1] 대우버스는 1998년 4월 로얄시티가 나오자 마자 기존의 삐~ 소리로 바뀌었고 기아자동차 버스는 1999년 AM937 단종 이후 코스모스에서 2002년 단종 직전까지 쓰였다. 또한 몇몇 시내버스 업체는 대차 후 릴레이 부저가 고장 날 때 예비 부품으로 즐거운 나의 집 릴레이 부저를 두었다가 로얄시티에 교환해서 쓰기도 했었다.[2] 1994년에 삼성전자에서 생산한 Auto Shutter 스텐드 에어컨 모델과 비슷했다. 가동할 때는 셔터가 내려가고 가동을 멈출 때는 셔터가 올라갔던 모델.[3] 마지막에는 공익광고협의회 특유의 오케스트라 징글을 합성하며 마무리된다.[4] 배선카 환자 배식 시 주행 방향이 후진이기 때문(배선카 조종자가 뒤에서 밀면서 이동한다.)[5] 속도감응식인지 사용자 조절식인지는 몰라도 멜로디가 속도에 따라 빨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