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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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에 위치한 고등학교.
창신대학교와 2019년 까지는 같은 재단이었으나 창신대학교가 부영으로 인수되면서 계열분리 되었으며 창신대학교가 현재의 구암동 캠퍼스로 확장하기 전까지는 구 창신전문대학 캠퍼스 안에 창신중, 창신고가 함께 입주한 모양새였다.
2. 역사
1908년 개교하여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창원 중등교육기관 중 '''가장 오래 된''' 전통의 학교이다. 또한 1895년에 개교한 부산의 동래여자고등학교(일신여학교)와 설립 주체(호주 선교회)가 같은 학교로 1940년 까지는 같은 재단의 형제 학교였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부산의 형제학교였던 일신여학교(동래여중고), 마산노동야학(마산공고), 의신학교(의신여중), 호신학교와 함께 폐교의 아픔을 겪은 학교이기도 하다. 그나마 일신여학교, 노동야학과 의신학교, 창신학교는 살아나기라도 했는데 호신학교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안습.
해방 후에는 실업계로 전환했다가, 연합고사가 시행되며 다시 인문계로 돌아온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2] 이 때문에 연배 지긋한 어르신들은 '창신공고'라고 기억하는 경우도 많다.
2.1. 연혁
3. 상징
3.1. 교조,교화,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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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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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도전 골든벨'''창신고 편(재도전때)에도 문제로 나온 유명한 시 가고파를 지은 이은상이 작사했다.
4. 출신 인물
5. 운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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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에서 야구가 시작된 곳이지만 현재는 교내 야구가 허락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정작 동문인 김판곤 전 홍콩 대표팀 감독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되어 한국축구 개혁을 진행중인 건 아이러니(...).
현재는 야구부가 없지만, 한국야구사에서 큰 족적을 남겼으니 바로 경남지역 최초의 야구부를 보유했던 학교로, 1914년 창신학교 시절 야구부를 처음 도입했다. 이는 기록으로 발견되는 경상남도 최초의 야구팀이다. 다만 현재는 야구부가 존재하지 않는데 언제 해체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창신고 이후에 창단된 마산고보(용마고), 마산중학(마산고)이 현재도 경남지역 야구의 주요 팜임을 생각해보면 특이한 대목.
야구부 외에도 축구부도 있었으나 폐부되었다.
6. 여담
- 마창 학군 분리 전에는 연합에서도 상당히 학력이 강세인 곳이었다. 쉬는 시간에 코피를 흘려가며 공부하는 수재들이 있었을 정도. 또한 구 창원시 지역의 웅남동, 양곡동 거주 학생들이 많이 진학하는 학교이기도 했다. 시내버스를 타고길게 잡아도 30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유일한 인문계 고등학교였기 때문.[7] 특이하게 통합 전 진해시의 학생들도 진학하던 마산시 유일 고등학교이기도 했다.
- 1980년대 까지만 해도 부산에 같은 재단의 형제학교로 금성고등학교, 금성중학교, 건국고등학교, 건국중학교가 있었으나 1980년대 이후로 이들 학교들은 모두 계열분리 되어서 창신고등학교나 창신중학교와는 달리 기독교 종교색이 아예 사라졌다.
- 봉암동 캠퍼스쪽 정문으로 고등학생이 등교를 할 경우 경비원이 진입을 막는다. 캠퍼스 정문 기준 좌측의 길을 따라 가면 있는 고등학교용 정문을 통해 등교해야 한다.
- 2016학년도부터 교복이 바뀌었다. 회색~베이지색 마이에 줄무늬 달린 넥타이며 기존의 검정색에 칙칙한 색의 점선이 들어간 교복과는 완전 딴판이다. 그러나 신입생인 1학년에게만 적용되고 2, 3학년은 졸업할 때까지 기존의 교복을 착용해야한다. 안습. 추가:하복은 상의 검정 하의 회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동복 블레이저가 말이 많은데 교복이다보니 질이 안좋아서 보푸라기가 일어난다는 말도 있다.
[1] 사무직원을 포함한 인원이다.[2] 아마도 재단에서 부산 금성고등학교가 계열분리된 것이 원인으로 추정된다.[3] 이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는데, 교사들이 학생들을 참배에 보내지 않자 순사들이 학교로 찾아가 교사들을 폭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목격한 학생들이 분노하여 그 자리에서 순사들을 폭행하였다. [4] 중학교와 체육관 사이에 있는 교회. 체육관보단 여기서 설명회를 하는일이 잦다.[5] 창신중학교도 같은 교가이다.[6] 1학년을 마치고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로 전학.[7] 양곡 기준으로 창신 외의 다른 남학교는... 참으로 애매하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이 그 당시에는 창원남고밖에 없었다. 물론 현재는 학군도 분리되어 있고, 경일고와 경일여고 문성고가 연합으로 들어오며 여러 대안도 있게 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