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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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명'''
동래여자고등학교
'''개교'''
1895년
'''유형'''
일반계 고등학교
'''성별'''
여자
'''운영형태'''
사립
'''학교법인'''
동래학원
'''소재지'''
부산광역시 금정구 체육공원로 20 (구서동)
홈페이지
1. 개요
2. 역사
2.1. 초량동 부산진일신여학교
2.2. 복천동 구 교사
3. 상징
4. 특징
5. 학교 시설
5.1. 본관
5.2. 본관 외 시설
6. 학교 생활
6.1. 주요 행사
6.2. 동아리
7. 운동부
8. 출신 인물
9.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지정 및 지정취소 논란
10. 여담
11.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1. 개요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에 위치한 여자 일반계 고등학교로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사립학교라고 할 수 있으며 부산 지역의 근현대사를 관통했던 학교이다.
금정구청에서 브니엘고등학교 방향으로 가면 나오는 태평양아파트 근처에 있다.

2. 역사


그 시초는 1895년[1]개신교 선교단체인 호주장로교 선교회[2]가 초량동에서 설립한 '''부산 최초'''의 사립학교이자 미션스쿨인 일신여학교[3]이며 한강 이남 최초(!)의 사립 여성 중등교육기관이다.
1919년 만세운동에 참가한 학생들과 교사 일부가 체포되는 일도 있었으며 부산·경남지역 3·1 운동의 효시가 되었다. 1925년에 동래구 복천동으로 이전하였으나 1940년에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일제에 의하여 폐교되었다. 일신여학교가 폐교되었을 때 지금의 마산창신중고등학교 재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경남노회에서 이 학교를 인수하기를 희망했으나[4], 호주선교회는 개신교 선교라는 건학이념은 포기하더라도 신사참배를 주도한 개신교 장로교 세력들에게 넘길바에는 학교를 더 잘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당시 부산 최대 재력가이자 애국유지 중에 하나인 오태환에게 학교를 넘기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약간(?)의 비화가 있는데, 대한예수교장로회 경남노회는 일신여학교 인수를 실패한 대신 일신여학교의 형제학교인 마산의 창신학교를 호주선교회로부터 받게 되었다. 이후에 경남노회 기독교교육학원 산하로 일신여학교의 방계 후신 학교라고 할 수 있는 금성중고등학교와 건국중고등학교라는 개신교 미션스쿨을 만들었지만 부채로 인하여 학교가 파산(...)하면서 두 학교도 일신여학교처럼 개신교와는 전혀 관련없는 재단으로 넘어가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창신학교의 후신인 창신중고등학교도 다른 재단으로 넘어갔다가 어찌어찌하여 경남노회가 다시 되찾아오는데 성공하면서, 일신여학교의 건학이념이 현재까지 계승되고 있는 학교는 마산 창신중고등학교뿐이다.
1940년에 오태환이 설립한 구산학원(이후 동래학원으로 개명) 재단에서 동래고등여학교라는 이름으로 재개교 하였다. 1951년에 학제 변경으로 6년제 동래고등여학교에서 동래여자고등학교와 동래여자중학교로 분리 되었으며 1987년에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2009년에 부산의 일반계 고등학교 중에서 유일하게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지정되면서 2010학년도부터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운영되었고, 그렇게 부산의 유일한 여자 자사고로 오래오래 이어갈 줄 알았으나...2013년에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인가를 자진하여 반납하면서 2014년에 다시 일반계 고등학교로 환원되었다.

2.1. 초량동 부산진일신여학교


'''부울경 지역 대다수의 장로교 미션스쿨의 뿌리가 된 학교'''

사진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1동 768-1번지.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시초가 되는 부산진일신여학교가 처음 설립된 곳이다. 1909년 8월 9일에는 3년제 고등과를 설립하였고 병설하였고 1919년 3월 11일에 부산에서 제일 먼저 3.1운동을 일으킨 곳이며 고등과는 1925년 6월 10일에 동래구로 이전하였고, 보통과는 이후에도 좌천동에 남아 운영되었으나 신사참배에 반대하다가 고등과 보다 먼저인 1939년 7월 31일에 일제에 의해 폐쇄되어서 건물들만 남게 되었다. 1946년에는 일신여학교의 방계후신이었던 금성중고등학교가 대한예수교장로회 경남노회에 의하여 여기서 처음 설립되었으며, 고신대학교[5]의 전신인 고려신학교도 1946년에 이곳에서 설립되었으며 한때 부산장신대학교의 모체가 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부산신학교가 1965년 부터 2000년 까지 있었던 적도 있었다. 현재는 부산광역시 지정문화재 제 55호로 등록되어 있으며, 부산장로회 신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한마디로 부산지역의 수많은 장로교 미션스쿨의 뿌리가 된 학교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초량동 부산진일신여학교의 건물은 사진에 있는 보존된 건물 1채 외에도 더 있었다고 한다. 그 건물은 1987년에 복천동의 동래여자중고등학교 구 건물들(동래일신여학교 건물들)이 모두 철거된 이후에도 한동안 금성중학교 건물로 남아있었다. # 1989년 기준으로 80년 정도 지난 오래된 목조건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보존 상태도 양호한 편이었으나, 1989년 10월 16일에 현재의 금성중학교 콘크리트 건물을 신축하기 위해 철거해 버렸다(...) 당시의 근대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 동래일신여학교나 부산진일신여학교나 지금까지도 완전하게 잘 보존되었으면 귀중한 근대 문화유산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나마 부산진일신여학교의 일부라도 남은것이 천만 다행.

2.2. 복천동 구 교사


복천동 시절 초기의 일신여학교 모습 철거 직전의 사진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500-1. 일신여학교 고등과가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1925년 6월 10일에 조성되어 1987년 1월 19일까지 62년간 사용하였는데, 1950년 6.25 전쟁때 징발되어 1950년 8월 15일 부터 1951년 9월까지 1년간 육군종합학교로 쓰이기도 했고#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도 이곳에서 임관하였다. 지금은 해체된 306 보충대의 시초인 제2보충대 5중대 또한 1952년 2월에 여기서 처음으로 창설되었다.
1987년에 동래여고가 구서동으로 이전되면서 당시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그냥 철거되고 우성베스토피아 아파트 용지로 써먹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곳이 육군종합학교보충대로 쓰였다는 사실조차도 남기지 못하고 잊혀지고 말았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매우 역사적 가치가 높았던 곳이기에 철거되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매우 귀중한 근대 문화유산이 되었을 것이다. 철거 직전의 모습을 보면 62년된 건물 임에도 불구하고 보존상태가 상당히 좋다보니 철거된 사실이 너무나도 아쉽다. 다만 일신관이라고 하여 이 건물의 외형을 본따서 만든 건물이 현재의 교정 내에 있다. [6]

3. 상징



3.1. 교표


방패 모양에 ㄷㅗㅇ고 라고 적혀있으며, 동래학원 계열 학교들의 공통적인 교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3.2. 교훈


  • 겨레의 넋은 국어에 있다.
  • 사람의 값은 지식에 있다.
  • 나라의 힘은 통일에 있다.

3.3. 교목


  • 향나무

3.4. 교화


  • 철쭉

4. 특징


한때는 부산여고, 경남여고와 더불어 '''부산의 3대 여고'''로 불리었다. 1974년 고교 평준화 이전에도 부산시내 사립학교 중에서는 명문으로 평가를 받던 몇 안되는 곳이었다. 과거 3대 여고로 불리우던 학교답게 평준화 이전에는 집안이 넉넉하고 공부 잘 하는 여학생들이 다니는 사립학교라는 인식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국민의 생활수준이 많이 낮았고 남존여비 사상이 만연했기 때문에 많은 여학생들이 여자상업고등학교나 야간제 여고로 진학하는 데에도 감지덕지 해야 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부산은 세계 최대 신발생산 도시이자, 대구와 함께 국내 최대 섬유산업 도시로 노동집약적인 산업들이 정말 잘 발달하였다. 이들 산업체들은 저렴한 노동력을 쓰기 위해서 중고등학생 연령대의 근로청소년들을 주로 고용하였기 때문에 부산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근로청소년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특히 당시 금정구에는 태광산업, 태창기업, 현대모직을 위시한 섬유산업이 잘 발달해서 여공들이 많았던 덕분에 부산의 어지간한 사립 고등학교들은 2부 야간학급으로도 쏠쏠하게 재미를 봤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동래여자고등학교는 명문이미지를 철저히 유지하기 위해서 이런 유혹을 뿌리치고 2부 야간학급을 아예 운영하지 않았을 정도였는데, 이러한 선택은 상당히 현명한 선택이었다. 학교를 금정구로 이전하자마자 근처에 있던 태광산업의 산업체 부설학교인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의 개교 및 생활수준의 급격한 향상으로 근로청소년들이 급감하여, 대다수의 2부 야간 학급들이 사실상 문제아 수용소로 추락해버린 상황이었다. 동래여자고등학교가 2부 야간 학급을 운영했었더라면 학교 이미지를 엄청 깎아 먹어서 큰 손해가 되었을 것이 거의 확실했기 때문이다. 정말 가까이에 있는 모 사립 여자고등학교가 본래는 연산동에 있었던 근로청소년들을 위한 2부 야간제 전용학교에서 출발해서 1990년대 후반 부산에서 마지막까지 2부 야간학급이 운영되던 것과 대조되기도 한다.
2005년 6월 26일 KBS1 도전 골든벨에 출연했다.

5. 학교 시설


  • 이 학교의 시설은 1987년 완공 당시에 당대 최고의 시설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한동안 경부고속도로 구서IC 인근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2011년에 부산과학고등학교가 금정구로 이전하기 전까지만 해도 금정구 관내 고등학교들 모두 통틀어서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던 고등학교였다.
이 학교의 시설을 설계한 사람은 다름아닌 부산의 대표 건축가 이용흠으로, 벡스코와 APEC 누리마루 하우스, 부산시청, 부산시립미술관, KNN 사옥, 부산은행 본점 신사옥 등등 부산의 수많은 랜드마크 건축물을 만들었다. 동래여고 주변에 있는 금정구청이나 금정문화회관도 이 사람의 작품이며 동래여고는 이용흠의 초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5.1. 본관


  • 전체적으로는 가운데가 비어 있는 오각형에 한쪽 변에는 긴 직사각형 하나[7]가 붙어있고, 다른 한 변에는 작은 정사각형 하나가 튀어나온 것처럼 생겼다.(...) 그래서 교무실 한쪽 출구에서 출발해 계속 걸어가면 교무실 반대편 입구로 들어오는 게 가능하다. 평범한 학교에선 보기 힘든 구조라 신입생 들이 먼저 하는 말이 학교가 왜 이 모양으로 생겨먹었냐, 어지럽다(...)하는 불평이다. 그래도 당시에는 일반적인 직사각형 학교 시설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평가를 받았지만, 워낙 이질적인 구조였던 것인지 다른 학교까지 그 디자인의 영향이 퍼지지는 못했다.

  • 동래여중도 마찬가지이지만, 학교가 오르막 경사에 걸쳐 위치해있어서 1층의 정의가 사람마다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운동장 쪽 정문[8]이 있는 층을 1층이라고 한다.
  • 지하 1층에는 급식실, 매점, 정문 쪽 출구가 있다.
  • 1층에는 행정실, 교장실, 회의실, 전산실, 수위실, 남녀 교직원 화장실, 도서실, 정보실, 1학년 1~2반, 보건실, 우창회관 쪽 출구, 체육교사실, 인쇄실이 위치해 있다. 정문으로 들어오면 트로피들이 전시되어 있고, 부산은행 ATM기가 있다. 화분에 가려져서 잘 보이진 않는다.
  • 2층에는 교무실, 방송실, 남녀 교직원 화장실, 시청각실, 음악실, 미술실, 1학년 3~4반, 1학년 정독실, 3학년 6~9반, 3학년 담임 교무실, 운동장 쪽 출구가 있다.
  • 3층에는 3학년 1~5반, 진로학습실, 영어학습실 1~3, 1학년 5~7반이 있다.
  • 4층에는 1학년 8~9반, 2학년 6~9반, 2학년 정독실, 과학실이 있다. 엘리베이터는 4층까지만 간다. 다만 남쪽 건물 쪽은(1학년 8~9반 위치)은 과거 입학생 수가 급증한 적이 있어 그때 새로 지은 것으로, 천장 높이가 낮고 바닥재나 칠판 등 시설도 아래층과 많이 다르다. 그쪽을 새로 지을 때 화장실을 새로 짓지 않아서 1학년 8, 9반은 2학년 이과 반 학생들과 함께 화장실을 써야 한다.
  • 5층에는 2학년 1~5반이 있다. 1반 옆 옥상에는 밀대걸레 걸어두는 곳이 있다.
  • 6층(...)에는[9] 모둠학습실과 수학 교실들이 있다. 남쪽 4층을 새로 지을 때 함께 지었다. 예전에는 이 층에도 교실이 있었다고...

5.2. 본관 외 시설


  • 운동장: 쓰레기 분리수거장과 수돗가가 있다.
  • 다목적 체육관 : 건물 이름은 구산관이며, 체육관 이름은 철쭉홀이다. 1층과 2층에는 동래초등학교 부속유치원이 자리하고 있다. 3층이 체육관이며, 4층에는 무용실과 실용음악실, 방송실이 있다.
  • 기숙사(옥샘학사): 금정구 내에서는 4번째로 지어졌다고 한다. 자사고 시절인 2011년에 지어둔 건물이지만 자사고 폐지 이후에도 거주지가 먼 학생 위주로 신청을 받고 있다. 거주지가 멀지 않더라도 자리가 많이 남으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다. 100명 정원으로 한 방을 4명이 사용한다. 한 학년에 15명 내외로 사용하고있어 자리가 부족해 못 신청하는 일은 없다.
  • 우창회관 : 강당...보다는 공연장과 유사한 시설. 부산예고 명의로 되어 있지만 동래학원 내 모든 학교가 사용한다. 다만 동래여고는 철쭉홀을 더 자주 쓰는 관계로 잘 사용하지 않는다.
  • 벽연재(예절관) : 동래여중을 비롯한 주변 학교들도 예절교육용으로 사용한다. 여고의 경우는 1학년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한 반씩 교육을 받는다. 학교 점심시간에는 경치 구경(?) 및 휴식삼아 올라오는 학생들이나 교사들이 꽤 있다.
  • 학교 건물 설계 초기에 만들어진 목업에는 일신관 뒤편에 원형 수영장이 있었으나 실제로 학교 건물이 만들어 질 때에는 초기 설계에 있었던 수영장이 빠졌다. 몇년 후 그 자리에는 벽연재가 지어졌다.
  • 상가: 4학교 학생들뿐만 아니라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갈 수 있도록 한 구조이다. 얼핏 보면 평범한 학교 앞 상가 같지만 동래여중 급식실과 연결되어 있다. 작은 슈퍼, 문제집 위주를 파는 서점[10], 문구점, 분식점, 악기 조율하는 곳, 악보 파는 서점, 카페가 있다.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상가 출입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게 하는 등 학교 측에서도 어느정도 관리를 하는 듯하다. 저녁 시간에는 상가 복도 창문 사이로 배달음식을 주고받는 장면(...)이 아주 가끔 연출된다.

6. 학교 생활


  • 등교 시간: 7시 50분까지다. 선도부가 없는 대신 생활안전부 부장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 몇 분이 서 계신다. 비 오는 날이라고 방심하지 말자. 급식실로 들어가는 출구 앞에 계시니까... 운 없게도 지각한 학생 중 일부는 동래초등학교 교문까지 돌아가서 몰래 등교하는 경우도 있다. 동래초등학교 단속의 경우 담당 선생님께서 운동장 조회대에서 기숙사 옆의 동래초 교문과 연결된 길을 살펴보시며 조용히 부르신다. 물론 항상은 아니고, 단속이 심할 때 자주 그런다. 누가 서느냐에 대한 기준은 명확하지 않으며, 가끔은 출근하시는 담임선생님과 마주칠 때도 있으니 도전해볼 생각이 있다면 조심하는 게 좋다(...).
1교시
08:30~09:20
2교시
09:30~10:20
3교시
10:30~11:20
4교시
11:30~12:20
월요일 1교시는 자율활동 시간이다.
  • 점심시간: 12:20~13:10. 3학년이 먼저 급식을 먹고, 그다음 2학년, 1학년 순서이다. 1학년들은 위에서 줄지어 내려오는 2학년이 없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운이 나쁘면 12시 50분까지 줄 선채로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수능이 끝나면 3학년은 급식을 먹지 않고 하교하거나 아예 학교에 없는 일이 더 많으므로, 타 학년 학생들은 급식 먹으러 갈 수 있는 시간이 빨라진다.
  • 청소시간: 13:10~13:25. 방송실에서 선곡하거나 가끔 신청을 받아 노래를 틀어준다. 한 달에 한 번은 뮤직비디오를 틀어준다.
5교시
13:30~14:20
6교시
14:30~15:20
7교시
15:30~16:20
8교시
16:40~17:40
금요일 5교시는 정규 동아리 시간이다. 그래도 3학년은 거의 자습한다.
화요일 6교시는 자율활동 시간이다. 부담임 교사 담당이지만, 대부분 자습한다. 설명회나 토토즐 같은 일회성 행사 등을 이 시간을 빌려 개최한다.
8교시는 방과후 시간이다. 자율이되, 안 하는 학생은 도서관에서 자습해야 한다. 금요일은 개설된 방과후 강좌가 거의 없어서 대부분의 학생이 자습을 하며, 요일을 불문하고 째는 사람 역시 많다...
석식 시간
17:40~18:40
야자 1차시
18:40~19:40
야자 2차시
19:50~21:00
야자 3차시 (3학년만)
21:10~22:00
과거에는, 1학년 교실 중 1, 2층에 위치한 교실에서 창문을 넘어가서(!) 야자를 탈주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6.1. 주요 행사


추가하시려면 "'''행사명''': 개최시기"로 추가해주시고 부가적인 설명을 적어주세요.
  • 체육대회: 5월 중순. 각 학년별 숫자가 같은 반끼리 한 팀이 되는 구성으로 참가한다.
  • 개교기념식: 5월 30일. 우창회관에서 열린다. 제 1nn주년 개교기념식 같은 식이다. 동래학원 재단 내 학교들이 모두 모이는 몇 안되는 날이다. 1학년 학생들은 이날 등교해야 한다.
  • 창의적 결과물 발표대회: 개인 또는 팀별로 소논문이나 탐구보고서 등을 발표한다. 3학년 대회는 7월, 1,2학년 대회는 10월에 열린다.
  • 옥샘 춤 경연대회, 옥샘 음악 경연대회, 옥샘 미술 경연대회: 12월에 개최한다. 수상자는 학예제 무대에 올라가며, 미술 경연대회 수상작은 2층 복도에 전시된다.
  • 옥샘학예제: 12월에 개최한다. 팜플렛 디자인 공모전을 11월에 개최한다. 과거에 비해 재미없어졌다는 평이 많다. 예전에 동래여고 학생이 학예제를 보러온 남학생에게 몹쓸짓을 당할 뻔한 사건이 있어서 그 이후로 타학교의 찬조공연등 출입이 불가하다.
이 외에도 수학 경시대회, 영어 에세이 대회, 논술 경시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많다.

6.2. 동아리


싫어도 반드시 한 사람당 한 곳씩 가입해야 하는 정규 동아리와 가입해도 안해도 상관없는 자율 동아리로 나뉜다. 정규 동아리 입부는 1주일의 모집기간동안 동아리 선배들이 1학년 각 교실로 찾아가 홍보를 하고 개인이 신청서를 작성해 마지막날 해당 동아리의 선배들이 면접을 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2019년 기준 32개의 동아리가 있으며 약 10개의 인기동아리를 제외하고는 신청자가 정원 미달인 경우가 많아 추가모집을 한다. 인기동아리의 신청자가 20명에서 30명인데 반해 비인기동아리의 신청자는 1,2명이라 면접일 야자시간에 선배들이 추가모집 홍보를 온다. 자율 동아리는 몇 개를 해도 상관은 없지만, 학기 초 홍보가 정규 동아리에 비해 잘 되지 않는다.

7. 운동부


동래여중고의 테니스부는 1972년에 창설되어 1990년대 까지 브니엘중, 브니엘여고 (브니엘여고는 당시는 야간제 학교) 테니스와 함께 부산 여자 테니스계의 양대산맥으로 부산에서는 테니스 명문으로도 유명하였다. 사실 1980년대 중반 까지만 해도 동래여고 테니스부는 브니엘여고 테니스부 보다 한수 아래로 여겨졌지만, 1988년 전국체전에서 동래여고 소속 강명옥과 강미희 선수가 처음으로 우승을 거두면서 16년만에 제대로 존재감을 나타내었다. 하지만 1990~91년에 다시 브니엘여고 테니스부가 전국체전 부산대표로 출전하면서 동래여고 테니스부는 잠시 주춤하나 싶었으나 1992년에는 회장기 소강배 전국체전 우승에다가 그 해에는 숙명의 라이벌 브니엘여고도 얻지 못하였던 부산직할시 체육상 테니스부문 우수단체상 까지 획득하면서 동래여자중고등학교 테니스부의 앞날은 핑크빛과도 같았다. 이듬해인 1993년에는 동래여고 소속 최주연 선수가 아시아주니어선수권 대회(18세부)에서 우승을 하면서 국제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맞이하는 대경사가 연달아 일어났고 이때부터 브니엘여고 테니스부를 완전히 역전하기 시작하였다. 이 학교의 테니스부는 부산의 다른 스포츠 명문 학교들과는 달리 대기만성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더군다나 1995년에 브니엘중의 폐교가 확정되면서 1998년에 브니엘중 여자 테니스부가 폐교로 인하여 알아서 해체 되었고, 브니엘여고 테니스부는 이듬해인 1999년에 터진 브니엘학원 사태를 전후하여 재정난으로 해체되어 사실상 자폭해버리는 바람에 라이벌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동래여중고 테니스부는 부산 유일의 중고등학교 여자 테니스부로 완전히 독주를 하게 되나 싶었는데#, 라이벌이 없어져서 이사장이 시시하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는 몰라도 결국 동래여중고 테니스부 조차도 2002년 5월에 동래여고 정보관 건립이라는 어이없는 구실(...)[11]로 인하여 재단에 의해서 어이없게 해체될 위기에 놓이고 말았다. 당연히 부산 유일의 중고등학교 여자 테니스부이자 유서깊은 부산의 명문 테니스부를 해체 하는것에 대한 반발은 상당하였다. 불행중 다행인건지 각계 각층의 구명운동 끝에 동래여자고등학교 테니스부는 2003년 3월에 남산고등학교 여자 테니스부로 인수인계 되어 재창단 하였으며, 동래여자중학교 테니스부의 경우는 그보다 앞서서 2002년 7월 18일에 구서여자중학교로 인수인계되어 재창단 하였다고 한다.

8. 출신 인물


가나다순으로 정렬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무위키에 등재될 정도의 저명성 있는 인물만 기록 가능합니다.

9.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지정 및 지정취소 논란


동래여고는 2009년에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전환을 신청하여 2010학년도부터 전환이 확정되었으며, 2010년도부터 부산 최초로 일반계 고등학교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전환되어 운영되었다. 하지만 당시 동래여고는 법정 전입금도 제대로 내지 않는 상태였는데도 자사고 전환이 졸속으로 추진되어 논란이 되었으며, 선호도가 높았던 일반계 고등학교였던 동래여자고등학교가 자사고로 전환되면서 금정구에서는 쓸만한 여자고등학교가 별로 없게 되었다.
하지만 2013년 6월 동래여고는 재정난 및 사회통합전형에서의 미충원을 이유로 갑자기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운영권을 반납하고 일반계 고등학교환원을 신청했으며 이로 인하여 학부모들과 학생들 사이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부산시 교육청은 '정원의 70% 이상을 모집하면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유지, 70%에 미달하면 일반계 고등학교로 환원' 이라는 중재책을 내놓았지만 이것은 사실상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과 다름없었다. 동래여고 재단 측에서는 학교에 대해 좋지 못한 소문을 자진해서 퍼트리거나(...) 대놓고 학교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을 입시요강에 넣는 등 학생들의 지원을 방해하여 정원 미달을 유도하였으며, 결국 정원의 70%를 모집하지 못하게(?) 되면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에서 일반계 고등학교로 환원이 확정되고 말았다. 어찌보면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의 자진폐교 사건이 생각날 따름이다. 일반적인 사립학교라면 폐교나 지정취소를 면하려고 어떻게든 끝까지 버티며 안간힘을 쓰는데, 태광여상은 멀쩡한 학교가 재단에 의해 자진폐교 당하고 동래여고는 자사고로 계속 운영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재단이 자진해서 자사고 지정 취소를 해버렸으니 말이다.
부산시는 350만이라는 인구에 비해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의 수가 가장 적은 편이다. 동래여고를 제외하면 자사고가 단 한 곳뿐이고, 그 한 곳 마저도 공학이 아닌 남자 고등학교이다. 덕분에 자사고를 원하는 여학생들은 다른 지역의 자사고로 가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동래여자고등학교가 자율형 사립고 자진 취소를 하지 않았으면[12] 2018년 현재도 자사고로 계속 운영되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사실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써의 진학 실적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으며,# 부산시내에서 자사고 체면 치례는 충분히 하는 수준이었는데도, 동래학원이 학교법인과 학교의 이미지를 자진해서 실추시키면서까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자진 지정취소를 했어야 하는지는 미스테리다. 그래도 논란으로 인한 이미지 실추는 얼마 되지 않아서 운 좋게도 만회(?)에 성공 했는데, 근처에 있는 다른 사학재단에서 역대급 병크[13]가 터지는 바람에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자사고 반납 논란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조용히 묻히면서 이미지 실추 문제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금방 잊혀지게 되었다.

10. 여담


  • 부산광역시에서 조경이 가장 잘 되어있는 학교로 유명하다. 교문에서 운동장으로 올라가는 그 높은 오르막길을 따라 큰 벚나무가 심어져 있으며, 교정 여기저기에 작은 정원이 많다. 다만 연못 조경은 여중이나 예고, 예중에 비해 좀 구리다.(...) 물고기도 없고 풀들에 가로막혀 접근성도 떨어진다.
  • 2, 3학년 교실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통로에 서 있는 아치에는 장미와 참다래 넝쿨이 자라고 있다. 사실 봄이나 겨울엔 그냥 휑한 쇳덩이에 나뭇가지 몇 개 얹어놓은 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 교복은 2010년경에 자사고 전환과 동시에 새로 바뀐 것으로, 비교적 최근에 변경되었다. 다만 교복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좀 있다. 동복은 빨간색 마이에 회색 주름치마인데, 마이가 정말 새빨간 원색이라 멸치에 고추장 입힌 것 같다(...)는 불평을 새학기마다 들을 수 있다. 하복 치마는 동복과 비슷하고, 블라우스는 주황색 차이니스 카라에 노란색이나 연두색 세로 줄무늬가 있는 형태로, 이쪽은 맥도날드 알바생(...)이나 은행원 같다는 평가를 듣는다. 아무래도 부산예고 교복[14]이 상대적으로 예쁘다 보니 불평이 있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전에 쓰던 교복은 네이비색 마이, 네이비색 체크무늬가 있는 치마와 조끼에, 타이슬링이 있는 디자인이었다. 부산예고 교복과 같은 시기인 1986년 쯔음[15]에 정해져서 2009년까지 20년 이상 쓰였다. 지금 기준으로 봐도 깔끔하고 무난한 디자인의 교복이었으나#, 정작 그 교복도 옆에 있던 부산예고 교복과 비교되면서 상대적으로 초라해보였기 때문에 까였다고 한다. 물론 다른 일반계 여고 교복 보다는 디자인이 무난하고 괜찮았지만 하필이면 옆에 있던 학교 때문에...
  • 교복을 정할때 유명한 디자이너에게 교복 시안을 의뢰했지만 디자이너가 3개의 시안을 보내준다고 하고서는 바쁘다는 이유로 하나만 보나주었고 그것을 교복으로 정하였다고 한다..
  • 동래구가 아닌 금정구에 왜 동래여고가 있는가라고 의아해할 지 모르겠지만, 금정구는 1988년에 동래구에서 분리됐다. 이 학교는 1987년에 구서동으로 이전하였는데 이 때만 해도 금정구가 신설되기 이전에 동래구였던 시절이었다.
  • 브니엘 계열 학교만큼은 아니지만 이쪽도 중앙대로 쪽에서 거리가 좀 있다. 금정구청(구서IC입구)에서 브니엘 계열 학교들로 들어가는 길목인 태평양아파트 인근에 학교가 있다. 따라서 금정3-1번301번이 학교 앞에 정차한다. 그래도 상당수가 산 중턱에 있는 부산시내의 다른 학교들에 비하면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접근성은 부산시내 학교 치고는 상당히 준수한 편이다.
  • 아주 오래 전에(1940년대 후반~1950년대 초반) 지휘자 금난새의 아버지 금수현이 음악교사로 재직한 적이 있으며 동래학원 산하 학교 공통 교가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11.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 도시철도 : 부산 도시철도 1호선 구서역
  • 버스
    • 금정경찰서 정류장 : 1008번
    • 금정문화회관 정류장 : 301번, 금정3-1번
    • 금정구청 정류장 : 50번, 148번, 300번, 1002번, 금정5번[A], 금정5-1번[A], 11(양산), 12(양산), 58(양산), 59(양산), 61(양산), 1100(양산), 1200(양산), 1300(양산), 1500(양산)


[1] 한국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배재학당 보다 10년 늦게 설립되었다.[2] 마산의 창신중고등학교도 이 단체에서 설립하였다. 1940년에 신사 참배를 거부하여 일제에 의해 추방되었다가 해방 이후에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 1952년에 일신기독병원을 세우기도 했다.[3] 부산·경남지역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장로교 미션스쿨의 직·간접적인 모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부산지역에서 장로교 미션스쿨을 표방하는 사립학교 중에서 일신여학교와 연관이 없는 학교는 없다고 봐도 된다.[4] 경남노회 김길창 주도로 인수를 하려 했으나, 김길창은 신사참배를 주도한 인물이라서 호주장로교 재단에서 김길창에게 넘겨주려 하지 않았다. 김길창은 일신여학교 인수를 하지 못하게 되자 그 대신에 남성여자중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부산 바닥에서 장로교 교단 치고 김길창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지 않은곳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었다.[5] 여담이지만 동래재단 근처에 있는 브니엘 계열 학교 중에서 브니엘고가 한때 고신대학교와 같은 계열이었던 역사가 있었다. 결국은 동래재단 계열 학교들이나 브니엘 계열 학교들이나 같은 조상을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6] 일신관은 우창회관과 함께 부산예술고등학교 명의로 등록되어 있다. 동래학원 재단 사무실이 위치하며, 9월경 예고 예중 미술작품 전시회를 한다. [7] 2, 3학년 교실이다.[8] 교문에서의 접근성이 좋지 않아 정문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학생도 있다.[9] 매점 기준으로 세면 7층이다... [10] 복사 및 제본도 가능하다.[11] 그 이전에도 부산예중 신설로 인하여 동래여중 테니스 코트를 밀어버리는 일도 있었다. 부산예중 설립 과정은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제대로 골때리는 설립 과정을 보여주었다.[12] 지금의 부산 교육감도 특수목적목고등학교나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를 교육청 직권으로 강제로 지정취소 하는것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다.[13] 공교롭게도 사태의 발단이 동래여자고등학교가 자진 반납한 자사고 TO를 다른 학교도 아니고 예술고등학교가 적법하지 않은 방법으로 주워먹으려다가 재단 전체가 전복되어린 사건이었다.[14] 부산예고 문서에 사실이 아니라고 나와 있다.[15] 1990년 졸업앨범(1987년 입학생)에도 그 교복이 있었던걸로 봐서 1986년 9월~1987년 3월 사이에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근처에 있는 브니엘고등학교의 죠스바 교복과도 동시에 나온 교복으로 부산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브니엘고등학교, 부산예술고등학교와 함께 1986년 교복 부활 당시 가장 먼저 교복을 재착용 하였다.[A] A B 장전역 방향만 경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