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계영

 

[image][1]
'''이름'''
천계영 (千桂永)
'''출생'''
1970년 12월 10일 (53세)
'''학력'''
이화여자대학교 법학 학사
'''직업'''
만화가
'''데뷔'''
1996년 제 2회 윙크 신인만화 공모전 대상
'''수상'''
1999년 제 3회 오늘의 우리만화상 (오디션)
'''링크'''

1. 개요
2. 상세
3. 특징
4. 사건사고
5. 작품
6. 기타


1. 개요


대한민국만화가. 순정만화 전설

2. 상세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 졸업 후 '''문하생 시절을 거치치 않고''' 만화가가 되었다. [2]
윙크 데뷔 단편에서 독자들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무서운 신인이라는 평과 함께 데뷔 장편인 언플러그드 보이로 폭발적인 사랑과 인기를 얻었다. 차기작인 오디션도 마찬가지. 오디션 연재 완료 후 유학을 다녀온 뒤 DVD하이힐을 신은 소녀를 연재했고 다음으로 예쁜 남자를 연재, 다음 웹툰에서 DVD2를 연재했다. 현재는 다음에서 드레스 코드 완결을 내고 좋아하면 울리는을 연재 중이다.
좋아하면 울리는 연재도중 건강상의 이유로 휴재했는데 2018년 5월 양성 종양 수술을 하여 손가락의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컴백 시기는 장담할 수 없지만 2018년 안에는 연재를 완결할 거라고 하였으나, 2019년 6월 유튜브로 근황을 알리길, 수술 이후 여러가지 질병들이 겹치며 '''더 이상 손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릴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컴퓨터의 장애인용 기능을 이용하여 목소리로 그림을 그리는 일에 도전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해당 영상

3. 특징


데뷔 당시, 동년배 작가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G펜, 스푼펜 등 잉크를 사용하는 펜을 쓰지 않고 한국 출판 만화계에서 처음으로 '''광마우스'''로 원고를 했다.
그래서인지 스크린톤이나 효과(특히 눈동자) 등이 다른 작품과 확연히 다른 느낌을 독자들에게 전달했다. 유학 이후 3D프로그램을 병행하여 만화를 그리고 있다.
언플러그드 보이오디션은 (힙합, 일진, 동성애 등)을 담고 있으며, 90년대 후반, 한국을 강타한 힙합과 아이돌 그룹의 시너지 효과로 인해 작품의 인기는 식을줄 몰랐다. 그로 인해 H.O.T.의 뮤직비디오[3] 캐릭터 디자인을 했다.
그는 작품 완결 이후 미국 으로 유학을 갔고 [4] 뉴욕에서 첫 소설인 the 클럽을 썼다. 미스터리 성장 소설이라는 특이한 장르로 기존의 소설 형식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유학 이후 작품 DVD하이힐을 신은 소녀, 예쁜 남자는 작가만의 고유한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손으로 그림 그리는 것이 싫어서, 그림을 그리지 않고 만화를 만들 방법을 찾는 과도기가 있었다고 블로그에 언급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DVD 이후 작품들은 3D프로그램으로 작업되었다. 3D툴 이외에 만화를 연출하기 편한 프로그램이 생긴다면 그 프로그램을 이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4. 사건사고


2011년경 신원불명의 한 남성이 천계영을 사칭하며 다니는 바람에 고초를 겪었다. 이 남성에 대한 이야긴 허영만 항목 참고할 것.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명백히 여자인 작가지만, 천계영이란 이름이 중성적인 이름이기 때문에 이름만 들어서는 여성인지 알기 어려워 사칭이 쉬웠던 것으로 보인다.

5. 작품




6. 기타


에브리타운에 기간 한정으로 천계영의 오너캐가 등장했다.
  • "시즈니"라는 이름의 암컷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이름의 뜻은 "시즌2". 입양하면서 고양이와 작가 본인의 인생의 시즌2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라고.


[1] 드레스 코드 연재 당시 YES24와 했던 인터뷰에서의 모습. 여담으로 천 작가는 인터뷰를 의식해 이 머리(양갈래)를 해보았다며 상당히 어색해했다.[2] 이 당시 만화가의 문하생이 되는 것은 만화가가 되기 위해 거치는 당연한 코스였다. 왜냐면 이때만 해도 만화를 배울 수 있는 학원 자체가 없어 배우려면 만화가 밑에서 배워야했기 때문.[3] 3집 Resurrection의 <우리들의 맹세> 뮤직비디오[4] 이때 쓴 소설의 후기를 보면 우울증을 견디다 못해 떠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