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호(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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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瑗浩
1898년 4월 16일 ~ 1980년 2월 27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898년 경상남도 김해군(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화전 마을)에서 태어났다. 경성부 보성중학교(현 서울특별시 보성고등학교), 일본 주오대학 상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1923년 김해청년회 회장이 되었다. 1927년 여자야학회와 1930년 노동야학회를 설립하였다. 한편 형평운동도 후원하였다. 1932년 낙동강 개수 공사가 3년간 연기되자 낙동강공사촉진기성회 대표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또한 1933년 3월에 김해군 해수방지회의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8.15 광복 후 경상북도 상공국장, 김해산업조합 이사를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경상남도 김해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신상학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한국민당 박재홍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강종무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4.19 혁명 후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崔瑗浩
1898년 4월 16일 ~ 1980년 2월 27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898년 경상남도 김해군(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화전 마을)에서 태어났다. 경성부 보성중학교(현 서울특별시 보성고등학교), 일본 주오대학 상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1923년 김해청년회 회장이 되었다. 1927년 여자야학회와 1930년 노동야학회를 설립하였다. 한편 형평운동도 후원하였다. 1932년 낙동강 개수 공사가 3년간 연기되자 낙동강공사촉진기성회 대표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또한 1933년 3월에 김해군 해수방지회의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8.15 광복 후 경상북도 상공국장, 김해산업조합 이사를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경상남도 김해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신상학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한국민당 박재홍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강종무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4.19 혁명 후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