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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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島/青岛 / Qingdao
1. 개요
중국 산둥성 동부, 산둥반도에 위치한 항구도시. 한국 한자음 발음을 따라 청도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경상북도 청도군과 헷갈릴 수 있다.
2. 역사
역사적으로는 평범한 어촌이였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항구 만들기 딱 좋은 위치라서 나름 이름은 있었다. 춘추전국시대부터 기록이 나올 정도.
대부분 기록이 즉묵(即墨, 지모)이라는 상위 군현에 속해서 나오고 근대까지도 즉묵이 훨씬 더 큰 중심 도시 였다. 부산과 동래의 경우와 비슷하게 현재는 칭다오가 넘사벽으로 커졌고 즉묵은 칭다오의 현급 도시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19세기 말 칭다오가 위치해 있던 자오저우 만(膠州灣, 교주만)이 독일 제국에게 할양되어 해군 기지인 키아우초우가 되었다. 칭다오는 키아우초우의 중심지였다. 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신경쓰지 못하는 틈에 일본 제국이 이곳을 점령했다. 1927년 1차 산동파병과 1928년 2차 산동파병 등 일제의 중국 침략 기지로 활용되었으나 열강의 압력과 중국인들의 반발로 중국에 반환하게 된다. 그 후로 국민당 정부 아래서 12개 직할시 중 하나로 지정되어서 지역 중심지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비록 국민당 정부 시절에 지정된 직할시였지만 산둥성 내에서 성도인 지난을 능가하는 경제력과 인구를 가지고 전국적 지명도를 가지고 있기에 은근히 직할시로 독립하길 원하는 시민들이 있다.
이후 중일전쟁에 다시 일본에게 점령되었다가 일제가 패망하면서 중화민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국공내전 땐 화북지역 국민당 최후의 보루로 버티다가 1949년 6월 2일 공산당에 점령된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 시기 연안개방도시[1] 로 선택 된다.
3. 인구
인구는 약 838만 명에 달한다. 한국인들과 조선족들의 인구수도 꽤 되는 편이며[2] 전체 인구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이 둘을 합치면 한국의 웬만한 중소도시 인구 수준은 된다. 면적은 약 11,026㎢이다.[3]
4. 특산
주요 특산물은 한국인에게도 유명한 칭따오 맥주가 있으며[4] , 동일한 원리로 중국내에서 유명한 와인 산지로도 꼽힌다. 라오산(崂山) 지역에서는 녹차및 광천수[5] 도 생산된다. 해안 도시인 덕택에 예로부터 각종 싱싱한 해산물이 풍부하게 잡혀서 해산물 요리로도 상당히 유명했지만, 칭다오 앞바다의 오염도가 꽤 되고 남획으로 고기도 잘 안 잡히기 때문에 현재는 대다수가 양식이다.
5. 행정구역
6. 대한민국과 관계
대한민국과 가까운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대한민국 기업이 1990년대 초반부터 아주 많이 진출해 있고 코리아타운도 있으며, 대한민국 영사관도 설치되어 있다.
현재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은 칭다오 시내가 아닌, 공항과 가까운 청양 구(城阳区)다. 원래 교민 사회 중심지는 5.4광장에서 칭다오대학에 이르는 시남구 신시가지, 그리고 맥주성(啤酒城)이 있던 라오산구(崂山區)였다. 2000년을 전후로 일본 AEON계 백화점 JUSCO와 까르푸가 시남구 신시가지 지역에 들어오면서 칭다오 중심지가 되고 당시 소비력이 현지인보다 현저히 높던 교민들은 비록 교외지역에 위치한 공장과 시내가 많이 멀지만 이곳에 많이 몰려 살았다. 당시 비교적 낙후되었던 칭다오에서 교민들의 구매력은 상당히 강해서 고급 아파트를 신축하면서 한국인 특별 분양을 할 정도였다. 2000년대 호황기가 지나고 인건비가 상승하여 교민 기업들의 채산성이 악화되면서 수많은 교민들이 파산 혹은 야반 도주를 했다. 이로 인해 교민사회가 많이 흉흉해지고 현지인들이 한국인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심어주기도 했다.
칭다오 시가지 지역의 개발한계로 2010년 전후로 칭다오 류팅 국제공항 근처인 청양구(城陽區)의 도시계획이 잡히고 대대적인 개발이 시작되었다. 애초에 청양구는 공항에 인접하고 시가지보다 저렴한 토지사용료와 인건비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소규모 공장들이 많던 지역이어서 한국인 및 조선족 거주 인구가 제법 되었고 한국인이 살기에 기반 시설도 나쁘지 않아 시내지역에 살던 많은 한국인들이 청양구로 이사를 오게 된다. 교외 지역 공장과도 가까워서 가족 이주 교민 같은 경우에는 금상첨화. 시가지의 교민이 급격히 줄어들자 영사관도 원래 있던 라오산구(崂山區)에서 청양구로 2016년에 이전하였다.
비공식 통계로 칭다오 바닷가를 낀 시가지에 정주하는 한국인은 세자리 수 정도로 줄었다. 그래서 칭다오 시내에서는 한국어 듣긴 좀 힘든 편. 그래도 잘 찾아 보면 한인들이나 조선족들이 운영하고 있는 점포들을 적잖이 찾아볼 수 있기는 하다. 다롄, 옌타이와 비슷하게 단기 관광지로 인기. 청양구에는 한국인뿐 아니라 조선족들이 상당히 많이 거주하고 있어서 조선족이 하는 식당을 쉽게 볼 수 있으며 조선족 자치구에 온 느낌도 있다. 현 공항인 칭다오 류팅 국제공항의 포화로 신 공항이 건설 중이다. 시내와는 멀리 떨어진 편이라 관광 목적으로 온다면 숙소 위치에 주의하자.
대구광역시와 자매결연, 인천광역시와 우호결연을 맺고 있다.[6]
전자제품 회사인 하이얼(海尔), 하이센스(海信) 그리고 철도차량제조업체인 중차칭다오쓰팡(中车青岛四方)의 본사도 칭다오에 있다. 금호타이어를 인수하며 이름을 알린 더블스타 역시 본사가 여기 있다.
7. 교통
현재 칭다오 지하철 공사가 한창 진행 중으로 2016년 12월 28일 칭다오 지하철 3호선 전 구간이 정식 개통되었다.
8. 기타
왕중왕 게임의 중국 대표는 어쩐 일인지 이 도시의 이름을 자기 이름이라고 달고 등장한다.
대체역사소설 '스탈린의 편지'에서는 동북아전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 패배하면서 일본 출신들로 이루어진 미11군에게 200년 간 조차당하는 곳이다.
공원들이 조성되어 있는 지역에 '''칭다오 TV 타워'''라고 하는 랜드마크가 있다. 칭다오 어디를 가든 잘 보이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칭다오 시내의 전망을 보고 싶다면 한 번쯤 올라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진정한 칭다오의 랜드마크는 5.4 광장. 이 광장에 있는 조형물을 중심으로 칭다오의 스카이라인을 보면 대륙의 기상이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을 터. 5.4 광장 인근의 고층 건물들이 모두 LED처리가 되어 있어, '''야경을 보면 주변의 건물들이 모두 하나의 큰 스크린으로 이어진 듯한 느낌을 느낄 수 있다.'''[7]
참고 기사: 칭다오 맥주가 맛있는 건 슬픈 일이다
9. 출신 인물
[1] 개혁개방 정책의 선행배포 버전으로 총 15개의 항구도시가 우선적으로 개방 되었다.[2] 한국인은 8~9만 명, 조선족은 20만 명 가량 거주한다.[3] 대략 경상남도와 비슷한 면적에 약 2.5배의 인구가 사는 거다.[4] 맥주는 본디 독일 음식이다. 한 때 독일이 이 지역에 조차한 적이 있는데 그 시절 독일인들이 설비를 들여와 독일 본토식 맥주를 빚었다. 이게 지금까지 내려오면서 칭다오가 맥주로 유명해진 것.[5] 라오산광천수 崂山矿泉水[6] 대구 치맥축제의 대형 스폰서 중 하나가 칭따오 맥주다.[7] 유튜버 플레이투어의 칭다오 야경 동영상을 참고하자. 중국 칭다오에 출장을 가면서 5.4 광장을 기준으로 주변에서 보이는 야경을 촬영했는데, 정말 '''전기세를 어떻게 감당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꽤나 시내가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