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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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롄의 노동공원 전망대에서 바라 본 다롄 시 전경. 위 사진은 합성이다. 미세먼지로 인해 뿌연 하늘을 인위적으로 푸른색으로 합성하는 바람에 하늘 왼쪽과 오른쪽이 대칭으로 복붙한 흔적이 있다. 다롄은 미세먼지 때문에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연중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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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광장(中山广场)
大连市 / Dalian City
중국 랴오닝성 랴오둥 반도 남쪽 끝에 있는 항구도시. 동쪽은 황해, 서쪽은 보하이해에 접해 있다.
인구는 2018년 말 현재 약 595만 명이며 하위 행정구역으로는 7개의 구[1] , 2개의 현급 시[2] , 1개의 현[3]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다롄보다 한국 한자 독음으로 대련으로 읽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으로 랴오둥 반도의 중심지였다. 고구려, 발해 때는 비사성이 있었던 곳이고, 이후에는 청니와(青泥窪)라는 이름의 작은 어촌이었으나, 1897년 러시아가 불완전한 부동항인 블라디보스토크를 대체하기 위해 황해에 접한 이 곳에 항구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발달하였다. 러시아인들은 이 도시를 "달니이"Дальний라고 불렀고, 인근에 있으며 이후 다롄에 통합되어 구가 된 뤼순은 포르트 아르투르(Порт-Артур)[4] 로 불렸다. 이 시기에 다롄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러시아가 유럽식으로 건설한 시가지는 지금도 남아 관광지가 되어있다. 그러다가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조차지[5] 가 되었고 도시 이름도 다롄(大連, 당시에는 일본어 독음을 따라 다이렌)으로 바꾸었다. 일본령 관동주청의 중심지가 되었고, 하얼빈으로 연결되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를 건설하였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이 잠시 관리하였다. 1950년 뤼순(旅順)과 합병하여 뤼다(旅大)라고 하였다. 1951년 중국에 반환되었고, 1981년 이전의 이름인 다롄으로 돌아갔다.
한때 보시라이가 다롄의 시장으로 있으면서 많은 업적을 세워 입지를 강화했다.
4계절이 뚜렷하고 기온 편차가 크지 않아 중국 내에서는 비교적 쾌적한 기후를 자랑한다. 여름은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베이징, 충칭 등지의 무더위가 나타나지 않고, 겨울은 동북 3성 중에서 가장 온화하고 눈이 적다. 그래도 1월 평균기온이 -3.6°C까지 내려가는 Dwa기후이다.
2000년대만 해도 황사의 영향이 적어 대기질이 가장 양호한 도시 중 하나였으나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진 이후에는 옛말이 되었다.
시외 교통으로는 여객선과 항공기, 철도가 운영 중이다.
먼저 다롄 항에서는 산동 반도, 인천광역시 등으로 갈 수 있으며, 다롄 저우수이쯔 국제공항(周水子国际机场)에서는 국내선의 경우 베이징, 상하이 등으로 연결되는 항공편이 있고 국제선의 경우 서울특별시(인천국제공항), 도쿄(나리타 국제공항), 타이베이(타이완 타오위안 국제공항) 등으로 연결되는 항공편이 있다. 과거에 남만주철도로 유명한 하다선(哈大线, 하얼빈 - 다롄) 철도의 시종착지이며, 열차는 다롄 역(大连站)과 다롄베이 역(大连北站)[6] 에서 이용 가능하나, 고속철도는 다롄베이 역에서 시종착하는 것이 많다.
시내 교통으로는 2016년 현재까지도 시내버스가 주를 이루며, 도시철도의 비중이 도시 규모에 비하면 부족한 수준이다. 2015년이 되어서야 지하철 1, 2호선이 개통되었으며 추후 연장 계획이 잡혀 있는 수준(…). 이는 항만을 중심으로 한 시가지 상당 부분이 연약지반이어서 당국에서 지하철 공사를 할 때 꽤나 애를 먹었던 이유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에서 몇 안 되는 201번, 202번 노면전차가 잘 남아 있어 성황리에 운영 중이고 그 외에는 경전철(3호선 대련-금석탄,구리), 대련-여순간 12호선 등이 운행 중이다.
동북 3성답게 중화학 공업이 발전되어 있으며 그쪽에서는 나름대로 IT 관련 산업이 제법 흥한다고 한다. 김정은이 시진핑을 만나러 다롄에 갔을 때 산업단지를 구경했을 정도다.
대련의대, 대련민족대, 대련대학, 대련이공대, 대련교통대, 동북재경대, 대련외국어대, 대련해양대, 요녕사범대, 대련해사대, 대련공업대 등이 있다.
'''축구성(足球城)''', 그리고 '''안습의 역사'''(...)
"다롄의 대표는 축구고, 축구는 곧 다롄의 자부심이자 다롄 그 자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만큼 이 도시에서는 축구가 인기를 독차지하고있다. 중국 슈퍼 리그가 갑급리그라는 이름으로 탄생하고 초창기 다롄 완다는 그야말로 리그를 씹어먹은 명문팀이었고[7] 이는 완다를 인수한 스더가 이어받아 다롄 스더로 바뀌었고, 리그도 갑급리그에서 중국 슈퍼리그로 바뀌고나서도 우승한 걸 비롯해 무려 8번의 우승경력으로 중국 슈퍼리그 최다 우승팀 기록을 가지고 있다. 안정환도 이곳에서 뛰었을 정도. 하지만 위에 언급한 보시라이의 몰락으로 보시라이 정치자금 물주 역할을 한 스더그룹도 같이 몰락. 결국 2012 시즌 끝나고 같은 다롄연고의 햇병아리 다롄 아얼빈 [8] 에 합병된다. 단, 합병되고나서 다롄 서포터들과 시민들이 끊임없이 다롄 스더를 살리겠다고 서명, 모금운동을 이어가면서 1년 만에 다롄 차오웨란 이름으로 재창단하는데 성공. 2014년 을급 리그 참가 2년 만에 갑급 리그로 올라선다. 그리고 갑급 리그에는 과거 다롄 스더를 흡수했던 다롄 이팡이 존재한다. 2012년 이후 무려 4년 만에 다롄 더비의 부활인 셈이자 마치 한국의 '''FC서울'''과 '''FC안양''' 같은 관계의 치열한 더비.
위에 다롄 스더 얘기만 잔뜩 써놔서 다롄 이팡에 대한 것은 별 내용은 없다. 사실 다롄의 축구역사는 다롄 스더가 만든거라서… 단, 다롄 이팡도 다롄 아얼빈 시절, 그러니까 다롄 스더의 공백기간동안 그저 그런대로 다롄 시민들의 축구욕구를 채워준 공은 있다. 이 기간동안 팬층도 다져놔서 탄탄한 편. 2018년 기준 다롄 이팡은 다시 슈퍼 리그로 올라섰고 다롄 차오웨는 갑급 리그에서 강등권을 겨우 면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러다가 다롄 차오웨가 2018시즌이 끝나면서 '''강등은 강등대로 되고 임금체불 문제로 을급 라이센스 불허'''가 되면서 해단을 하고 말았다.
다롄의 노동공원 전망대에서 바라 본 다롄 시 전경. 위 사진은 합성이다. 미세먼지로 인해 뿌연 하늘을 인위적으로 푸른색으로 합성하는 바람에 하늘 왼쪽과 오른쪽이 대칭으로 복붙한 흔적이 있다. 다롄은 미세먼지 때문에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연중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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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광장(中山广场)
1. 개요
大连市 / Dalian City
중국 랴오닝성 랴오둥 반도 남쪽 끝에 있는 항구도시. 동쪽은 황해, 서쪽은 보하이해에 접해 있다.
인구는 2018년 말 현재 약 595만 명이며 하위 행정구역으로는 7개의 구[1] , 2개의 현급 시[2] , 1개의 현[3]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다롄보다 한국 한자 독음으로 대련으로 읽는 경우가 많다.
2. 역사
역사적으로 랴오둥 반도의 중심지였다. 고구려, 발해 때는 비사성이 있었던 곳이고, 이후에는 청니와(青泥窪)라는 이름의 작은 어촌이었으나, 1897년 러시아가 불완전한 부동항인 블라디보스토크를 대체하기 위해 황해에 접한 이 곳에 항구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발달하였다. 러시아인들은 이 도시를 "달니이"Дальний라고 불렀고, 인근에 있으며 이후 다롄에 통합되어 구가 된 뤼순은 포르트 아르투르(Порт-Артур)[4] 로 불렸다. 이 시기에 다롄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러시아가 유럽식으로 건설한 시가지는 지금도 남아 관광지가 되어있다. 그러다가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조차지[5] 가 되었고 도시 이름도 다롄(大連, 당시에는 일본어 독음을 따라 다이렌)으로 바꾸었다. 일본령 관동주청의 중심지가 되었고, 하얼빈으로 연결되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를 건설하였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이 잠시 관리하였다. 1950년 뤼순(旅順)과 합병하여 뤼다(旅大)라고 하였다. 1951년 중국에 반환되었고, 1981년 이전의 이름인 다롄으로 돌아갔다.
한때 보시라이가 다롄의 시장으로 있으면서 많은 업적을 세워 입지를 강화했다.
3. 기후
4계절이 뚜렷하고 기온 편차가 크지 않아 중국 내에서는 비교적 쾌적한 기후를 자랑한다. 여름은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베이징, 충칭 등지의 무더위가 나타나지 않고, 겨울은 동북 3성 중에서 가장 온화하고 눈이 적다. 그래도 1월 평균기온이 -3.6°C까지 내려가는 Dwa기후이다.
2000년대만 해도 황사의 영향이 적어 대기질이 가장 양호한 도시 중 하나였으나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진 이후에는 옛말이 되었다.
4. 교통
시외 교통으로는 여객선과 항공기, 철도가 운영 중이다.
먼저 다롄 항에서는 산동 반도, 인천광역시 등으로 갈 수 있으며, 다롄 저우수이쯔 국제공항(周水子国际机场)에서는 국내선의 경우 베이징, 상하이 등으로 연결되는 항공편이 있고 국제선의 경우 서울특별시(인천국제공항), 도쿄(나리타 국제공항), 타이베이(타이완 타오위안 국제공항) 등으로 연결되는 항공편이 있다. 과거에 남만주철도로 유명한 하다선(哈大线, 하얼빈 - 다롄) 철도의 시종착지이며, 열차는 다롄 역(大连站)과 다롄베이 역(大连北站)[6] 에서 이용 가능하나, 고속철도는 다롄베이 역에서 시종착하는 것이 많다.
시내 교통으로는 2016년 현재까지도 시내버스가 주를 이루며, 도시철도의 비중이 도시 규모에 비하면 부족한 수준이다. 2015년이 되어서야 지하철 1, 2호선이 개통되었으며 추후 연장 계획이 잡혀 있는 수준(…). 이는 항만을 중심으로 한 시가지 상당 부분이 연약지반이어서 당국에서 지하철 공사를 할 때 꽤나 애를 먹었던 이유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에서 몇 안 되는 201번, 202번 노면전차가 잘 남아 있어 성황리에 운영 중이고 그 외에는 경전철(3호선 대련-금석탄,구리), 대련-여순간 12호선 등이 운행 중이다.
5. 산업
동북 3성답게 중화학 공업이 발전되어 있으며 그쪽에서는 나름대로 IT 관련 산업이 제법 흥한다고 한다. 김정은이 시진핑을 만나러 다롄에 갔을 때 산업단지를 구경했을 정도다.
6. 교육
대련의대, 대련민족대, 대련대학, 대련이공대, 대련교통대, 동북재경대, 대련외국어대, 대련해양대, 요녕사범대, 대련해사대, 대련공업대 등이 있다.
7. 스포츠
'''축구성(足球城)''', 그리고 '''안습의 역사'''(...)
"다롄의 대표는 축구고, 축구는 곧 다롄의 자부심이자 다롄 그 자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만큼 이 도시에서는 축구가 인기를 독차지하고있다. 중국 슈퍼 리그가 갑급리그라는 이름으로 탄생하고 초창기 다롄 완다는 그야말로 리그를 씹어먹은 명문팀이었고[7] 이는 완다를 인수한 스더가 이어받아 다롄 스더로 바뀌었고, 리그도 갑급리그에서 중국 슈퍼리그로 바뀌고나서도 우승한 걸 비롯해 무려 8번의 우승경력으로 중국 슈퍼리그 최다 우승팀 기록을 가지고 있다. 안정환도 이곳에서 뛰었을 정도. 하지만 위에 언급한 보시라이의 몰락으로 보시라이 정치자금 물주 역할을 한 스더그룹도 같이 몰락. 결국 2012 시즌 끝나고 같은 다롄연고의 햇병아리 다롄 아얼빈 [8] 에 합병된다. 단, 합병되고나서 다롄 서포터들과 시민들이 끊임없이 다롄 스더를 살리겠다고 서명, 모금운동을 이어가면서 1년 만에 다롄 차오웨란 이름으로 재창단하는데 성공. 2014년 을급 리그 참가 2년 만에 갑급 리그로 올라선다. 그리고 갑급 리그에는 과거 다롄 스더를 흡수했던 다롄 이팡이 존재한다. 2012년 이후 무려 4년 만에 다롄 더비의 부활인 셈이자 마치 한국의 '''FC서울'''과 '''FC안양''' 같은 관계의 치열한 더비.
위에 다롄 스더 얘기만 잔뜩 써놔서 다롄 이팡에 대한 것은 별 내용은 없다. 사실 다롄의 축구역사는 다롄 스더가 만든거라서… 단, 다롄 이팡도 다롄 아얼빈 시절, 그러니까 다롄 스더의 공백기간동안 그저 그런대로 다롄 시민들의 축구욕구를 채워준 공은 있다. 이 기간동안 팬층도 다져놔서 탄탄한 편. 2018년 기준 다롄 이팡은 다시 슈퍼 리그로 올라섰고 다롄 차오웨는 갑급 리그에서 강등권을 겨우 면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러다가 다롄 차오웨가 2018시즌이 끝나면서 '''강등은 강등대로 되고 임금체불 문제로 을급 라이센스 불허'''가 되면서 해단을 하고 말았다.
8. 기타
- 원로가수 백년설의 히트곡 '대지의 항구'가 이곳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노래다.
[1] 중산구, 샤허커우구, 시강구, 뤼순(여순)커우구, 간징즈구, 진저우구, 푸란뎬구[2] 와팡뎬시, 좡허시[3] 창하이현[4] 영어식으로 읽으면 Port Arthur(포트 아서). 19세기 이 곳에 정박한 영국 군함 함장의 이름에서 유래했다.[5] 조차기한은 1997년까지로 영국이 조차한 홍콩과 같았다. 만약 일제가 패망하지 않았다면 이 도시는 계속 일본령이다가 1997년에 중국에 돌려줘야 했을 것이다. 물론 2차대전 패전으로 1945년에 강제로 뱉어내야 했다.[6] 지금은 드물지만 완공된 지 얼마 안 된 대련북역과 기존의 대련역 간의 혼동으로 중국인들도 역을 잘못 찾아가 열차를 놓친 사례가 제법 있었다. 두 역간의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다. 10km이상, 택시로 30위안 이상[7] 갑급 리그 55경기 무패기록도 가지고 있다.[8] 현재 다롄 이팡으로 바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