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빌라르도
1. 개요
아르헨티나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에스투디안테스 감독을 맡았다.
선수 시절 아르헨티나의 명문 클럽 에스투디안테스에서 훌륭한 활약을 선보였고, 감독으로서는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세자르 루이스 메노티에 이어 조국 아르헨티나에 2번째 월드컵 우승을 안겼다. 빌라르도는 종전에 좁은 공간 속에서 패스를 활용한 창조적이고 서정적인 '메노티주의'에서 탈피하고, 자신의 이름이 붙은 '빌라르도주의'라는 실용과 결과 위주의 축구를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정착시켰다.
2. 축구인 생활
2.1. 선수
1939년 3월 16일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시칠리아 출신 이민자들이었다. 빌라르도는 1958년 19살의 나이로 CA 산 로렌소에 입단했고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드러낸 덕분에 1959년 아르헨티나 U-20 대표팀에 뽑혀 1960 로마 올림픽에 차출되어 한 경기에 출전했다. 이후 빌라르도는 산 로렌소에서 174경기에 출전해 12골을 기록한 후 1961년 2부리그 팀인 데포르티보 에스파뇰로 이적했다. 그는 이 팀에서 핵심 공격수로 자리잡아 팀내 최다 득점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얼마 후 포지션을 변경해 수비형 미드필더가 되었다. 한편, 그는 축구 선수로 활동하면서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1965년, 빌라르도는 아르헨티나의 명문 클럽 에스투디안테스로 이적했다. , 당시 에스투디안테스는 킬러 주베나일(Killer Juveniles)이라 불릴만큼 성공적인 팀이었다. 그는 이 클럽에서 앵커맨(공격과 수비를 이어주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을 부여받았고 곧 리그 제일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부상했다. 그는 에스투디안테스에서 다섯 시즌 동안 활동하면서 1967년 메트로폴리타노(아르헨티나 축구 리그 중 전반기 리그) 우승,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연속 우승(1968~1970), 1968년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일궈냈다. 이렇듯 선수로서 많은 업적을 쌓았던 빌라르도는 동료 축구선수 라울 마데로와 같이 대학을 졸업한 후 축구 선수를 그만두고 코치 경력을 시작했다.
2.2. 감독
2.2.1. 아르헨티나 대표팀 이전
빌라르도는 1971년 에스투디안테스의 감독을 맡으면서 축구 감독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1971년에 팀을 이끌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에 진출했지만 아쉽게도 우루과이의 축구 클럽 나치오날에게 패했다. 하지만 당시 그는 감독으로서 집중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에 직면해 있었다. 그는 1968년에 결혼한 뒤 딸을 낳았고 아버지의 가구 사업을 도와야 했으며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의사로서 경력도 이어가야 했다. 이 많은 직종을 종사하느라 시간을 쪼개써야 했던 그는 결국 피로를 느끼고 1975년 에스투디안테스를 떠난 후 이듬해 의학계를 떠나 축구 감독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1976년, 콜롬비아의 축구 구단 데포르티도 칼리의 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2년 후 팀을 이끌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에 진출했지만 아쉽게도 우승컵을 획득하는 데 실패했다. 빌라르도는 결승전 직후 칼리를 떠나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그는 콜롬비아를 1982 월드컵에 진출시키는 데 실패했고 결국 경질되고 말았다. 1982년 에스투디안테스로 복귀한 빌라르도는 알레한드로 사베야, 마르셀로 트로비아니, 우고 고타르디, 호세 폰세 등의 공격진을 앞세워 리그에서 강력한 면모를 보여줬고 그해 메트로폴리타노 우승을 달성했다. 그후 1983년, 그는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전격 발탁되었다.
2.2.2. 아르헨티나 대표팀
2.2.2.1. 1986 멕시코 월드컵(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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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르도는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후 철저히 실용적인 축구로 일관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중국과의 친선경기에서 1:0 패배를 할 정도로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이렇듯 침체된 대표팀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3-5-2 역습 전술을 기획한 후 신예 선수들을 대거 뽑아 자신의 전술에 철저히 접목시켰다.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이건 아르헨티나의 축구가 아니다!"라며 비판을 가했지만 그는 이를 묵살하고 철저히 자신의 뜻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는 탄탄한 수비를 기반으로 하여 성과를 거둬들이는 데 성공했다. 특히 1986 월드컵에서 디에고 마라도나가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며 아르헨티나의 승승장구를 이끌었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이 대회에서 2번째 월드컵 우승을 달성했다. 당시 사람들은 마라도나에게 열광했지만, 사실 아르헨티나가 우승할 수 있었던 데엔 빌라르도의 '실용주의'가 절묘하게 맞아들어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2.2.2.2. 1990 이탈리아 월드컵(준우승)
1986 월드컵 우승으로 대표팀 감독 입지를 확고히 한 빌라르도는 1990 월드컵에서도 대표팀 감독 지휘봉을 잡을 수 있었다. 그는 이 대회에서도 자신의 3-5-2 역습 축구를 구사하며 전 대회에 비해 기존 주전들이 노쇠하여 전력이 떨어진 대표팀의 호성적을 이끌었다. 특히 마라도나는 전 대회보다 기량이 하락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건재했고 골키퍼 고이코체아는 이 대회에서 환상적인 활약을 선보이며 아르헨티나를 결승으로 인도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2명이 퇴장당하고 페널티킥을 허용하는 등 자멸하고 말아 결국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2.3. 그 이후
빌라르도는 1990 월드컵을 마감한 후 대표팀을 떠나 2년간 신문사에 축구 칼럼을 연재했다. 그러다가 1992년 세비야 FC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마침 이 팀엔 다름아닌 마라도나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마라도나는 몸관리에 실패해 살이 쩠고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빌라르도를 돕지 못했다. 결국 빌라르도는 세비야에서 한 시즌만 치른 후 팀을 떠나 몇년 간 야인으로서의 삶을 보내다가 CA 보카 주니어스(1996년). 과테말라 축구 국가대표팀(1999~2000년), 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1999~2000년)을 차례로 맡았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그러던 2003년, 빌라르도는 에스투디안테스의 감독으로 전격 부임했다. 그는 호세 소사 등 유스 선수들을 대거 기용해 리빌딩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2시즌을 맡았고 2004년에 팀을 떠나 감독으로서의 인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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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는 에스투디안테스 감독을 맡으면서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리버 플레이트와의 경기 도중 샴페인을 마시는 듯한 장면이 포착된 것이다. 경기 도중에 술을 마시냐는 논란에 휩싸인 빌라르도는 "그건 샴페인이 아니라 게토레이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급기야 과학 수사(...)까지 동원되어 그의 말대로 게토레이었음이 판명되었다.
감독 인생을 마감한 후, 빌라르도는 2007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스포츠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다가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자 대표팀 총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2010년 마라도나가 월드컵을 치른 후 사임하자, 그 또한 총감독 직을 떠나 야인의 삶으로 돌아갔다.
2020년 6월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걸렸다.#
2.4. 스타일: 빌라르도주의
빌라르도는 철저한 실리축구의 신봉자였다. 1980년대 중반에 유럽에서 유행하던 3-5-2 시스템을 받아들이기로 한 그는 철저한 실용 축구를 펼치겠다고 선언했다. 빌라르도 휘하에서 아르헨티나의 수비는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해 보였다. 특히 두 명의 스토퍼가 상대 투톱을 전담 마크하고, 최후방의 리베로가 페널티 박스의 위험지역을 완전 봉쇄하는 쓰리백 시스템은 상대 공격수들을 좌절감에 빠뜨리게 만들었다. 한편 공격 분야에서는 마라도나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빌라르도는 선수들에게 공을 잡으면 일단 마라도나에게 패스하라고 지시할 정도로 마라도나에게 모든 것을 맡겼고 마라도나는 이러한 감독의 전폭적인 신임에 완벽하게 부응해 조국에 월드컵 우승을 안겼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실용축구는 아르헨티나식 축구와 거리가 멀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특히 1978년 아르헨티나를 월드컵 우승으로 인도한 세자르 루이스 메노티는 빌라르도식 축구는 결코 아름답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메노티는 축구를 하는 이유는 관중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지 단순히 트로피를 들어올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후 아르헨티나 축구계는 아름다운 축구를 추구하며 패싱 위주의 공격적인 플레이를 강조하는 '메노티주의'와 승리를 위해서라면 경기력 따위 제껴두고 철저히 실익을 챙기려드는 '빌라르도주의'로 갈라져 첨예한 대립을 벌였다. 이는 오늘날까지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지만, 일단 축구계에서는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메노티보다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우승과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준우승을 이끈 빌라르도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게다가 메노티의 후계자 격으로 공격축구를 숭상하는 마르셀로 비엘사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를 이끌고 2002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광탈을 한 반면, 빌라르도의 후계자인 알레한드로 사베야는 2014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준우승으로 이끌었으니 더욱 대조적이다.
3. 수상
3.1. 선수
- CA 산 로렌소
- 프리메라 디비지온 우승(1959년)
- 에스투디안테스
- 메트로폴리나토 우승 : 1967년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 1968년, 1969년, 1970년
-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 1968년
3.2. 감독
- 에스투디안테스
- 메트로폴리나토 우승 (1982년)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 1986 멕시코 월드컵 우승 (★★ / 2번째 우승)
-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준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