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한드로 사베야
1. 개요
아르헨티나의 前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며,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극단적 수비전술로 아르헨티나를 결승전까지 올린 명장이다.
수비, 역습, 에이스 중심의 빌라르도주의에 속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수비를 안정화시키는 능력이 발군이다. 또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감독을 맡게 된 이후에는 '리오넬 메시의 사용법을 알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감독이다.[2]
2. 축구인 생활
2.1. 선수
사베야는 셰필드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했다. 선수시절 사베야는 느릿느릿 움직이며 수비라인을 장악했기 때문에 '''나무늘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서는 1983년에 딱 한번 선발되어 4경기에 출전했다.
2.2. 감독
2.2.1. 아르헨티나 대표팀 이전
선수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절친한 고향 친구 다니엘 파사레야를 따라 친정팀 리버 플레이트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여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의 팀 트레이너 겸 수석 코치를 지냈다. 하지만 그 당시 우루과이는 월드컵에 올라와서도 최악의 성적으로 탈락한 프랑스와 0:0 무재배를 기록하고 세네갈에 0:3으로 끌려다니다 겨우 3:3으로 만드는 등 조별예선에서 광탈하고 상당히 우울했다. 이후 2006 FIFA 월드컵 독일이 끝나고 나서 여러 팀의 코치 생활을 전전하다가 2009년에 에스투디안테스의 감독이 되었다.[3] 그리고 에스투디안테스를 지휘하여 2009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의 우승컵을 차지했다. (여담이지만, 이때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의 활약상은 필견.)
2.2.2. 아르헨티나 대표팀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에서는 검증작업을 거치지 않고 그냥 오직 선수로서의 커리어로만 디에고 마라도나를 감독으로 선발했다. 그러나 마라도나가 워낙 막장으로 팀을 운영하는 바람에 볼리비아를 상대로 1-6으로 쳐발리는가 하면 본선에 올라가서도 독일에게 0-4로 쳐발렸다. 이 때문에 마라도나 대신 세르히오 바티스타를 감독으로 선임해봤더니 역시 막장이긴 똑같았다. 2011 코파 아메리카 아르헨티나에 출전해서 세르히오 아궤로와 앙헬 디마리아를 벤치에 앉히는 병크를 터뜨렸다. 그 결과 코스타리카만 간신히 잡고 1승 2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8강에 진출했다. 게다가 8강에서 카를로스 테베스의 병크로 아르헨티나는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자신들 대신 준결승에 진출한 우루과이의 우승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에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에서는 도저히 안 되겠는지 선수로서의 커리어를 완전히 무시하고 '''오직 실력 하나만으로 감독을 선임'''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2009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에스투디안테스를 우승시킨 경력을 인정받아 사베야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4] 사베야는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아예 처음부터 확 뜯어고쳐버렸다.
- 주장을 리오넬 메시로 바꿨다. 그리고 메시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겸 윙어 겸 플레이메이커로 만들었다. 즉 메시에게 "너 하고싶은 걸로 아무거나 골라잡아 하세요."라는 포지션을 부여한 셈.
- 카를로스 테베스는 엔트리에서 제외시켜버렸다. 세르히오 바티스타를 엿먹이고 맨체스터 시티에서 역시 불성실하게 임했으니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5]
- 마라도나가 애지중지하던 선수들(니콜라스 오타멘디, 하비에르 파스토레)도 과감히 엔트리에서 제외시켰다.
-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에게서 주장 완장을 빼버린 후 포지션도 수비수로 바꿔서 오직 수비에만 전념하도록 했다.
- 마라도나가 외면해온 페르난도 가고를 다시 불러들인 후 마스체라노와 같이 수비를 담당시켰다. 2010년 월드컵 당시 독일전에서 마스체라노 혼자 수비를 하느라 힘겨웠던 상황을 사베야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한 것이다.
- 세르히오 아궤로와 곤살로 이과인의 투톱으로 변경한 이후 이들에게도 경우에 따라서 수비가담을 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 앙헬 디마리아를 어시스턴트로 고정시켰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스트라이커로, 수비수로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디마리아의 경우 이미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주제 무리뉴가 수비수로서의 훈련을 시켜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 포지션이 정말 잘 맞아떨어졌다. 실제로 도르트문트와의 챔스 경기 직전에 그를 풀백으로 선발출장 시킬 것이라는 언플까지 했었고...
- 전반적으로 수비포지션의 선수들이 많다. 미드필더의 경우 공격형 미드필더는 앙헬 디마리아뿐이다.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당시의 부실한 수비능력을 완전히 환골탈태시켜 놓았는데 디에고 마라도나가 6실점(볼리비아전), 4실점(독일전), 3실점(브라질전) 등 대량실점을 밥먹듯 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수비를 단단하게 짜놓아서 2실점 이상 기록한 경기가 매우 드물게 되었다. 패해도 0-1로 패했다. 2실점 이상 기록한 단 세 경기인데 그것이 브라질전과 스웨덴전, 파라과이전이다. 이 마저도 각각 4-3(브라질전), 3-2(스웨덴전), 5-2(파라과이전)으로 승리를 기록했다.
사베야는 아르헨티나를 '''12명 같은 11명인 팀'''으로 완전히 변모시켰다. 그림에서 메시는 스트라이커(화살표 위 방향), 윙어(화살표 중간방향), 플레이메이커(화살표 아래방향) 중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변신하는 포지션으로 뛰고 있다.
이렇게 포메이션을 짠 사베야의 아르헨티나는 칠레를 상대로 4-1 대승을 거두며 뭔가 발전하는 것 같아 보였으나 베네수엘라에게 0-1로 덜미를 잡힌 뒤 볼리비아와 1-1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러자 아르헨티나팀에 대한 우려가 생겼는데 이러자마자 바로 내리 6번 승리를 거두며 2013년 9월까지 14라운드를 치른 결과 8승 5무 1패로 남미 지역예선 선두를 달리고 본선 조기진출을 확정지어 놓았다.
더군다나 리오넬 메시가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에서도 살아나기 시작하며 남미 지역예선에서 10골을 기록하며 루이스 수아레스와 더불어 득점 공동1위를 달리고 있다. 이렇게 되자 골닷컴에서는 '''아르헨티나가 이제서야 메시의 사용방법을 알아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와 더불어 아르헨티나는 2011년 10월 FIFA 랭킹이 3위까지 치솟았다. 그 위로는 21세기 유럽 축구의 양대산맥인 스페인과 독일밖에 없다.
평가전의 경우도 브라질을 4-3, 독일을 3-1, 스위스를 3-0, 스웨덴을 3-2, 이탈리아를 2-1 등으로 누르는 등 상당히 양호하다.
그러나 사베야라고 마냥 명장이기만 한 것은 아니였다. 에르난 바르코스, 파블로 기냐수[6] , 프랑코 디산토[7] 같은 듣보잡들을 중용하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는 아르헨티나인 특유의 인정 때문에 이런 것이다. 독일이나 스페인 같으면 못하는 선수들은 과감히 교체해버리는데 아르헨티나는 그걸 불쌍해서 못하고 있다. 그래도 사베야가 마라도나보다는 훌륭한 감독임에 틀림없다. 마라도나는 아예 모든 포지션을 자기가 원하는 선수로만 도배한 것에 비해 사베야는 일단 주전은 검증된 선수로만 엔트리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가이탄의 경우 2012년도 챔피언스리그에서 벤피카 소속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격침시킨 일등공신이며 이 때문에 알렉스 퍼거슨 이 매우 탐내는 선수이다.그래서 맨유는 가이탄을 이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라멜라도 19살때 이미 AS로마의 주전이 된 선수이다. 유럽리그에서는 대부분 검증된 선수들이다. 다만 라멜라의 경우는 사베야가 스위스와의 평가전에서 엔트리에 포함시킨 적이 있었으나 이후 출장금지 징계를 먹는 바람에 사베야가 어쩔 수 없이 엔트리에서 제외시켰다. 그러나 라멜라의 징계가 풀리고 메시가 부상을 당하자 라멜라를 메시의 대타로 활용했다. 2013년 8월 15일에는 교황 프란치스코를 위한 이탈리아와의 친선전에서 메시 없이 이탈리아를 2-1로 승리하여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본선에서는 메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아르헨티나를 결승까지 올려놓았다. 사실 결승에서 독일에게 1:0으로 패배하기 전까지 예선부터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승부차기까지 간 경기도 4강까지밖에 없는 등 기록상으로 보면 분명히 이번 대회에 나온 팀들 중 최상위권이라 할 만하지만 경기력과 경기내용이 영 별로라... 리오넬 메시 이외의 모든 공격진들은 반쯤 봉인상태가 될 정도로 영 힘을 못쓰고 있었고 그저 '''단단하디 단단한 철벽수비'''에 의존해서 대부분의 경기를 무실점으로 막고 올라왔다. 메시 원맨 전술로 이과인, 아궤로, 디마리아 등 핵심 공격수들이 버로우 타버리게 되자, 부정할수 없는 '''메시 원맨팀'''으로 전락해버려서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본인이 안정화시켜 놓은 수비진으로 실점을 줄여 결승까지 올라갔다. 브라질 월드컵 4강 진출팀 중에서 실점이 가장 적은 편이나 그에 비례해 '''득점도 가장 적다.'''
결승에서 독일과의 접전끝에 코앞에서 우승을 놓치며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라이벌 브라질의 안방에서 전통의 축구 라이벌에게 한방 먹일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이지만 그래도 브라질이 미네이랑의 비극을 당하고, 네덜란드에도 신나게 얻어맞을 동안 네덜란드를 침몰시키고 그 독일을 상대로 접전을 펼치며 1:0이라는 아쉽지만 인상적인 결과를 얻었으니 체면치레는 했다고 봐도 좋을 듯. 고국인 아르헨티나의 국민들 역시 자랑스러운 전사들이라며 신문 1면에 아르헨티나 선수들과 주장 리오넬 메시의 모습을 싣으며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이고 준우승의 메달을 가져온 대표팀을 환영해줬다.
줄곧 메시 원맨팀, 의존증 이야기가 나오지만 무조건 사베야 감독의 전술탓만으로 몰아갈 건 못된다. 당장 2006년 독일 월드컵의 브라질처럼 아르헨티나는 뛰어난 공격진 4인방을 갖췄으나 거기까지 볼을 가져다 줄 중미가 없었다. 그렇다보니 공격진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빈약한 중원을 커버해줘야 하는데 이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게 메시, 그리고 앙헬 디마리아 정도가 아니고서는 안됐다. 미드필더의 퀄리티가 좋았다면 이런 식으로 공격력을 희생시킬 필요가 없지만 그렇지 못한 아르헨티나로서는 중원을 포기하는 대신 철통같은 수비력과 미드필더 역할을 같이 수행해줄 공격수 + 받아먹을 스코어러로 해결해야 했다.
당장 상단의 전술 스쿼드 명단만 봐도 4-2-1-3 전술에 중미 자리를 디마리아가 차지하고 있는데 기복이 심하긴 했지만 잘할 때는 메시의 플레이메이킹, 드리블 부담을 덜어줬기 때문에 그래도 중원을 내주지 않을 수 있었다. 클럽에서의 기록과는 별개로 아르헨티나가 막강한 공격진을 들고도 큰 경기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던 건 이러한 뒷사정을 감안해야 한다.
고로 단순 메시 의존증에 의한 공격진 사망이라고 접근하기보다는 좀더 세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메시가 측면에 위치하면서 중앙에도 적극적으로 가담시키는 건 활동량이 적은 메시로서는 꽤 무리한 수였다. 특히 메시가 중앙에 가담하게 되면 비게 될 측면을 풀백이나 미드필더가 커버해줘야 할 테고, 가뜩이나 빈약한 아르헨티나의 중원은 메시의 가담만으로는 부족하니 다른 누군가가 또 해결해줘야 했다. 아르헨티나가 토너먼트 단계에서 약해지고 결승전에서는 이과인의 결정적인 삽질을 제외하고도 결정력의 부재, 체력 부담, 디마리아의 부상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패배했다. 특히 체력 부담의 경우 메시의 빈자리를 커버해줄 사발레타가 클럽에서부터 이어진 혹사로 진작에 탈진해도 이상치 않을 정도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
훗날 아르헨티나는 이 점을 해결하기 위해 4-3-3 전술을 꺼내들었지만 실상은 마스체라노, 바글리아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본업이고 파스토레도 공미일 정도로 아르헨티나의 중미 자원은 심각한 문제였다. 이 점을 감안해보면 메시의 중앙 가담은 공격진을 살리기 위한 수였으며 철벽같은 수비진은 이러한 아르헨티나의 현실 속에서 공격진이 안 풀릴 때 경기를 캐리해줄 보험이다. 그리고 브라질 월드컵에선 이러한 사베야 감독의 전술이 먹혔고 경기력이 썩었든 재미없었든 결승전까지 올라가 막강한 공격력을 과시하던 독일 상대로 연장전 혈투까지 벌였으니 준우승은 둘째 치고 사베야 감독의 전술은 당시 아르헨티나의 전력을 최대한으로 활약하기 위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시에야 메시 원맨 전술이니 의존증이니 하면서 깠지만 정작 시간이 지나고 지나도 중원 꼬라지가 영 안 좋으니 그제야 팬들도 메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는 듯.
국대와는 별개로 메시는 월드컵 이후 바르셀로나에서도 다시 우측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는 신의 한수가 된다. 메시가 측면에서 중앙으로 자주 이동하게 되면 그 빈자리를 미친 활동량의 이반 라키티치나 공격력이 뛰어난 풀백인 다니 아우베스가 충분히 커버해줄 수 있게 되고 바르셀로나는 최강의 미들진을 보유했기 때문에 국대에서의 단점은 적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얻은 결과물이 2번째 트레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라키티치가 과도한 혹사로 폼이 망가져버리고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에게 노쇠화가 찾아오자 마스체라노, 부스케츠를 동시에 기용하면서 사베야 감독처럼 실리적인 축구를 하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
한편 결승전 직전 사베야는 경기결과에 상관없이 사임하겠다고 밝혀 아르헨티나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어찌보면 박수칠 때 떠난 셈.
2.2.3. 아르헨티나 대표팀 이후
2015년 8월 4일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었으나 16일 고사했다. 연말에는 발렌시아 CF의 감독이 될 가능성도 점쳐졌으나, 역시 게리 네빌이 임명되며 무산되었다.
2017년 6월, 그의 아들 알레호 사베야(Alejo Sabella)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근황이 공개되었는데 심장 이상으로 투병 생활을 했다고 한다. 기사 굉장히 수척해진 모습이었으나, 기사에 따르면 완치되었다고 한다. 기사1 기사2
2018년 6월, 사베야는 자신이 선수와 감독으로서 활약했던 에스투디안테스의 홈 경기를 직관하며 오랜만에 대외 활동에 나섰다. 기사 같은해 7월에는 친구 다니엘 파사레야와 부부 동반으로 만남을 가졌다. 기사 일각에서는 호르헤 삼파올리의 사퇴로 공석이 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에 사베야가 복귀하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활발한 대외 활동이 있는 걸로 봐서는 감독 복귀까지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2019년 4월 1일, 사베야는 에스투디안테스의 홈 경기를 또 다시 직관했는데 그게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기사 함께 직관 온 사람과 전술에 대한 논의를 진중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2020년 11월 26일, 심장병으로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고 결국 회복하지 못한 채 12월 8일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66세.
2.3. 스타일 및 평가
선수시절 자신의 모습을 팀에 고스란히 녹여놓고 있는데 이렇게 해서 수비력 하나 만큼은 극강이지만 보고 있으면 암 걸리는 후방 빌드업에 철저히 디마리아-공격수-메시 3인에 의존하는 빈약한 공격 구성을 보여주는 늪축구을 구사한다.[8] 이때문에 메시가 국가대표로서 기록한 득점 대부분이 사베야 부임기에 몰려있다.
실제로도 사베야는 자신이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축구팀의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리오넬 메시는 무조건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게 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사베야는 메시에게 자기가 하고 싶은 포지션을 입맛에 맞게 골라잡도록 만들고 주장완장까지 부여했으며 메시에게 맞지 않는 선수는 가차없이 엔트리에서 빼버렸다.
규율을 중시하는 스타일때문인지 2009년 클럽월드컵에서 에스투디안테의 감독으로 참가한 사베야는 준결승 상대로 포항 스틸러스와 맞붙게 되자 포항 스틸러스에 대해 "여타 강팀들과 마찬가지로 규율을 잘 지키고 훌륭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는 팀이라 생각한다"라며 포항 스틸러스를 크게 극찬했다.#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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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8강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곤살로 이과인이 1대1 찬스를 놓치자[9] 그대로 뒤로 쓰러지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스태프들의 도움으로 땅에 넘어지진 않았지만 이미 방송카메라에 그대로 잡히며 대회 최고의 개그퍼포먼스 상위권 확정. 여담이지만 브라질 월드컵 8강 문서에 아르헨티나 vs 벨기에 문단을 참고하면 Dancer of the match에 이분이 있는걸 볼 수도 있다.
한국의 홍명보 감독보다 낮은 연봉으로 한국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을 앞두고 우승을 하든 못하든 아르헨티나 국대 감독에서 물러나는 것을 선언해 일각에선 홍명보 후임으로 모셔오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축구협회도 결승전 이후에 새 감독영입 운운한걸 보면 사베야를 노리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지만... 대체적 견해는 그래도 준우승 감독이니 아르헨티나가 붙잡거나 다른 나라 혹은 빅리그 팀들이 거액으로 영입하는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정치적으론 좌익(정확히 말해서 페론주의자)인듯 하다.[10]
축구감독으로서 모든 면에서 디에고 마라도나와는 정반대를 추구했는데 마라도나가 감독시절 총애했던 카를로스 테베스, 니콜라스 오타멘디, 하비에르 파스토레를 모두 다 엔트리에서 내쫓았다.[11] 그리고 마라도나가 외면한 페르난도 가고를 불러들였다. 리오넬 메시는 마라도나와는 반대로 훨씬 더 내려서 거진 반 미드필더로 만들었다.
운동선수 출신답지 않게 몸이 약한 편이다. 그래서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담당했을 때 간혹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직후 국가대표 감독을 그만둔 것도 아예 정부차원에서 연임시키려 했고 본인도 연임을 하고는 싶어했는데 몸이 너무 아파서였다. 결국 심장병으로 몸져누웠다. 만약 연임을 했으면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는 어땠을까라는 반응도 있다. 결국 심장병을 회복하지 못하시고 2020년 12월 8일에 운명하셨다.
[1] 아르헨티나 현지에서는 이 성(姓)이 이탈리아계이기 때문에 '사벨라(saˈβela)'로 발음한다.[2] 링크 참조#[3] 에스투디안테스가 아르헨티나 축구의 양대 조류 중 하나인 수비 축구, 실리 축구의(다른 하나는 기술 축구, 공격 축구) 본산지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수비왕 사베야가 에스투디안테스의 감독을 맡았던 것은 꽤나 의미심장하다.[4] 사실 그는 아르헨 감독을 맡기 전에 UAE의 알 자지라 클럽 감독을 맡기로 되어 있었으나 어떤 연유로 계약이 해지되어 결과적으로 아르헨 감독으로 가게 되었다.[5] 사실 사베야가 테베스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201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바티스타가 당한걸 자신도 똑같이 당할까봐 두려운 것일 뿐이다.[6] 이 선수는 '''1978년생'''으로 이때 이미 노장이다.[7] 유망주 시절 EPL상위권 4클럽 통칭 빅4의 영입제의를 받고 첼시로 이적했던 기대주였던 특급 유망주. 이후 빠르게 망테크를 탄후 베르더 브레멘에서는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측면 수비수인 바스티안 옥치프카 얼굴에 쿵푸킥을 먹이는 대형참사를 저질렀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에서 이과인 대신 디 산토를 넣고 친선경기를 했는데 0-0으로 무승부를 기록하고 말았다.[8] 그리고 이 가운데에 들어갈 곤살로 이과인이 호르헤 발다노나 에르난 크레스포만큼 못해준게 아르헨티나가 매번 준우승에 머무른 원인이 된다.[9] 크로스바를 맞고 나갔다...'''만''' 이미 이날 이과인은 전반 8분만에 대회 첫 골을 경기 선제골로 기록한 상황이었고, 이 골은 그대로 결승골이 되었고, 4강 진출에 성공했다![10] 대부분의 아르헨티나인들의 정치성향이 중도좌파성향이라고는 하지만 야당 지지율도 만만치 않고, 중도좌파 여당도 잘못하면 비난받고 반정부시위도 일어나며 지지율이 하락하는 점을 감안하면 중도좌파라기보다는 온건한 반미, 반서방으로 보는 편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서방세계를 긍정적으로 보거나 서방세계에 우호적인 성향만 아니라면 좌파/우파, 혹은 진보/보수 여부는 크게 상관하지는 않는 듯하다. 당장 후안 페론만 해도 중도성향이지만 친 공산주의는 아니었다. 후안 페론 항목, 아르헨티나 항목의 대 서방,대 러시아 관계 부분 참고.[11]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명은 14-15시즌 만개했다! 테베스는 13-14시즌의 활약을 이어가며 유벤투스의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의 일등공신이 되었고, 오타멘디는 라리가 최고의 센터백으로 성장해 발렌시아의 챔스 복귀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PSG의 파스토레는 3선으로 위치를 옮겨 2선과의 스위칭을 수행하여 마르코 베라티, 블레즈 마튀이디와 함께 리그앙 최강의 중원 삼각편대를 구성했다. 타타 마르티노가 부임한 이후 이 셋은 다시 국대에 승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