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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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2006년. 64세인데 엄청나게 늙었다.
Kenneth Lee Lay
1942년 4월 15일 ~ 2006년 7월 5일
1. 개요
2. 전반기 생애
4. 몰락과 죽음
5. 정리


1. 개요


미국기업인. 이 사람이 경영했던 기업은 2020년에도 널리 명성을 떨치고 있는 '''엔론'''이다. 경영학 교과서에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유명한 에너지 기업인데... '''나쁜 쪽으로 유명하다.'''

2. 전반기 생애


케네스 레이는 1942년 4월 15일미국 미주리 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침례회목사로 작은 개척교회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남는 시간에 농기구를 판매하여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케네스 레이는 어릴 때부터 신문 배달을 하며 집안 경제에 보탬이 되어야만 했을 정도로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런 그의 성장 배경은 그가 미래에 사회적 성공에 집착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1]
다행히도 그는 매우 명석한 편이었으며, 그 결과 그는 미주리 대학교 경제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아직 가정 형편은 어려웠기 때문에 그는 대학 공부를 하면서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렸으나, 그는 장학생 신분을 계속 유지하면서 미주리 대학교를 1964년에 졸업했고, 1965년에는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앞으로 그의 제 2의 고향이 될 휴스턴으로 이사하였고, 1970년에 휴스턴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학력자 엘리트에 기품 있는 태도[2]와 흡인력을 가졌던 그는 쉽게 취직하여 고위직으로 승진했고, 에너지 업계에서 커리어를 쌓아나가기 시작한다. 그는 엑손모빌의 전신인 엑손 컴패니에 처음으로 취직하였으며, 그 후 연방에너지규제기관(Federal Energy Regulatory Commission) 위원, 미합중국 내무부 국장을 거쳐 플로리다 가스 트랜스미션 사에서 처음으로 CEO 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초반, 그는 휴스턴에 소재한 휴스턴 내추럴 가스 사의 CEO가 되었는데, 이때까지의 그는 아직 초심을 잃지 않은 정력적인 기업가였다.

3. 엔론


케네스 레이는 1985년까지 무난하게 휴스턴 내추럴 가스를 키워온 성공적인 경영자였다. 성공의 배경에는 당시 점차 해제되기 시작하던 천연가스 산업 관련 규제가 있었는데, 레이와 휴스턴 내추럴 가스는 그것을 현명하게 활용했다. 하지만 훨씬 큰 회사인 인터노스가 레이의 휴스턴 내추럴 가스를 인수합병하면서 레이의 인생은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게 된다.
인터노스와 휴스턴 내추럴 가스의 합병은 형식상 두 회사의 대등 합병이었으나, 사실상 인터노스가 휴스턴 내추럴 가스를 인수한 것에 가까운 형태였다. 레이는 명예로운 직책에 임명될 예정이었으나 사실상 실권은 상실한 상태였다. 그러나 인수 과정에서 영 좋지 않은 비리가 발견되면서 인터노스측 경영진은 전부 몰락했고, 연류되지 않았던 레이가 합병법인의 키를 틀어쥐게 되었다. 그는 합병법인의 이름을 '''엔론(Enron)'''으로 고쳤으며[3], 앞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한 에너지 기업은 이렇게 시작을 고했다.
'''그러나 그는 회사의 장부를 들춰보자마자 의욕을 잃어버렸다.''' 합병법인 엔론은 인터노스가 휴스턴 내추럴 가스를 인수하면서 지게 된 어마어마한 빚을 그대로 승계했기 때문이었다. 레이는 엔론을 큰 대기업으로 키우고 싶었지만 빚에 허덕이는 상태에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레이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태업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가 벌인 대표적인 태업은 장부를 조작한 직원을 용서하는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짓이었다. 레이는 조작된 장부가 회사의 실적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규제 당국에 들키면서 1986년 말에 무려 '''1억 5천만 달러'''의 손실을 계상해야만 했다. 하지만 엔론 주주들은 이런 망했어요스러운 실적과 레이의 태업에도 그대로 레이를 유임시켰다. 이유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레이가 1985년까지 보인 성공을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레이는 경영에 전혀 의욕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1987년, '엔론의 운명을 결정지을 인물이 등장했다.맥킨지의 컨설턴트로서 엔론과 함께 일하게 된 제프리 스킬링이었다. 그는 엔론의 선물 거래와 장부 정리를 돕기 위해 파견되었는데, 케네스 레이의 기품 있는 태도와 고결한 인품에 감명받았으며, 또한 레이는 스킬링의 능력에 크게 흡족해했다.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으며, 결국 레이는 1990년에 스킬링이 맥킨지를 퇴사하도록 설득한 다음 엔론에 낙하산으로 취직시켰다. 그는 입사 1년만에 레이의 총애에 힘입어 재무 담당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엔론의 재무를 손 안에 쥐게 되었다. 그가 레이에게 제안한 엔론의 재무 조정 방법은 '''유령 회사를 세워 빚을 떠넘기는 것'''이었는데, 레이는 이미 일에 흥미를 잃은데다가 스킬링을 너무나도 총애한 나머지 이걸 별 생각없이 승락하고 스킬링에게 전권을 맡겼다.
한편 자신의 능력만으론 부족하다고 판단한 스킬링은 맥킨지에서 일하던 시절에 알고 지냈던 앤드류 패스토우를 엔론으로 스카웃했다. 패스토우는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을 엔론에서 100% 개화했는데, '''하필 그 천재적인 재능이...'''
스킬링과 패스토우가 작당하고 열심히 수십억 달러짜리 분식회계를 벌이는 동안 레이는 '''놀았다.''' 그는 불우한 유년기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했는지 매년 막대한 연봉과 보너스, 스톡옵션을 받았으며[4], 그것으로 부촌에 커다란 저택을 사서 가족들 모두가 호화생활을 누릴 수 있게 했다. 또한 자신은 매일 점심식사를 '''쟁반에 담아서 먹었다.''' 물론 이건 월드컴의 버나드 에버스에 비하면 약과지만...
모든 귀찮은 일을 스킬링과 패스토우에게 맡긴 그는 여동생의 여행사 사업을 돕고 엔론 직원들의 복지에 신경쓰는 등 소일거리에 힘썼다. 그래서 엔론 직원들은 그를 매우 후하게 평가했다. '인품이 뛰어나고 자애롭다'라던가, '우리 할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신 것 같아서 놀랐다'라던가...
하지만 무엇보다 레이가 제일 힘을 기울인 소일거리는 '''정치'''였다. 그는 텍사스는 물론이고 워싱턴 D.C.의 중앙정계에도 끈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부시 일가와 매우 친했다. 그 인맥으로 그는 잠시 내무부 차관을 하기도 했으며, 공화당과 민주당 양쪽에 상당한 정치자금을 공여하며 높은 정치적 영향력을 즐겼다.

4. 몰락과 죽음


그러나 엔론이 역사에 길이 남을 분식회계 스캔들로 망하면서 그는 완전히 몰락하고 말았다. 2001년 4월 17일, 제프리 스킬링이 엔론의 회계 장부가 수상하다는 리처드 그루브먼의 질문에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씹새꺄."'''[5]라고 대답한 이래 엔론은 여론의 몰매를 맞기 시작했으며, 결국 레이는 8월 14일에 그의 사표를 수리하고는 본인이 다시 경영 일선에 나서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사태를 낙관했다. 그는 일종의 내부고발이던 셰런 왓킨스의 편지[6]를 받았으나 그것을 묵살했고, 대신 다이너지(Dynergy)[7]라는 회사에게 엔론을 팔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 나섰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상황파악을 못 하고 있었다. 그는 엔론과 다이너지의 대등 합병을 주장하며 자신이 명예 회장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때 다이너지의 CEO가 날린 돌직구가 매우 유명하다.

아뇨, 엔론은 '''인수'''될 겁니다.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레이는 결국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렸으며, 그러는 동안에 엔론의 신용등급은 정크 등급까지 떨어졌다. 2001년 11월, 레이는 마지막 발버둥을 쳤다. 그는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엔론을 구명해 줄 것을 청탁했다. 자신의 정치적 커넥션이 아직 건재함을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린스펀은 그의 부탁을 거절했으며, 그가 전화했던 다른 정치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그가 뿌린 막대한 정치자금은 정작 그가 제일 어려울 때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엔론은 2001년 12월 2일파산했다.
엔론이 파산한 후, 당연히 레이는 부패한 기업가의 표본으로 스킬링, 패스토우와 함께 세트로 엮여서 거의 인민재판급으로 까였다. 그리고 재판중이던 2006년에 심장마비로 죽어 엔론 3인방 중 유일하게 법적 처벌을 피한 사람이 되었다.

5. 정리


업무에 대한 무관심과 부하에 대한 지나친 신뢰가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반면교사. 그가 자신이 해야 했던 일에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엔론 스캔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무관심나비효과를 일으켜서 세계구급 사건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물론 스킬링이나 패스토우와 같은 급으로 까이기엔 좀 억울한 사람이긴 하지만, 모든 사태를 막을 수 있었던 위치에 있었고 또 그럴 의무가 있었음에도 태업을 했다는 점에서 이 사람도 잘한 건 없다.

[1] 김우중의 아버지와 형은 납북되어서 못 만나게 되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무능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김우중은 아버지 버프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는데, 김우중의 아버지가 교장으로 있던 학교의 학생 중 한 명이 다름아닌 박정희였다. 이 인연으로 김우중은 유신정권 시기 큰 재벌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김우중은 경기고-연세대 출신이다. 당시 최명문 학교의 길을 걸은 셈. 그가 정말 가난했다면 연세대는 커녕 경기고조차 가기 어려웠을 것이다.[2] 그의 성장 배경이 결코 유복한 편은 아니었으므로, 이것은 타고난 것이라기보단 미래의 성공을 위해 열심히 익힌 것으로 추정된다. [3] 사실 레이는 Enter와 on을 붙인 '''Enteron'''을 밀었지만 사외이사가 '''님 ㅋㅋ 그거 창자라는 뜻임'''이라고 태클을 걸어서 te를 뺀 Enron으로 확정되었다. [4] 그러나 그가 대놓고 챙겨간 건 아니었고, 스킬링과 패스토우가 적당히 쥐어준 것이다. 스킬링은 레이보다 몇 배나 많은 스톡옵션을 받았다.[5] 원문은 "Thank you very much, we appreciate it... asshole."[6] 왓킨스는 '''아더 앤더슨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7] 이 회사도 2002년에 분식회계 사실이 들통나서 파산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