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호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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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일본프로야구에서 활동한 외국인 선수. 동생 트레이 호지스 역시 야구선수로서 짧게나마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에서 활동했다.
1991년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지명되어 입단한 호지스는 10년간 마이너리그에서 활동했다. 로열스에서 부진하면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을 전전했고 나이가 들면서 선발과 중간계투를 오갔다. 그러다가 2000년에 트리플A에서 2.7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수 있었는데 중간계투로서 5.19의 평균자책점으로 부진하면서 다시 마이너리그로 강등되었다.
2001년 시즌 중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호지스를 영입했다. 2001년 선발 투수로서 5승 3패 3.8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2002년에는 17승(8패)을 올리면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우에하라 고지와 리그 공동 다승왕이 되었다. 2003년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5승 9패 5.90의 평균자책점으로 부진하면서 결국 퇴출되었다.
2004년 삼성 라이온즈가 호지스를 영입했다. 팔꿈치 부상 경력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회복된 상태였고, 1년뿐이지만 메이저리그 경험도 있고 무엇보다 일본 다승왕 출신(!)인 당시의 돈 많은 삼성다운 나름 클래스가 있는 거물 용병이었다. 게다가 호지스도 거물이면서도 겸손하고 한국 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코칭스태프에게 인정받았다.
하지만 정규시즌 개막 후 호지스는 4월 한 달 동안 1승도 올리지 못했다. 이 때 평균자책점도 8점대에 달할 정도라서 퇴출 얘기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당시 삼성은 10연패의 부진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이에 김응용 감독이 주전 포수를 진갑용에서 현재윤으로 교체하면서 10연패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호지스도 현재윤과 호흡을 맞추면서 부진에서 벗어났다.
호지스는 163⅓이닝을 소화하고도 9승(10패) 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시즌 초반 부진한 탓도 있었지만 6연패를 기록하고 시즌 10번째 등판경기에서야 승리투수가 되었을 정도로 승운이 따르지 않았다. 플레이오프에서도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으로 결국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사실 이 때 128경기시절 163.1이닝이나 먹은데다 세부스탯 또한 나쁘지는 않아서, sWAR기준 2.49로 준수한 2선발 정도의 성적을 기록했으나 때는 서기 2004년, 투승타타가 지배하던 그때 그 시절이었던지라...
2005년 일본의 신생팀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하지만 2승 12패 6.44의 평균자책점으로 실망만 남기곤 퇴출되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호지스는 2006년 독립리그에서 활동한 후 은퇴했다.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2012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가 호지스를 외국인 스카우트로 채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징크스에 엄청 집착했다. 삼성에 온 후 승리를 못하자 매 경기 글러브를 바꿔 꼈고, 불펜에서 몸 풀 때도 매번 똑같은 불펜 포수와 함께 불펜 마운드 2개 중 오른쪽 마운드에서만 캐치볼을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첫 승을 기록했던 경기 전에 비타500를 마셨는데, 이후 자신의 등판하기 전에는 비타500 한 박스씩 준비하기를 원했다. 하루는 비타500을 준비하지 못해서 대신 비타500과 비슷한 드링크제를 준비했더니 아예 입도 안 댔다고 한다.
타자 몸에 바짝 붙게 공을 던지는 스타일이라서 몸에 맞는 공이 많았고, 한국에서 활동했을 때에는 사상 초유의 덕아웃 습격사건을 촉발시키기도 했다.[1] 그러한 투구 스타일은 일본 시절에도 악명이 높았는지, 삼성 입단 후 스프링캠프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연습 경기에 선발로 나선다는 오보가 나왔는데 오보인지 몰랐던 야쿠르트 선수들은 출전을 거부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라쿠텐에 있던 때에도 상대 선수에게 연속으로 몸을 맞춰[2] 라쿠텐 창단 후 처음으로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켰다. 벤치 클리어링은 집단 난투극으로 변질했는데, 호지스는 이 때 맞은 선수에게 일본어로 욕설을 했다고 한다.
1. 소개
삼성 라이온즈, 일본프로야구에서 활동한 외국인 선수. 동생 트레이 호지스 역시 야구선수로서 짧게나마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에서 활동했다.
2. 선수 생활
1991년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지명되어 입단한 호지스는 10년간 마이너리그에서 활동했다. 로열스에서 부진하면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을 전전했고 나이가 들면서 선발과 중간계투를 오갔다. 그러다가 2000년에 트리플A에서 2.7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수 있었는데 중간계투로서 5.19의 평균자책점으로 부진하면서 다시 마이너리그로 강등되었다.
2001년 시즌 중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호지스를 영입했다. 2001년 선발 투수로서 5승 3패 3.8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2002년에는 17승(8패)을 올리면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우에하라 고지와 리그 공동 다승왕이 되었다. 2003년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5승 9패 5.90의 평균자책점으로 부진하면서 결국 퇴출되었다.
2004년 삼성 라이온즈가 호지스를 영입했다. 팔꿈치 부상 경력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회복된 상태였고, 1년뿐이지만 메이저리그 경험도 있고 무엇보다 일본 다승왕 출신(!)인 당시의 돈 많은 삼성다운 나름 클래스가 있는 거물 용병이었다. 게다가 호지스도 거물이면서도 겸손하고 한국 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코칭스태프에게 인정받았다.
하지만 정규시즌 개막 후 호지스는 4월 한 달 동안 1승도 올리지 못했다. 이 때 평균자책점도 8점대에 달할 정도라서 퇴출 얘기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당시 삼성은 10연패의 부진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이에 김응용 감독이 주전 포수를 진갑용에서 현재윤으로 교체하면서 10연패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호지스도 현재윤과 호흡을 맞추면서 부진에서 벗어났다.
호지스는 163⅓이닝을 소화하고도 9승(10패) 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시즌 초반 부진한 탓도 있었지만 6연패를 기록하고 시즌 10번째 등판경기에서야 승리투수가 되었을 정도로 승운이 따르지 않았다. 플레이오프에서도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으로 결국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사실 이 때 128경기시절 163.1이닝이나 먹은데다 세부스탯 또한 나쁘지는 않아서, sWAR기준 2.49로 준수한 2선발 정도의 성적을 기록했으나 때는 서기 2004년, 투승타타가 지배하던 그때 그 시절이었던지라...
2005년 일본의 신생팀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하지만 2승 12패 6.44의 평균자책점으로 실망만 남기곤 퇴출되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호지스는 2006년 독립리그에서 활동한 후 은퇴했다.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2012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가 호지스를 외국인 스카우트로 채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3. 이야깃거리
징크스에 엄청 집착했다. 삼성에 온 후 승리를 못하자 매 경기 글러브를 바꿔 꼈고, 불펜에서 몸 풀 때도 매번 똑같은 불펜 포수와 함께 불펜 마운드 2개 중 오른쪽 마운드에서만 캐치볼을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첫 승을 기록했던 경기 전에 비타500를 마셨는데, 이후 자신의 등판하기 전에는 비타500 한 박스씩 준비하기를 원했다. 하루는 비타500을 준비하지 못해서 대신 비타500과 비슷한 드링크제를 준비했더니 아예 입도 안 댔다고 한다.
타자 몸에 바짝 붙게 공을 던지는 스타일이라서 몸에 맞는 공이 많았고, 한국에서 활동했을 때에는 사상 초유의 덕아웃 습격사건을 촉발시키기도 했다.[1] 그러한 투구 스타일은 일본 시절에도 악명이 높았는지, 삼성 입단 후 스프링캠프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연습 경기에 선발로 나선다는 오보가 나왔는데 오보인지 몰랐던 야쿠르트 선수들은 출전을 거부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라쿠텐에 있던 때에도 상대 선수에게 연속으로 몸을 맞춰[2] 라쿠텐 창단 후 처음으로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켰다. 벤치 클리어링은 집단 난투극으로 변질했는데, 호지스는 이 때 맞은 선수에게 일본어로 욕설을 했다고 한다.
4. 연도별 성적
5. 관련 문서
[1] 박명환야구TV 오상민편에서도 잠깐 그 장면이 나왔다. 참고로 김응룡 감독이 SK의 카브레라를 직접 헤드락으로 제압했다.[2] 연타석이 아니라 한 타석에서 연속이었다. 한번은 번트를 대는 과정에서 몸에 맞아 스트라이크로 판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