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민

 


'''오상민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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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2'''
'''2005'''
'''2006'''

<color=#373a3c>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15번'''
이상혁(1996)

'''오상민(1997~1998)'''

결번
<color=#373a3c>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34번'''
유현승(1994~1998)

'''오상민(1999)'''

팀 해체
'''SK 와이번스 등번호 34번'''
팀 창단

'''오상민(2000~2001)'''

이용훈(2002~200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4번'''
이용훈(2000~2001)

'''오상민(2002~2007)'''

최형우(2008~2016)
'''LG 트윈스 등번호 36번'''
이성열(2003~2008)

'''오상민(2008~2011)'''

송신영(2011)


[image]

'''이름'''
오상민(吳相敏)
'''생년월일'''
1974년 10월 20일 (50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전라남도 고흥군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등장곡'''
안진경-못된사람
'''출신교'''
군산초 - 군산중 - 군산상고 - 성균관대
'''프로입단'''
1997년 1차지명 (쌍방울 레이더스)
'''소속팀'''
쌍방울 레이더스 (1997~1999)
SK 와이번스 (2000~2001)
삼성 라이온즈 (2002~2007)
LG 트윈스 (2008~2011)
1. 소개
2. 선수 시절
3. 지도자 경력
4. 사생활 문제
6. 연도별 주요 성적
7. 관련 문서


1. 소개


쌍방울 레이더스, SK 와이번스, 삼성 라이온즈, LG 트윈스 소속의 야구 선수. 군산상업고등학교 시절 1992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타율왕 출신이다.
별명은 껌옹. 항상 껌을 씹고 있다 하여 붙은 별명이다. 어떤 야갤러가 직접 오상민에게 '무슨 껌 씹나'라고 물어봤더니 '와우껌을 씹는다' 라고 정말로 대답한 적이 있다. 치명적인 유혹의 '껌므파탈'이라고 불리기도 하나, 껌옹이 제일 많이 쓰인다. 여담이지만 껌 씹는 걸 해보라고 한 사람이 김성근 감독이라고 한다.

2. 선수 시절


[image]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image]
SK 와이번스 시절.
군산초등학교, 군산중학교, 군산상업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한 그는 입단했을 당시 재능으로는 역대 좌완투수 중 최강이라는 평가까지 들을 정도로 유망주였다. 하지만 너무 재능만 가지고 야구를 한다는 평가도 나왔다는 게 아쉬운 점이다. 1997년 데뷔 때부터 줄곧 중간계투로 등판하였으며, SK 와이번스로 바뀐 후에도 2001년까지 4년 간 60경기 이상을 출전하는 철완을 과시했다. 특히 당시 SK 감독이 투수들 팔 갈아넣기로 소문난 강병철이었다. 2년 동안 불펜으로 100이닝을 넘게 먹었음에도 10년이나 더 살아남았는데, 2001년에는 놀랍게도 규정이닝을 채우면서 평균자책점 3.57을 기록했다.[1] 선발 투수로도 간간히 등판하기도 했다.[2] 어쨌건 SK 와이번스 시절에는 전체적으로 훌륭한 중간계투였지만 특히 LG 트윈스만 만나면 그야말로 최종병기 수준. 좌타 위주의 LG 타선을 매우 훌륭히 공략했던 투수. 당시엔 LG 팬들은 오상민이라면 학을 뗐다.
[image]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01년 12월 20일 틸슨 브리또와 함께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되었고 2002년 이후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비롯하여 2005, 2006 한국시리즈에서는 홀드까지 따내며 팀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다.[3] 이상한 건 그가 잘할 때는 삼성이 우승을 못했고 그가 부진할 때 삼성이 우승했다는 것이다. 허나 아래에서도 언급할 사생활 문제 때문인지 2007년 삼성에서 방출된 후[4] 2008년 시즌 중 LG 트윈스에 입단 테스트를 거쳐 이적했다. 등판할 때마다 그럭저럭 쏠쏠히 활약했다. 2009 시즌에는 또 사생활 문제로 법정에 서는 바람에 한 달 넘게 경기에 못 나왔음에도 63경기나 등판했다. 특히 석방된 다음에는 팀이 이기든 지든 거의 매일 나오다시피하면서, 그야말로 노예마냥 굴려졌다. 2010 시즌에는 혹사 논란까지 나올 정도로 LG 불펜의 필승조로 뛰었는데, 되려 삼성 시절보다 구위가 더 좋아졌다. 이 정도면 길들여진 수준이다.
하지만 고질적인 사생활 문제 때문이었는지, 2011년 4월 26일 LG 트윈스에서 웨이버 공시되면서 방출되었고 결국 은퇴 수순을 밟게 되었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3년이 지나 2014년 야구대제전에 모교인 군산상고 선수로 등장했다. 정읍에서 사회인야구 지도를 하고 있었다가 남양주에서 유소년 야구팀 감독을 맡고 있다.[5]

4. 사생활 문제


야구 실력과는 별개로 사생활이 안 좋기로 유명한데, 특히 2000년대 들어서 좋지 않은 일이 많이 생겼다.
삼성 라이온즈에 있던 중 2004년에는 병역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2007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방출된 후 2008년 6월 LG 트윈스에 입단했으나, 2009년 시즌 전에는 도박혐의에 연루되었고, 2009년 사기죄로 대구지방법원에서 법정 구속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항간에는 사채를 끌어 썼다는 이야기까지 나돌 정도로 사생활이 그리 좋지 못했다.
2011년 4월 26일 LG 트윈스는 오상민에 대해 웨이버 공시를 요청했다. 4월 22일 잠실 KIA전을 앞두고 오상민이 갑자기 팀을 무단 이탈했고, 신상필벌의 원칙에 따라 그를 웨이버 공시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지만 뭔가 안 좋은 소문이 구단 내부에까지 퍼진 모양. 트위터를 중심으로 루머가 퍼져 나갔는데 일부 기자들의 경우 '알고 있지만 개인사라 쓰지 않는다'는 식의 코멘트를 한 것이 드러나, 이 웨이버 공시의 배경이 사생활 쪽이 아닌가 지목되었다. 박종훈 감독은 일단 구위가 떨어졌다고 말했지만 등판할 때마다 괜찮게 막았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의문스러운 점.박종훈 감독의 인터뷰 어떤 기사에서는 한계가 왔다고 했는데, 구위가 아닌 사생활 문제 때문인 듯.사생활 문제에 관한 본인의 해명.
비슷한 행보를 보인 선수로 노장진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은 공통점이 여러가지 있는데, 1974년생이고 2002년 삼성 라이온즈 우승 멤버, 그리고 사생활 문제로 인한 징계성 트레이드 혹은 방출을 당한 경험이 있고, 시즌 초반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는데 노장진 2006년, 오상민 2011년에 일으켰다. 거기에 사실상 타의에 의해서 은퇴했다는 점까지 비슷한데 노장진은 FA미아로, 오상민 방출로 끝났다. 덧붙여 둘 다 천재형 선수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서로 성향이 비슷해서 그래선지는 모르겠으나 실제로 사적으로도 어느 정도 친하다는 듯.

5. 박명환야구TV 출연


2019년 10월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하여 정수근 못지않게 상당히 입담을 뽐냈다.[6] 근황을 공개하면서 동시에 사생활 및 도박에 관한 루머에 대해 해명하였다. 도박을 한 것은 맞지만 되려 사기도박 피해를 받았고, 법정에 출두하기 위해 구단에 분명히 밝혔는데도 뭐가 꼬였는지 무단이탈 처리되었다고 한다. 또한 재판 중 판사한테 찍혀서 법정 구속당했고, 구단에서는 연봉을 마저 지급해주는 대신 방출로 마무리짓자고 합의해서 마지못해 승낙했다고 한다. 언론에 나온 것처럼 구위가 떨어졌다는 보도는 한마디로 일축하면서 LG 시절 공이 전성기로 통했던 삼성 시절보다 구속이 더 잘 나왔다고 한다.
야구계의 선후배 관계와 엄격한 규율을 상당히 중요시 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에는 프로 초년병 때 선발 등판을 앞두고 트레이너에게 마사지를 받고 있다가 어디서 신인이 마시지를 받냐고 지나가는 선배들한테 꿀밤 한 대씩 맞고 선배들이 많아서 라커룸에서는 쉬지 못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장에서 쉬었던 일화를 이야기했다.[7] 데뷔 초기 감독이었던 김성근에게 감사함을 표했는데, 신인 시절 마른 체형이었던 오상민을 보고 남들은 밥 한그릇 먹을때 두그릇 먹으라고 더 챙겨주시는 등 무섭지만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고 술회했다. 여담으로 군산상고-쌍방울 선배인 좌완투수 조규제와 얼굴이 많이 닮은 편인데, 오상민 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가 조규제라고 밝혔다.
SK 와이번스 창단 직후 해외 전지훈련에서 이호준과 이진영이 식사 도중 말다툼이 생기면서 일이 커졌는데 그 벌로 선배들한테 상당히 맞고[8] 이진영이 프로팀 후배이자 군산상고 후배다 보니 끌고가서 많이 때렸다고 한다. 당시 팀의 최고참이었던 최태원이 군기반장 역할을 맡겨서 팀의 규율을 다잡았다고 한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에는 삼성 시절 받았던 승리수당 액수가 타 구단에 비해 상당히 많아 보너스 받는걸로만 생활하고도 남을 정도였다고 썰을 풀었다. 트레이드 이후 SK와의 경기에서 끝내기를 맞고 역전패를 허용한 뒤 화가 나 분을 삭이지 못해 밥도 먹지 않고 그대로 구단 버스에 올라타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마침 김응용 감독이 오상민을 보고 "야 왜 밥도 안먹고 있어?" 하면서 매니저를 시켜 밥먹이고 씻기고 보내라고 지시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찡했다고 한다. 평소 김응용 감독은 구단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뒤도 안돌아보고 출발해 버리는 성격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의외인 셈. 동시에 동갑내기이자 삼성 시절 동료인 노장진에 대한 썰도 조금 풀었는데, 봄가을만 되면 팀을 무단이탈해 맞은 벌금액수만 상당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노씨와 다르다고 주장해 웃음을 자아냈다.
LG 트윈스 시절에는 라커룸에서 후배가 선배나 본인 앞에서 누워있거나 다리 꼬는 걸 절대 안넘어간다고 했다. 그 당시 LG는 고참 대우를 32살부터 받을 수 있었는데[9] 1980년생 동갑내기들인 정성훈, 봉중근, 이진영이 찾아와서 자기들도 고참대우를 해달라고 하니 바로 일축시켜 버렸다고 한다. 또한 삼성에서 방출당해 야구를 그만둬야 할 상황이었는데, LG 구단에서 불러준 덕분에 야구를 더 할 수 있었다면서 자신을 불러준 LG 구단과 김재박 감독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은퇴 후에도 LG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는지, 현재 본인이 남양주에서 운영하는 유소년 야구단 이름을 '남양주 트윈스' 라고 지었다고 한다.
야구를 배우는 유소년 유망주들이 코칭스태프들의 지도를 잘 소화하려고 하기보다 자꾸 프로야구선수들을 흉내내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리고 프로팀 스카우터들이 지방 학교에도 방문하고, 등록 선수가 수도권 학교에 비해 적은 지방 소재 학교에서 뛰면 출전기회가 그만큼 많이 돌아와 프로팀 스카우터들의 눈에 잘 띌 수 있는데 왜 수도권 학교로의 진학을 고집하는지 꼬집기도 했다.[10]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WHIP
1997
쌍방울
'''67'''
(3위)
77
4.91
2
4
2
-
77
7
37
39
1.43
1998
'''76'''
(1위)
68⅔
6.16
2
5
0
-
82
9
32
36
1.56
1999
'''67'''
(5위)
80⅓
5.94
2
7
1
-
92
22
34
59
1.51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WHIP
2000
SK
'''63'''
(3위)
100⅔
4.74
7
2
3
2
106
23
55
71
1.55
2001
'''69'''
(3위)
133⅔
'''3.57'''
(5위)
7
6
10
'''9'''
(4위)
123
16
49
121
(6위)
1.24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WHIP
2002
삼성
54
64
5.48
2
3
3
2
73
13
16
43
1.34
2003
47
58
2.79
4
1
3
9
49
6
16
45
1.09
2004
34
31
2.32
2
0
0
5
24
2
11
24
1.10
2005
21
8⅓
4.32
0
0
0
7
8
2
4
8
1.32
2006
49
31⅔
4.55
1
2
0
'''16'''
(5위)
30
4
12
23
1.20
2007
12
7⅓
1.23
1
0
0
0
8
0
2
5
1.36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WHIP
2008
LG
38
23
2.74
1
0
1
9
25
0
3
14
1.22
2009
63
48
3.00
3
2
1
6
49
4
16
44
1.31
2010
65
47
4.40
1
1
0
15
52
9
12
28
1.30
2011
11
5
1.80
0
0
0
1
4
0
1
3
1.00
<color=#373a3c> '''KBO 통산'''
(15시즌)
'''736'''
(4위)
783⅔
4.38
35
33
24
81
802
117
300
563
1.35

7. 관련 문서


[1] 신문에서는 그의 삐쩍 마른 몸매를 보며 골투라고 표현했다.[2] 지금으로 치면 살려조로 꼽혀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다. 딱 송창식, 장민재의 좌완버전. 그래도 오상민 본인은 혹사를 인정하면서도 이 당시에 커리어 하이였기도 하고 아픈 곳도 없었기 때문에 야구장에 가는 것이 그렇게 즐거웠다고 한다.[3] 특히 좌완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김응용 감독의 입김이 강하게 있었다는 후문이다. 6:2 현금 트레이드로 오상민, 틸슨 브리또+11억↔김기태, 김동수, 김태한, 김상진, 정경배, 이용훈이었다. 이용훈을 제외하면 당시로는 한물가거나 김응용과 코드가 안 맞은 노장들.[4] 이 무렵 팔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5] 2019년 12월 2일 박명환야구TV에 출연했는데 본인이 운영중인 남양주시 소재 레슨장을 둘러싸고 동업자 및 선수 학부모와의 트러블이 있음을 밝혔으며 그로 인하여 병원에서 우울증 초기를 진단받았다고 한다. 박명환야구TV에 첫 출연했을 당시 밝았던 모습과 비교했을 때 얼굴이 많이 어두웠다.[6] 사람들이 생각한 오상민의 이미지와 다르게 방송에서 말솜씨를 맘껏 뽐냈다. 또 출연해달라는 요청에 곧바로 구자운과 함께 출연하였다. 그 이후에도 박명환이 혼자서 외롭게 방송하는 모습을 보고 오상민이 운영하는 남양주 레슨장에서 박명환이 운영하는 수원 레슨장까지 바로 달려오는 등 종종 출연하고 있으며 이인구, 조용훈 편처럼 채팅방에 등장하기도 한다.[7] 이 당시 쌍방울은 타팀에서 방출된 후 은퇴를 앞둔 고참급 선수들(한대화, 김성래, 장채근, 김광림, 박노준 등)이 즐비했으며 해태 타이거즈 다음으로 군기가 센 팀이었다. 동료 심성보도 엄격한 팀 군기와 많은 연습량으로 인해 팀의 별명이 쌍방울 고등학교였다고 술회했다.[8]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오상민 본인이 제일 싫어하는 1년 선배한테 많이 맞았다고 밝혔다. SK 창단 멤버 중 오상민보다 1년 선배인 73년생은 심성보와 이동수가 유이한데, 심성보는 빠른 73년생으로 72년생과 같이 데뷔했기에 이동수로 추정.[9] 고참들만 사용가능한 휴게실이 있었으며 그 곳에 흡연도 하고 간식도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투수진 최고참은 류택현과 최원호였다.[10] 실제로 전주, 군산 등 전북지역 유망주들이 수도권 학교로 진학한 사례가 많다. 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