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넬리우스 1세

 

[image] '''골덴바움 왕조 역대 황제''' [image]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

코르넬리우스 1세

만프레트 1세
1. 개요


1. 개요


'''Kaiser Kornelius von Goldenbaum I Großartig[1]/コルネリアス1世'''
은하영웅전설 본편 시간대 이전의 인물로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의 24대 황제.
이 황제는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의 사촌동생이면서 양자로 책봉된 인물이었다.[2]
일단은 명군으로 들어갈 소양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입맛대로 대신들을 교체하거나 하지 않고 오스발트 폰 뮌처 등 선제가 신임하던 중신들을 그대로 유임시켰으며,[3] 내정을 위한 시책에 있어서도 양아버지이자 친척형이었던 전임자의 노선을 그대로 이어받아 충실하고 탄탄한 치적을 쌓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기이한 취미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제국원수 계급을 남발하는 것이었다. 재위기간 동안 황제가 제국원수 계급을 내린 사람의 숫자는 실로 엄청났는데, 코르넬리우스 1세의 친정에 따라간 원수 숫자만 '''무려 58명'''. 심지어 전군이 모두 원정을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니 당연히 원정군과는 별개로 제국 본토에 방어를 위한 함대가 남아있기도 했을 것이고, 원정에 나가는 장군들에게만 원수 칭호를 하사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당대 제국 원수의 숫자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80여명 정도가 존재했을 것이다.''' 만약 사망자에 대한 추서도 있었다고 생각해보면 이 숫자는 더 뛰어오른다(!)
그 모두가 크나큰 공훈을 세운 지휘관들에게 내린 포상이었다면 어느 정도 참작이 될 수 있겠지만, 그런 위대한 사람이 그렇게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을 리는 당연히 없다. 코르넬리우스 1세는 소부대 지휘관이라도 적당한 공적만 있으면 원수계급을 하사했다. 덕분에 '''"황제가 직접 통솔하는 부대는 원수 2개 소대"'''라는 비아냥까지 들었으며 '원수양산제(元帥量産帝)'라는 별명까지 생겼다.[4]

이외에도 자유행성동맹을 정복하려 시도한 것으로 유명했다. 선황이 워낙 명군이라[5] 선황을 능가하는 공적을 쌓고 싶어했는데 선황이 뮌처의 진언을 듣고 단 1번도 자유행성동맹을 먼저 건드린 적이 없기에 자신이 그걸 이루면 선황을 넘어서리라 봤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도 사법상서 오스발트 폰 뮌처는 선제 때와 마찬가지로 원정을 통해 국력을 낭비해서는 안된다고 황제에게 간언했으나 좀처럼 말을 들어먹지 않자 결국 빡쳐서 사표를 집어던졌다. 깜짝 놀란 황제는 상급대장이던 뮌처에게 제국원수 칭호를 내리는 것으로 달래려 했으나,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워낙 희소가치가 떨어졌고, 뮌처는 강직하기로 유명하여 그런 명예에 목숨거는 인물은 아니었기에 결국 사임을 막지 못했다.
물론 원정 자체가 훗날 동맹이 보여주는 제국령 침공작전급의 무모한 시도 수준은 아니었다. 코르넬리우스 1세는 문무 양면에서 뛰어난 황제였고 원정의 준비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정벌에 나서기 전에는 동맹에 특사를 파견하여 제국 휘하에 들 것을 요구하는 인내심[6]도 발휘했으며, 자신이 직접 지휘봉을 잡은 제국력 359년(우주력 668년)의 코르넬리우스 1세의 친정 자체는 어느 정도의 희생은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대성공을 거둬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등장하기 전에 은하를 통일한 위대한 정복군주로 이름을 남길 뻔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황제가 황궁을 비운 사이 궁정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를 진압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속절없이 털리면서 체면을 구긴 동맹군이 순순히 제국군을 보내줄리 없었고, 또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는 바람에 코르넬리우스 1세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동맹령으로 밀고 들어가는 동안 20명, 후퇴하여 반란을 진압하는 동안 추가로 15명의 원수가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수치상으로 보면 제국원수 35명이 전사할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이지만, 상술한 것처럼 소함대 지휘관들이 원수봉을 잡은 사례가 많아서 정말 제국군이 몰살급의 피해를 입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원정 개시에서 반란진압까지 소모된 국력이 워낙 커서 다시는 자유행성동맹 원정을 재개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후로는 정신을 좀 차렸는지 자신의 행보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더 이상 원수 계급을 수여하지 않았고, 소모된 국력을 회복하기 위한 정치도 꽤 잘했다고 한다.
원정 14년 뒤인 제국력 373년(우주력 682년), 페잔 자치령이 창건되었다.(어느 황제 시기라고 명시되지는 않았다.) 이는 원정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오토프리트 5세 정도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황제 노릇을 했던 마지막 명군으로 추정된다.[7] 친정 이후 이제르론 요새 요절과 암살, 제위계승 혼란 등등으로 기공까지 100년 사이 11명의 황제가 즉위했으니, 뭔가 제대로 할 수 있던 인물은 드물었을 것이다.
일본의 은영전 팬덤에선 가모 우지사토가 모델 아니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기이한 취미와 더불어 제법 능력이 있지만 뜻을 다 이루지 못했다는 점에서 좀 닮긴 하다.

[1] 대제란 뜻이 아니다. 대제는 루돌프 폰 골덴바움말고는 쓸수 없다. 대신 위대한, 존엄한, 즉 아우구스투스랑 비슷한 개념이다. [2] 아마도 나이차이가 엄청 많았던 모양이다. 안 그러면 아무리 그래도 동생을 양아들로 입적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코르넬리우스 1세가 자유행성동맹을 정복하기 위해 나섰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28세'''였다. [3] 반면에 지기스문트 2세는 제 입맛대로 명신들을 쫓아내고 간신들을 중용했다.[4] 이게 얼마나 심하냐면 전란이 끊이지 않았던 프리드리히 4세 말엽(정확히는 아스타테 회전 직후)에도 제국 원수는 제국군 3대 장관에 있는 이들과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예비역 원수),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참모총감 클라젠 단 여섯뿐이었을 정도다. 평화기에 원수가 58명+a라는 것은 아무리 봐도 심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심지어 라인하르트 독재 체제가 수립된 골덴바움 왕조 말기에는 원수가 단 '''1명'''이었다. 단 이건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고 때문에 로엔그람 왕조 수립 이후에는 3명, 로이엔탈 사후엔 2명, 라인하르트 사후에는 7명이 되었다.(물론 이것도 정치적인 의도가 없다고 보긴 어렵지만) 정치적인 의도 등을 배제하고 보면 3~6명의 원수만이 제국에서 필요했다는 거다.[5] 이 선황이 하필이면 골덴바움 왕조의 최고의 성군이다. 후임인 본인 입장에서는 부담이 되었을 수도 있다.[6] 그러나, 동맹에 명령조로 요구했으니 문제. 동맹 측은 특사를 모욕주고 내쫓았다. 작가 서술에서는 '어디가 잘못일까? 무턱대고 명령하던 그가? 아니면 특사를 모욕주고 내쫓은 동맹 정부요인들?' 이라는 말이 나온다.[7] 물론 코르넬리우스 2세도, 가짜 알베르트 사건에 묻혀 인상이 짙진 않지만 이쪽도 나름대로 제대로 된 황제노릇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