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폰 골덴바움

 


[image] '''골덴바움 왕조 역대 황제''' [image]
(골덴바움 왕조 건국)

루돌프 폰 골덴바움

지기스문트 1세
'''루돌프 폰 골덴바움
Rudolf von Goldenbaum · ルドルフ・フォン・ゴールデンバウム'''

'''OVA'''
'''DNT'''
}}}
'''인물 정보'''
'''신체 정보'''
남성, 195cm, ?형
'''생몰년'''
SE 268. ?. ?. ~ SE 351. ?. ?. (83세)
'''임기'''
SE ?. ?. ?. ~ SE 310. ?. ?.(?년)
'''재위'''
SE 310. ?. ?. ~ SE 351. ?. ?.(41년)
'''가족 관계'''
엘리자베트(아내), 카타리나(딸), 지기스문트 1세(외손자), 노이에슈타우펜 공작(사위)[1]
'''국적 및 소속'''
은하연방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최종 계급'''
은하연방군 소장
'''최종 직위'''
은하제국 황제
'''기함'''
불명
'''미디어 믹스 정보'''
'''성우'''
[image] '''OVA''' 오오츠카 치카오
'''Kaiser Rudolf von Goldenbaum Große Augustus[2]'''
1. 개요
2. 일생
2.1. 초년
2.2. 출세, 그리고 은하제국 건국
2.3. 황제로서의 행보
2.4. 말년
3. 후세의 평가


1. 개요


소설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골덴바움 왕조 은하제국의 초대 황제이며, 본편 시점에서는 이미 450년 전에 죽은 인물이다. 제국력 원년에서 42년까지(우주력 310 ~ 351년, 서력기원 3110 ~ 3151년) 재위했다. 성우는 오오츠카 치카오.[3] 본명 이외에 '루돌프 1세[4]', '루돌프 대제(Rudolf the Great)'로도 불린다. 은영전 세계에서는 '''만인에게 지탄받는 역사적 오점'''으로 표현되고 있다.

2. 일생



2.1. 초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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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집안에서 태어났던 루돌프 폰 골덴바움은 우주력 288년 은하연방의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소위로 임관한 루돌프는 리겔 항로 경비대의 법무장교로 부임하였는데 당대 은하연방군은 이미 내부적으로 썩어들어가던 은하연방의 부패상을 전형적으로 옮겨놓은듯 음주, 도박, 문란한 성생활에 마약까지 판을 치고 있었다. 루돌프 소위는 부임 즉시 부패에 찌들어[5] 붕괴된 병사들의 기강을 바로잡고 내부 비리를 척결하는데 최선을 다하였고 수 개월 뒤 리겔 항로 경비대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깨끗해졌다.
다만 이 과정에서 상관들의 부정부패에도 가차 없이 달려들어 많은 높으신 분들의 미움을 사버렸고 이들의 골칫덩이가 된 루돌프는 상관들의 적극적인 추천 아래에서 중위로 승진한 뒤 우주해적들의 메인 스트리트로 악명높은 베텔기우스 방면 주둔군으로 발령났다. 베텔기우스 지역은 우주해적들의 준동으로 연방군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위험한 장소였고 소위 연방군의 '높으신 분들'은 루돌프가 우주해적들에게 살해당하기를 바라고 승진을 빙자하며 사지로 몰아넣은 것이었다.
그런데 루돌프 중위는 이런 높으신 분들의 바램과는 달리 해적 소탕에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였고 이런 루돌프의 모습은 150년 전 우주해적 소탕으로 항로 확보와 시민 안전에 혁혁한 공훈을 세운 우드 제독의 모습과 겹쳐지며 연방 시민들 사이에서 '''제 2의 우드 제독'''이라는 호평을 받았다.[6]
다만 이 과정에서 비판도 있었는데, 해적들을 힘들여 체포해봐야 뇌물을 쓰거나 변호사를 고용하여 법망을 무력화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루돌프는 해적 일당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여 무차별 공격에 항복한 해적도 거리낌없이 사살하기도 했다. 이 방식은 연방 내부의 양식있는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았으나[7] 연방의 숱한 비리 문제에 지친 일반 시민들은 루돌프의 화끈한 방식에 열광하였다. 어쨌든 수 차례의 적극적인 해적 소탕 작전이 끝나자 치안 유지가 불가능해 보였던 베텔기우스 지역의 해적 조직들은 완벽하게 몰살되었고 지역의 평화가 찾아올 수 있었다.
이는 사법체계의 혼란은 초법의, 초법은 무법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내부 부정부패와 사회 혼란으로 고통받던 은하연방 시민들은 이 새로운 영웅의 탄생에 크게 기뻐하였고 루돌프는 곧 은하연방 시민들 사이에서 드높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8]

2.2. 출세, 그리고 은하제국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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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정부를. 강력한 지도자를. 사회에 질서와 활력을!"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1권 <여명편>, 김완, 이타카(2011), p.16

루돌프의 빛나는 공훈은 일개 사관학교 졸업자에 불과한 그를 임관 8년차에 소장까지 승진하게 만들어주었다.[9] 우주력 296년, 루돌프는 군대에서 물러나 정치가로 전향하였고 당연하다는 듯이 선거에서 승리하여 연방의회 의원이 되었다. 원내에 진입한 루돌프는 자신만의 새로운 정당 '국가혁신동맹'을 설립하여 여러 젊은 정치가들을 끌어들여서 몇 차례의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며 연방의회를 장악하였고 은하연방에서 암묵적으로 터부시되던 국가 원수 직위와 총리직을 동시에 거머쥐고[10] 민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절대적 독재자가 되었고 법을 개정하여 종신 집정관의 자리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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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뒤이어 루돌프는 우주력 310년, 수많은 민중들의 열렬한 지지 아래에서 은하제국의 건국을 선언하며 스스로 '신성불가침의 은하제국 황제를 자칭하였다. 새로운 제국의 탄생과 함께 우주력은 폐기되고 새로이 제국력이 도입되었으며 발할라 성계 제3행성으로 천도하여 행성의 이름을 오딘으로 바꾼 후 그곳을 제국의 수도로 삼는다. 황제 루돌프는 '''세련미를 넘어서 퇴폐하고 타락하고 불건전한''' 문화를 없애기 위해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우며 부패한 군인과 관료들을 척결하고 강력한 법치를 내세워 범죄자들의 발로를 차단하였다.

『민중이 루돌프 만세를 외치는 소리가 집까지 들려온다. 그들이 사형 집행관에게 만세를 불렀다는 것을 자각할 때까지 과연 며칠이 필요할까?』

하산 엘 사이드[12]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1권 <여명편>, 김완, 이타카(2011), p.16

사라진 은하연방의 반 루돌프파 의원이자 이제는 제국의회의 공화파 의원으로 내몰린 정치가들은 루돌프의 독재정치를 비판했지만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강력한 지도력의 황제를 추앙하며 독재정치를 문제삼지 않았다.[13]

2.3. 황제로서의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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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섭리는 약육강식, 적자생존, 우승열패,優勝劣敗,이니라."

(중략)

"인류 사회 또한 그 예외일 수 없노라. 이상자가 일정 숫자 이상 늘어난 사회는 활력을 잃고 쇠약해지기 마련. 짐이 열망하는 바는 인류의 영원한 번영이니라. 따라서 인류라는 종을 약화할 요소를 배재함은 인류의 통치자인 짐의 신성한 의무일진저."

/루돌프 폰 골덴바움,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반포하면서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1권 <여명편>, 김완, 이타카(2011), p.17~18

황제가 되고 저항세력을 말살한 루돌프는 자기 나름의 소신을 본격적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는데, 아무도 견제하지 않고 충고하지 않은 채 자기만의 상상 속에서 전문가들의 조언 없이 구상한 정책의 퀄리티라는 게 뻔하긴 했지만, 더 큰 문제는 그 퀄리티의 기반이 상상 이상으로 저급하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루돌프는 본래 우생학에 조예가 깊었는데, 인류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인류 내부의 열악한 유전자를 배제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즉위 초부터 밀어붙이지는 않았으나 결국 9년 차에 '''그 꿈을 실행에 옮긴다.''' 인류 번영의 명분을 내세우며 제정한 일명 열악유전자 배제법이 그것으로, 무려 4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을 학살하였다. 이러한 상식 밖의 막장 행보에 루돌프를 반대하던 소수파는 물론 지금까지 루돌프를 열렬히 찬양하던 민중들은 자신들의 '영웅'의 돌변에 크게 당황하였고, 제국 의회에 몇 안되는 공화파 의원들은 법안 통과를 필사적으로 저지하였지만 압도적인 숫적 우위를 가진 루돌프의 의원들에 의해 실패하였고, 공화파 의원들의 항거에 분노한 루돌프는 의회를 영구히 해산시키고 의회를 대신해 자신의 측근들을 귀족으로 서임하여 황제 중심의 귀족정 체제를 구축하였다.
자신은 제국의 번영을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루돌프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즉위 10년차에 내무성 산하에 사회질서유지국을 설립하여 비밀경찰의 업무를 수행하게 하며 반대파를 초법적으로 찍어 눌렀고 억눌린 공화파들의 테러로 내무상서이자 사회질서유지국장이었던 심복 에른스트 팔스트롱 백작이 비명횡사하자 목숨을 잃은 충신에게 성대한 장례식을 열어주는 한편, 팔스트롱 암살 용의자 2만 명을 모조리 학살하며 팔스트롱을 추모하였다. 물론 이 중 진범이 있었을 공산이 크지만 대부분은 무고했을 텐데, 그딴 거 신경 안썼다. 애초에 암살범 처형이 목적이 아니라 반대파 학살이 목적이었으니까 말이다.
게르만 문화에 심취한 루돌프는 오직 백인들만을 귀족으로 임명하고[14][15][16][17] 게르만계 성씨를 하사하며, 독일어공용어로 삼고, 국가의 지명도 게르만식 지명으로, 종교적으로도 고대 게르만풍의 신화를 도입하였으며, 화폐 단위까지 크레디트에서 독일풍인 '제국 마르크'로 변경하였다. 후세 역사학자들은 루돌프의 이런 모습은 지적 쇠약이 드러난 모습이라고 말한다.
유일하게 못 건드린 것이 있다면 바로 도량형이다. 원래 '''자신의 키와 몸무게를 기준'''으로[18] '카이저파덴,kaiserfaden,'과 '카이저첸트너,kaiserzentner,'라는 새로운 도량형 단위를 만들려고 했으나, 재무경[19],財務卿, 클레페가 이미 이것저것 건드려서 돈이 부족한데 이거 다 바꾸면 천문학적인 소요경비가 들어 제국 재정이 파탄나서 망한다며 그 액수를 보고했고, 루돌프도 이 0의 갯수가 한없이 늘어져 있는 엄청난 예산의 규모에 기겁하면서 그냥 없었던 일이 됐다. 그 덕분에 우주시대에도 지구 기준의 SI 단위, 즉 m와 g단위는 생존이 허락되어 사용되게 되었는데... 훗날 클레페의 보고는 심하게 뻥튀기된 것으로 밝혀졌다. 후대 역사가들은 아마도 클레페가 자기 신성화에 미쳐 있던 루돌프에게 슬며시 반항한 것으로 보고 있다.[20]

2.4. 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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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절대권력자 루돌프는 말년에 온갖 입맛에 맞는 맛있는 걸 골라먹다가 건강 악화로 심하게 고생했으며 우주력 351년, 제국력 42년, 83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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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루돌프는 그토록 아들을 갈구했음에도 불구하고 황후 엘리자베트와의 사이에서 네 명의 을 얻었을 뿐 공식적으로는 아들이 없었다. 사실 말년에 애첩 마크달레나 사이에서 아들이 하나 태어났는데, 문제는 그 아들이 백치기형아로 태어난 것이었고, 루돌프는 결국 정신붕괴하여 이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인해 아이를 태어나자마자 죽였고 아이를 낳은 애첩과 그녀의 가족, 담당 의사 등 관련자들까지 전원 제거했다고 한다.[23][24] 루돌프 본인이 당당한 체구의 사나이였음을 생각하면 혹 그는 초남성 증후군을 앓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확실하게 증명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며 자신의 유전자 결함 가능성엔 최후까지 눈을 감았다. 직계에게 대를 이어주지 못한 게 영원히 아쉬웠겠지만. 그의 사후 루돌프의 장녀 카타리나의 아들인 외손자 지기스문트가 25세의 나이로 2대 황제에 등극하게 된다.

3. 후세의 평가


이후 자유행성동맹, 로엔그람 왕조 시대에선 문명의 발전보다 숙청 및 자기 신성화에만 골몰해 인류의 진보를 가로막은 인물로 평가된다. 황제 즉위 후 생애에 걸쳐 '''40억 이상을 학살'''했으니, 아마도 은하영웅전설에서 인류 역사상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사람들 중에서 1-2위를 다룬다. 게다가 그 40억 대부분이 반대파면 그나마 독재자로써 정치적 선택이라 볼 여지가 아주 조금이나마 있지만 알다시피 이 인간은 열악 유전자 배제법에 따라 열악 유전자 보유자를 자기 마음대로 정하고 죽였기 때문에 그 점에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25] 덕분에 자유행성동맹 측에선 나노 단위로 깐다. 당연히 그가 한 짓 때문에 그는 필연적으로 까일 수밖에 없다.
하여간 루돌프 폰 골덴바움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면, 아우구스투스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식의 황제 즉위 + 아돌프 히틀러, 스탈린 식의 집권과 악행 + '''악행을 저지르고도 늙어서 벽에 똥칠하다 죽을 때까지 잘 먹고 잘 산''' 인물.[26] 황제가 된 이후의 행보(의회해산, 인종차별 등)는 스타워즈팰퍼틴과도 비슷하다.[27] 애초에 둘다 히틀러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니 당연하겠지만... 그리고 우상화 행적을 보면 김일성이랑 판박이다. 무능하고 삽질만 일으킨 김일성과 달리 루돌프 폰 골덴바움은 능력은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28] 김일성과 비교하기 미안한 정도의 차이는 있다. 민중들에게 인기를 얻은 이유가 범죄자에 대한 무자비한 즉결처분이라는 점에서는 로드리고 두테르테를 떠올리기도 한다.
얼음과 불의 노래마에고르 1세와도 비슷하다. 두 사람 모두 체격이 컸다는 점, 즉위 전부터 전공으로 지지를 얻은 점, 제위 후 벌어진 막장 학살+폭정 행위, 아들을 전혀 낳지 못했고 기형아를 낳자 산모 및 관련자들을 제거한 점이 비슷하다. 차이점이라면 루돌프의 경우 딸들은 정상인으로 살아남아 그 딸들 중 한 명이 낳은 외손자가 후대의 왕이 되었지만, 마에고르는 여러 아내를 두었음에도 살아있는 아이는 커녕 남녀 가릴 것 없이 용 모습에 비늘이 섞인 기형아들이 사산된 채로 태어나 끝내 자식을 보는 데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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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후에 골덴바움 왕조에 의해 제국 곳곳에 큼지막한 동상이 세워졌고, 은하제국의 백성들은 다들 여기에 의무적으로 경례를 해야 했다. 그것도 눈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기에 경례를 안하면 공화주의자로 몰려 '''혹독한 고문과 같이 대역죄인이 되어 3대가 멸문당하기에''' 억지라도 해야했다. 라인하르트 역시 루돌프 동상에 억지로 경례하면서 키르히아에스에게만 이런 구역질나는 우상화에 대한 혐오감을 밝혔고, 이후 골덴바움 왕조를 뒤엎고 황제에 오르자마자 이런 동상은 죄다 박살났다.
라인하르트는 이후 동맹을 굴복시키면서 거대한 알레 하이네센의 동상을 보면서 "알레 하이네센이란 사람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에 대한 것을 짐도 조사해보니 적어도 이런 걸 좋아할 리가 없던 사람이다."며 동상 철거를 명령했다. 사실 라인하르트 그 자신에 대한 우상화도 매우 혐오하여 제국 역사가들 기록을 봐도 라인하르트가 죽은 뒤에 라인하르트 동상도 세워진 게 그리 없으며 거대 동상이니 기념비는 절대로 세우지 말라는 본인의 엄명도 있었다고 한다. 다만 라인하르트도 그냥 단순한 기념을 위한 동상은 묵인했는지 하이네센 기념 경기장 사건때 죽은 제시카 에드워즈의 동상은 자신이 허가한 등신대에 속하는 동상이라 철거되지 않았다. 요컨데 동상이라 해도 단순한 기념이라 놔둔 것이지, 우상화 목적이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래서인지 율리안 민츠가 오딘에 방문했을 때, 이미 왕궁은 박물관으로 바뀌고 있었고, 쓰러진 루돌프의 동상 앞에는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었을 정도였다.
루돌프가 세운 골덴바움 왕조를 멸망시킨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루돌프 폰 골덴바움에 대해 그의 군사적 능력치나 은하연방을 멸망시킨 것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거대한 제국의 정복자가 되어 얻은 강대한 권력을 자기 우상화라는 가장 우매한 짓에 낭비했다는 것을 무척 혐오했다. 그야말로 화려하게 나와서 더럽게 추한 짓만 하며 낭비했다며, 그 강대한 권력을 올바르게 썼다면 인류가 얼마나 기록적인 발자취를 남길수 있었겠냐며 독설을 퍼부었다. 그는 나중에 황후가 되는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에게 루돌프에 대해 번개같은 군주라고 하던 제국 역사가들의 의견에 무척 공감하며 번개는 내리칠때는 강렬하지만 정작 아무런 도움이 못된다고 골덴바움이 하던 짓이랑 같다고... 하지만 번개는 대기의 질소를 땅에 내려보내고, 오존층을 확보시키는 중요한 일을 하기에 아무런 도움이 못되는 번개같다는 비교는 완전히 맞지 않으며 라인하르트가 골덴바움을 혐오하기에 한 말임을 고려해야 한다.
당연하겠지만 자유행성동맹에서는 루돌프의 이름은 아예 최악의 욕설로 꼽힌다. 스타디움 학살 사건 당시 제시카 에드워즈 의원은 진압군인 크리스티앙 대령에게 맞섰는데 크리스찬이 무고한 시민들을 폭행하는걸 보다못해 "루돌프와 같다"라고 했다가 크리스티앙에게 맞아죽었다. 결국 크리스티앙은 분노한 시민들에게 맞아죽었다.[29] 그런데... 대원비디오에서 낸 은영전 OVA 1기에선 양 웬리가 로엔그람 후작은 제2의 루돌프가 되려는 건 아니겠지? 라는 말을 더빙에서 제2의 히틀러라고 의역해버렸다.
그러나 양 타이롱은 루돌프가 악당이지만, '''그런 그를 지지하던 은하연방 대다수 민중들도 잘못'''이라고 같이 비판했다.[30] 아들인 양 웬리에게 어릴적부터 이야기하면서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놔둔 이들도 지지하던 이들이랑 차이가 없다'''면서 결국 다 같다고 보았다. 나중에 라인하르트가 양 웬리를 알아서 제거하려던 자유행성동맹에 독설을 퍼부을때, 힐데가르트는 민주공화정이든 군주제든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이야기하면서 그 골덴바움 왕조에서 폐하같은 분이 계셨다는 걸 이야기했다. 이에 라인하르트도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 꼭 어느 정치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동감했다.

[1] 이 사람은 지기스문트 1세의 아버지다.[2] 신성한 황제로서의 호칭. 대략 잘 의역하면 존엄하고 위대한 황제 루돌프 대제 [3] 아들인 오오츠카 아키오춘우 지엔을 맡았다.[4] 근데 사실 루돌프 2세가 없으며 작가의 실수로 추정. DNT에서는 루돌프가 황제에 오르면서 루돌프 1세를 자칭한 것으로 수정했다.[5] 특히 4대악 근절에 앞장섰다고 한다. 그중에 동성애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 그의 유별난 동성애 혐오는 여기서 비롯된것 같다.[6] 참고로 중위 신분으로 어떻게 이런 전공을 세웠는지는 의문이다. 중위 정도면 제국에서는 기껏해야 항해장 자리를 맡을 자리, 동맹에서는 경비함대 참모에 불과하다...[7] 후일 루돌프는 나라를 위해 필요없거나 위협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이렇게 아무런 사회적 합의나 절차 없이 열등한 사람으로 분류하는 것만으로도 마구 죽여버릴 수 있는 열악 유전자 배제법을 통과시킴으로써 그들의 우려가 거짓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8] 흥미롭게도 민주주의를 파괴한 자신과 500년 뒤 등장한 민주주의의 수호자는 둘 다 군인이고 중위 신분일 때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그 방법이 달라서 루돌프는 '''적을 때려잡아''' 영웅이 되었고 양은 '''민간인을 보호하여''' 영웅이 되었다는 것인데 이들의 향후 행보를 생각하면 흥미로운 부분이다.[9] 라인하르트보다는 늦긴 하지만 라인하르트는 애당초 승진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빨랐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황제 총희의 동생'이라는 배경으로 얻은 황제의 배려라는, 전제국가에서나 가능한 치트키 없이 본편과 같은 출세가도는 불가능했다. 보통 유년학교 졸업생은 준위로 군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거랑 달리 라인하르트는 소위 계급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참고로 양 웬리는 29세에 준장이었다. 특히 양이나 라인하르트는 각각 제국과 동맹이라는 대등한 적국과의 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것으로, 반대로 말하자면 그 정도의 대공을 세울 수 있는 '전쟁 상대'가 존재했기에 이런 출세가 가능했다. 루돌프 당시 은하연방은 제국처럼 특정인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승진에 어드밴티지가 생기는 전제사회도 아니었고, 루돌프는 국가 고위층과 척을 지면 졌지 우호적 관계도 아니었던데다, 전쟁할 타국 자체가 아예 없어서 우주해적 상대로나 전공을 세울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돌프는 자신의 실력만으로 국가의 명운을 건 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후세의 두 영웅과 비슷한 스피드로 출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니 그 군재를 짐작할 수 있다.[10] 국가 원수와 총리직의 겸임을 금지하는 성문화된 법률 조항이 없었고 암묵적인 규칙만 있었던 것을 이용했다(이걸 먼저 한게 히틀러. 한국에서 히틀러 총통이라 번역되는 이유부터가 대통령+총리=총통이다) . 이러한 일이 선례가 되어서 은하연방의 후신을 자처하는 자유행성동맹최고평의회의 경우 부의장이 국무위원장을 겸하는 것 이외의 모든 겸직을 금했고 때문에 욥 트뤼니히트조차 내각에 있던 시절이나 정부 수반 시절이나 아무 자리도 겸직하지 못했다.[11] 사진을 자세히 보면 루돌프가 은하제국의 군복을 착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은하제국의 군복 역사는 초대 황제 루돌프로부터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12] 공화파 정치가로 루돌프의 대관식을 보며 이 같이 쓴 일기는 제국 당국에 의해 발매 금지 처분을 받는다.[13] 은하연방 말기 사람들이 독재정치로 위기를 타파하려고 했다는 것에 율리안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바 없다고 한탄한다.[14] 수백 년 전인 지구통일정부 시대부터 인종 간 통합이 시작되었으니 루돌프 시대에는 순수 백인 혈통이니 하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다. 더구나 겉으로만 백인이든 어쩌든 3천억 명에 달하는 은하연방 시민중에 백인 인종이 많아봐야 얼마나 많겠는가? 천년 정도 이전 시대에 존재하던 인종주의를 부활시킨 루돌프는 진정 미치광이였던 셈.[15] 다만 이런 설정은 다소 모순이다. 연방 시민 중 백인 인종 전체가 단결하여 인종주의를 추종하는 게 아닌 이상 루돌프의 백인우대정책은 '반대파 백인 + 비백인 전체'의 상당한 반발을 살 수 밖에 없다. 이러면 아무리 못해도 최소 '''2천억 명 이상'''을 적으로 돌리는 셈, 정계에도 경제계에도 군부에도 비백인 인종이 가득할텐데 루돌프가 무슨 수로 이걸 억압하고 자신의 이상을 관철하겠는가.[16] 이 부분에 대해 작가 본인은 '''앵글로-색슨풍의 등장인물 이름은 재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랬다고 답했다. 독자(일본인)에게 거리감이 있는 이름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패션계에 종사하는 한 사람이 '''"여성에게 인기를 끌려면 프랑스나 이탈리아계 이름을 써야지, 독일계나 러시아계 이름은 절대로 인기를 끌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고 작가는 그럼 그 '''절대로 못한다는 것을 자기가 해보고 싶어서''' 독일계 이름을 지으면서 게르만 설정도 넣게 된 것. [17] 그리고 작품이 대박 나면서 독일계 이름이 일본 서브컬쳐계에 심심찮게 등장하게 되었다.[18] 키 195cm, 몸무게 99kg.[19] 해적판은 을지서적에서는 재무장관, 서울문화사판은 재무상서라고 번역했었다.[20] 그렇다고 클레페의 주장을 단순한 과장이라고 보기는 어려운데, 현재 쓰고 있는 도량형을 바꾸려면 컴퓨터저울 등 계산기기의 분석과 계산을 관여하는 시스템을 모두 갈아치워야 하는데다가 수학이나 경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 역시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계산을 해야하기 때문에 여간 고역이 아니다. 게다가 갑자기 도량형을 바꾸면 이걸 쓰는 국민들한테도 여러모로 부담이 가는데다 최악의 경우 온도, 몸무게, 질량, 크기 등 계산 결과가 혼동되거나 오류가 생겨 오히려 사회 전체에 큰 악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21세기 미국이 원전이 셧다운되고 우주선이 터져나가는 상황에서도 미터법 도입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클레페의 왜곡된 보고도 단순히 루돌프의 독선적인 행동에 대한 저항 때문이겠지만, 오히려 이것이 제국을 망치는 독이 될 수 있다고 어느 정도 예상했을 것이다.[21] 사실 열악유전자 배제법 선포 당시 그의 나이 42세였다. 초창기와 비교해보면 많이 나이가 들었다.[22] 제국 유년학교사관학교에 대해 청렴을 가장한 예산 삭감을 강행하여 생도들이 심하게 고생하기도 했다. 그래놓고, 본인은 고급스런 먹을 것만 골라 먹다가 건강 악화로 앓아야 했다. 때문에 은하제국 유년학교 살인사건 당시 라인하르트도 이 점을 들어 루돌프를 비웃었다.[23] 열악 유전자 배제법같은 악법을 만든데 대한 응보라는 후세 사람들의 평가가 있다.[24] 원래 열악유전자 배제법은 루돌프가 만든 정신병자, 장애인, 기형자 등을 제거하는 법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후대 과학자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루돌프의 일족 내에서도 몇몇이 유전병 증세를 보였단 사실이 드러났고 그의 혈족에서도 유전병 의심자가 있었단 사실이 드러났다. '''즉,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만든 루돌프와 그 일족들이 사실은 그 법에 따라 제거당해야 할 1순위였던 것.'''[25] 그 후대인 지기스문트 1세는 공화주의자 5억명을 처형했고(다만 지기스문트 1세가 루돌프같은 살인마 기질이 있어서 그런건 아니고 이 5억명은 반역자였다.), 살인마 기질에서는 그를 능가하는 후손 아우구스트 2세조차도 6년간 고작(!) 600만 ~ 2000만명만을 죽였다.[26] 여기에다가 그의 후손들은 무려 490년이나 권력을 이어갔다.[27] 다만 팰퍼틴은 인간중심주의에 큰 관심은 없었다.[28] 군사적, 국정적 업적은 전무했던 김일성과는 달리 루돌프는 해적 토벌의 공으로 20대에 장성급으로 진급하기까지 한 명장이자 부정부패와 퇴폐요소들을 청소하고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사회를 안정시킨 명군이다. 김일성에겐 전과라곤 보천보 전투밖에 없으며 그것마저 선전효과만 있었지 실제 전과는 별거 없고 김일성이 직접 지휘한 것도 아니라는 얘기가 있다. 설령 보천보 전투의 북한 선전이 진실이라 가정하더라도 한국전쟁이라는 삽질은 누구나 다 아는 김일성의 병크. 다만 김일성도 집권 초기에는 한국전쟁 빼면 나름대로 그럴듯한 지도자였다는걸 보면 이 역시도 루돌프와 맞어떨어지는 바 있다.[29] 사실 구국군사회의는 약자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이란 맥락에서는 루돌프와 판박이였다. 양 웬리도 이를 지적하며 구국군사회의를 비판했다. 정작 구국군사회의에서도 루돌프는 싫어한게 아이러니하다.[30] 실제로도 개발도상국의 독재국가들에서 독재자들을 지지하는 국민이 상당하다. 독재자들의 폭정도 이들이 있기에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