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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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TAR 2011에 전시된 모델과 컨트롤러이다. 일본판 패밀리 컴퓨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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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판(패밀리 컴퓨터)
북미판 및 유럽판(NES), 한국판(현대 컴보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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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판 패미컴의 카트리지[1]

미국판, 유럽판 NES의 카트리지
[2]크기는 원본보다 더 크지만 용량은 더 적다(...).
'''패밀리 컴퓨터'''
ファミリーコンピュータ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
현대 컴보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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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a1019><colcolor=#fdfef4> '''개발사'''
<colcolor=black> '''닌텐도'''
'''발매일'''
'''1983년 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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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0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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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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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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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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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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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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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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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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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사양
4. 개발
5. 패미컴 출시
6. 해외 진출
7. 다른 가정용 게임기와의 경쟁
8. 미국의 반독점 규제
9. 불법 복제판 범람
10. 단종 및 사후 지원
10.1. 단종 이후 소프트웨어
11. 주변기기 및 기타 하드웨어
11.1. 닌텐도 엔터테이먼트 시스템
11.2. 뉴 패밀리 컴퓨터/NES2
12. 특수칩
12.1. 닌텐도 특수칩
12.1.1. 서드 파티 특수칩
13. 복각판
13.1. NES 클래식 에디션
13.2. 닌텐도 클래식 미니 패밀리 컴퓨터
1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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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닌텐도에서 처음으로 출시한 카트리지 교환식 8비트 가정용 게임기이다. 북미 시장에서는 아타리 쇼크 이후 게임업계를 살린 전설적인 게임기로 평가된다.[5]
일본 동시 출시 게임은 동키콩, 동키콩 Jr, 뽀빠이.
2003년 9월 25일, 발매한지 '''20년''' 이상 흘렀던 시기에 닌텐도에서 슈퍼 패미컴과 함께 공식 단종을 선언했다. 닌텐도가 발표한 패밀리 컴퓨터의 전세계 누계 판매 대수는 6,191만 대이며,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은 4,024만 장의 슈퍼 마리오브라더스이다.

2. 상세


1983년 7월 15일에 일본에서 패밀리 컴퓨터로써 처음 발매되었고, 북미에서는 1985년 10월 18일에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고, 유럽에서는 1986년 9월 1일에 북미판과 같은 이름으로 발매되었으며, 대한민국에서는 1989년현대전자에서 북미판 NES를 수입하여 "현대 컴보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하었다.
자사의 히트 아케이드 게임 동키콩을 뛰어난 품질로 이식하여 초반에 많은 관심을 받았고, 이후 허드슨이나 남코 등의 서드파티들의 참여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슈퍼 마리오브라더스의 발매로 사회현상의 경지에 오르게 됐다. 또한 젤다의 전설, 드래곤 퀘스트, 파이널 판타지, 록맨, 메트로이드 등 패미컴만의 뛰어난 오리지널 게임들이 나오면서 역사상으로 매우 성공한 게임기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특히나 서드파티 비즈니스의 기준을 확립하여 현재 게임기 산업 구조의 표준을 구축해 놓기도 했다.[6] 명실상부한 1980년대의 대표적인 발명품으로 봐도 부족하지 않다.
가격이 오르는 것을 감수하고 튼튼한 ABS수지[7]로 만들었다. 반대로, 가격 절감을 위해 패드는 본체에 부착되도록 했다. 색깔은 흰색과 빨간색인데, 빨간색은 패미컴 개발 당시에 사장이었던 야마우치 히로시가 두르고 있던 목도리와 비슷한 색으로, 그가 좋아하는 색이라고 한다.
한동안은 세이브 시스템이 없어서 패스워드를 제공해 입력하는 방식의 간이 세이브를 해야만 했다. 마스크 롬에 추가로 SRAM을 붙이기 쉽지 않은 구조이기 때문이었다. 1986년에 나온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 덕분에 편리하게 세이브할 수 있게 됐다. 1987년에는 배터리 백업 시스템이 등장하게 되었다.


'''17 Best Old Nintendo Commercials'''
'''뉴 패미컴 광고'''


'''오스트레일리아 광고'''

3. 사양


<colbgcolor=#9a1019><colcolor=white> '''패밀리 컴퓨터의 사양'''
'''CPU'''
리코#s-2.1 2A03 1.79 MHz[8]
'''음원'''
CPU 내장 PAPU[9] 5채널[10]
'''PPU'''
리코#s-2.1 2C02 5.37 MHz[11]
'''RAM'''
워킹 RAM : 2KB SRAM
VRAM : 2 KB SRAM
'''표시화소 수'''
256×240[12]
'''색 표시 성능'''
52~56색[13]
동시 발색 수: 25색[14]
'''스프라이트
오브젝트'''
사이즈는 8×8 또는 8×16
1화면 중 64매 표시가능[15]
스프라이트 캐릭터 패턴(그래픽) 64종류 정의 가능
스프라이트 수평/수직 반전 가능
스프라이트 표시 위치는 BG의 앞뒷면 선택 가능
'''BG 화면'''
256×240 영역 2개 화면[16]
BG 캐릭터는 스프라이트처럼 8×8도트 256개
스프라이트는 별도의 BG 캐릭터 셋을 가짐
'''카트리지'''
롬 카트리지
'''규격'''
254㎜×203㎜×64㎜, 1.25㎏
8×8 도트의 모음이 스프라이트의 최소 구성 단위이며, 이 스프라이트를 1화면에 최대 64매[17]까지 표시할 수 있다. 게임팩에 넣을 수 있는 스프라이트 전부를 한 화면에 동시에 표시할 수 있는 것이었다. 컬러 팔레트는 한 팔레트에 3색+투명 1색, 이것을 동시에 스프라이트 4 팔레트, 배경 4팔레트 합계 8팔레트 동시 25색으로 표시할 수 있다. 이는 1983년 당시의 게임기로서는 매우 높은 성능이었다. 가격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초기 패미컴의 게임 데이터 구성은 8 KB의 칩 하나에 스프라이트와 배경의 패턴이, 코드와 데이터는 다른 32 KB칩에 담겨 있다는 구성이다.[18] 이 안에는 8x8 스프라이트 1패턴이 256매(16x16) 담겨 있는 스프라이트와 백그라운드 데이터 테이블 두 개가 들어있다. 8x8x16x2=4KB가 아니라 8KB인것은 하나의 픽셀당 4색의 색상정보를 담을 2비트(00,01,10,11)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세한 설명 보통 8×8 픽셀은 너무 작기 때문에 탄환을 표시하는 데에나 쓰고, 캐릭터는 이런 스프라이트를 보통 4장 정도 모아서 16×16의 메타 스프라이트로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19]
스프라이트는 하나의 스캔라인에 8개(8x8=64픽셀)만 표시할 수 있으며, 그 이상은 그냥 보이지 않게 된다. 그래서 개발자들은 4장 이상을 표현할 때는 스프라이트의 우선순위를 틱마다 반전시켜 빠르게 점멸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4개 이상의 캐릭터가 한 줄에 설 때 깜빡이는 건 보통 이것 때문이다. 마리오가 위로 커지는 이유도, 롤플레잉 게임의 파티원이 4명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열혈 돗지볼같이 한 화면에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는 게임들은 화면이 매우 깜빡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도 위의 영상처럼 기기의 한계를 초월한 뛰어난 컷신을 활용한 게임이나 입체감을 잘 드러낸 게임들도 있었다.
패미컴의 또 다른 장점이라면 컨트롤러의 디자인이다. 컨트롤러의 버튼 배치(왼쪽에 일체형 십자키, Select/Start 버튼, 오른쪽에 A/B 버튼)가 무척 뛰어나서, 그때까지 중구난방으로 난립하던 컨트롤러 배치의 표준이 됐다. 앞부분에는 확장 컨트롤러 포트가 있는데, 이는 재퍼와 같은 주변기기를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NES는 패드가 탈착식인지라 삭제 되었으며, 뉴 패미컴의 경우 패드가 탈착식으로 변경 되었으나 일본판에는 확장 포트가 장착 되어있다.[20]
패미컴의 2P 컨트롤러에는 마이크가 내장되어 있는데, 아이들이 자기 목소리가 TV로 나오는 것을 좋아할 것 같아서 넣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고 한다. 이걸 활용한 게임이 젤다의 전설, 타케시의 도전장, 광신화 파르테나의 거울 등이다. 사실 음성인식 기능 같은건 없고, '큰 소리' 와 '침묵' 두 가지밖에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패밀리 컴퓨터용 가라오케 소프트로는 반다이에서 만든 가라오케 스튜디오가 있고, 한국에서 무단으로 게임을 만든 '까치와 노래친구'[21]와 '패밀리 노래방'[22]이 있지만 셋 모두 팩에 마이크 인 포트가 붙어 있어서 동봉된 마이크를 연결해 사용하며, 패미컴 2P 포트의 마이크 기능은 쓰지 않는다.
RF 방식으로 출력하는 경우 NTSC-J는 CH 1, 2지만 NTSC-M 수상기는 유선 95, 96으로 설정해야 출력이 된다.[23][24][25]
전원 입력은 기본으로 제공되는 어댑터 기준으로 DC 10V 0.85A를 사용한다. 후속작 SNES의 기본 제공 어댑터 규격과 같으며, 서로 호환이 된다.

4. 개발


1981년 10월, 게임 & 워치가 히트하면서 닌텐도의 개발 1부가 활발해졌을 때, 컬러 TV 게임 시리즈와 레이더스코프를 말아먹은 개발 2부는 직원도 줄고 할 일도 없어진 상태였다.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는 개발 2부 부장 우에무라 마사유키의 집으로 전화하여 게임 & 워치의 후속작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니 잘 부탁한다는 지시를 받았다. 우에무라는 처음엔 컬러 TV 게임의 후속기를 준비하라는 뜻으로 알았지만, 야마우치는 몇 차례의 전화통화로 계속해서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1. 소프트웨어 내장이 아닌 카트리지 교환 방식
2. 3년간 경쟁자가 나오지 못할 사양
3. 카세트비전과 그 카트리지보다 저렴한 가격
4. 샤프전자와 같이 작업하지 말 것[26]
5. 기한은 내년 중순까지
우에무라는 시중에 판매중인 게임기를 하나씩 분해하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아타리 2600이나 마그나복스 오디세이의 칩을 녹이고 회로를 살펴보며 패미컴 개발에 참고할 만한 것이나 특허 침해가 될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았으나 그 기기들로는 충분한 사양을 갖추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패미컴 개발 프로젝트 가동 직전에 콜레코에서 동키콩 라이선스를 얻기 위해 콜레코비전의 프로토타입을 들고 닌텐도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화려한 화면이 매끄럽게 움직이는 영상을 보고 개발 2부 직원 전원이 깜짝 놀랐으며, 훗날 우에무라는 이때의 경험이 패미컴 개발에 큰 자극이 됐다고 말했다. 제2개발부 직원들이 상상하는 패미컴 완성품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아타리 2600이 아닌 콜레코비전이었다. 우에무라는 동키콩의 회로를 IC화하면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3년이라는 기한은 무리라고 답했지만 야마우치는 복제품이 범람하는 게임 & 워치의 상황을 보니 그정도가 아니면 안된다고 하였고 샤프와 일하면 안된다고 하여 LSI 칩을 개발할 파트너 회사를 찾아다녔으나, 닌텐도라는 회사의 위치와 무리한 요구 조건 덕분에 번번이 거절당하는 나날이었다. 그러다가 패미컴 개발 프로젝트를 개시한 지 2개월 만에, 최신 설비가 놀고 있다는 리코에서 연락이 왔다. 닌텐도는 컬러 TV 게임의 LSI를 미쯔비시와 공동으로 개발했었는데, 마침 그 LSI 개발자가 리코로 이직해 있었기 때문에 이야기가 쉬워진 것도 있었다. 거기에서 꺼낸 "동키콩이 돌아가는 칩을 만들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은 그 어떤 요구사항보다도 이해하기 쉬운 것이었다. 수십 개의 칩으로 돌아가는 아케이드용 기판을 원칩으로 한다는 도전과제도 과제이지만, 자신들이 잘만 만들면 동키콩을 집에서 플레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큰 자극이 된 것이다. 닌텐도는 참고용으로 동키콩 아케이드 게임기를 리코에 갖다 놓았다.
거기에서 리코는 CPU로 코모도어 PET애플 II에도 쓰인 MOS 테크놀로지의 6502를 제안했다. Z80의 라이센스를 받는데는 시간도 걸리고 리코에서는 MOS 테크놀로지의 6502가 자일로그 Z80 칩 사이즈의 1/4밖에 되지 않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MOS 테크놀로지의 6502의 칩 사이즈가 작아 저렴하다는 점과 일본 내에 잘 알려지지 않는 CPU라는 점, 이 두 가지 장점을 보고 닌텐도는 리코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특히 후자는 엄청난 강점으로 작용해서 타사에서는 1년 동안 패미컴에 손도 댈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시에 유행한 인텔 8080이나 자일로그 Z80을 건너뛰고 생소한 6502를 선택하면서 닌텐도 내부에서도 큰 반발이 일어났다. 6502로 개발할 수 있는 사람은 일본 안에서 손에 꼽을 지경이었기에 닌텐도는 6502의 개발 도구[27]제작과 동키콩을 비롯 다양한 게임들을 개발하기 위해 인근의 대학에서 아르바이트를 모집해도 단 1명이 응모해 올 정도로 6502를 다루는 사람은 귀했다. 개발 1부에 파견한 팀원까지 복귀시킨다. 여기에 운좋게도 '살아있는 6502 매뉴얼'이라는 별명을 가진 카토 슈헤이加藤周平 라는 신입사원 덕분에 소프트웨어의 개발에 가속도가 붙는다.
6502 자체만으로는 당시 유행이었던 카세트비전이나 퍼스컴 등의 경쟁 게임기들을 압도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래픽 보조 처리 칩인 PPU(Picture Processing Unit)도 같이 개발했다. PPU는 강력한 성능으로 괜찮은 그래픽 묘화가 가능했다고 한다.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이 제시한 '''CPU와 PPU 한세트당 2천 엔을 넘기면 안된다'''라는 조건에 리코는 '게임기라고는 해도 어엿한 컴퓨터인데 그 안에 들어가는 칩을 2천엔 이내로 만들라고 하니 울음이 나왔다' 라고 했다. 일설에는 2년간 300만대 주문을 보증했다는 소문이 돌었으나 야마우치 사장은 그런 일은 없었고 반도체는 양산하면 가격이 내려가니 리코에서 충분히 팔릴 것이라는 판단 하에 결단하였을 것이라며 부인했다. '전시유희대전' 이라는 책에 의하면 야마우치의 요구에 '100만대를 주문하면 가능하지만 그 이하라면 불가능하다' 라고 답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982년 3월부터 구체적인 게임기 개발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프로젝트 이름은 '텔레비 게임' 부터 시작해서 게임 컴퓨터를 줄인 '''가메코무 GAMECOM'''이라 불렀는데 그 외에도 다들 제각각 부르는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품명은 홈 비디오 컴퓨터를 줄여 HVC로 결정되었지만 패미컴이라는 이름 자체는 '홈 컴퓨터도 퍼스널 컴퓨터도 아닌 패밀리 컴퓨터 줄여서 패미컴' 이라는 식으로 최후의 최후에 결정되었다고 한다.
디자인은 최초 구상이 본체에 조이스틱이 붙은 형태였는데 요코이 군페이의 개발 1부에서 디자인을 맡아 본체에 패드가 두 개 붙은 형식으로 변경되어 돌아온 것에 우에무라가 사와노 타카오의 제안으로 십자 키를 붙였다고 한다. 사양만으로도 1만 5천엔은 넘는 수준이었는데 외장에 ABS 수지 내부에는 당시 값비싼 유리에폭시 기판을 사용하는 등 직접 고급품이라 부를 정도로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에는 'ROM은 낡은 것이고 이제는 DRAM의 시대' 같은 풍조가 있어서 게임 카트리지용 롬을 생산해 줄 곳 조차 없어서 찾아다니느라 고생했는데 당시 워드프로세서를 만드느라 롬을 제조중인 도시바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의 문제로 디스크 시스템을 만들게 된다.
개발환경은 지금처럼 전용의 개발툴이나 레퍼런스 같은 것이 제대로 갖춰진 것이 아니어서 사실상 알아서 개발해야 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HP 64000나 샤프 X1등 범용의 PC에서 개발하고 ICE(인서킷에뮬레이터)나 자체적으로 제작한 ROM에뮬레이터 등으로 확인을 하는 등 비싸기도 하고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했다. 나중에는 인텔리전트 시스템에서 제작한 에뮬레이션 보드를 장착한 후지쯔 FMR PC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5. 패미컴 출시


발매 초반엔 그렇게 순조롭지는 못했다. 발매 1년만에 100만 대, 그리고 1984년까지 250만 대가 팔렸지만, 기기 불량으로 인한 클레임 처리, 쏟아지는 반품으로 상당히 고생했다. 컨트롤러의 버튼은 100만 회나 테스트 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버튼이 패드에 박혀 빠지지 않는 일이 생겼고[28] 소비자들이 RF 단자에 연결할 줄 모른다거나, 게임 화면이 옆집 텔레비전에 나온다거나 본체와 연결된 컨트롤러를 끊어먹는다거나 등등 당시 닌텐도로서는 스스로의 역량 이상의 물건을 만들어 낸 것이기에 문제가 많았다. 특히 PPU 열처리 문제로 게임에 버그를 일으켰고 닌텐도는 이를 수습하기 위해 소매점 주인들에게 직접 수리 교육을 시키기도 하고 타 메이커와 협의 끝에 타사의 게임도 버그를 체크했다. 이걸 두고 닌텐도의 전략이 아니었냐며 음모론을 제기하는걸 두고 우에무라는 턱도 없는 소리라며 부인했다. 1983년 연말 연시 시즌이 되기 전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은 패미컴 전량 회수를 지시하면서 그 해 시즌을 놓치고 말았고,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됐다.
패미컴 초기엔 서드파티가 없었다. 닌텐도 역시 아타리처럼 서드파티라는 걸 만들 생각도 못했고, 애시당초 게임을 못 만들게 하려고 CPU의 정체도 감췄기 때문이다. 허드슨은 닌텐도와 친한 샤프의 소개로 패미컴 발매 전 부터 인연을 맺게 되어 패밀리 베이직을 만들 수 있었지만 게임이나 개발툴은 제멋대로 만든 다음 들고가서 교섭하고 계약하여 최초의 서드파티가 된 것이었다. 남코의 경우도 어느 날 한 사원이 요즘 잘 나가는 거라며 패미컴을 사서 사무실에 가지고 왔다가 해킹한 결과 CPU 명령어 세트가 6502라는 걸 알아내고 그 자리에서 패미컴 참여를 결정했다고 한다[29]. 그렇게 닌텐도의 도움 없이도 제멋대로 게임을 만들어서 닌텐도에 가져가서 서드파티에 참여시켜 달라고 반 협박으로 서드파티가 된 것이었다. 야마우치 사장의 반응은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상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황 그 자체였고 당시 남코는 굳이 참여시켜주지 않아도 잦은 송사로 다져진 남코 법무팀의 힘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고 하지만, 완성품을 가져간 덕인지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에 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남코의 게임들은 엄청나게 팔렸고 패미컴도 84년을 잘 버틸 수 있었다.
이렇게 업계의 큰 손들이었던 허드슨, 남코, 타이토, 아이렘, 코나미, 자레코 6개 회사에는 연간 게임 제작 개수의 제한을 없애주었으며 허드슨을 제외한 5사와 선 전자, 반다이는 카트리지를 직접 제조할 수 있도록 우대해주었다. 사실 닌텐도에서 할 수 있던 것이라고는 '패밀리 컴퓨터는 닌텐도의 상표'라는걸 주장하고 그 상표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일 뿐이었고 이후 부랴부랴 라이선스 규칙을 만들어서 1986년에 완성했다. 대충 알려진 라이센스 규칙들은 '서드파티 참여시 라이센스 비용 납부와 1대 500만엔의 개발기재를 빌리거나 구입' '1년에 발매할 수 있는 게임 수의 제한' '게임의 제조는 닌텐도에게 위탁하고 비용은 선납' '게임의 내용을 닌텐도가 체크' 같은 것들이 있다. 남코는 닌텐도의 뒷통수를 치다가 밉보이고 첫 계약이 만료된 89년 라이센스 우대 계약을 철회당한다.
당초 우에무라는 장난감 세계에서는 100만대라면 그럭저럭, 300만 대쯤 팔면 대단할 것이라며 판매대수가 꺾이겠거니 생각했지만 1984년 11월 제비우스가 나오며 히트를 이어갔고 1985년 슈퍼 마리오브라더스가 발매되고 그때까지 400만대가 팔린 패미컴은 그 인기가 식기는 커녕 사회 현상이 되기에 이른다.

6. 해외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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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는 패미컴 출시 초기부터 북미 시장 진출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당시에는 세계 최대 게임기 기업이었던 아타리와 협상을 시작했다. 아타리에게 패미컴을 독점 공급하기로 하고, 이에 대한 내용을 1983년 여름 미국 소비자 가전 박람회(CES)에서 아타리가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소비자 가전 박람회에서 콜레코가 가정용 컴퓨터 콜레코 아담을 발표하면서 동키콩을 시연한게 문제가 됐다. 콜레코가 시연한 동키콩은 콜레코 아담의 콜레코비전 하위 호환 기능을 이용해 시연된 것이었으나, 아타리는 계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해[30] 출시를 연기시켰다.
이후 북미 게임 시장은 아타리 쇼크로 큰 타격을 입었고, 레이몬드 카사르 아타리 CEO도 얼마 지나지 않아 아타리를 떠났다. 이후 아타리를 사들인 잭 트라미엘은 아타리를 코모도어와 경쟁할 회사로 만들고 싶어했기 때문에, 패미컴의 유통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이 거래는 유야무야 되어버렸다. 닌텐도 역시 그래픽 칩 불량으로 인한 리콜 문제로 잠시 북미 시장 진출을 접었다.
1985년이 되자 닌텐도는 다시 북미 시장 진출을 추진했는데 이번엔 독자적인 진출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아타리 쇼크가 진행중이던 시기였기 때문에 미국의 소매상들은 비디오 게임을 지나간 유행이라고 생각해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를 취급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를 피하려고 닌텐도는 패미컴을 가정용 컴퓨터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Nintendo Advanced Video System'''이라는 제품으로 출시하려 했다. 패미컴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마치 컴퓨터처럼 보이도록 디자인했고, BASIC 인터프리터 카트리지와 키보드, 카세트테이프 데이터 레코더와 동봉해 판매하기로 했다. 그리고 1985년 1월 소비자 가전 박람회(CES)에 출품했다. 그러나 컴퓨터 기능은 열악했을 뿐더러 아무리 봐도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이 시스템을 주문하지 않았다. Electronic Games라는 미국 게임 잡지에서는 이에 대해 1985년 3월호에 '''"미국의 비디오 게임 시장은 사실상 사라졌다. 이는 닌텐도의 오판일 수 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닌텐도는 패미컴을 가정용 컴퓨터 제품으로서의 접근을 포기하고 장난감 제품으로서 접근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1985년 6월 자로 소비자 가전 박람회에 다시 출품했다. "Nintendo Advanced Video System"에서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으로, '카트리지'라는 이름 대신 '팩'으로, '콘솔' 대신 '컨트롤 덱'으로 개명했다. 또한 재퍼R.O.B. 등의 주변기기를 내세우며 장난감임을 강조했다.[31] 그러나 그런 전략에도 소매상들은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임을 알아채고 진열을 반대한다.
이에 1985년 10월 18일,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는 닌텐도 본사의 반대를 무시하고 직접 보증을 선 뒤, 소매점에서 90일 이내에 상품이 판매되면, 그 때 소매점이 닌텐도에 들여온 제품 값을 지급하고, 90일 동안 팔리지 않은 상품은 전부 무상으로 반납 받기로 합의하면서 결국 토이저러스와 몇몇 소매점에서 5만 대 정도를 주문하여 출시하게 된다.
처음에는 30% 정도가 팔리지 않았으나, 서서히 인기가 붙기 시작해 이후에 9주 만에 9만 대 가까이 팔려 나갔다. 이 기세로 1986년 2월부터는 로스엔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카고를 포함한 12곳의 미국 대도시에 출시됐고, 9월에는 미국 전역에 출시될 수 있었다. 닌텐도는 NES를 1986년 한 해에만 110만 대를 팔아치웠으며, 1987년에는 누적 판매량 500만대를 돌파했다. 미국에서의 NES의 성공 덕에 아타리 쇼크 이후 1985년에 1억 달러 규모밖에 되지 않았던 비디오 게임 시장은 1986년에 무려 4.3억 달러로 4배 넘게 팽창했다. 닌텐도는 1986년에 무려 3.1억 달러의 매출액을 달성했다. NES는 북미 지방에서 3,400만 대 가량 판매했는데, 이는 아타리 2600의 판매량을 경신한 수치이다. 미국 진출 이듬해인 1986년에는 서유럽 일부 지역에도 출시되었으며, 1987년에는 서유럽 전 지역과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지역에도 출시됐다.

7. 다른 가정용 게임기와의 경쟁


발매 당시 일본에서는 에폭사에서 만든 카세트비전이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패미컴은 이 구조를 깨부수고 단숨에 1위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경쟁사에서 스펙이 뛰어난 기기(세가 마스터 시스템)가 나오거나, 16비트 기종(메가드라이브)이 먼저 나오긴 했으나, 세가의 멍청한 실수가 있었고, 닌텐도의 서드파티들 덕분에 항상 뛰어난 소프트웨어를 제공할 수 있었으며, 때로는 교활할 정도의 언론플레이(곧 있으면 슈퍼 패미컴 나온대!)로 경쟁사를 묵사발로 만들었다.
참고로, 패미컴은 1983년 7월 15일에 나왔고, '''같은 날'''에 경쟁 기종인 세가SG-1000이 나왔으며, 세가 마크 3는 1985년 10월에 나왔다.[32] 실제로 패미컴은 메인 CPU 외부에 그래픽 프로세서를 따로 채용했고, 탑재된 램도 같은 시대의 다른 기종들보다 고용량이기 때문에 한 화면에 표현 가능한 화소 수도 압도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15,000엔에 발매된 SG-1000 보다도 200엔 낮은 14,800엔이었기에, 가격대 성능비에서도 게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아타리 2600의 일본판인 아타리 2800이 24,800엔에 발매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패미컴의 가격은 당시로써는 성능에 비하면 말도 안될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당시에 일본에서 판매된 8비트 게임기 사이에서는 가장 낮은 가격이었으며, 발매 당시에 이보다도 낮은 가격을 보인 기기는 13,500엔의 카세트 비전 정도뿐이었으나 그쪽은 8비트급이 아니다 보니 아타리 2600보다도 훨씬 낮은 성능이며, 그나마 CPU를 본체가 아닌 게임 카트리지에 넣어서 저 가격이 나왔다.[33]
MSX 및 비슷한 사양의 SG-1000은 '부드러운 화면 스크롤' 조차 구현하기 어렵고[34], 아무튼 당시를 기억하는 제작자들에게는 아타리 5200 따위는 비교도 안되는 파워풀한 차세대기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35]
사실상 경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시장 독점 상태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MSX는 마이컴의 영역에 가격도 엄청나게 차이가 났으니 애시당초 경쟁의 분야조차 달랐기 때문이고, 고성능 차세대기인 메가드라이브는 발매일에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3를 내보내 압살했다. 단 닌텐도 역시 놀고만 있지 않았고, 디스크 시스템으로 가격을 낮춘다거나, 우수한 게임을 개발하는 등의 노력을 했다.
후속 기종인 슈퍼 패미컴이 1990년에 나왔지만 이후에도 패미컴의 목숨은 질기게도 이어졌다. AV 패미컴/NES 2라는 신형 모델을 다시 발매하기도 했고, '타카하시 명인의 모험도 4'가 1994년에 나오고 나서야 신작 소프트웨어 공급이 끝난다.[36] 일본보다 2년 정도 늦게 출시한 미국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 심해서 오히려 슈퍼 패미컴을 팀킬(...)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8. 미국의 반독점 규제


상술했듯이 닌텐도는 패미컴으로 사실상 시장 독점 상태였는데, 닌텐도의 서드파티 계약 조항이 원인이기도 했다. 당시 닌텐도는 아타리 쇼크의 원인을 저질 게임들의 범람으로 보았다. 닌텐도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는 이를 두고 조제남조(粗製濫造)라고 표현했는데, 이를 규제하겠다는 미명 하에 서드파티 게임 회사들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을 때 1년간 게임 발매 개수 제한을 둔다던가 2년간 다른 게임기에 게임을 내지 못하게 하는 조항을 두었다. 이는 서드파티가 반발할 수밖에 없었으나 1990년까지 가정용 게임기 시장의 90%를 패미컴이 장악하고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대놓고 반발하는 회사는 적었다. 물론 남코코나미 같은 대기업들은 음반 레이블 개념으로 계약 조항을 우회하려 시도하기도 했고[37], EA 같은 회사는 닌텐도의 정책에 반발해 가정용 컴퓨터 게임 회사로 남아 있는 곳도 있었다.
또한 이 서드파티 정책은 미국인들의 분노를 일으켰는데, 상원 의회에서는 닌텐도를 청문회로 불러내 계약 조항 철회를 촉구했고, 주검찰과 법무부는 닌텐도를 반독점 혐의로 기소했으며, 연방거래위원회에서는 닌텐도에 대해 반독점 혐의 조사를 시작했다. 닌텐도는 게임 품질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라 해명했으나, 아무리 봐도 시장 선도자로서 경쟁자를 고사시키기 위한 계약 조항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결국 1990년에 닌텐도는 연방거래위원회가 지적한 나쁜 조항들을 철회하고, 1991년 4월에 최종적으로 합의하였는데, 1988년부터 1990년까지 NES를 구매한 모든 소비자에게 5 달러의 바우처를 주기로 했다. 이에 대해 언론이었던 게임 스파이는 게임 산업을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닌텐도를 처벌한 것이 아닌 사실상 판촉행위를 도와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 시기 닌텐도의 사업 형태는 주위에 적을 만드는 일이 많았다. 아타리 게임즈와는 10NES 특허 침해 소송과 테트리스 저작권 분쟁[38], 반독점 소송으로 마찰을 빚었고, 닌텐도는 게임팩 대여 행위를 저작권 침해라며 VHS 비디오 테이프 대여 프랜차이즈 회사였던 블록버스터에 소송을 했다. 남코에게는 게임기 개발을 시도했다가 들켰다면서 서드파티 계약 갱신할 때 그 동안 보장해 줬던 최혜 대우 특혜를 빼앗기도 했다. 또한 연방거래위원회에서 지적한 나쁜 조항은 사라졌어도, 게임 카트리지 독점 생산, 초기 수량과 발매 시기를 닌텐도가 정하는 관행, '초심회'라는 닌텐도의 도매상 연합을 통한 유통 독점, 카트리지 생산 선급금과 보험료까지 받아가는 행태는 계속되었다.
결국 이 시기부터 쌓아 왔던 갈등은 그 다음 게임기 세대 시절인 세가 제네시스 시절에 세가 오브 아메리카가 미국의 서드파티[39]를 끌어들이는 데 요긴하게 써먹었으며, 닌텐도는 닌텐도 64 시절에 서드파티에게 철저한 외면을 받게 된다.[40]

9. 불법 복제판 범람


복제 패미컴은 보통 패미클론으로 지칭된다. 한국의 많은 이들이 어린 시절 만졌던 패미컴이나 게임은 복제품이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런 패미클론의 범람은 패미컴의 높은 인기와 더불어 복제의 용이성(…)을 역설해주고 있다.
최초의 패미클론의 등장시기가 언제인지는 정확하진 않으나 대만에서 정품을 그대로 본따서 만든 기기가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색깔은 빨간색 대신 회색을 사용했다. 이러한 패미클론은 점차 발전하여 외부 케이스의 모양을 당대의 차세대 게임기[41] 디자인으로 바꾸는 것은 예사였고, 게임패드도 단순한 2버튼에서 연사가 달린 6버튼 이상의 패드가 달려 나오는 식으로 발달했다.
옛날에는 게임기는 물론이고 게임팩의 복제도 워낙 흔했고, 우리나라에서도 패미클론을 생산 판매하는 업체가 제법 있었다. 한때 게임 시장에서 패미컴은 거의 대부분이 복제팩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심지어 현대전자가 정식 라이선스판인 현대 컴보이를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있는 다른 대기업(?)들에서도 패미클론(해태 슈퍼콤, 영실업 파스칼 등)을 내놓기도 했다. 삼근물산의 조이콤같은 경우는 당시 인기 아역 배우였던 이건주를 앞세워 대놓고 TV와 유명 잡지에 광고를 해대서 매우 높은 인지도를 얻기도 했다. 당시 광고
1990년대 전후로 발매된 한국산 개발 패미컴 게임[42]들도 대부분 무단으로 게임을 내놓았고 그 가운데에 몇몇은 롬 덤프가 아직 되지 않아서 원 롬팩은 프리미엄이 붙어서 거래되고 있다. 주옥 같은 여러 게임들이 있지만 <둘리 부라보 랜드>와 <도술동자 구구>는 2017년 2월에 롬 파일로 덤프되었다. 게다가 한국산 패미컴 소프트웨어 사이에는 바둑학습용 게임도 있는데, 당시에 프로 바둑 기사이던 장두진의 이름을 내세운 <장두진의 바둑 교실>이라는 소프트웨어도 있다.[43]
패미클론은 여전히 나오고 있다. 시대가 흐르며 원칩 간소화되어 다른 게임기들과 퓨전되어 나오거나, 액정을 달고 휴대용으로 나오고 있으며 아예 새로운 패미컴용 게임이 개발되어 나오고 있다.
현재는 일본에서도 복제 패미컴이 판매되고 있다. 심지어는 패미컴 호환기를 DIY할 수 있는 키트까지 팔고 있다. 이런 호환기 중에는 일부 호환이 되지 않는 게임도 더러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패미컴 게임을 만들던 회사를 게임월드가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최소 3000개는 팔아야 이윤을 볼 수 있었는데 몇 만개씩 팔리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10. 단종 및 사후 지원


패미컴 플랫폼으로 판매된 마지막 게임은 일본 기준으로 1994년 6월 24일에 발매된 타카하시 명인의 모험도 4이며, 북미 기준으로 1994년 2월 19일에 일본에서 먼저 발매된 후 동년 12월 10일에 발매된 와리오의 숲, 유럽 기준으로 1994년 10월에 슈퍼패미컴으로 가장 먼저 나오다가 1995년 5월 25일에 패미컴으로도 이식되어 유럽 한정으로 발매된 라이온 킹이다. 패미컴용 게임 소프트는 패미컴 출시 후 11년 뒤에 끊겼지만 게임기의 생산 자체는 '''2003년 9월 30일'''까지 무려 '''20년'''간 이어졌고,[44] 자주 고장나는 디스크 드라이브 벨트도 이 당시까지 계속 생산해서 판매했다. 다만 북미판인 NES는 10년간 판매되었고 1995년 8월 14일에 일찍이 단종되었다.
2007년 10월 말, 닌텐도에서는 패미컴 시리즈와 게임보이 시리즈, 그리고 닌텐도 64 같은 구형 게임기에 대한 사후지원을 종료한다고 했다.
발매된 지 10년이 넘은 기종들이라 부품 조달이 어려운 상태이고, 구매를 희망하는 사람과 수리요청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뒤집어 보면, 2007년까지[45] '''패미컴 정식 A/S를 요청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24년 동안''' 사후지원을 해왔다는 것이다. 참고로 플레이스테이션은 AS 접수를 20년 동안 해왔다.

10.1. 단종 이후 소프트웨어


2008년에 발매된 록맨 9도 패미컴용으로 낼 계획이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2013년에 30주년을 맞아 'RIKI'라는 만화가가 키라키라 스타 나이트라는 홈브루 인디 게임을 공개하고 약 1년 뒤에 발매하였는데, 게임 자체는 평범한 점프 액션게임이지만 패미컴 성능을 극한까지 돌린 그래픽 때문에 이슈가 되었다.# 만화가는 이후에 칩튠 음반 성격의 '8비트 뮤직 파워'라는 패미컴용 소프트웨어 카트리지를 2016년 1월에 발매했다.#영상 그리고 키라키라스타나이트 DX판[46]을 패미컴용 롬카세트#로 7월 하순에 발매할 예정이었으나, 늦어져서 10월 6일에 발매하였다. 가격은 4,980엔이다.
또, 록맨 9와 에스카 & 로지의 아틀리에[일본어]의 악곡을 다룬 시모다 유우가 이끄는 프로그레시브 게임즈#의 작품인 비주얼 노벨 게임 '#西武ロードリスト蘭のチップチューン地獄가 2016년에 처음 공개되었고, 2018년 11월에 출시되었다.#
모르프 캣 게임즈(MORPHCAT GAMES)의 Micro Mages 역시 킥스타터 펀딩을 진행했고#, 2019년 4월에 출시되었다.# 개발 팀에서는 이 게임에 사용한 최적화 기법을 정리해서 동영상#으로 올리기도 했다.
2017년에는 '''패미컴 게임을 제작하는 툴인 NESmakers가 나왔다!'''#.
2020년에는 아스트로 닌자 맨#이 출시되었다.[47]

11. 주변기기 및 기타 하드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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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미컴 데이터 레코더: 평범한 카세트 플레이어 같지만 그게 아니올시다. 패미컴 본체, 키보드와 호환되며, 보조 기억 장치의 기능도 갖추었으나, 그걸 활용하는 게임은 레킹 크루, 익사이트바이크를 포함하여 총 7개로 거의 없다시피 하다.[49]
  • NES advantage: 아케이드 스타일의 컨트롤러. 스틱이 달려 있으며, 버튼이 큼지막하게 변했고, 터보 버튼이 달려 있다.
  • NES max: 십자키 부분을 슬라이드 패드로 바꾸고, 그립, 터보 버튼을 추가한 컨트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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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4인치 C1이다.
북미판 샤프 닌텐도 텔레비전
  • 패미컴 테레비 C1: 샤프에서 출시한 패미컴이 내장된 TV. 크기는 14 인치, 19 인치 두 종류이다. 정가는 각각 9만 3천엔, 14만 5천엔이었다. 북미에는 1989년에 '샤프 닌텐도 텔레비전'이란 이름으로 발매되었다. 이후 똑같은 컨셉의 슈퍼 패미컴이 내장된 샤프 SF1이라는 TV를 내놓게 된다.
  • 패미컴 타이틀러: 샤프에서 출시한 또 다른 패미컴. 본체에 붙어있는 태블릿으로 자막을 넣을수 있는 등의 기능과 S단자를 기본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패미컴 수집의 끝판왕 취급을 받는다. 당시 출고가가 40,000엔(!) 정도인지라 현재도 매우 비싸고 보통 경매로 팔린다.
  • 닌텐도 VS. 시스템: 닌텐도에서 출시한 아케이드 기판. 1986년에는 아케이드 게임기로 개조한 플레이초이스-10이 출시되었다.
  • 패미컴 박스: 아케이드용으로 포팅된 기기. NES의 컨트롤러와 재퍼가 달려있다. NES용 카트리지 15개가 기본으로 내장되어 있으며, 게임을 선택하는 셀렉트 버튼이 달려있다.
  • [50]

11.1. 닌텐도 엔터테이먼트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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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0월 18일과 1986년 9월 1일에 북미와 유럽 시장을 대상으로 판매된 패미컴. 흔히 NES라고 불린다. 가격은 북미판 기준 슈퍼 마리오브라더스가 번들된 일반 모델은 $130, 재퍼와 덕 헌트 게임이 번들된 모델이 $150, 그리고 재퍼R.O.B.가 번들된 디럭스 세트가 $250다.
원본과는 다르게 투박한 박스 형태로 제작 되었으며, 컨트롤러가 탈착식으로 변경되어 2P 컨트롤러의 마이크와 사운드 조절 기능이 사라졌고, 확장 컨트롤러 포트가 제거 되었다. 카트리지 슬롯의 위치는 상단부에서 전면부로[51], RF 단자가 모노 AV 단자로 바뀌었다.
본체의 하단부에는 확장 포트가 하나 존재하는데, 이것은 북미에도 출시 예정이었던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을 연결하기 위한 확장 단자이다. 후기형에선 확장 포트의 커버를 열 수 없게 되었다.
4년 뒤, 한국의 현대전자에서는 이 모델을 수입하여 '현대 컴보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였다.

11.2. 뉴 패밀리 컴퓨터/NE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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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0월 15일(북미), 12월 1일(일본)에 $49 / 6,800엔으로 출시된 염가판이다.
북미판은 카트리지 삽입구 부분이 팩 크기에 맞춰 일본판보다 좀 더 높고 둥근 형태로 디자인 되어 있다. 기존 NES의 프론트 로딩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원래 있었던 AV 단자를 제거하여 혹평 받았다. 이후 AV 단자로 교체된 버전과 화질이 개선된 RF 단자 버전이 나왔다.
일본판도 북미판과 똑같이 10월 발매 예정이었으나 AV 단자로의 사양 변경으로 인해 발매를 연기하였다. 북미판과 달리 오리지널에 존재하는 확장 포트도 그대로 이식했으며, 일본판은 AV 케이블과 AC 어댑터가 별매.
카트리지 삽입구가 슈퍼 패미컴처럼 자동개폐식으로 바뀌었으나, 이젝터가 제거되어서 카트리지를 손으로 뽑아야 한다. 컨트롤러는 좀 더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으로 변경되었다. NES처럼 탈착형이라 오리지널에 있었던 2P 컨트롤러의 마이크와 볼륨 조절 기능은 삭제되었다.

12. 특수칩


패미컴 출시 3년차가 지나던 시기에 패미컴의 하드웨어 사양은 서서히 한계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패미컴은 CPU에서 32KB, PPU에서 8KB를 포함, 최대 40KB의 ROM까지 지원할 수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또한 메모리 역시 워크 메모리 2KB 및 비디오 메모리 2KB로 총 4KB 밖에 되지 않았던 것도 문제였다.
RAM 추가 및 대용량 ROM을 지원하기 위해 게임 카트리지 안에 뱅크 전환 기능과 같은 메모리 관리 제어장치를 집어넣은 것이 특수칩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래픽 처리 보조 기능, 추가 음원 기능까지 집어넣은 특수칩도 등장했다. 패미컴 게임팩에 출시된 특수칩이 들어간 게임들 중 주로 MMC1과 MMC3 그리고 UNROM이 널리 쓰였다.
패미클론이나 컨버터로 구동 시 특수칩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12.1. 닌텐도 특수칩


  • MMC (Memory Management Controller)
    • MMC1: 젤다의 전설[52], 록맨 2, 삼국지[미], 메트로이드, 고질라, 닌자 거북이, 파이널 판타지 1 등 약 390개 게임.
    • MMC2: 펀치 아웃!! 게임에만 쓰였다.
    • MMC3
    • MMC4
    • MMC5
    • MMC6
      • MMC3와 비슷하나 세이브 기능을 위해 배터리와 SRAM이 추가됐다.
      • StarTropics, Zoda's Revenge: StarTropics II[53]
  • UNROM: 이카리, 록맨, 콘트라[54] 등 약 150개 게임
  • AOROM
    • 레어의 크리스 스탬퍼가 게임 제작을 위해 개발해 닌텐도에서 생산한 특수칩
    • Wizards & Warriors[55], 배틀토드, Cobra Triangle, 카발#s-1
  •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 내부
  • 10NES(CIC)
    • NES를 출시하면서 서드파티 통제를 위해 카트리지와 본체에 내장된 락아웃칩이며 비허가 게임과 국가코드를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본체에 1개, 카트리지에 1개씩 내장되어 있으며, 각각 Lock/Key 역할을 한다.
    • 동작 원리는 카트리지 삽입 시, 본체쪽 CIC(Checking Intergrated Circuit)칩의 Lock 부분과 카트리지쪽 CIC칩의 Key 부분의 회로가 서로 이어지게 되는데, 본체의 전원이 켜지면, CIC가 이를 검사하고, 서로 신호값(코드)가 일치하다고 판단하면 CPU와 PPU를 기동시킨다.
      • 반대로 비허가 서드파티 카트리지를 삽입하게 되면, 당연히 카트리지 쪽에 Key 역할을 하는 CIC칩이 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본체쪽 CIC에서 받는 Key 역할의 신호가 없다. 따라서 본체에서는 이상을 감지하고, 정상적인 신호가 감지될(정품 카트리지를 삽입할) 때까지 계속 CPU와 PPU에 리셋 펄스를 보내게 된다. 국가코드가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카트리지와 본체간의 코드가 불일치해 기동을 거부하는 원리.
      • 결국, 게임기 전원을 넣어도 처음엔 정상적인 타이틀 화면이 나오는 듯 하다가 갑자기 리셋되며 재부팅, 다시 화면이 나오다가 또 리셋....을 무한정 반복하게 된다. 이는 앞서 언급했다시피 CIC칩의 신호에 의해 본체가 켜졌다 꺼졌다를 무한반복하기 때문이다.
      • 역시나 이를 무력화하는 방법이 있는데, 본체를 분해 후 CIC칩 4번 다리를 끊어주면 된다고 한다. 이는 Lock/Key 감지를 못하게 함으로써 회로를 속이는 거라고.
      • 일부 비허가 게임은 이 락아웃칩으로 인해 카트리지에 별도로 정품 게임을 삽입하는 슬롯이나 스위치가 달려있다.
    • 서드파티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 NES와는 다르게 패미컴은 설계 당시에 서드파티를 만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때 설계되었기 때문에 본체와 카트리지에 해당 회로가 없다.[56] 애초에 패미컴과 NES 카트리지의 모양과 핀 개수와 배열이 달라 이것을 맞춰주는 NES용 어댑터를 쓰지 않는 이상 연결할수도 없다.
    • 현대 컴보이에는 PAL버전 유럽판 NES와 동일한 CIC칩이 내장되어있지만 현대컴보이는 NTSC버전이기 때문에 이론상 현대 컴보이 전용으로 제작된 게임들만 작동을 보장한다.

12.1.1. 서드 파티 특수칩


닌텐도에서 특수칩을 포함한 게임을 내놓자 남코, 코나미 같은 회사들도 특수칩을 포함한 게임을 내놓을 수 있도록 닌텐도에 요청했고, 1986년부터 특수칩이 포함된 게임을 내놓았다. 서드 파티의 특수칩이 들어간 게임은 닌텐도의 카트리지 생산 통제 정책에 의해 주로 일본에서만 출시됐다. 이 때문에 이런 특수칩들이 들어간 게임이 북미나 유럽판으로 이식된 경우 그래픽이나 음악, 사운드 효과가 미묘하게 서로 다르게 나온다.
  • 코나미 VRC(Virtual ROM Controller)
    • VRC1: 힘내라 고에몽! 꼭두각시 여행길 등 총 6개
    • VRC2: 콘트라[일], 트윈비 3 포코포코 대마왕, 힘내라 고에몽! 외전, 코나미 와이와이 월드
    • VRC3: 사라만다[일]에만 쓰였다.
    • VRC4: 그라디우스 II, 힘내라 고에몽! 외전 2, 악마성 스페셜 나는 드라큘라 군, 닌자 거북이(아케이드)[일] 등 총 7개
    • VRC6
      • 2개의 구형파와 1개의 톱날파, 총 3채널의 추가 음원을 지원하고, 스크롤링시 PPU의 부하를 줄여주기 위해 CPU 클럭 기반 IRQ 카운터도 있었다.
      • 악마성 전설[일], 에스퍼 드림 2: 새로운 싸움, 망량전기 마다라
    • VRC7: VRC6에 야마하 YM2413 (OPLL)을 개조한[57] 6채널 FM 음원이 추가됐다. 이 칩을 이용한 게임은 타이니 툰 어드벤처 2: 몬타나 랜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일]라그랑주 포인트 두 종류가 있으나, 칩 내부 FM 음원을 사용해 만든 게임은 라그랑주 포인트가 유일하다.
  • 남코 163
    • 약칭 N163. 잘못 알려진 이름인 N106으로도 불리며, 스크롤링시 PPU의 부하를 줄여주기 위해 스캔라인 기반 IRQ 카운터가 있고, 웨이브테이블 방식의 음원을 최대 8채널까지 추가할 수 있다.[58]
    • 패미스타 '90~'94, 하이드라이드 3: 어둠으로부터의 방문자, 에리카와 사토루의 꿈 모험, 디지털 데빌 스토리 여신전생 2, 삼국지[일], 삼국지 2[일], 요괴도중기, 롤링 썬더#s-4 등 총 32개
  • 선소프트 FME-7
    • 유일하게 해외판에도 출시 가능했던 서드 파티 특수칩이다.
    • 배트맨 리턴 오브 더 조커, 헤베레케, Gimmick![59]
  • 액티브 인터렉티브 228
    • 닌텐도의 라이선스를 받지 않은 MMC로, 특이한 점이 있다면 레지스터의 값을 변경하지 않고 다시 사용하므로 글리치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액션 52치타맨 2에 사용되었다.

13. 복각판


현재 아래의 복각판들은 모두 한국에서는 정식 발매되지 않았다.[60] 인터넷 쇼핑몰 등지에서 중국에서 만든 불법 복제품들이 나돌고 있으니 주의하자.[61]

13.1. NES 클래식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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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4일, 닌텐도에서 고전게임 팬들을 위한 미니어쳐 복각판 NES의 출시를 발표했다. 2016년 11월 11일에 발매되었으며, 출시 가격은 59.99달러이다.
닌텐도는 이 NES 클래식은 그냥 올드 닌텐도 게임 팬들을 위한 추억팔이 기념품 정도로 생각하여 반쯤 재미삼아 만들었는데, 워낙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고나서야 일본판의 제작도 결정하고, 이후 슈퍼패미컴 미니 버전도 기획하기에 이르게 된다.
30종의 NES 게임을 자체 내장해서 80년대에 자라온 게이머들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닌텐도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닌텐도 스위치가 나오기 이전까지 이런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주었다. 그러나 롬 카트리지 슬롯이 없어 기존 게임팩은 사용할 수 없고 비디오 출력은 HDMI 단자로, 아날로그 TV는 사용할 수 없다.[62] 메모리 카드 슬롯도 없으며 온라인 네트워크 기능도 없기에 확장성은 전무하다. 게임 컨트롤러는 북미판 NES의 컨트롤러와 같은 모양의 컨트롤러로 1개만 포함되어 있다.[63] Wii 리모트에도 연결 사용가능하고 물론 버추얼 콘솔에도 대응. NES 클래식에 Wii 클래식 컨트롤러나 Wii 클래식 컨르롤러 프로를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며[64] 심지어는 '''눈차크도 끼울 수 있다'''. 하지만 사용은 불가능하다. 그 반대로 NES 컨트롤러를 wii U에 연결해서 버추얼 콘솔 게임을 하는 것도 의도한듯. 서드파티 커넥터를 구하면 스위치에 연결하는 것도 가능하다. 컨트롤러 줄이 좀 짧다. 기존 NES 컨트롤러 줄 길이의 반 정도밖에 안되다보니 불편하다는 평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ES 클래식은 발매 후 금방 매진되었으며, 이베이등에서 거래 가격이 판매가의 3배 가량인 무려 180달러 가량으로 치솟을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일본판인 패미컴 버전도 금방 매진되어 판매가의 2배로 거래되었다. 연말에는 거래가가 최고 $300로 치솟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고 스위치가 발매된 2017년 3월에도 $150를 유지할 정도로 물건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게다가 닌텐도는 2017년 4월 말까지만 공급하고 생산을 중단해 중고나 이베이 값이 폭등하기도 했다. 예고한 대로 북미 지역에서는 2018년 6월 29일부터 다시 일반 판매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아마존 베스트 바이 등 주요 소매점에서는 금방 제품이 매진되어 물건을 구하기가 어렵다. 한동안은 물량부족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018년 6월 재판매가 시작되자마자 플스와 스위치, 엑박원을 제치고 한 달간 북미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2016년 12월까지 200만 대가 넘게 팔리는[65] 대히트를 쳤으며, 후속작인 슈퍼 패미컴 미니는 그 2배인 400만대나 팔리는 성과를 거뒀다. 또한 SEGA의 메가 드라이브 미니, ATARI의 VCS, SNK의 네오지오 미니,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많은 게임회사들의 레트로 미니 게임기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기기의 스펙은 중국의 팹리스 반도체 업체인 Allwinner 테크놀로지의 R16 1.2GHz SoC와 Spansion의 512MB 용량의 NAND 플래시 메모리, 그리고 SK 하이닉스의 256MB PC3-14900 DDR3 SDRAM으로 구성됐으며, 내장된 패밀리 컴퓨터 게임들은 패밀리 컴퓨터와 호환성이 전혀 없기에 완전히 소프트웨어로만 에뮬레이팅한다. Allwinner R16 SoC는 ARM Cortex-A7 쿼드코어 기반의 CPU와 ARM Mali-400MP2 GPU가 탑재됐다. # OS는 리눅스가 사용되었다. # 위의 패미컴에 비하면 필요이상의 오버스펙이긴 하지만 설계미스는 아니고 현재 생산되는 부품들의 최소사양으로 만든다는게 이 정도다.[66] 심지어는 패미컴이 나오던 시대의 슈퍼컴퓨터 Cray X-MP를 깔아뭉갠다. 그야말로 30년의 격차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닌텐도의 주력이자 8세대 휴대용 게임기인 닌텐도 3DS와 비교해 보아도 GPU 성능을 제외하면 우위이다. 결국 분명 복각은 복각이지만 내부 구조는 전혀 다른, 원제작사가 보증하는 공식 에뮬레이터 셔틀 쯤 되는 기기이다.
내장 게임은 총 30개로, 목록은 다음과 같다. NES 시절의 황금기 게임들은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패미컴 클래식에는 없고 NES 클래식에만 있는 게임에는 ★로 표시. 게임을 리셋하면 게임 진행 상황을 저장시키는 기능이 있으며, 각 게임마다 4개까지만 보존할 수 있다.

13.2. 닌텐도 클래식 미니 패밀리 컴퓨터



공식 사이트 일본 닌텐도 토픽스
NES 클래식 에디션이 발표되고 나서 일본에서는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2016년 9월 30일, 일본에 '''닌텐도 클래식 미니 패밀리 컴퓨터'''를 발매한다고 발표했다. 2016년 11월 10일에 발매되었으며, 가격은 5,980엔(VAT 미포함)이다. 2017년에 잠시 생산을 중단했다가, 2018년에 생산을 재개했다.
원판과 동일한 크기의 패드가 동봉된 NES 클래식 에디션과 달리 본체가 작아지면서 패드의 사이즈도 작아졌다. 뭔가 묘하게 닌텐도 스위치의 조이컨 크기와 비슷해보이지만, 둘을 직접 비교해보면 패미컴 미니쪽이 훨씬 더 작다. 전면부의 확장 입력 단자 구현이 안 되어 있어 Wii 프로 패드 등으로 플레이는 불가.[67] 다만 NES 클래식 에디션과 하드웨어 사양은 동일하다.[68] 2P 컨트롤러에 MIC란 글자가 적혀있고 겉모양도 꽤나 흉내를 냈지만 막상 마이크 모듈은 들어있지 않아 젤다의 전설에서 폴스 보이스[69]를 소리쳐서 잡는게 불가능하다. 저 부분을 빼면 나머지 게임 중 내장 마이크를 활용하는 게임 자체가 없다.
원래 패미컴 본체 크기를 약 60%로 소형화한 손바닥에 얹을 수 있는 크기이다. HDMI로 TV 화면에 출력하고 USB로 전원을 공급한다.[70] TV에 USB 포트가 탑재되어 있으면 거기에 바로 연결도 가능하다. 화면 출력 모드는 4:3, 아날로그 TV, 픽셀 퍼펙트 사이에서 선택 할 수 있다. NES 클래식 에디션과 달리 언어설정기능이 없으며, NES 클래식 에디션처럼 게임팩 교환은 불가능하지만 역시 30개의 타이틀을 내장 수록됐다. 단, 타이틀 라인업은 NES 클래식 에디션과 조금 다르며, 개중에는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 타이틀도 있다.
수록 타이틀 라인업은 다음과 같다. 목록은 발매일 순이다. 디스크 시스템 타이틀은 '''굵은 글씨'''로, NES 클래식에는 없고 패미컴 클래식에만 있는 게임은 ◆로 표시.
마개조를 해서 클래식 둠 시리즈를 돌리는게 가능하다.# 해당 일본인은 "패미컴 미니에서 리눅스가 돌아간다"→"리눅스가 돌아가면 둠도 돌릴수 있을것같다"→"???"→"PROFIT!"의 발상으로 개조한듯 하다.
패미컴으로 발매된 슈퍼 마리오 시리즈 중에 유일하게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2[73]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데, 난이도가 슈퍼 마리오 시리즈 중에서 난이도가 높다 못해 최악이라 불릴 정도라 그런지 포함시키지 않은 듯하다. 대신에 일본판에도 북미판과 똑같이 슈퍼 마리오 USA가 들어갔다.
외관이 똑같이 생긴 중국제 짝퉁 'FC COMPACT II'가 돌아다녀서 구별에 주의를 요한다. 중국제는 400개 게임을 내장했으며 원판과 마찬가지로 팩 교체는 불가능. 또, 전원 공급 연결 장치에 진품의 마이크로 USB 5핀이 아닌 미니 USB 5핀을 사용한다.

주간 소년 점프의 창간 50주년 기념으로 점프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들로만 구성된 특별한 버전의 패미컴 미니가 2018년 7월 7일에 일본 한정으로 출시되었다.
수록 타이틀 라인업은 다음과 같다.

14. 레고



NES 35주년 기념을 겸해서 2020년 7월 14일, NES 레고가 발표되었다. NES 본체, 게임패드, 카트리지 팩, 레트로 브라운관 TV로 구성되어 있으며, TV 측면의 레버를 돌리면 화면이 옆으로 스크롤한다. 레고 슈퍼 마리오 세트에 동봉된 마리오 피규어를 올려두면 화면 진행에 맞춰 마리오가 음향효과를 낸다. NES와 카트리지, 패드는 1:1 사이즈다(정확히는 약간 작다). 발매는 2020년 8월 1일이며, 정가는 299,900원이다.


15. 여담


패밀리 "컴퓨터"라는 이름답게 키보드와 카트리지를 연결하여 BASIC 프로그래밍을 맛볼 수 있는 패밀리 베이직이라는 주변기기를 발매한다. 테이프레코더를 통해 저장까지 가능했다. 허드슨의 Hu-BASIC을 기반으로 샤프와 닌텐도가 공동 참여하여 개발한 NS-Hu BASIC을 탑재, 이후 v3 까지 버전업 된다. 패미컴에 맞춰 특화되었기 때문에 게임프로그래밍이 가능한 GAME BASIC 모드에서는 정수연산만 가능하여 소수점 이하는 버림 된다거나 하는 문제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양이 구현되었으며 독자적인 명령어까지 추가되기도 하였다.
미국에서 발매할때도 아타리 쇼크의 영향 때문에 최대한 게임기임을 감추려고 Advanced Video System 이라는 마치 MSX나 코모도어 같은 형식으로 프로토타입을 내놓았었다.
팩을 분해해서 후기형 한국산 패미클론 기기로 시도해도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현대전자에서 현대컴보이를 정발하긴 했지만 소프트나 하드웨어 수급이 일본판보다 뒤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현대컴보이 같은 NES 사용자는 일본판 팩을 사용하기 위한 전용 컨버터가 필수였다.
일부 NES 게임팩을 까보면 패미컴 팩에 컨버터를 사용한 구조로 되어있다.[75]
슈퍼 패미컴을 개발당시 '패미컴 어댑터' 라는 신모델도 개발중이었다. 컨트롤러 연결단자가 슈퍼패미컴 프로토타입과 동일했는데 슈퍼패미컴의 하위호환 어댑터가 아닌 단체만으로 사용 가능했기에 대체 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물건.
오리지널 패미컴은 RF 전용이지만 간단한 개조로 AV 개조가 가능하다. RGB개조는 아케이드용 호환 기판에서 RGB 출력이 되는 PPU를 빼서 교체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
[1] 모델은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3.[2] 모델은 배트맨(패미컴).[3] 현대전자에서 사용한 명칭[4] 한국닌텐도 정식발매가 아니라서 닌텐도에서는 공식적으로 미발매로 여긴다.[5] 타임지는 이를 두고 비디오 게임의 역사에서 패미컴이 지니는 위치는 로큰롤의 역사에서 비틀즈의 위치와 같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비틀즈가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일으키기 전에 미국에서의 로큰롤은 인기 뮤지션들을 둘러싼 스캔들과 불행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보수적인 기성세대의 반발과 함께 그 뜨거웠던 열기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어 이미 한물간 장르 취급받고 있었다가, 비틀즈의 등장으로 젊은 세대의 열렬한 호응을 얻으며 부활했으니 적절한 비유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비틀즈영국락 음악의 주도권을 미국으로부터 빼앗는 계기를 마련했듯이, 패미컴의 북미 발매 역시 일본미국으로부터 게임기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은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의의가 있다. 현재 미국은 거의 모든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정복하고 있음에도 저 두 분야 만큼은 세계 제일이라고 하지는 못하고 있다.[6] 오늘날 업계 표준으로서 게임 플랫폼들이 개발사로부터 징수하는 '''30%의 수수료'''는 패미컴에서 처음 비롯된 것이다. 앱스토어구글 플레이와 같은 종합 플랫폼들 역시 이 기준을 따르고 있다. #[7] 오래된 패미컴이 노랗게 되는 이유이다.[8] NTSC 지역에 쓰인 칩이다. PAL, SECAM 같은 50 Hz 필드 출력이 필요한 지역에는 2A07이 들어갔다. 모스 테크놀로지 6502에 음원칩과 음원 처리용 DAC, DMA 전송 기능을 추가하고, BCD 연산 기능은 제거한 커스텀칩이다. (BCD 연산기능이 제거된 이유는 해당 기능이 많이 사용되지 않거나 소프트웨어로 구현 가능한 것도 있지만, 6502 중 BCD연산 부분만 특허의 보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6502의 전체 설계 중에서 해당 부분만 제거하면 사용하는데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1989년 전까지는 저작권법이 IC의 설계를 보호하지 못했고, 특허법 또한 당시에는 IC 설계가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아이디어)의 창작으로서 고도한 것으로 보지 않아 발명으로 보지 않았기에 IC 설계 전체가 특허법으로 보호될 수 없었다. 그래서 6502 전체 설계 중 BCD 연산 부분만 특허 신청이 되어 있었고, 닌텐도(또는 리코)는 MOS의 라이선스 없이 6502를 사용하기 위해 이 부분만을 제거함으로써 법적인 문제를 피했다는 것.#)[9] Pseudo Audio Processing Unit의 약자[10] 구형파 채널 2개, 삼각파 채널 1개, 노이즈 채널 1개, 샘플링이 가능한 7비트 PCM 또는 1비트 DPCM 채널 1개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은 앞의 4채널만으로 음악을 만들었으며, 채널당 사용하는 파형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음원의 성능은 코모도어 64의 3채널보다 떨어지는 편이었다.[11] NTSC 지역에 쓰인 칩이다. PAL, SECAM 같은 50 Hz 필드 출력이 필요한 지역에는 2C07이 들어갔다. 래스터 검출 가능(0번 스프라이트의 표시 라인을 거친다.)[12] TV의 표시범위에 들어가는 것은 위 아래로 8도트씩 뺀 224 라인이다.[13] 색 표시 수가 어중간한 이유는 패미컴의 색 표시가 RGB 지정이 아닌 NTSC 신호를 직접 생성하는 방식이기 때문이고, 적절한 패러미터가 64종이기 때문에 (유채색 12+무채색 2계통)×휘도 4계조 = 56색 중에서 일부는 중복되어 있다. 패밀리 베이식에는 52색으로 기술되어 있다. 실제 사양은 색을 일일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52색이라는 색 표현의 선택폭을 결정했다고 해야 맞는다.[14] 스프라이트, 배경용 각 4팔레트이다. 1팔레트는 4색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1색은 모든 팔레트 공통색(스프라이트면이 투명하다.) 록맨 캐릭터들 같이 투명 포함 4색 이상으로 구성 된 캐릭터들이 있는 게임들도 있는데, 이는 2개 이상의 스프라이트를 겹치는 방법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8팔레트×3색 + 공통 1색 = 25색[15] 수평은 8매까지 가능[16] 추가 VRAM 장착하면 최대 4면까지 가능하다.[17] 수평에는 8매까지.[18] 슈퍼 마리오브라더스도 이렇게 320 Kb의 용량으로 구성되어 있다.[19] 고전 게임의 스프라이트 시트를 뜯어보면 캐릭터들이 마구 조각나 있는 이유가 이러한 이유 때문이고, 스프라이트를 아끼기 위하여 좌우가 동일한 그림은 하나의 스프라이트를 반전시키는 등의 수법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슈퍼마리오의 경우 풀숲과 구름에 동일한 스프라이트가 사용되었다.[20] 북미에서 출시된 NES2에는 존재하지 않는다.[21] 슈퍼콤용으로 만들어졌다.[22] 팩에 FM 음원인 YM2413 OPLL칩이 있다.[23] 이유는 NTSC-M은 기본적으로 CH 3, 4의 주파는 60-66, 66-72MHz를 사용하지만 NTSC-J의 CH 1, 2는 90-96, 96-102MHz를 사용하는데 NTSC-M의 유선 95, 96번과 주파수가 같다.[24] 클래식 감성을 느끼려고 하거나 로터리식 TV로 테스트하는 경우 CH 6(82-88MHz)에 설정하고 미새조정 다이얼을 조절하면 된다.[25] 다만 CATV-MID대역을 지원하지 않는 구형TV는 케이블 채널 확장기나 VCR을 연결해야 한다.[26] 당시 샤프가 게임 & 워치 제작으로 바빴기 때문.[27]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3을 개발할 당시에는 프로그래밍 작업에 HP 64000이, 그래픽 작업에는 후지쯔 FM R-50 HD가 사용되었다.[28] 버튼을 수직으로 누르는 게임앤워치와 달리 TV게임기는 버튼을 누르는 힘이 대각선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고 한다. 때문에 이 힘을 견디는 원형 버튼으로 교체한다.[29] 남코의 나카무라 사장이 직접 '왜 우리는 패미컴에 게임을 내지 않는것인가? 하며 패미컴 해석의 지시를 내렸다고도 하지만 저것도 실제 당사자들이 증언한 내용이다.[30] 그 당시 동키콩에 대해 콜레코는 게임기용 라이선스를, 아타리는 가정용 컴퓨터 라이선스를 갖고 있었다. 콜레코의 가정용 컴퓨터였던 콜레코 아담에 동키콩이 돌아가는 것에 대해 아타리는 라이선스 계약 위반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31] 닌텐도가 비디오 게임 사업을 시작하기 이전에 장난감 회사였던 것을 생각하면 초심으로 돌아간 셈이다.[32] 몇십 년 전이니 동시대라고 대충 뭉개는 경향이 있는데, 현실에서 2~3년이면 반도체 집적도가 두배하고도 조금 더 늘어났을 시간이고, 드림캐스트에서 엑스박스로 넘어갔을 정도의 시간이다.[33] 이후 패미컴의 가격에 충격을 받아서 반다이에서 자사에서 수입하던 아카디아 2001을 50%나 할인한 9800엔에 판매했고, 에폭에서도 기존의 카세트비전을 기반으로 원가절감을 한 카세트비전 Jr을 5천 엔이라는 초특가에 발매하기는 했으나 결국 패미컴의 가성비 앞에서는...[34] 제대로 된 성능을 구현한 건 MSX2부터이다.[35] AVGN에서 아타리 관련 영상을 보자. 패미컴과 비교했을 때 안습할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아타리 5200과 패미컴으로 발매된 마리오브라더스의 그래픽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36] 이 게임은 타카하시 명인이 허드슨 영업부 사원에게 아직도 패미컴 게임이 팔린다는 말을 듣고 재빨리 기획해서 만든 게임으로 쏠쏠하게 팔렸다는 후문이 있다.[37] 남코는 NAMCOT를 그 방식으로 사용했고, 이를 지켜본 코나미는 울트라 게임즈와 팔콤 소프트웨어(Palcom Software)(절대 Falcom이 아니다.)를 만들어 우회했다. 어클레임 엔터테인먼트는 LJN을 인수하기도 했다.[38] 단 이건 닌텐도의 잘못은 아니었다. 테트리스의 저작권이 초기에 워낙 꼬여 있었기에 발생한 문제였다.[39] 특히 EA, 물론 트립 호킨스 성격 상 순순히 들어가지 않았고, EA는 제네시스를 해킹하는 데 성공해 그걸로 서드파티 라이선스 협상을 유리하게 끌어 세가에게서 최혜 대우 특혜를 받을 수 있었다.[40]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세가 새턴에게 서드파티를 모두 뺏긴 이유로 닌텐도 64의 게임 수는 약 300개(…)이다.[41] 슈퍼 패미컴, 메가 드라이브,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 북미판 NES 등등[42] 사실 패미컴이 현역인 1980년대 중후반에 한국산 게임의 주된 하드웨어는 MSX였다. 한국에서의 패미컴 붐은 일본보다 약간 늦었기 때문에 이러한 소프트들도 보통 1990년 앞뒤로 나온 것들이다.[43] 당시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지기 전이었던 시절이었으며 닌텐도도 한국 시장에 관심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게임 회사들이 닌텐도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기는 어려웠다.[44] 2003년이면 증손자 뻘인 게임큐브엑스박스까지 발매되고 2년 가까이 흐른 시기이다. 이는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생산되어 온 플레이스테이션 2보다도 월등히 길다![45] 이 때 '최신예'였던 PS3XBOX360은 보편적인 게임기 세대 구분법 보면 패미컴 이후 4세대 뒤의 기종이다.[46] 기존 키라키라 스타 나이트보다 화려하고 다양한 음악에...[일본어] エスカ&ロジーのアトリエ[47] 제작자는 키라키라 스타 나이트를 제작한 RIKI.[48] 테이프에 소리로 0과 1을 기록하고 그걸 다시 들어서 읽는 방식이다. 당대의 홈 컴퓨터 등에서 나름대로 흔히 쓰인 방식이긴 하지만, DAC-ADC 과정을 거치며 데이터가 손상되기도 쉽다는 단점이 있어 플로피 디스크 대중화와 함께 시장에서 퇴출됐다.[49] 두 게임에는 맵 제작 기능이 있는데, 이 기능으로 만든 맵을 저장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바로 패미컴 데이터 레코더다.[48][50] 토스터기처럼 생긴 NES의 개조품. AVGN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이 밖에도 NES는 물론이고 SNES, 아타리 2600, 세가 제네시스를 전부 기동할 수 있는 슈퍼 제닌타리도 있다.[51] 이런 프론트로딩 방식은 고장이 잦아서 후술할 NES2는 다시 원본의 탑로딩 방식으로 돌아왔다.[52] 게임팩 버전[미] A B 북미판. 참고로 유럽판은 NES로 발매되지 않았다.[53] 일본에 있는 닌텐도의 R&D3에서 만들었으나 일본에 출시되지 않았다.[54] 북미, 유럽판[55] 일본에서는 전설의 기사 엘론드로 출시됐다.[56] 이 때문에 패미컴 팩 기판에 어댑터를 장착해서 발매한 NES 카트리지는 어댑터에 CIC칩이 장착되어있다.[일] A B C D E F G 일본판[57] 야마하 YM2413 OPLL칩에 비해 3채널의 리듬 채널이 제거되었고, 악기 세트가 다르다.[58] 다만 특정 개수 이상의 채널 및 샘플링을 사용하게 되면 음질 저하와 노이즈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59] 이 게임에만 3채널의 PSG 음원을 추가 지원하는 야마하 YM2149F 코어가 추가됐으며, 선소프트 5B칩이라고도 부른다. 참고로 야먀하 YM2149F는 제너럴 인스트루먼트 AY-3-8910 PSG칩을 수정한 모델이나 기능은 거의 같다. 참고로 유일하게 야마하 YM2149F를 쓰는 Gimmick!에서도 사운드 칩 기능의 극히 일부분만 썼다. 그래서 정확도보다는 성능을 중요시 하는 일부 에뮬레이터에서는 야마하 YM2149F 기능의 일부분만 구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60] 한국 닌텐도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정식 발매를 검토했지만 물량부족으로 인해 출시하지 못했다고 한다.#[61] 실제로 패미컴 미니를 검색해 보면 짝퉁을 정품으로 잘못 알고 구매해서 리뷰한 사람들도 볼 수 있다. 10만원 이하의 물건은 짝퉁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주의하자.[62] 굳이 사용하려면 HDMI를 RCA로 변환해 주는 장비를 쓰면 된다.[63] 두 명이서 플레이를 하고 싶다면 컨트롤러를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64] 클래식 컨트롤러 사용 시 A, Y버튼이 A버튼, B, X버튼이 B버튼에 대응된다. HOME 버튼을 누르면 '''본체의 리셋 버튼을 눌렀을 때처럼 바로 리셋이 가능하다.'''[65] 북미판 150만 대, 일본판은 26만 대 한정으로 팔았으나 완매하고 30만 대를 추가 생산해 완매하였다. 계속 생산하지 않는 이유는 라이선스 때문에 한정 수량만 생산했다고 한다.[66] 현재도 생산되고 있는 '라즈베리 파이 제로 W' 의 SoC가 더 저사양이지만(1GHz 싱글코어), 라즈베리 파이 재단에 독점 공급되므로 사용할 수 없다.[67] 사실 이 부분이 대부분 아쉬워 하는 점이기도 하다. 패드가 너무 자그마 하다 보니 이에 대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리뷰가 꽤 많은 편.[68] 단 NES 클래식 미니와 다르게 대만제 Nanya 256MB DDR3 SDRAM과 Macronix 512MB NAND 플래시 메모리가 들어가 있다.[69] 귀가 커서 소리에 민감하다는 설정이 있고, 실제로 2P 컨트롤러에 소리를 내서 여러마리를 한번에 잡을 수 있었다.[70] 마이크로 5핀 케이블 사용가능. USB 충전기 형태의 AC 어댑터도 1,000엔에 별도 판매한다.[71] "그 슈퍼 마리오를 넘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슈퍼 울트라 어드벤처 게임!"이라는 카피로 광고했다.[72] 순서대로 99개의 ZONE과 마지막 FINAL ZONE, 그리고 숨겨진 FINAL ZONE이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폭탄을 던져 폭발시키면 등장하는 숨겨진 문이 도처에 있으며 특정 구멍에 떨어지거나 특정 장소에서 폭탄으로 자살하거나 특정 공간을 향해 점프하거나 하면 갑자기 다른 ZONE으로 워프하는 등 숨겨진 요소가 너무나도 많아 100개의 ZONE을 전부 클리어할 일은 없다. 게다가 버그로 인해 갈 수 없는 ZONE이 3개(55,59,84) 있다. 이쪽은 비기를 이용해 직접 ZONE 선택을 하지 않는 이상 갈 수 없다.[73] 일본에서 USA가 아닌 북미에서 로스트 레벨이라 불리는 그것이다.[74] 원제는 로쿠데나시 블루스[75] 자이로 마이트와 스택업이 게임내 타이틀명이 다른 이유가 이런구조이기 때문이다. NES카트리지의 플라스틱이 컨버터를 사용한 카트리지도 안전하게 고정할 수 있는 내부지지대가 있는것을 보면 처음부터 이런 방식으로도 출시할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