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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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호'''
콘스탄디노스 2세 (Κωνσταντίνος Βʹ)[1]
'''출생'''
1940년 6월 2일 (83세)
그리스 왕국 아테네 프시치코 궁전
'''재위'''
그리스 왕국의 왕
1964년 3월 6일 ~ 1973년 6월 1일
'''배우자'''
덴마크의 아네마리에 (1964년 결혼)
'''자녀'''
알렉시아(1965년생), 파블로스(1967년생, 왕세자), 니콜라오스(1969년생), 테오도라(1983년생), 필리포스(1986년생)
'''아버지'''
파블로스 1세
'''어머니'''
하노버의 프리데리케
'''형제'''
소피아, 이리니[2]
1. 소개
2. 생애
3. 기타


1. 소개


콘스탄티노스 2세는 그리스 왕국의 마지막 국왕이며 더 나아가 그리스 역사상 마지막 군주이기도 하다.

2. 생애


그가 국왕이 된 때에는 그리스 정치에서 좌우 대립이 극심했던 시절이었다. 국왕을 공공연히 부정하던 좌파와 우파가 대립했고, 국왕이 총리를 지명하면 의회가 거부하는 일이 빈번했다.
1965년에 콘스탄티노스 2세가 좌파였던 요르요스 파판드레우 1세 총리를 해임하자, 그리스는 그리스 좌파와 우파간의 다툼이 심각해졌다. 이 상황에서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대령은 좌파들을 쓸어버려야 한다며 쿠데타를 일으키고 군사정권을 수립했다. 당시 국왕인 콘스탄티노스 2세는 처음엔 쿠데타 세력을 지지하는 듯 보였으나, 그해 12월 13일 역 쿠데타를 시도하였다. 이 쿠데타는 실패하고 그는 이탈리아로마로 망명한다.
파파도풀로스는 왕만 쫓아냈지 왕정을 없애지는 않았으나 이후 왕당파는 민주화 세력과 연대하여 반군사정권 투쟁을 벌여 정권의 눈엣가시가 된다. 이에 파파도풀로스는 1973년에 요식적인 국민투표를 거쳐 왕정을 폐지하는 것으로 응답했으며, 이로서 그는 공식적으로 폐위된다.
그리스 군사정권 퇴진 이후 새로 들어선 민주 정부는 군사 정권의 왕정 폐지(헌법 개정)를 무효화했으며, 이에 따라 1974년 왕정복고 국민투표가 있었다. 그러나 7:3으로 왕정복고가 부결되면서, 콘스탄티노스 2세는 왕위를 되찾지 못했다. 1946년 국민투표에서 7:3으로 왕정이 유지된 것과는 대조적인데 한때 군사정권을 지지하여 중도층의 민심과 정치권의 신뢰를 잃은 것이 결정타였다. 그래서 여전히 입국 금지를 먹은 채 돌아오지 못하고 런던에서 망명생활을 계속했고, 당시 정치인들로부터도 '멍청이', '암덩어리' 등의 비난을 들었다.
그는 결국 굴복하고 공화정을 인정했지만 그리스에서 그에 대한 여론은 굉장히 냉담해서 1994년에는 아예 국적박탈을 당한다. 당시 콘스탄티노스는 다른 유럽 왕들과 마찬가지로 성씨를 쓰지 않았는데[3] 그리스 정부에서 적법한 성씨가 없다는 이유로 그리스 국적을 부정한 것이다. 또한 1990년대에는 왕실 재산과 관련해 그리스 정부와 소송이 걸렸는데 그리스 정부는 "제대로 된 이름도 없는 사람이 뭔 소송이냐"면서 소송을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소송을 위해 Κωνσταντίνος της Ελλάδας(그리스의 콘스탄티노스)라는 이름을 등록했다. 그리스 법원에서는 그의 소송을 기각했으나, 콘스탄티노스 2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유럽인권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오랜 소송 끝에 2000년에 그리스 내에 있는 자신의 재산을 돌려받았다. 그리스 정계는 이를 비웃었는데, 그가 탈세한 금액이 많다고...기사
그러다가 2000년대 이후 아테네 올림픽 당시 방문을 계기로 그리스 정계와의 사이가 개선되었고, 2004 아테네 올림픽 당시에는 Constantino de Grecia(그리스의 콘스탄티노스/스페인어식)라는 이름으로 덴마크에서 외교관 여권을 발급받아 IOC 위원의 자격으로 입국하였다.[4] 이후 런던과 그리스를 오가다가 2013년에 영구 귀국을 허락받아 그 뒤로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포르토 헬리(Πορτοχέλι/Porto Heli)에 거주하고 있다.

3. 기타


아내는 프레데리크 9세의 3녀이자 현 덴마크의 여왕 마르그레테 2세의 동생 아네-마리에로, 부부는 크리스티안 9세 기준으로 부계 8촌 관계이다. (빅토리아 여왕 기준으로도 친척으로, 콘스탄티노스 2세의 어머니 프레데리카 왕비 기준으로 하면 9촌, 아버지인 파블로스 1세 기준으로 하면 8촌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 공과는 5촌 지간(아버지 파블로스 1세와 사촌 관계)이며, 또한 찰스 왕세자와는 재종 사촌이자 친구 사이이다.
1960 로마 올림픽 요트 종목에서 금메달까지 딴 양반일 정도로 스포츠광이었다. 그래서 왕정 폐지 이후에도 IOC 명예 위원으로 활동하여 여러 올림픽에 모습을 드러냈었다.
셋째이자 차남인 니콜라우스는 2010년 8월 25일 그리스의 스페체스 섬에서 베네수엘라 출신 이벤트 플래너 타티아나 블라트니크와 결혼했다. 기사
그의 손녀인 마리아 올림피아 공주[5]의 생일이 화제가 되었다. 기사
[1]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ντ(nt)가 붙어 있을 경우 τ에서 d 발음이 남[2] 1942년생. 독신[3] 없는 건 아니다. 평소에는 쓰지 않고 공식적으로 이름을 써야 할 때도 쓰지 않는 것이다. 보통 가문명이나 영지의 이름이 성으로 사용된다.[4] 덴마크는 덴마크 왕가 후손에게 자국 외교관 여권을 발급해준다. 하지만 이때 "성이 데그레시아냐"면서 그리스식으로 "콘스탄디노스 데그레치아스"(Κωνσταντίνος Ντεγκρέτσιας)라고 비꼬는 이들도 있었다고…….[5] 둘째이자 장남인 파블로스 왕세자와 부인 마리 샹탈(미국 출신으로 본명 마리 샹탈 밀러. DFS 그룹 창립자 중 한명인 로버트 워렌 밀러의 세 딸 중 둘째 딸) 사이에서 태어난 4남 1녀 중 맏이이자 고명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