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필립 아서 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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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 에든버러 공작 필립의 장남이자 왕위 계승 서열 1위. 현 프린스 오브 웨일스. 윌리엄 왕세손의 아버지이자 조지 왕자와 샬럿 공주, 루이 왕자의 할아버지이다. 흔히 언론에서는 "찰스 왕세자"[2] 라고 불린다. 다이애나 스펜서와 결혼했을 때에는 주로 "찰스 황태자"라고 불렸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검색해보면, 대략 1991년도까지는 국내 신문기사 대부분이 황태자로 호칭했으나 1992년부터 갑자기 왕세자로 호칭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건 TV뉴스의 경우도 마찬가지. 일본 매체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왕, 왕비, 여왕은 이렇게 표기하나, 황태자는 고유명사처럼 정착해서 황태자라고 표기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의 영향이나 아무 생각없이 일본어를 중역하던 관행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태자 참고.
엘리자베스 2세가 1948년 11월 14일, 버킹엄 궁전에서 '''22세'''에 낳은 첫 아들. '''현재 76세'''로[3] , '''74년째[4] 왕위 계승 예정자로만 있다.''' 2017년 9월 9일 부로 에드워드 7세를 제치고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프린스 오브 웨일즈 작위를 갖는 사람이 되었다.
이러다 보니 영국의 전설적인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선은 찰스 왕세자의 환갑잔치 축하공연에서 아주 "전하는 이제 환갑인데, 전하의 어머니는 무대(=옥좌)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 하오. 그래도 여전히 웨일스 공인 게 어디요.(When you're sixty years of age, and your mama won't leave the stage. It's good to know you're still the Prince of Wales)" 라며 놀리기도 했다.
다이애나 사후 불륜상대인 카밀라 파커 보울스와 재혼했는데, 당시 이에 대한 영국의 여론은 정말 좋지 않았다. 영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찰스 왕세자를 보는 시선이 좋지 않다. 본인들도 그걸 잘 아는지, 재혼 후에는 비교적 얌전히 지내고 있다. 당시 영국에서 다이애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 카밀라의 인기는 매우 낮다. 심지어 재혼 이후 한 설문조사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 사후 왕위를 찰스 왕세자의 장남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 왕세손이 잇기를 바란다는 여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이러한 결과가 나오는 데에는 찰스 자신의 매력 없음과 함께 카밀라와의 재혼이 이유로 꼽힐 정도다. 윌리엄이 다이애나 스펜서의 아들이라는 점도 한 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2010년대 기준으로 이미지를 상당 부분 회복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국서 에든버러 공작인 아버지가 2017년 그의 96세 생일부로 왕실 공식 업무에서 은퇴하면서, 여왕의 의회 연설을 비롯한 제 행사에 여왕의 곁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왕정에서 상징성 있는 어머니의 후광 효과를 옆에서 받으며 평탄한 왕위 계승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이애나 스펜서 왕세자비의 죽음 이후, 찰스는 본인의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서 많은 자선사업을 관장했는데, 그 중 하나가 지구 온난화였다. 문제는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희망으로 떠오르는 미국이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는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이다. 평상시에도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생태계 보전에 큰 관심을 가졌던 왕세자여서, 트럼프 대통령이 정식으로 영국을 방문하면 "훈계"하지 않을까 트럼프 측에서 걱정했고,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찰스 왕세자 대신 윌리엄 왕세손이나 해리 왕자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출처1출처2 Business Insider에 의하면 찰스 왕세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정식으로 맞이할 것이며, 무슬림 입국 거부와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한 뜻깊은 토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찰스에 대한 여론이 좋아졌었다. 그러나 실제 트럼프의 2018년 영국 방문에서는 찰스 왕세자와 윌리엄 왕세손 모두가 만남을 거부해, 트럼프는 여왕만 만나고 돌아왔다.
키는 178cm로 전 아내인 다이애나와 키가 같으나 191cm인 장남 윌리엄과 183cm인 아버지 필립 공보다는 작다. 아들들인 윌리엄과 해리 모두 어머니인 다이애나를 닮아 장신이다.
2020년 3월 25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 다만 가벼운 증상 외에는 좋은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스코틀랜드의 밸모럴 성[6] 에서 아내 카밀라와 자가격리 되어 있다고 한다. 카밀라는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았다. 이후 자가격리에서 해제되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후유증으로 인해 오감 중 후각과 미각이 상실되었다는 보도가 있다. ### 11개월 후에는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다고 한다.#
콘월 새 영지에 머무르게 되는데, 문제는 세세한 규정으로 주변 주민들이 불만이 있다는 것이다.#
2. 작위
공식적인 칭호는 '웨일스 공(프린스 오브 웨일스=왕세자)[7] , 체스터 백작, 콘월 공작, 로스시 공작[8] , 캐릭 백작, 렌프루 남작, 아일즈의 영주, 스코틀랜드 왕자이자 섭정, 가터 훈장의 기사, 씨슬 훈장의 기사, 바스 훈장의 대십자기사, 오더 오브 메리트의 회원, 오스트레일리아 훈장의 기사, 여왕 공로 훈장의 컴패니언, 여왕 폐하의 영광스런 추밀원의 의원이신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자 전하(His Royal Highness Prince Charles Philip Arthur George, Prince of Wales and Earl of Chester, Duke of Cornwall,[9] Duke of Rothesay, Earl of Carrick, Baron of Renfrew, Lord of the Isles, Prince and Great Steward of Scotland, Royal Knight Companion of the Most Noble Order of the Garter, Royal Knight Companion of the Most Ancient and Most Noble Order of the Thistle, Knight Grand Cross of the Most Honourable Order of Bath, Member of the Order of Merit, Knight of the Order of Australia, Companion of the Queen's Service Order, Member of Her Majesty's Most Honourable Privy Council, Aide-de-Camp to Her Majesty)'이다.
영국 해군 장교로 군복무를 한 후 대위로 전역했으나, 명예계급은 계속 진급하여 2012년에는 아버지와 동등한 영국 육군/영국 해군/영국 공군 원수 계급을 받았다. 2000년부터 2001년까지 스코틀랜드 장로회 총회 고등판무관(The Lord High Commissioner to the General Assembly of the Church of Scotland)직을 수행했다.
칭호의 변천사는 다음과 같다.
- 에든버러의 찰스 공자 전하 His Royal Highness Prince Charles of Edinburgh (1948년 11월 14일 ~ 1952년 2월 6일)
- 콘월 공작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Duke of Cornwall (1952년 2월 6일 ~ 현재)[10]
- 스코틀랜드에서는 로스시 공작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Duke of Rothesay (1952년 2월 6일 ~ 현재)
- 캐릭 백작 Earl of Carrick (1952년 2월 6일 ~ 현재)
- 렌프루 남작 Baron of Renfrew (1952년 2월 6일 ~ 현재)
- 아일즈의 영주 Lord of the Isles (1952년 2월 6일 ~ 현재)
- 스코틀랜드의 왕자이자 섭정 Prince and Great Steward of Scotland (1952년 2월 6일 ~ 현재)
- 스코틀랜드에서는 로스시 공작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Duke of Rothesay (1952년 2월 6일 ~ 현재)
- 웨일스 공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Prince of Wales (1958년 7월 26일 ~ 현재)[11]
- 체스터 백작 Earl of Chester (1958년 7월 26일 ~ 현재)
2.1. 즉위 시 호칭
찰스가 즉위할 때 왕으로서의 이름으로 찰스를 선택할지는 알 수 없다. 일단 찰스의 할아버지인 조지 6세의 경우 풀네임 '앨버트 프레드릭 아서 조지'에서 앨버트가 아닌 조지를 선택한 전례가 있었다. 게다가 영국 역사에서 찰스 1세와 찰스 2세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는 국왕이 아니라는 점[12] 도 걸림돌. 그래서 찰스를 대신할 이름으로 조지가 거론되지만, 정작 왕세자 본인은 이에 대한 논의를 꺼리는 분위기. 아무래도 찰스 왕세자가 왕호를 정할 왕이 되려면 어머니가 돌아가시든 물러나든 해야 하는 상황인데, 어느 쪽이나 찰스 쪽에서 먼저 꺼내면 본인이나 주위 시선이나 찝찝해지는 주제이긴 하다.
아무튼 만약 찰스로 한다면 찰스 3세가 되겠고 조지로 한다면 조지 7세가 될 것이다. 한편 그의 풀네임에 존재하는 또다른 이름인 '필립' 이나 '아서' 로 할 가능성도 있는데, 필립으로 하면 메리 1세와의 부부 동군연합으로 잉글랜드 '필립 왕' 이 된 적이 있었던 펠리페 2세는 잉글랜드 국왕으로서의 칭호가 필립 1세가 되고[13] 찰스 왕세자 본인은 필립 2세가 될 것이며, 아서로 하면 '아서 왕' 이 될 것이다. 후자의 경우 아서 왕 전설의 아서 왕이 실존 여부가 불분명한 인물인 만큼 실존 여부가 분명한 영국 군주로서는 처음으로 아서라는 이름을 쓰는 케이스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영국 군주로서 아서라는 명칭을 쓰기는 조금 힘들 것이다. 영국인에게 있어 아서 왕은 워낙 전설적인 인물인지라 그런 사람의 이름을 이제와서 국왕으로서 잇는다는 것은 자뻑 무리수로 보이기 쉽고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될 것이다. 역대 교황들이 초대 교황인 베드로의 이름을 쓰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유이다.
영국에서 특정 왕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게 된 경우는, 사촌 마틸다 공주와 내전을 치른 스티븐 왕과 마그나카르타로 유명한 결지왕 존 두 사람뿐이다.
3. 생애
3.1.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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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1월 14일 현지시각 오후 9시 14분 버킹엄 궁전에서 엘리자베스 공주와 에든버러 공작의 장남이자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대비의 첫 손주로 태어났다. 엘리자베스 공주 부부가 결혼한 지 1년 만에 태어난 아들이자 후계자라서 많은 축복을 받으며 태어났다.
1948년 12월 15일, 버킹엄 궁전의 뮤직 룸에서 성공회 유아세례를 받았다.
태어났을 당시,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는 왕위 계승 서열 1위의 공주였으나, 찰스는 부계출신 왕족이 아니여서[15] 법적으로는 어머니가 여왕이 되기 전까지 왕자 칭호를 가지지 못하고, 예우경칭(courtesy title[16] )인 메리오네스 백작(Earl of Merioneth)으로 불려야 했다.[17] 그러나 외조부 조지 6세의 특명에 따라 찰스와 동생 앤 공주는 엘리자베스가 여왕으로 즉위하기 전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각각 왕자, 공주라는 작위와 더불어 전하(HRH)[18] 호칭을 가질 수 있었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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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 외할아버지 조지 6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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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 아버지 필립 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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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외할아버지 조지 6세와 함께. 참고로 이 사진은 9월에 폐 수술을 한 이후 처음 찍힌 조지 6세의 사진이라고 한다.
1952년 외할아버지 조지 6세가 서거함에 따라 어머니 엘리자베스 공주가 여왕이 되었고, 찰스는 왕위 계승 서열 1위에 올랐다. 콘월 공작, 로스시 공작, 캐릭 백작, 렌프루 남작, 아일즈 영주 그리고 스코틀랜드 왕자이자 섭정 작위를 받았으며, 어린 시절은 대부분 가정교사의 지도 아래 가르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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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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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여동생 앤 엘리자베스 앨리스 루이즈 공주의 세례식에서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의 품에 안긴 동생을 바라보고 있는 찰스 왕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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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 앤 공주와 함께. 두 사람 모두 남동생들과 나이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에[20] 근 10년 간은 2살 터울인 앤 공주와 함께 어린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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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늦둥이 남동생 앤드루 왕자를 바라보고 있는 찰스 왕세자.
어린 시절 왕위 계승자였던 어머니, 무뚝뚝했던 아버지에게 거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 엘리자베스 2세가 왕위에 오른 후에는 더더욱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기 힘들었다. 필립 공은 찰스를 왕세자의 직위에 걸맞게 양육하기 위해 항상 엄하게 키웠고, 부자 간의 사이는 좋지 못했다.[21] 유일한 딸이라 필립 공이 금지옥엽으로 여겼던 앤 공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늦은 나이에 얻어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와는 달리, 찰스는 부모의 따뜻한 애정보다는 항상 왕세자로서의 '의무'가 먼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찰스가 의지할 사람은 외할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대비, 루이 마운트배튼 경 정도였으며,[22][23] 특히 루이 마운트배튼 경이 IRA 폭탄 테러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였을 때는 몹시 비통해했다고 한다.
이후 궁에서 가정교육을 받는 왕실의 관례를 깨고 최초로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힐 하우스 스쿨, 침 스쿨, 고든스타운스쿨을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컬리지에 입학했다. 대학을 가지 않고 사관학교에 입학하는 왕실의 관례를 깼다. 인류학, 고고학, 사학을 전공하였고 1970년에 졸업하여 학력을 보유한 최초의 왕족이 되었다.
3.2. 결혼
찰스 왕세자는 스펜서 가문의 8대 스펜서 백작, 존 스펜서의 3녀 다이애나 스펜서(Lady Diana)와 교제를 시작했다. 다이애나와 남동생 앤드루 왕자가 소꿉친구라 두 사람은 어린시절 몇 번 만난적이 있었다.
다이애나의 친정인 스펜서 가문은 가문의 역사만 놓고 보면 윈저 왕가보다 유서가 더 깊으며, 스펜서 백작 가문의 선대가 무역업 등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덕분에 가문의 재산이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영국 왕실은 1981년 2월 24일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약혼을 공식 발표했고, 5개월 후인 1981년 7월 29일, 전세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세기의 결혼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20세기의 신데렐라'로 불리며 새로운 왕세자비가 된 다이애나를 본 세계인은 그녀의 매력과 아름다움에 열광했다. 많은 사람이 이 부부가 앞으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지내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이애나가 입은 의상과 착용한 장신구는 당대의 패션을 선도하는 유행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고, 왕실은 더할 나위 없이 가족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3.3. 사생활
항목 참조.
4. 가족 관계
4.1. 조상
4.2. 자녀
5. 기약없이 늦어지는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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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2세: 다음 세대를 위한 때이므로 짐은 물러나겠다.
필리프: 고마워요 아빠.
베아트릭스: 다음 세대를 위한 때이므로 짐은 물러나겠다.
빌럼알렉산더르: 고마워요 엄마.
후안 카를로스 1세: 다음 세대를 위한 때이므로 짐은 물러나겠다.
펠리페 6세: 고마워요 아빠.
엘리자베스 2세: …….
찰스: …….
엘리자베스 2세: …….
찰스: 그러어어엄 엄마는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엘리자베스 2세: '''꿈 깨거라, 이 X만한 놈아.'''
찰스: 찰무룩...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가 워낙 오래 살고 계신 덕분에(...) 본인도 이미 칠순이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웨일즈 '''공'''에 머물고 있다. 이러다가 잘못하면 고구려 장수왕의 아들 조다, 프랑스 루이 14세의 아들[28] 이나 루이 15세의 아들처럼 왕세자로 살다 늙어 죽을 지경. 이미 1989년 아키히토 덴노의 즉위 당시 나이(만 55세)를 넘어섰으며, 영국 역사상 최고령으로 즉위한 윌리엄 4세의 나이(만 65세)도 넘어선 굉장히 위태위태한 나이다.[29] 심지어 프리드리히 3세처럼 즉위한 뒤 얼마 못 살고 죽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지만, 그보다 훨씬 더한 나이로 즉위한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있다. 2015년 1월 즉위 당시 살만의 나이는 무려 '''79세'''.Given the robust good health of his mother Queen Elizabeth, chances are that '''it will be some years''' before Bonnie Prince Charlie becomes King.
어머니 엘리자베스 여왕의 왕성한 건강을 감안할 때, 찰스 왕세자가 왕이 되기에는 '''몇 년은 걸릴 것 같습니다.'''
1978년 5월 15일, 찰스를 인터뷰했던 타임지 기사 중 출처
단 사우디아라비아는 영국이나 다른 유라시아의 군주국가들과 달리 '''형제상속제'''를 채택하여 사우디의 살만 임금은 '''초대 국왕''' 압둘 아지즈 알 사우드(1876~1953)의 '''25남'''이고, 지금까지 죄다 '''국왕들이 초대 국왕의 아들'''로서 차례로 즉위했다는 게 다르긴 하다. 그렇기에 여기야 70~80대에 즉위해도 이해할 수 있지만[30] 찰스 왕세자는 '''현 국왕의 자녀로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왕세자'''이다. 참고로 2번째로 나이 많은 왕세자는 태국 국왕 라마 9세의 장남인 마하 와치랄롱꼰 왕세자(2016년 기준으로 만 64세)였으나, 2016년 10월 13일 라마 9세가 서거하고 마침내 12월 1일자로 국왕에 즉위했다.
21세기 들어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올라가게 되자, 전세계의 군주제 국가들의 군주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너무 늦은 나이에 즉위하는 것을 막고자 적당한 시기에 양위하는 풍습이 생겨났다. 유럽 입헌군주국의 국왕들은 이를 통해 이미지를 젊게 유지하고 국민들의 지지를 재확인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세습군주뿐 아니라 선출직인 교황 베네딕토 16세 역시 교황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생전에 스스로 물러났다.
생전퇴위가 금지되어 있던 일본 황실에서조차도 만 82세인 아키히토 덴노가 고령을 이유로 2016년 8월 8일 만 56세의 장남 나루히토 황태자에게 양위할 뜻을 밝혔고, 이후 아키히토 덴노 한정으로 생전퇴위를 허용하는 특별법을 만드는 방식으로 마침내 2019년 5월 1일자로 차기 덴노로서 나루히토 황태자(당시 만 59세)가 즉위하였다.[31] 이처럼 세계의 입헌군주제 국가들이 그동안 미뤄온 후계자 즉위를 강행하며, 비슷한 입장이었던 찰스 왕세자만 홀로 기약 없는 왕위 계승을 기다리는 입장이 되었다.
2018년 4월 19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자신이 맡은 영연방 수장 자리를 찰스에게 물려 주고 싶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여왕이 공개추천 형식을 빌려 찰스 왕세자를 후임자로 못 박은 데는 그의 왕위 계승에 대한 안팎의 반대여론을 잠재우고, 차기 왕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사전 정치 작업으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어쩔수 없는게 엘리자베스 2세는 추축국에 맞선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자이자 대영제국의 마지막 황제로서 왕실의 비효율성에 대한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2020년대에도 할 말이 있고,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으로 연합왕국이 흔들리고, 독립한지 한참이고 우리나라에 머물지도 않는 왕을 왜 원수로 받드냐며 영연방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여론이 증가하는 형국에서도 위신과 명분을 세울수 있지만 찰스는 그게 안된다. 개인의 능력이나 성품 문제가 아니라 뒷세대이기에 처음부터 가질 수가 없었다. 여왕도 누구보다 이를 잘 아니 연합왕국과 영연방 수장이라는 책임감으로 노구에도 왕위를 계속 지키는 것. 영국 왕위가 북유럽이나 스페인, 베네룩스하고 동급이 될수가 없다.
6. 즉위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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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로 인기가 바닥을 치던 시절 영국에서는, "찰스 왕세자 대신 인기가 높았던 장남 윌리엄 왕세손이 바로 왕위를 물려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더 높았던 적도 있다. 그러나 대국민활동, 왕실 개혁 등의 노력으로 2012년 이후 장남 윌리엄 왕세손보다 영국에서의 여론 지지는 앞서는 상황. 왜 "영국에서의"를 붙였는가 하면, 캐나다와 뉴질랜드의 경우 왕정에 대한 지지율이 55~60% 정도로 높게 나온 조사에서도 찰스 왕세자의 왕위 계승에 대한 지지율은 40% 정도로 낮은 편이라 문제가 있다.
허나 확실한 건 영국의 왕위계승법상 찰스가 사망하거나 혹은 찰스 본인이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고 윌리엄이나 다른 왕족들에게 왕위 계승권을 넘기지 않는 이상 바로 윌리엄이 왕위를 물려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딱히 도저히 왕이 못 될 만한 중대한 결격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32]
현재 영국을 제외한 유럽 왕실에서는 국왕이 적당한 시점에 계승 1순위 자녀에게 양위하는 경우가 일반화되고 있는데, 최근 스페인, 네덜란드, 벨기에의 국왕들이 아들에게 조기 양위한 바 있다. 이들 세 나라의 공통점은 모두 엘리자베스 2세 여왕보다 젊지만 아들에게 양위를 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한동안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조만간 찰스 왕세자에게 양위를 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2012년에 즉위 60주년을 맞은 엘리자베스 2세가 찰스 왕세자에게 양위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여왕이 '''"그런 일은 없다"'''라고 부인했다.
2013년 4월, 물 건너 옆 동네 네덜란드에서 베아트릭스 여왕이 재위 33년만에 자기 아들인 빌럼 알렉산더르에게 쿨하게 양위한다고 밝히자, 영국의 일부 언론들이 엘리자베스 2세의 양위 가능성을 점치는 기사를 내보냈다. 데일리 미러 지는 "여왕,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다"라는 제목을 단 기사 밑에 작은 글씨로 '''"왕세자 전하, 죄송하지만 네덜란드 쪽 베아트릭스 여왕 폐하 얘깁니다."'''라고 염장을 질렀다(...)("Queen gives up throne for her son (sorry, Prince Charles, it's Queen Beatrix of Netherlands)")
4월 30일에 거행된 베아트릭스 여왕의 양위식에 참석했는데, 찰스 왕세자는 33년 전 율리아나 여왕의 양위로 새로운 여왕이 된 베아트릭스 공주의 즉위식에도 참석한 적이 있었다. 33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왕세자 신분으로. 그렇게 빌럼 알렉산더르는 네덜란드의 국왕이 되었다. 핵심은 '''베아트릭스 여왕은 1938년 1월 31일 생으로, 1926년 4월 21일생인 엘리자베스 2세보다 자그마치 12살씩이나 젊다'''는 점이다. 게다가 지지가 낮은 찰스와 달리, 빌럼 알렉산더르는 뛰어난 능력과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에, 조강지처가 독재정권의 고위관료였던 친정아버지/장인어른 때문에 온갖 욕을 들어먹어도 이를 법을 동원해서까지 감싸 안아주는 천하의 애처가다.
몇달 후인 2013년 7월에는 벨기에의 알베르 2세(벨기에) 국왕이 아들 필리프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2013년 11월에 열리는 영연방 정상회의에 엘리자베스 2세가 불참하고 찰스와 카밀라 부부를 대신 보내기로 해 "왕위 승계를 위한 수순 밟기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7월 22일, 장남 윌리엄 왕세손의 아내 캐서린 미들턴 세손빈이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조지 왕자를 순산하면서 손자까지 봤다. 게다가 권한이 없느냐면 그것도 아니고 왕실 내 실권의 상당 부분은 그가 갖고 있어, 간판은 왕세자라도 실질적으로는 공동 왕으로 봐도 크게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2014년 6월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아들 펠리페 6세에게 양위하면서 "내 아들이 찰스 왕세자처럼 왕위를 기다리다가 늙는 걸 원치 않았다"고 그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네덜란드의 베아트릭스 전 여왕과 동갑으로 역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보다 12세 젊다. 영국 왕실보다 더 위태로운 상황인 스페인 왕실이 양위를 한 것은 전 국왕인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33]
2019년 10월 일본 덴노 나루히토의 즉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이틀 일정으로 여왕을 대신해 일본을 방문하는데, 찰스 왕세자는 29년 전인 1990년 11월에 열린 아키히토의 즉위식에도 왕세자 신분으로 참석한 바 있다.#
이런 양위 예측들이 번번히 빗나가면서, 현재는 엘리자베스 2세가 지금처럼 건강에 큰 문제가 없는 한 찰스한테 왕위를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려면 다른 나라처럼 일찌감치 할 수 있었다는 것. 한때 다이애나 비 문제로 군주제 폐지 여론이 치솟았기 때문에 엘리자베스 2세가 찰스에게 조기 양위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왕세자의 할머니가 무려 101세까지 장수하기도 했고, 여왕도 90세를 넘겼음에도 아직도 정정한 탓에 그녀가 최대 10년은 더 재위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리되면 왕위를 물려받아도 80대. 왕 되고 나서 다음날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
찰스는 실제 영국의 공화주의자들이 칼을 갈며 즉위를 기다리고(?)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야 워낙 인기가 높아서 군주제 폐지를 주장하는데 어려움이 따르지만, 찰스가 즉위할 경우 낮은 인기를 이용해서 찰스를 비판하며 폐지론을 주장하기가 쉬워지기 때문. 이러한 점 때문에 양위를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고 있는 거라는 분석도 있다. 유럽의 왕실이 양위를 하는 이유가 이미지를 젊게 유지하고 국민들의 지지를 재확인하려는 것인데, 늙은 찰스는 이에 맞지 않다. 게다가 찰스한테 양위하는 순간 '''다이애나 얘기가 또 수면 위로 떠오른다'''(...).
즉위하지 못하고 나이만 먹어가는 현재 상황에 대해, 찰스 본인도 농담조로 조바심을 내기도 했다. 2004년에는 '''"할아버지는 지금 내 나이에 돌아가셨다"'''고 지인들에게 말했다. 조지 6세는 폐암으로 인해 56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34] 2004년으로부터 21년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왕세자. 2019년 3월 5일에는 프린스 오브 웨일스 서임 50주년 기념식이 버킹엄 궁전에서 있었다.[35]#
이제 찰스의 나이도 76세여서, 일각에선 찰스가 (장수왕의 아들 조다 왕자처럼) 어머니보다 먼저 죽어서 다이애나의 아들인 윌리엄에게 바로 왕위가 가길 바라는 다소 악의적인 반응까지 있다. 심지어는 "왕이 되어봐야 별로 할 것도 없는 입헌군주제라서 망정이지, 전제군주제였으면 일이 나도 크게 났을 것이다"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타임지가 낸 특집기사에 따르면 왕이 되는 것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게 왕세자의 심경이라고 한다. 그동안 주관해온 자선활동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 게다가 왕 자리만 차지하지 않는다 뿐이지, 어쨌건 가질 만한 권력은 다 갖고 있다. 권위가 떨어지는 건 본인의 불륜 탓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고.
영국에선 "굳이 찰스에게 물려줄 필요 있나? 할머니가 손주에게 직접 양위해도 되지 않나?"하는 여론이 있다. 물론 엘리자베스 2세의 장손인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를 즉위시키려면 형식상으로나마 찰스가 즉위하는 모양새는 갖춰야 하므로 거기에 희망을 걸 수 있다. 하지만 잔머리를 굴려서 서류상으로만 찰스가 일정 기간 동안 재위했다고 써붙이고[36] 실제로는 엘리자베스 2세가 윌리엄에게 바로 물려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의견은 공상에 가까운 생각으로 현실적으로 지극히 실현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들이다. 한동안 찰스 왕세자를 건너뛰어 윌리엄 왕세손에게 왕위가 돌아가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지만, 최근 찰스 왕세자의 국민호감도가 윌리엄 왕세손을 앞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만약 찰스 왕세자가 자기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보다 일찍 죽을 경우 어찌될지 모른다. 아무리 모자지간이지만, 둘 다 엄청난 고령인지라 누가 먼저 가도 그렇게 크게 이상할 게 없기 때문이다.
한편 "찰스 왕세자가 남동생 앤드루 왕자와 갈등을 빚고 있다"는 기사가 나와, 호사가들은 왕자의 난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찰스는 일하지 않는 왕족에 대한 과도한 지원을 금지하는 왕실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방계 왕족은 물론 자신의 친동생들인 앤 엘리자베스 앨리스 루이즈 공주, 앤드루 앨버트 크리스티안 에드워드 왕자, 에드워드 안토니 리처드 루이 왕자와 그 일가에 대한 지원까지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여 당사자들이 반발한다는 것. 공교롭게도 2012년에 거행된 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 마지막 순서인 버킹엄 궁전 발코니에서의 인사 때 앤 공주,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소문을 부채질했다.
2015년에는 왕세자의 전기 <찰스, 왕의 심장>을 인용해, "왕세자가 즉위하면 여왕과는 다른 적극적인 왕권 행사를 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일어났다. 기사 왕이 된다면 국민의 삶에 '진정어린 개입'을 하는 군주로서 역할을 개조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나, GMO를 반대하는 등의 행보 때문. 2015년 5월 13일, 왕세자의 국정 개입 정황이 담긴 '흑거미 메모'가 10년 간의 소송 끝에 공개되어 왕실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물론 영국의 근왕파들은 "왕세자가 국정에 개입하는 게 어디가 나쁘냐"고 옹호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2018년 70세 생일 특집 다큐멘터리에서 BBC와 인터뷰를 한 왕세자가 '국왕이 된 후에는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국정 개입 논란을 의식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영국 국왕 자리와는 별개로 영연방 왕국 각국의 군주(Monarch of Commonwealth Realms) 자리와 영연방의 수장 자리(Head of Commonwealth)를 승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많다.
영연방 왕국 각국 군주 자리의 경우, 다이애나 비 스캔들과 이후 찰스 왕세자의 행보가 영국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닌 호주와 뉴질랜드, 캐나다 등에서도 큰 반발을 불렀고[37] , 찰스 왕세자가 지나치게 고령이라는 점과 해당국들의 공화주의자들도 엘리자베스 2세가 승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 불안 요소이다. 찰스 왕세자보다 캐나다에서는 윌리엄 왕세손이,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해리 왕자가 더 인기가 많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해당 국가들에서 찰스에 대한 인기는 바닥을 기고 있다[38] . 영국 본국에서는 그대로 왕위 승계까지는 반대하지 않는 게 주류이지만 이 동네에서는 반대여론도 상당하다.
영연방의 수장 자리의 경우 브렉시트 이후 영연방을 좀 더 현대적 기구로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불안 요소 중 하나이며, 영연방 왕국들이 찰스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혹은 줄줄이 왕정을 폐지할 경우 승계 여부가 불투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2013년 영연방 정상회담 당시 엘리자베스 2세가 호주 총리에게 로비를 했다고 한다. 자신의 사후 찰스가 영연방의 수장 자리를 승계할 수 있도록 호주가 지지해 달라는 내용이었다고 하며, 당시 호주 총리였던 줄리아 길라드가 2016년 이를 언급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2018년 4월 17일,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찰스 왕세자의 영연방 수장 계승을 지지한다"고 밝혔으며 19일에는 엘리자베스 2세가 버킹엄 궁전에서 열린 영연방 정상회의에서 찰스 왕세자를 후임 영연방 수장으로 공식 추천했다. 일단 이를 기점으로 엘리자베스 2세가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건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 자체는 반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나이 때문에 어머니보다 먼저 가지 않는 한 왕위에 언젠가는 오를 듯 하다. 하지만 본인도 워낙 고령인지라 왕위를 물려 받는다고 해도 재위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듯 하다. 일단 부모인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 공 모두 장수한 걸 보아 찰스 본인도 장수 유전자를 타고났고, 앞으로 자신의 건강 관리만 잘 한다면 부모님만큼 오래 살 가능성도 크기에 왕위에는 오를 확률이 충분해 보인다. 현재에도 코로나 19에 감염됐다가 고령의 나이에도 완치된 걸 보면 건강 관리는 잘 해오는걸로 보인다.
찰스 왕세자의 개인적인 평판은 매우 좋지 않으나 군주로서 요구되는 능력은 충분히 갖춘 편이다. 내정뿐만 아니라 외교, 군사 분야에 대하여 지식이 풍부하고, 국내외의 정세 판단에 관한 식견, 통찰력도 상당한 수준. 한 보기로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찰스 왕세자는 "홍콩을 중국에게 반환해서는 안된다. 중국에 홍콩을 반환했다간 홍콩은 훗날 큰 불안정에 휩싸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2019년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만 홍콩이 영국에 넘어간 이유가 이유인지라 예측의 정확성과는 별개로 반환하지 않기는 힘들었다.
7. 에드워드 7세와의 공통점
흥미롭게도 고조부인 에드워드 7세(빅토리아 여왕의 아들)와의 공통점이 있다. 아래에 간략하게 서술한다.
- 어머니가 여왕이고 80살 이상 장수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81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98세로 현재 진행형.)
- 프린스 오브 웨일스에 오랫동안 재위 중.[39]
- 바람기?[40][41]
- 조강지처를 내팽겨쳤다. 그나마 에드워드 7세 시절에는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해서 이혼을 안 했기에 망정이지.
- 자녀들 중 한 명이 끔찍한 스캔들의 당사자라는 것 - 앨버트 왕자(매춘설과 독살설, 잭 더 리퍼 설)와 해리 왕자(마약설과 연애설)
- 프린스 오브 웨일스 시절에 손자를 봤다는 것 - 에드워드 7세는 60세에 왕위에 올라 9년이나마 재위는 했으나, 찰스는 이제 76세로 더하다.
8. 대중 문화에서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등장하거나 주인공인 영화, TV 드라마 등에서 대부분 나온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의 대다수는 다이애나에 동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고, 그렇다 보니 찰스 왕세자는 대부분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엘리자베스 2세의 전기를 그린 넷플릭스의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 3에서 본격적으로 청년기의 찰스가 등장하면서 재조명받고 있다. 특히 불행했던 어린 시절과 순탄치않았던 부모님과의 관계가 묘사되면서 동정과 연민을 받고 있다. 시즌 1부터 시즌 3까지는 암울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과 여자 문제 등으로 큰할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의 처지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이 사랑한 카밀라와 강제로 헤어져야만 하는 현실에 대해 슬퍼한다.[42]
하지만 시즌 4에서 본격적으로 다이애나 왕세자비 스토리라인이 등장하면서 악역(?)으로 변모했다. 정확히는 왕실의 일원 중 유일하게 자신을 아껴준 루이 마운트배튼 백작이 IRA의 테러로 사망하기 직전에 보낸 편지에 쓰인 권고에 따라 '과거사가 깨끗하고, 정숙한 여성'을 왕세자비로 몰색하고 여기에 다이애나가 낙점된 것. 이후 다이애나를 꼭두각시로 이용하며 카밀라와의 불륜을 지속하고, 심지어는 자신보다 다이애나의 인기가 높아지자 이를 시기하는 찌질한 모습으로 나온다. 영국배우 조쉬 오코너가 연기.
2017년 영국 BBC에서 <국왕 찰스 3세(King Charles III)>라는 TV 영화를 제작, 방영했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노환으로 사망하고 찰스 왕세자가 마침내 왕위에 오른 후에 벌어지는 가상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흥미롭게도 극중에서 영국 의회가 안보 문제를 앞세워 언론 자유를 제약하려는 법안을 상정, 처리하려고 하자, 찰스가 직접 의회에 (국왕의 전통 제복까지 차려입고서) 출석하여 의회 해산(!)을 선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참고로 영국 국왕에게는 의회 해산권이 명목상 존재한다. 그러나 입헌군주제-민주정 체제가 확립되면서 국왕은 명목상의 사후 승인만 해주고 실질적으로는 총리가 의회 해산을 주도하는 형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그 전통을 깨고 찰스가 직접 의회 해산을 해버린 것. 그리고 본래 영국 국왕은 영국 국회 하원에 들어올 수 없으며, 상원에만 들어올 수 있다. 국왕이 참석해서 행하는 국회 개원식도 귀족원에서 행한다. 그런데 오직 하나, 이 의회해산할 때만은 국왕이 하원에 들어올 수 있다. 찰스의 의회해산 장면 (대사 해석)
다시 말해서 일반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들이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려고 하자 세습 군주가 나서서 이를 저지하려는, 언뜻 보면 서로의 입장이 뒤바뀐 듯한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게다가 이름이 같은 찰스 1세가 권리청원을 통과한 의회를 해산했던 것과 정반대의 상황이다. 당연히 이런 짓을 하면 정치비개입을 통해 유지되어 왔던 영국의 입헌군주제가 흔들릴 것이므로 작품 속 찰스 3세는 작게보면 본인의 왕위, 크게보면 왕실을 걸고 해산을 강행한 것이다. 찰스의 즉위시 영국 왕실 지지가 흔들릴 것이라는 추측을 극단화시키는 장면이다.[43]
찰스 왕세자(극중에서는 국왕)[44] 를 포함해, 영국 왕실의 실존 인물들도 주요 배역으로 등장한다. 극중에서 왕세자, 즉 웨일즈 공이 된 윌리엄 왕자는 부왕의 의회 해산 선언 직후에 의회, 부왕을 중재하려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동생인 해리 왕자는 서민 출신의 흑인 여성, 그것도 공화주의자와 교제한다는 설정. 그로부터 1년 후 혼혈인 메건과 결혼했으니, 반은 들어맞은 셈이다. 게다가 극중에는 이미 고인이 된 다이애나의 유령이 찰스와 대화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나온 특징을 반영한 것이다.
영화 미스터 빈에서 사진이 짤막하게 나온다. 내용은 빈이 미용실을 가서 머리스타일을 선택하며 나오는데 미용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빈은 3명의 머리를 잘못 자르고 손님들이 항의하러 올때 찰스의 사진으로 얼굴을 가리고 빠져나왔다.
[1] 1997년 사망[2] 현재 주한영국대사관은 왕태자나 황태자가 아닌 “왕세자”로 호칭하고 있다. 이는 번역보다는 번안에 가까우며 엄밀히 말하면 틀린 호칭으로, 원래 동양에서 ‘'''왕세자'''’는 왕국 중에서도 제후국의 왕위 후계자가 받는 칭호이고, 자주국의 후계자가 받는 칭호는 ‘'''왕태자'''’이다. 그래서 명목상 명나라와 청나라의 제후국이었던 조선에서도 ‘왕세자’ 작위를 쓰다가 갑오개혁으로 자주국이 되면서부터는 ‘'''왕태자'''’로 호칭을 바꾼 것이다. 영국도 제후국이 아닌 이상 crown prince를 '왕세자'로 번안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다만 동아시아와 유럽의 왕실 작위 체계를 1대1 대응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으므로, 주한영국대사관의 공식 번역을 따라 '왕세자'로 호칭한다.[3] 미국 역사상 최고령(78세)으로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찰스 왕세자 보다 불과 6살 연상이며, 문재인 대통령은 1953년생으로 찰스보다 5살 어리다.[4] 엄밀히 말하자면 웨일즈 공 작위를 받은 1958년부터이지만,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함으로써 실질적인 왕위 계승 예정자로 여겨졌으므로 73년으로 생각한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 작위를 받은 지는 66년째이다.[5] 이 날 행사에는 1980년대에 홍콩 반환 원칙에 합의한 양국 정상 가운데 마가렛 대처 前 영국 총리는 참석했지만, 중국의 덩샤오핑은 아쉽게도 5개월 전 타계했다. 대신 덩샤오핑은 유언에 따라 화장된 유해가 홍콩에 뿌려졌다. 엘리자베스 2세는 이 때 홍콩에 방문하려고 했지만 고령에 따른 건강 문제가 거론되어서 찰스 왕세자가 대신 온 것이다. 하지만 홍콩 반환 후로 '''27년이나 지난 지금도 엘리자베스 2세는 정정'''하다. 다만 고령일수록 무리를 하지 않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젊을 때야 어디 넘어지고도 멀쩡하지만, 50세 이상이라면 넘어지는 것으로도 큰 상해를 입을 수 있으며, 60대부터는 넘어지는 것이 생명이 오가는 일이 된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6] 영국 왕실의 여름 별장.[7] 스코틀랜드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대표 칭호이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로스시 공작이 대표 칭호이다.[8] 로스시 공작은 스코틀랜드 왕위계승권자의 작위로 스코틀랜드 내에서는 웨일스 대공 작위와 동등한 위상을 가지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에서는 예외적으로 이 칭호가 왕세자의 대표 칭호로 쓴다.[9] 이하 스코틀랜드 공까지 스코틀랜드의 후계로서 받은 것.[10]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하자 장남이자 왕위계승자인 찰스가 자동적으로 받게 되었다.[11] 왕세자에 정식으로 책봉되었다.[12] 다만 찰스 2세는 청교도 혁명으로 아버지이자 전왕인 찰스 1세가 목이 날아가던 적을 경험한 적이 있었는지, 올리버 크롬웰 사후 왕정복고로 왕이 된 이후에도 아버지 같이 절대권력을 행사하지 않고 최소한 귀족, 의회와 협상할 건 협상하면서 국정을 운영하는 등 명군은 아니었지만 유능한 군주였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는 할아버지인 제임스 1세 겸 6세 역시 마찬가지. 다만 크롬웰 정권의 실정으로 의회에 대한 영국 백성들의 민심이 상당히 싸늘해 있었던지라, 찰스 2세도 어떨 때는 백성들의 민심을 등에 업고 의회를 해산하는 등, 나름대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찰스 2세의 아버지인 찰스 1세도 끝이 안 좋아서 그렇지 재위 중에는 엄숙한 사생활로 대중들에게 꽤나 인기가 있는 편이었고, 결정적으로 그를 처형하고 들어선 잉글랜드 연방에 대한 당시의 평가가 시궁창이었기 때문에 아들이 왕정을 복고하면서 명예도 회복되고 재평가도 받았다.[13] 펠리페 2세는 부군을 의미하는 Prince Consort가 아닌 공동 왕 (King)으로 즉위했다.[14] 1978년 5월 15일 타임지로, '''왕이 될 남자'''라고 써있다. 하지만 46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왕세자이다. 그때만 해도 73년 동안 왕세자만 하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몰랐다. [15] 왕자와 왕세자의 자녀들만 프린스(Prince)와 프린세스(Princess) 칭호를 받을 수 있었으며, 왕세손의 자녀들은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장남, 장녀 한정이였다. 공주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작위에 따라서 칭호가 결정되었다.[16] 영국과 프랑스에서 있던 것으로 귀족의 자식을 부르는 칭호이다. 장남은 아버지의 주요 칭호 이외에 부수적인 칭호 중 하나로, 차남부터는 공작, 후작은 lord, 그 이하는 The Honourable로 부르며, 결혼하지 않은 딸은 백작까지는 lady, 그 이하는 The Honourable로 부른다. [17] 아버지 필립 공의 작위 중 하나인 에든버러 공작(Duke of Edinburgh)의 장남으로써의 칭호.[18] His/Her Royal Highness.[19] 통칭 에든버러의 공자 찰스 전하(His Royal Highness Prince Charles of Edinburgh). 원래 "~의 공자/공녀"라는 작위는 공주의 자녀들에겐 주어지지 않는다.[20] 차남 앤드루 왕자는 10살 이상 터울, 삼남이자 막내 에드워드 왕자가 찰스 본인과 16살 차이가 난다.[21] 필립 마운트배튼 공은 찰스를 엄하기로 유명한 고든스타운스쿨에 보냈는데, 섬세한 성격이었던 찰스는 이곳에서 마음 고생을 꽤나 했다고 한다. 또래 아이들에게 엄청난 따돌림에 시달렸다고. 또 필립 공이 찰스에게 수영을 가르치기 위해 물에 던졌는데 찰스가 그 때 익사할 뻔했다는 이야기도 있다.[22] 엘리자베스 2세의 일생을 담은 전기드라마 더 크라운에서도 어린시절의 찰스가 루이 마운트배튼에게 안겨있거나 필립 공에게 꾸지람을 듣고 위로받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23]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대비는 첫 손주이자 큰딸이 낳은 첫 아들인 찰스를 어릴 때부터 매우 귀여워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외손자 며느리 다이애나 스펜서가 사망했을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딸 엘리자베스 2세에게 다이애나의 장례식에 불참할 것을 요구하면서 암묵적으로 손자 편을 들 정도였다. 찰스의 두 아들들인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도 증손주들 중 가장 아꼈을 정도이다.[24] 니콜라이 1세의 손녀이다.[25]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이다.[26] 케임브리지의 공자 조지, 케임브리지의 공녀 샬럿, 케임브리지의 공자 루이[27] 아치 마운트배튼윈저[28] 루이 14세는 너무너무 오래 살아서 '''아들뿐만 아니라 손자까지 먼저 보내서 증손자가 왕이 되었다.'''[29] 그나마도 윌리엄 4세의 경우 빅토리아 여왕의 숙부인 입장이었기에, 형 조지 4세가 후사 없이 죽자 어쩔 수 없이 승계한 상황이었다. 즉 원래부터 왕세자 자격이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30] 아랍 군주국 중에 이런 나라가 하나 더 있다. 쿠웨이트의 사바흐 알자비르 에미르는 1929년생으로 나이 90살이 넘었는데 후계자로 '''이복동생'''인 1937년생으로 나이 80살이 넘은 나와프 알자비르를 지명해둔 상태였고, 사바흐가 사망한 후 나와프가 '''83세'''의 나이로 즉위했다.[31] 이는 찰스가 왕세자가 된 후 2번째로 목격한 일본 황태자의 즉위이다. 첫 번째는 1990년 아키히토 덴노의 즉위.[32] 영국 왕족들이 도덕적 의무를 요구받긴 하지만 언제까지나 전쟁 중에 국민들을 이끄는 등 지도층으로써의 의무이지 개인 사생활에 대해서는 크게 간섭하지 않는다. 설령 불륜을 저지르더라도 만약 일만 잘한다면 큰 문제는 되지 않는데, 찰스 왕세자는 어쨌든 일은 그럭저럭 잘하고 있다. [33] 어차피 스페인 군주정은 '''프란시스코 프랑코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왕정을 한 것'''이지, 왕정이 좋아서 한 게 아니다. 즉 왕도 말이 왕이지, 국민들 지지도가 있을 때만 자리를 보전할 수 있는 사실상 종신 국가원수에 가깝다.[34] 폐암의 원인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흡연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스트레스의 이유는 문서 참고[35] 프린스 오브 웨일스 칭호를 받은 것은 1958년이었지만, 1969년에 공식적으로 서임되었다.[36] 예를 들면 찰스가 어디 해외 순방을 나간 사이를 노려서 그때 하루나 이틀 정도 왕위에 앉혀놓은 뒤, 찰스가 귀국하기 전에 윌리엄을 즉위시키는 방법 같은 게 있다. 실제로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루이 19세가 서류상으로 20분간 왕위에 있은 후 앙리 5세가 즉위했던 사례가 있다.[37] 이 세 나라에서도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인기가 상당했기 때문에 찰스에 대한 반감은 다이애나 비 사망 당시 영국 못지 않게 컸다.[38] 특히 캐나다는 둘째라서 영국의 왕위 계승과는 사실상 무관한 해리 왕자를 캐나다의 독자적인 국왕으로 추대하여 영국과의 동군연합을 청산하자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39] 2017년 9월 9일부로 찰스가 에드워드 7세를 제치고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프린스 오브 웨일스에 재위하게 되었다. 에드워드 7세가 생후 1달 만에 프린스 오브 웨일스에 책봉되었으니, 9살에 책봉된 찰스는 더욱 안습.[40] 하지만 찰스는 카밀라와 다시 재결합했을 때부터 쭉 카밀라만 바라보고 있다. 그 전까진 바람기라기보다는 보통 사람들과 비슷한 정도로 이 사람, 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했던 정도.[41] 여담으로 에드워드 7세의 정부 앨리스 케펠은 카밀라의 증조할머니다.[42] 왕족은커녕 귀족의 딸도 아닌 카밀라가 미래의 왕인 왕세자와 결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겼고, 찰스 왕세자와 사귀면서도 앤드루 파커 보울스(훗날 카밀라의 첫 남편)와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게 드러나 바로 왕실 일가의 공작으로 헤어진다. 결국 카밀라는 앤드루와 결혼한다.[43] 이 장면 이후 극의 전개는 런던을 비롯한 영국 전역에서 찰스에 대한 반발 시위가 일어나는 것으로 흘러간다.[44] 배우는 팀 피곳 스미스(Tim Pigott-Smith), 브이 포 벤데타에서 피터 크리디를 연기한 배우이다. BBC 방영 1달 전인 4월 7일 만 70세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