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휴튼

 


'''크리스 휴튼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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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tingham Forest Football Club'''
''' 이름 '''
'''크리스 휴튼'''
'''Chris Hughton'''
''' 본명 '''
크리스토퍼 윌리엄 제라드 휴튼
Christopher William Gerard Hughton
''' 출생 '''
1958년 12월 11일 (65세) /
영국 잉글랜드 그레이터런던주 런던시 포레스트게이트
''' 국적 '''
아일랜드
''' 신체 '''
170cm
''' 직업 '''
축구선수 (풀백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 선수 '''
토트넘 핫스퍼 (1977~1990)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1990~1992)
브렌트포드 FC (1992~1993)
''' 감독 '''
토트넘 핫스퍼 (1997 / 감독대행)
아일랜드 대표팀 (2002~2003 / 수석코치)
토트넘 핫스퍼 (2003~2007 / 수석코치)
뉴캐슬 유나이티드 (2008 / 감독대행)
뉴캐슬 유나이티드 (2009~2010)
버밍엄 시티 (2011~2012)
노리치 시티 (2012~2014)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2014~2019)'''
노팅엄 포레스트 FC (2020~ )
''' 국가대표 '''
53경기 1골 (아일랜드 / 1979~1991)
1. 개요
2. 선수 시절
2.1. 클럽 경력
2.2. 국가대표 경력
3. 감독 시절
4. 평가
5. 이야깃거리


1. 개요


아일랜드축구선수 출신 감독. 현재 노팅엄 포레스트 FC 감독직에 재임 중이다.
토트넘에서 13년을 뛴 구단 레전드 중 한 명이다.

2. 선수 시절



2.1. 클럽 경력


토트넘 유스 출신으로 197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리그 컵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13년간 토트넘에서 398경기를 뛰며 19골을 득점했다. 특히 토트넘의 1981년, 1982년 FA 컵 우승,1984년 유로파 우승과 1982년 리그 컵 준우승, 1987년 FA컵 준우승에 일조하며 클럽의 레전드 중 한 명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1990년 웨스트햄로 임대 이적 후 완전 이적을 했다. 웨스트햄에서 두 시즌을 보냈고 1991년 팀이 2부 리그서 1부 리그로 승격하는 데 보탬이 되기도 했다. 1992년 웨스트햄을 떠나 브렌트포드로 자유 이적을 했고, 한 시즌을 뛴 후 34살의 나이에 선수 생활에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1979년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53경기에 출장했다. 유로 1988 당시 아일랜드 대표로 팀의 세 경기에 모두 풀타임 출장하였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에도 대표로 발탁되었으나 이땐 후보였고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했다. 국가대표로는 단 한 골을 기록하였는데 1982 스페인 월드컵의 지역예선 대 키프로스전에서였다.

3. 감독 시절



3.1.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image]
'''케빈 키건, 바비 롭슨과 더불어 뉴캐슬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
토트넘과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서 코치직을 수행한 후 09-10 시즌 구단주 마이크 애슐리와의 갈등으로 시즌 시작 전 팀을 떠난 팀의 레전드 출신 감독 앨런 시어러의 후임이 되어 뉴캐슬의 임시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감독 선임 후 첫 세 경기서 2승 1무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후로도 꾸준한 성적을 거두어 8월 이달의 감독상과 11월 이달의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뉴캐슬의 상승세를 이끌자, 구단은 그를 정식 감독으로 선임했다.
당시 애슐리 구단주는 팀을 속히 매각하고 싶어하여 좀처럼 투자를 해 주지 않았는데, 이 와중에도 휴튼은 대니 심슨마이크 윌리엄슨 등 이후 팀의 주요 전력으로 활약하는 선수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보강했다. 휴튼은 빠르게 팀을 안정화시켜 시즌 중반 이후로는 좀처럼 지지 않는 팀을 만들었고, 결국 2010년 4월 6일 당시 3위팀 노팅엄 포레스트카디프 시티와 비기며 1년만의 EPL 자동승격을 확정하였고, 4월 19일 플리머스 아가일를 상대로 2-0 완승을 거두며 시즌 30승 12무 4패로 2부 리그 우승까지 확정지었다. 휴튼은 챔피언십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는 겹경사를 맞이하기도 했다.
한 시즌 만의 프리미어 리그 복귀를 달성한 휴튼은 개막전 올드 트래포드 원정경기를 3-0으로 패배했으나, 홈 개막전인 2라운드 2010년 8월 22일 전전시즌 뉴캐슬에게 강등 티켓을 안겼던 아스톤 빌라를 상대로 앤디 캐롤의 해트 트릭, 케빈 놀란의 두 골과 악동 조이 바튼의 골 등 도합 6-0이라는 스코어의 어마어마한 대승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겨울에는 아스날을 상대로 아스날의 홈 구장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5년 만의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12월 웨스트 브롬위치와의 경기에서 3-1 패배를 당하자 뉴캐슬은 갑작스레 휴튼을 경질하는데, 이는 선수단과 팬들에게 엄청난 반발을 일으켰다. 베테랑 수비수이자 레전드 솔 캠벨(당시 뉴캐슬 소속)은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구단의 선택"이라며 공개적으로 휴튼을 경질한 뉴캐슬을 비난하기도 했다.[1] 구단은 "더 풍부한 경험을 지닌 감독을 필요로 했다." 라는 성명을 발표하지만, 그 경험 많다는 감독이 다름아닌 앨런 파듀 감독인 것으로 밝혀지며 많은 축구인들이 휴튼의 경질을 비난했고 서포터들은 세인트 제임스 파크 외곽에서 휴튼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내는 동시에 구단주 마이크 애슐리에 대한 분노를 외치기도 했다.

3.2. 버밍엄 시티 FC


경질 후 많은 구단들이 휴튼의 영입에 관심을 보였으나 휴튼의 새로운 행선지는 전 시즌 리그 컵 우승팀이자 챔피언십 리그 소속이었던 버밍엄 시티였다. 11-12 시즌 버밍엄은 4위로 시즌을 마치며 프리미어 리그 승격 플레이오프에 참여하지만, 블랙풀에게 3-2 스코어로 패배하며 승격이 좌절되었다.

3.3. 노리치 시티 FC


이후 2012년 6월 7일 휴튼은 폴 램버트 감독이 사임한 노리치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감독 선임 후 첫 경기인 풀럼과의 경기에서 5-0 대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아스날과 맨유와의 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고 토트넘과의 리그 컵 경기에서도 역시 승리를 거두며 잠시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12-13 시즌 휴튼의 노리치는 강등권에 몰릴 뻔도 했지만 시즌 막판 웨스트 브롬을 4-0으로 대파하고 맨시티를 원정에서 2-3으로 제압하는 저력을 보이며 11위로 시즌을 마쳤다.
하지만 13-14 시즌은 중후반으로 가며 점차 고전하며 결국 34라운드에는 강등 바로 직전 순위인 17위로 몰리기에 이르렀고, 구단은 휴튼과 합의 하에 상호 계약 해지를 하며 휴튼에게 작별을 고했다. 이후 노리치는 팀을 수습하지 못하고 강등의 고배를 마시게 된다.

3.4.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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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31일 휴튼은 역시 챔피언십 리그 소속의 브라이튼과 3년 반 계약을 맺고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첫 경기인 브렌트포드와의 경기에서 2-0 완승을 거두며 좋은 출발을 보였다. 강등권에 있던 브라이튼을 잘 추슬러 안정권에 올려놓았고, 다음 시즌인 15-16 시즌에는 준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며 승격이 좌절되었지만 3위라는 성적을 거두며 개인 통산 두 번째 챔피언십 올해의 감독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6년 5월 18일에는 4년 재계약을 맺었고, 이후 16-17 시즌에는 챔피언십 2위로 시즌을 마치며 프리미어 리그 승격을 이뤄냈다.
2018년 2월의 프리미어 리그 감독상을 받았고, 이는 휴튼의 첫 프리미어 리그 이 달의 감독상이자 흑인 혈통 감독의 첫 프리미어 리그 감독상이다. 팀은 시즌 종료 2경기를 남긴 채 잔류를 확정지었고, 휴튼은 시즌 종료 후 브라이튼과 2021년까지 지속되는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2019년 5월 13일, 브라이튼은 후반기 성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휴튼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이후, 플레이오프 순위권에서 멀리 떨어진 것을 책임으로 리 존슨 감독을 경질한 브리스톨 시티의 감독으로 임명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3.5. 노팅엄 포레스트 FC


2020년 10월 6일, 시즌 최악의 시작을 안고있는 노팅엄 포레스트의 새로운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4. 평가


'''감사합니다, 크리스'''

'''누구도 믿어 주지 않았던 우리들을 믿어 줘서'''

- 호나스 구티에레스, 휴튼의 뉴캐슬 감독 경질 당시

멘탈에 문제가 있기로 유명하던 조이 바튼을 뉴캐슬에 있는 동안 단 한 건의 사고도 일으키지 않을 만큼 갱생시킨 것이나[2], 어린 만큼 젊은 치기가 남아 있어서 불안한 멘탈을 가지고 있던 앤디 캐롤을 프로의식이 높기로 유명한 케빈 놀란과 함께 살도록 조치해 감시 겸 멘토링을 통해 훨씬 더 나은 선수로 키워낸 것처럼 선수 관리에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또 감독이 세번 바뀌면서도 강등을 피하지 못해 개판이 되어 있던 08-09 시즌 뉴캐슬의 로커룸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다음 시즌에 바로 승격을 이뤄낸 것이나, [3] 사미 히피아가 강등 직전까지 몰아넣은 브라이튼을 안정권에 올려놓고 다음 시즌에 바로 승격을 바라보는 팀으로 만든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팀 분위기를 수습하고 쉽게 지지 않는 팀으로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요소들 중 하나가 바로 수비 조직인데, 수비수 출신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휴튼의 전술은 강한 수비를 바탕으로 실점을 최소화한 후 앞으로 내어준 공을 공격수들의 개인기량을 통해 골로 연결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를 통해 강팀들을 1-0으로 잡아내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사실 수비가 튼튼한 뻥축구라고도 볼 수 있는데, 공격수가 컨디션이 안 좋거나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공격이 상당히 답답해지는 문제가 있다.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이 노리치 시절. 클럽레코드를 경신하며 데려온 리키 판 볼프스빈켈이 제값을 못해주자 노리치의 성적도 덩달아 떨어지고, 휴튼도 실망스럽게 노리치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엇비슷한 팀이나 상대적인 약팀 상대로는 라인을 올리고 빠른 사이드 전환을 통하여 상대 수비를 흔드는 점유율 기반의 템포 빠른 축구도 할 줄 아는 감독[4]이지만,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거의 항상 하위권 클럽의 감독을 맡은 휴튼이므로 상위 리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다.

5. 이야깃거리


  • 인격이 훌륭한 것으로 유명하다. 인터뷰 하나하나에서도 인성이 묻어나고, 석연치 않게 뉴캐슬에서 경질된 이후에도 마이크 애쉴리 구단주에 대해 직접적인 안 좋은 말보다는 본인을 믿어주고 지지해준 팬들에게 감사했다는 식의 엄청나게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가장 강한 수준의 의견 표출일 정도. 그나마도 보통은 자신에게 뉴캐슬의 감독을 할 기회를 줬던 운영진에게 감사하다는 요지의 발언을 훨씬 많이 했다. 경질 이후 앨런 파듀가 맡은 첫 경기에서 뉴캐슬은 리버풀에게 3-0으로 완승을 거두었는데, 경기 후 인터뷰에서 주장 케빈 놀란조이 바튼이 휴튼 덕분에 이길 수 있었고, 구단의 모든 사람들이 휴튼을 좋아했다는 말을 할 정도로 인망이 높다. 뉴캐슬의 현지 팬들은 런던 출신의 애슐리 구단주를 'cockney mafia'라 부르며 미워하지만 같은 런던 출신의 휴튼은 "Hughton is a geordie"라 부르며 변함없이 지지하고 있으며, 뉴캐슬 시절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도 휴튼이 세인트 제임스 파크를 찾으면 많은 수의 환영의 깃발이 나부낀다.
  • 가나 출신 아버지와 아일랜드인 어머니의 사이에서 태어난 흑백 혼혈이며,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첫 혼혈 대표선수이다. 선수시절에는 급진 좌파 단체인 "Workers' Revolutionary Party"의 잡지에 선수권익 향상에 대해 칼럼을 싣는 등 진보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5] 2017년 4월 인터뷰에서 밝힌 바, 지금도 노동당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등 비록 본인은 과거보다 사회적인 현안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긴 어렵다고 하지만 진보적인 정치적 견해를 유지하고 있는 듯.
  • 2017년 1월 기준 잉글랜드 1~4부리그를 통틀어 세 명 밖에 되지 않는 백인이 아닌 감독 중 한 명이며, 흑인 선수들의 비율과 흑인 감독의 비율에 큰 차이가 나는 것을 지적하며 축구계에 아직 만연한 은연 중의 인종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몇 안되는 감독이기도 하다. 논란이 많은 폴 인스 감독 때문에 묻혔지만, EPL 역사상 두번째 잉글랜드 출신 흑인 감독이다. 게다가 시작하자마자 보여준것 없이 잘렸던 인스 감독과 다르게 상당히 좋은 성적을 유지했었고, 이후 브라이튼의 감독으로 EPL에 복귀했다.

[1] 참고로 휴튼은 토트넘 레전드지만 캠벨은 토트넘 유스출신 주장이 FA로 아스날로 가서 토트넘의 불구대천의 원수이다.[2] 뉴캐슬 팬들은 이를 두고 악당을 악동으로 만들어놨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3]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첫 강등이고, 약팀이 된 뉴캐슬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뉴캐슬 선수들이나 운영진, 팬들 등 악재가 많이 겹쳐 있었기에 강등 당시에 바로 승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많았다.[4] 이를 통해 뉴캐슬은 선더랜드를 5-1로 격파하기도 하고, 아스톤 빌라에 6-0로 압승하기도 하였다.[5] 본인은 나중에 이에 대해 정치적인 성향이라기보다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 말 했을 뿐이라고 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