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슝카 위트코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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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 원주민 수우 족의 추장 '''타슝카 위트코'''(TaSunko-Witko). 이름을 번역하자면 '그의 말이 미쳤다'라는 뜻으로 영어 번역으로는 통칭 '''Crazy Horse'''로 불리며, 한국에서는 영어 이름을 중역하여 '''성난 말''', 혹은 '''미친 말'''로 번역된다. 아메리카 원주민인 수우족의 지파인 테톤 수우족(라코타족)의 오글라라 부족 추장이었고, 현재의 미국 사우스 다코타 지역에서 태어나 1877년 9월 5일에 죽었다.
2. 생애
수우 족이 백인의 대평원 북부 침략에 대항해 싸울 때 가장 뛰어난 전략가이자 결연한 전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1865년 젊은 나이에 이미 몬태나에서 금광지로 향하는 길을 건설하려는 미국의 계획에 저항하는 부족민의 지도자가 되었다.
성난 말은 1866년 12월 21일에 미 육군의 윌리엄 J. 페터먼 대위와 부하 80명을 사살했으며, 1867년 8월 2일에는 4륜마차 전투에 참여했다(모두 와이오밍 준주에 있는 포트필커니 근처에서 일어났다). 또한 1868년의 제2차 라라미 요새 조약(1868)의 원주민 보호구역에 관한 조항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고, 출입이 금지된 들소 떼 지역으로 부하들을 데리고 가서 사냥과 낚시를 하는 한편, 적대 부족과 백인에 대항한 싸움을 계속했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국력 손실을 우려해 원주민과의 평화조약을 맺고 한동안 교전이 중지된다.
그렇게 원주민과 백인과의 싸움이 추춤하는 듯 했으나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874년 다코타 준주의 블랙힐스에서 금이 발견된 것이다. 금을 찾는 사람들이 조약에 인정된 수우 족의 권리를 무시하고,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몰려들었고 미 육군 준장 조지 크룩 장군은 성난 말 일행을 몬태나 준주의 텅 강변과 파우더 강변에 있던 그들의 겨울 거주지에서 내쫓으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언덕 깊숙이 숨어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샤이엔 족에 가담해 1876년 6월 17일에 몬태나 남부에 있는 로즈버드 계곡에서 크룩 장군을 기습공격했다. 공격을 받은 크룩 장군의 군대는 철수했다.
그 뒤에 성난 말은 북으로 가서 리틀 빅혼 강가에 있는 웅크린 황소 추장의 수우 족 본진지에 들어갔다. 여기서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중령이 지휘하는 미 육군 제7기병연대를 섬멸한 리틀 빅혼 전투에 참여하고, 부하들과 함께 다시 진지로 돌아와 이전의 생활을 계속했다.[2] 성난 말은 계속해서 넬슨 A. 마일스 육군대령의 추적을 받았는데, 마일스는 모든 원주민들을 원주민 보호기관과 보호구역에 강제 수용하기 위해 군대를 강화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성난 말의 부족은 추위와 굶주림 때문에 쇠약해졌다.
마침내 성난 말은 1877년 5월 6일 네브래스카 레드 클라우드 원주민 보호소에서 자신의 오랜 적인 크룩 장군에게 항복했다. 로빈슨 요새에 감금된지 몇 개월 뒤인 1877년 9월 5일에 성난 말은 짐승에게 사용하는 덫을 채우려는 경찰관에게 저항하다가 단검에 찔려 살해당했다.
살아생전에 위스키 같이 독한 술을 결코 마시지 않았는데, 이유는 미국인들이 보낸 증류주를 마신 원주민 부족민들이 병들고 쇠약해져가는[4]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불의 물(위스키)은 백인들이 만든 사악한 물이다. 나는 결코 백인들이 주는 나쁜 선물인 불의 물을 마시다가, 내 몸과 부족을 망하게 하지 않겠다."라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북미 인디언들을 망친 증류주"It is a good day to die!"
"죽기에 딱 좋은 날이군"
ㅡ 그의 마지막 유언으로 유명해져서 이후의 미디어물에 자주 인용된다. [3]
3. '성난 말'의 석상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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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흰색 석상이 완공되었을때의 모습을 조각해놓은 축소모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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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얼굴만 완성된 모습
블랙 힐스 산자락 러시모어 산의 미국 대통령 얼굴상에서 27km 떨어진 곳에서 성난 말의 전신상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현재 얼굴은 완성된 상태이며 몸통과 그 밑의 말이 조각중에 있다. 러시모어에서도 잠시 일했던 세계적 조각가 코자크 지올코브스키가 제작하기 시작한 것으로 제작하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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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자크 지울코브스키(1908~1982)의 1970년 당시의 모습
지올코브스키는 러시모어의 미국 대통령 조각상이 완성된지 얼마 지나지않아 원주민 "서 있는 곰"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 편지에는 원주민 탄압의 역사가 구구절절하게 적혀있었며 마지막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이 편지를 읽은 지올코브스키는 서 있는 곰을 만나 그로부터 성난 말에 대해 알게 되었고 자신의 생일과 성난 말이 죽은 날이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올코브스키는 이것이 자신의 정해진 숙명적 사명이라 생각하고 성난 말 조각상을 제작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세워 제작에 박차를 가하지만 조각과정이 그렇게 순탄치 않았다. 조각 작업을 시작할 당시 지올코브스키가 가진 돈은 약 160여만원에 지나지 않았고 인력이 부족한 탓에 30여년이 넘도록 가족과 함께 조각상을 계속 만들어갔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미국 전역에 알려지자 미국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어 자선단체나 여러 업체로부터 후원금을 지원받기도 했다.'''백인들에게 영웅이 있듯이 우리 원주민에게도 영웅이 있다. 우리의 영웅은 "성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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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미국 정부는 과거 원주민 탄압에 대한 반성의 일환으로 후원금 1천만 달러를 제공하려고 했으나 지올코브스키는 일절 거절했다. 그는 '''"미국에 대한 저항정신을 상징하는 성난 말의 조각상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올코브스키는 조각상 제작에 필요한 자금은 관광수입, 기부금, 조각돌을 판매하여 벌어들인 돈으로만 벌충하며 조각상을 완성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세월은 지올코브스키를 도와주지 않았다. 1986년에 지올코브스키는 72세 나이로 노환으로 사망했다. 사람들은 지올코브스키의 죽음으로 이 조각작업 프로젝트가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올코브스키의 가족들이 작업을 이어받아 지금도 이 프로젝트가 계속되고 있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얼굴만" 완성되었다.
전문가들은 이 조각상 완성까지 '''최소 100여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 석상의 제조에 대한 논란도 만만치 않다. 일단 '''성난 말의 유족인 후손들부터가 이 석상의 제작에 반대하고 있다.''' [5]
유족 중에서는 원주민들의 대표로서 석상의 제작을 의뢰한 서 있는 곰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기념비나 석상의 제작에 대한 권리는 엄연히 방계 후손인 유족들[6] 이 가지고 있는데, 서 있는 곰은 유족들에게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자신의 독단으로 성난 말을 조각상으로 남겨달라고 의뢰했다는 것. 거기다 지올코브스키 가족들이 관광 수입을 투명하게 석상의 제조에만 사용했냐 에 대하여 의심하고 있는 시선도 있다. 실제로 15년간 진척이 거의 없으며,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불투명하다.
거기다 가장 큰 문제점은, '''미국 대통령 조각상이든 이 '성난 말' 조각상이든 결과적으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성지를 파괴하는 것은 마찬가지''' 라는 점이다. '원주민 추장을 기리기 위하여 원주민의 성지를 또한번 침범한다'는 셈인데 이 점에서 많은 수우족의 후예들과 유족들은 백인들의 성지 침범과 다를 것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 (조각상을 만들고 있는) 그들은 우리의 문화를 결코 존중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성지인 성스러운 검은 언덕을 깎으라고 허가해준 적이 결코 없기 때문이다. 성지는 조각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며 이는 우리 일족에게 있어 대단한 잘못된 행동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는 성난 말에 대한 모욕일뿐만 아니라, 우리 부족 모두와 원주민 문화에 대한 모욕이다.
[image]한편 미군은 그의 뜻을 기려 M14 소총의 개조판인 M14SE에 크레이지 호스라는 이름을 붙여 쓰고 있다.
4. 게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3: 대전사에서
'''Crazy Horse'''
한국판에서는 '''성난 말'''이란 이름으로 번역되어 나온다. 캠페인 2장에 등장한다. 초반에는 수우 족과 대립하는 입장의 주인공 체이튼 블랙과 대립하지만, 나중에 수우 족의 처지를 이해하고 수우 족 편으로 돌아선 체이튼과 같은 편이 된다. 성우는 안장혁으로 추정.
수우 족을 공격하고 잠적한 윌리암 홈을 찾는 것을 도와주며 마지막 전투인 리틀 빅혼 전투에서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의 부대를 함께 섬멸한다.
게임상 성능은, 캠페인 등장 영웅치고는 영 좋지 않다. 체력 외에는 공격력도 일반 수우 족 대전사와 똑같아서 굉장히 공격력이 낮은 안습한 대접을 받고 있다.[7] 다만 수우 족 대전사의 오오라는 똑같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목소리는 그야말로 간지폭풍. 특히 마지막 리틀 빅혼 전투때 커스터 본대가 도착했다는 보고가 들려온 직후 '''내가 돌아왔다'''라는 말과 함께 '''맵 사방에서 모여드는 수우 족 기병 병력의 위용'''[8] 은 그야말로 보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포스가 흘러나온다.
결정판에서는 등장하지 않으며, 체이튼의 친척인 '깃털모자' 프랭크 삼촌이 같은 역할로 등장한다.[9]
[1] 위의 사진은 진실여부가 의심되고 있다. 타슝카 위트코는 사진찍기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에서는 그의 초상화로 정확히 확인된 사진이 없다며 살해당하는 장면을 기록한 목판화로 대신했다(한국판 418페이지. '미친말의 사진은 확인된 것이 없음. 로빈슨 요새에서 그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아모스 배드 하트 불이 그린 석판화').[2] 이때 성난 말은 맹세한대로 커스터 중령의 심장을 씹었다고 한다.[3] 스타크래프트에서 프로토스의 공중 유닛인 해적선의 등장 대사이기도 하며, 워크래프트2 무적 치트키이기도 하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 병사들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지겨워하면서 자기들끼리 입버릇처럼 말했던 문장이기도 하다. 이후 스타 트렉의 클링온들이 버릇처럼 입에 달고 사는 대사가 되었으며, 최근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자르반 4세의 이동시 대사로 삽입되었다. 신세계에서 이중구가 죽기전 마지막 유언으로 하는 말이기도 하다.[4] 북미 원주민들은 유럽의 백인들이 북미 대륙으로 이주해 오기 전까지는 위스키 같이 독한 술 자체가 없었고, 아울러 유전적으로 간에 알콜 분해 효소가 매우 적기 때문에 그만큼 알콜 중독에 백인들보다 더 취약했다. 나중에 백인들도 이 사실을 알고는 일부러 원주민들을 병에 걸려 죽게 하기 위해서 위스키 같이 독한 술들을 원주민들한테 마구 나눠주었고, 원주민들은 백인들을 증오하면서도 그들이 주는 독한 술에 중독이 되어 죄다 폐인이 되고 말았다.[5] 다만, 성난 말은 딸 하나만 두었는데 아버지가 죽기 전인 1873년 죽어, 그의 직계자손은 없다.[6] 성난 말의 직계후손은 없다.[7] 게다가 보물감시자 공격력이 '''0''' .[8] 진짜로 커스터가 오는 곳을 제외한 모든 맵 가장자리에서 병력이 나타난다. 미니맵에 지원군 도착이 뜨는 것만 봐도 멋지다![9] 유닛 자체는 시나리오 에디터를 이용해보면 더미데이터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