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크륄

 


'''노리치 시티 FC No. 1'''
'''티모시 마이클 "팀" 크륄
(Timothy Michael "Tim" Krul)
'''
<color=#373a3c> '''생년월일'''
1988년 4월 3일 (36세)
<color=#373a3c> '''국적'''
[image] 네덜란드
<color=#373a3c> '''출신지'''
덴 하흐
<color=#373a3c> '''신체 조건'''
193cm, 82kg
<color=#373a3c> '''포지션'''
골키퍼
<color=#373a3c> '''주발'''
왼발
<color=#373a3c> '''등 번호'''
노리치 시티 FC - 1번
<color=#373a3c> '''유소년 클럽'''
ADO 덴 하흐 (1996~2005)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2005~2006)
<color=#373a3c> '''소속 클럽'''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2006~2017)'''
폴커크 FC (2007~2008 / 임대)
칼라일 유나이티드 FC (2008~2009 / 임대)
AFC 아약스 (2016~2017 / 임대)
AZ 알크마르 (2017 / 임대)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2017~2018)[1]
'''노리치 시티 FC (2018~ )'''
<color=#373a3c> '''국가대표'''
11경기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클럽 경력
4. 국가대표 경력
5. 여담
6.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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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리치 시티 FC의 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골키퍼. 셰이 기븐, 스티브 하퍼를 키운 키퍼 명가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키운 실력파 골키퍼. 세이브 능력이 좋고, 특히 승부차기에서의 페널티 킥 선방에는 아주 뛰어난 실력을 보이면서 상대 키커와의 심리전에도 능한 선수이다.

2. 플레이 스타일


큰 키와 빠른 반사신경으로 선방에 일가견이 있는 선수이다. 킥도 나쁘지 않지만, 실수가 잦아 안정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편. 실수가 생기기 시작하면 강점도 흔들리기 때문에 여러모로 애매한 레벨의 골키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크룰이 극찬을 받는 건 바로 페널티킥 선방 능력.[2] 페널티킥 시 키커가 차는 것을 완전히 본 후에 다이빙을 하는 타입인데, 특유의 빠른 반응속도가 겹쳐서 선방률이 굉장한 수준이다. 당장 2014 브라질 월드컵 8강전만 봐도 크룰의 페널티킥 선방 능력을 알고 있던 판 할 감독이 연장까지 교체카드 1장을 아껴가며[3] 다른 필드플레이어가 아닌 골키퍼를 교체했고 크룰은 그에 보답하며 팀을 4강으로 올려놓았다.

3. 클럽 경력



3.1. 덴 하흐 ~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네덜란드 덴 하흐(헤이그) 출신으로, 고향팀 ADO 덴 하흐의 유스팀에서 성장하고 있었으나, 유스 시절에 매의 눈으로 지켜보던 뉴캐슬이 220,000 파운드라는 적지 않은 이적료를 지불하고 뉴캐슬 유스팀으로 모셔왔다.
네덜란드 U-21 대표에서는 꾸준한 No. 1이었다. 하지만 뉴캐슬에서는 좀처럼 출장기회를 잡을 수 없었는데, 셰이 기븐스티브 하퍼라는 거대한 벽이 존재했기 때문. No. 2인 스티브 하퍼조차 셰이 기븐에게 밀려 10년 가까운 생활을 2인자의 자리에서 만족해야했기 때문에, 크륄은 상당히 긴 시간을 기다릴 것이라 내다봤다.
하지만 의외로 데뷔전이 일찍 찾아왔다. 운명의 2006년 2월, 셰이 기븐과 스티브 하퍼가 모두 부상당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출전하게 되었는데, 그냥 경기도 아니고 주전 골키퍼들도 부담감이 막중한 UEFA컵 경기였다. 그것도 상대는 이탈리아의 중상위권 강호 팔레르모.
안 그래도 화려한 수비진을 자랑하는 뉴캐슬이었기에, 팬들은 그냥 반쯤 포기하고 봤는데...
'''팀 크륄은 그날 전설이 되었다.'''
뉴캐슬 팬들은 역시 뉴캐슬산 골키퍼는 꼬꼬마부터 질이 다르다며 환호했다. 하지만 이윽고 기븐과 하퍼가 복귀했기에 리그 데뷔는 없었고, 결국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폴커크와 풋볼 리그 1의 칼라일 유나이티드로 임대를 다니며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2009년 겨울, 기븐이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고, 하퍼가 No. 1이 되면서 크륄은 자연스레 No. 2의 자리까지 올라섰다. 하퍼는 뉴캐슬이 강등당했던 09-10 시즌을 책임졌고, 크륄은 한때 진지하게 이적을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인배 하퍼는 '''나의 선수생활은 머지 않았고 기꺼이 크륄에게 양보할 수 있다.'''라는 발언까지 해주시며 크륄의 마음을 잡아두었다. 그리고 하퍼는 승격한 10-11 시즌 초장부터 큰 부상을 당했고, 그 여파로 기량의 저하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팀 크륄은 No. 1의 자리를 꿰찼고, 10-11 시즌에는 20경기 이상을 소화했으며, 하퍼의 공백을 금세 잊게 만들어 주었다. 시즌 말미에 돌아온 하퍼가 다시 주전 자리를 되찾긴 했지만 크륄로선 프리미어 리그에서의 경쟁력을 입증한 의미있는 시즌이었다.
11-12 시즌 드디어 포텐셜을 터뜨리기 시작한 크룰은 하퍼의 부상이 없음에도 주전으로 출장하기 시작하며 뉴캐슬의 퍼스트 키퍼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크룰의 좋은 활약은 계속되었고, 맨유 원정에서 맨 오브 더 매치로 선정되는 등 맹활약하여 생애 처음으로 A대표 경기에도 출장하게 되었다. 물론 스완지의 미셸 봄, 로마마르턴 스테켈렌뷔르흐 같은 쟁쟁한 선수들로 인해 출장이 잦지는 않았으나,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신들린 선방으로 무승부를 연출하며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리그 전경기에 출장하며 맹활약한 크륄은 뉴캐슬의 돌풍과 유로파 리그 진출에 가장 공이 큰 선수 중 하나였다.
크륄의 강점은 놀라운 반사신경과 긴 팔을 이용한 공중볼 처리. 하지만 미숙한 점도 상당히 많은데, 특히 주발인 왼발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에 골킥이 아쉬울 때가 상당히 많다. 특히 페널티 박스 장악력, 수비조율 같은 문제가 조금씩 개선되어가는 중이기 때문에, 이 킥의 정확도에 대한 문제는 팬들에게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다.
최근의 활약 때문에 토트넘, 첼시 등과 이적 루머가 돌기도 했으나, 앞으로 10년은 책임져줄 수 있는 든든한 유스 출신 골키퍼인 크륄을 팬들은 잃고 싶지 않아하고, 크룰 또한 뉴캐슬에서 오랜 시간 기다려 잡은 기회를 기쁜 마음으로 즐기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이적은 없을 듯 하다. 뉴캐슬을 제 2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는 크륄은 뉴캐슬에서 약혼녀도 만났다고 하며, 13-14 시즌 후 결혼할 생각이라고.
2012-13 시즌 크륄은 마지막 시즌을 앞둔 하퍼에게 1번 저지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어깨 부상에 시달리며 결장도 잦았고, 전시즌만큼의 맹활약을 펼치진 못했다. 팀 성적도 5위에서 16위로 곤두박질.
13-14 시즌 건강하게 돌아온 크륄은 전시즌보다 확연히 좋은 컨디션을 보이며 다시금 팀의 비상을 이끌 준비가 된 듯 하다. 특히 11라운드 토튼햄 원정에서는 인구에 회자될 만한 어마어마한 선방쇼를 펼치며 혼자 힘으로 무실점 승리를 이끌다시피 했다. 이때 선보인 '''14개의 유효슈팅 선방'''(...)은 '''2006-07 시즌 이후 EPL 한 경기 최다 선방'''이라고.
'''그렇게 팀 크륄은 또 전설이 되었다.'''
14-15 시즌 초중반에도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11월에 부상을 당해 2개월간 아웃되었다. 첼시전부터 복귀했지만 후반기 경기력은 크륄이 여태까지 보였던 모습 중 최악을 달리고 있다. 예전이었으면 막았을 슛들을 다 허용하고 골킥의 정확도도 다시 떨어져 버렸다.
15-16 시즌도 변함없이 뉴캐슬의 주전 수문장으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2015년 10월 10일 카자흐스탄과의 국가대표 경기에서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중상을 당하며 그만 '''시즌아웃'''되고 말았다. 시즌을 최하위로 시작한 뉴캐슬은 크륄마저 이탈하며 시즌초부터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고 결국 강등을 피할 수 없었다.
16-17 시즌을 앞두고 크륄의 입지에도 상당한 변화가 찾아올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일단 크륄 본인이 시즌초 복귀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고, 전시즌 크륄의 공백을 메운 세컨드 키퍼 롭 엘리엇이 과반 이상의 지지로 팬들 선정 올 시즌의 선수에 뽑힐 정도로 좋은 활약을 보인 데다가, 크륄의 플레이를 경험하지 못한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이 부임하여 벨기에 주필러 리그 올해의 골키퍼상을 수상한 마츠 셀스를 £5m에 영입하는 등 어느 때보다 치열한 주전 경쟁에 직면하게 되었다.

3.1.1. AZ 알크마르, AFC 아약스 (임대) ~ 뉴캐슬 복귀


그 이후 크륄은 팀과 2018년 여름까지 계약을 연장했고 대신 2017년 여름까지 실러선이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AFC 아약스로 1년 임대를 떠났다. 하지만 부상에서 11월이 넘어가서야 회복되었고 이후 리저브팀에서 몸상태를 끌어올리는데 시간이 걸리면서 반 시즌이 넘어가도록 아약스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있다.
겨울 이적 시장 막판에 AZ 알크마르로 재임대되었다. 임대 기간은 16-17 시즌 종료시까지이다.
그리고 뉴캐슬로 돌아왔는데.. 프리 시즌 베니테스 감독의 구상에서 완전히 밀려났고 급기야 전력외 통보를 받으며 등번호를 받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넘버 1은 오랫동안 크륄의 서브 키퍼였던 롭 엘리엇이 가져갔다. 누구나 인정했던 뉴캐슬의 미래였고 현재였던 크륄의 뉴캐슬 커리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모양새로 접어들어가고 있었다.

3.2.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결국 2017년 8월,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승격팀 브라이튼으로 1년 임대를 가게 되었다. 현재 팀내 주전 골키퍼가 호주 출신의 매튜 라이언인데 과거의 위상과는 달리 이제는 서브 키퍼로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크룰에게 다행인점은 브라이튼의 감독이 사실상 크룰의 1군 정착 시즌이었던 뉴캐슬 09/10시즌의 감독 크리스 휴튼이라는 것. 이적의 성사에 이것도 어느정도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2017년 9월 21일, 크륄은 브라이튼과 1년 계약을 맺고 완전 이적에 성공하여 오랫동안 정든 뉴캐슬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라이언을 넘어서지 못하고 컵 대회에서만 5경기 출장에 그치며 브라이튼과도 작별하게 되었다.

3.3. 노리치 시티


2018년 7월 24일 크륄은 EFL 챔피언십 소속 노리치 시티와 2년 계약을 맺었다.
노리치에서는 부상 없이 팀의 리그 전경기를 주전으로 출장하며 부활의 시동을 걸고 있다. 게다가 팀도 1위를 달리고 있어 프리미어 리그에서 크륄을 다시 볼 날도 머지 않은 느낌이다. 그리고 18/19시즌 노리치 시티가 챔피언십을 우승하며 다시 프리미어리그로 복귀하게 되었다.
19/20시즌 개막전 리버풀 FC전에서 팀과 함께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4대1로 패배했다. 2라운드 친정팀 뉴캐슬을 상대로 클린시트를 작성할 뻔했지만, 종료 1분 전 존조 셸비에게 골을 허용했고 팀은 3-1으로 승리했다.
10라운드 맨유전에서는 거의 혼자 축구했다. 비록 3실점을 하고 팀이 졌지만, PK 선방 두 번에 경기 중 슈퍼 세이브로 시선을 끌었다. 압권은 두 번째 PK 상황에서 여유롭게 관중들 분위기 끌어올리고 선방하고 나서의 포효.
20R 기준으로 68세이브를 기록하면서 EPL 5위를 기록 중이다.
FA컵 5라운드 토트넘 전에서 승부차기가 진행되었고, PK 선방의 달인으로 알려진 크륄은 그 명성대로 트로이 패럿제드송 페르난데스의 킥을 막아내고 승리를 이끌어내며 뉴캐슬 시절 이후 다시 한 번 토트넘에게 악몽을 선사했다. 이 날 경기에서 크륄은 물병에 자신이 예상한 토트넘의 PK 출전 선수와 주발을 적었고, 수시로 물병을 체크하며 관리자에게 지적받기도 하는 등 토트넘 선수들과 심리전을 펼치기도 했다.
이후, 팀은 강등당했지만 팬들이 뽑은 19-20시즌 올해의 노리치 시티 선수 상을 수상했다.

4. 국가대표 경력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네덜란드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주전 골리는 아니었지만 8강 코스타리카전에서 루이 판 할 감독의 작전으로 승부차기를 앞둔 연장 후반전 막판에 주전 골키퍼 야스퍼 실러선 대신 교체 투입되어 2번의 선방으로 네덜란드를 4강으로 올려 보내는 공을 세웠다. 코스타리카 5번 시도 중의 5번 모두 킥 방향을 정확하게 읽어냈다. 이후 4강에서 네덜란드가 아르헨티나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배했을 당시 네덜란드 팬들은 "팀 크륄이 있었다면..." 하며 아쉬워 했다. 당시 교체 카드를 모두 사용해서 크륄을 쓸 수 없었고, 실러선이 한 번도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5. 여담


승부차기로 나올때마다 좋은활약을 보여줘서 승부차기 전문 키퍼 라는 말들이 있다.

6. 같이 보기




[1] 임대 계약 후 1달 만에 완전 이적하였다.[2] PK 선방의 달인으로 알려진 키퍼는 크룰 외에도 디에구 아우베스, 사미르 한다노비치 등이 있다.[3] 이때 당시엔 연장전에 돌입해도 교체카드 한 장을 더 주는 룰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