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튼 대전차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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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ton
조지 S. 패튼의 삶이 여러 번 영화화될 뻔 했지만 '''유족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구타 사건 등으로 이런 저런 물의를 일으켰고 전쟁에 미친 사람으로 그려지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이 한 이유. 결국 부인이 타계한 후 겨우 만들어진 영화 패튼(1970)(한국 정발명은 패튼 대전차군단)은 이런 우려를 극복하고 주연 조지 C. 스콧의 말그대로 신들린 연기로 걸작으로 남았다.[1] 각본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맡았다.[2] 1260만 달러로 만들어져 미국에서 618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도 성공했다.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 시절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영화상에선 패튼의 모습은 전쟁광으로 실제 패튼과 매우 똑같다. 역시 명연기답게... 영화상에서 유럽 전선에 금방 파병되어 지칠때로 지친 아군을 쉴 시간을 줄 것을 요구하던 대대장 대신 대대참모인 소령에게 지휘권을 주면서 닥치고 돌격하라는 명령[4] 을 내린 후 차를 타고 떠날 때, 소령이 멀어져가는 패튼을 가리키며 "대대장님, 저 개새끼가 뒈져버리길 바라는 병사가 5만 명은 됩니다."라고 욕을 퍼붓자, 대대장이 아무 말없이 무언의 공감을 한다든지, 이 전투 이후 미군이 이겼지만 미군 사상자도 장난이 아니었기에 붕대와 피투성이로 미군 부상병들이 곁을 지나면서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가거나, 멀어져가는 그를 보고 미군 사병들이 "저기 보라구! 피와 배짱의 미친 장군이 나간다!", "그래, 우리의 피와 놈의 배짱."[5] 이런 대사들 보면 그가 전쟁터에서 부하들에게 어떤 소리 들었는지 알만하다. 극중 이탈리아에서 한 농부가 당나귀들을 끌고가다 다리 위에서 당나귀들이 말을 듣지 않아 미군 진군이 늦춰지자 직접 가서 그 당나귀들을 전부 쏴죽이고 치워버린 일도 역시 재현했다. 그리고 이것들이 패튼이 실제로 일으킨 '''실화'''다.
전사자가 가득한 전쟁터에 가서는 "하느님 용서하십시오.저는 이게 너무 좋습니다."
여기에서 오마르 브래들리 장군은 '''"선배님과 제가 다른 게 뭔지 아십니까? 전 훈련을 받아서 이 일을 하죠. 하지만 선배님은 전쟁이 즐거워서 전쟁을 하십니다."'''라고 일침을 놓는데, 패튼 장군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의 유족들은 이 영화에 대해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패튼의 손자는 '''"이 영화를 통해서 할아버지를 알게 되었다."'''고 하고, 외손자는 "내가 어릴 적 뵈었던 '''외조부의 모습과 똑같다.'''"고 말했다. 연기력의 승리.
전차로는 그 당시의 전차를 거의 쓰지 않고 M47 패튼, M48 패튼이 미국, 독일 양측에서 등장한다. 드물게 M24 채피[6] , M41 워커 불독, M44 SPG가 나오며, M7 프리스트 자리는 M37 HMC로 대체해 작중 나오는 자주포는 보통 M37이다. 이 장비들은 촬영지이기도 한 스페인의 육군 장비들을 대여해서 촬영했다.
배우 조지 C. 스콧은 베니토 무솔리니의 전기 영화에서 무솔리니 역을 맡기도 했다. 연기를 너무 잘 해서 마치 그가 이런 독불장군 전쟁광들을 흠모하는 사람처럼 오해받는 경우도 있는데, 스콧은 그냥 훌륭한 배우였을 뿐 절대 이런 인물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다. 그는 아카데미 위원회에 자신에게 패튼 역으로 아카데미상을 시상하지 말라고 수 차례 경고했는데, 그럼에도 아카데미가 남우주연상을 그에게 안기려고 하자 시상식에 나타나지도 않아 프로듀서가 대리로 수상했다. 평소에도 "모든 연기는 그 자체로서 독특하며, 이를 서로 비교하고 경쟁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배우는 오직 자기 자신과만 경쟁해야 한다" 등의 말을 하며 아카데미상 자체를 부정하던 그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서도 극장 개봉하고 1975년 7월 26일,8월 2일에 1,2부로 나누어서 주말의 명화로 더빙 방영했다.
1982년에 KBS1에서 한국어로 더빙되어 방영한 바도 있다. 이 때 패튼의 성우는 김병관. VHS도 대우 폭스비디오 클럽을 통해서 1992년에 출시. 이후 1995년 6.25 특집으로 6월 24일 오후 12시 40분에 MBC에서 더빙 방영했다.
Patton
"조국을 위해 죽겠다고 말하지 마라. 그런 자는 조국을 위해 죽겠다는 다른 '''등신새끼'''가 있어야지만 성공한다."
"길에서 여자를 트럭에 태우려고 하는 세 남자 앞에 나서서 총을 겨누고, 여자를 내버려 두라고 그랬댑니다. 여자는 그 중 한 남자의 약혼녀였고, 둘은 승차를 도와준 것 뿐이라는 사실을 몰랐던거죠. 둘시네아의 정절을 지킨 '''돈키호테'''입니다. 그는 현대에 태어난 중세 시대 '''기사'''입니다." - 독일군 정보장교 슈타이거 소령이 상관 알프레트 요들 상급대장에게 패튼에 대해 보고하며.
"이제부터 누구든 각반, 철모, 타이가 없거나, 군화가 광나지 않고 복장을 단속하지 않는 놈이 보이면, '''가죽을 벗겨버리겠다'''."- 아프리카 전선에 부임해 '''개판 5분전'''의 부대상황을 점검하고 나서.
Patton.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의 1970년 영화. 조지 C. 스콧, 칼 말든 주연. 음악은 제리 골드스미스.병사: "장군님! 어디 가십니까?" 패튼: "베를린! 내가 가서 사방에 얼굴이 도배된 새끼를 직접 쏴죽일 거다!"
조지 S. 패튼의 삶이 여러 번 영화화될 뻔 했지만 '''유족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구타 사건 등으로 이런 저런 물의를 일으켰고 전쟁에 미친 사람으로 그려지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이 한 이유. 결국 부인이 타계한 후 겨우 만들어진 영화 패튼(1970)(한국 정발명은 패튼 대전차군단)은 이런 우려를 극복하고 주연 조지 C. 스콧의 말그대로 신들린 연기로 걸작으로 남았다.[1] 각본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맡았다.[2] 1260만 달러로 만들어져 미국에서 618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도 성공했다.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 시절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영화상에선 패튼의 모습은 전쟁광으로 실제 패튼과 매우 똑같다. 역시 명연기답게... 영화상에서 유럽 전선에 금방 파병되어 지칠때로 지친 아군을 쉴 시간을 줄 것을 요구하던 대대장 대신 대대참모인 소령에게 지휘권을 주면서 닥치고 돌격하라는 명령[4] 을 내린 후 차를 타고 떠날 때, 소령이 멀어져가는 패튼을 가리키며 "대대장님, 저 개새끼가 뒈져버리길 바라는 병사가 5만 명은 됩니다."라고 욕을 퍼붓자, 대대장이 아무 말없이 무언의 공감을 한다든지, 이 전투 이후 미군이 이겼지만 미군 사상자도 장난이 아니었기에 붕대와 피투성이로 미군 부상병들이 곁을 지나면서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가거나, 멀어져가는 그를 보고 미군 사병들이 "저기 보라구! 피와 배짱의 미친 장군이 나간다!", "그래, 우리의 피와 놈의 배짱."[5] 이런 대사들 보면 그가 전쟁터에서 부하들에게 어떤 소리 들었는지 알만하다. 극중 이탈리아에서 한 농부가 당나귀들을 끌고가다 다리 위에서 당나귀들이 말을 듣지 않아 미군 진군이 늦춰지자 직접 가서 그 당나귀들을 전부 쏴죽이고 치워버린 일도 역시 재현했다. 그리고 이것들이 패튼이 실제로 일으킨 '''실화'''다.
전사자가 가득한 전쟁터에 가서는 "하느님 용서하십시오.저는 이게 너무 좋습니다."
여기에서 오마르 브래들리 장군은 '''"선배님과 제가 다른 게 뭔지 아십니까? 전 훈련을 받아서 이 일을 하죠. 하지만 선배님은 전쟁이 즐거워서 전쟁을 하십니다."'''라고 일침을 놓는데, 패튼 장군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의 유족들은 이 영화에 대해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패튼의 손자는 '''"이 영화를 통해서 할아버지를 알게 되었다."'''고 하고, 외손자는 "내가 어릴 적 뵈었던 '''외조부의 모습과 똑같다.'''"고 말했다. 연기력의 승리.
전차로는 그 당시의 전차를 거의 쓰지 않고 M47 패튼, M48 패튼이 미국, 독일 양측에서 등장한다. 드물게 M24 채피[6] , M41 워커 불독, M44 SPG가 나오며, M7 프리스트 자리는 M37 HMC로 대체해 작중 나오는 자주포는 보통 M37이다. 이 장비들은 촬영지이기도 한 스페인의 육군 장비들을 대여해서 촬영했다.
배우 조지 C. 스콧은 베니토 무솔리니의 전기 영화에서 무솔리니 역을 맡기도 했다. 연기를 너무 잘 해서 마치 그가 이런 독불장군 전쟁광들을 흠모하는 사람처럼 오해받는 경우도 있는데, 스콧은 그냥 훌륭한 배우였을 뿐 절대 이런 인물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다. 그는 아카데미 위원회에 자신에게 패튼 역으로 아카데미상을 시상하지 말라고 수 차례 경고했는데, 그럼에도 아카데미가 남우주연상을 그에게 안기려고 하자 시상식에 나타나지도 않아 프로듀서가 대리로 수상했다. 평소에도 "모든 연기는 그 자체로서 독특하며, 이를 서로 비교하고 경쟁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배우는 오직 자기 자신과만 경쟁해야 한다" 등의 말을 하며 아카데미상 자체를 부정하던 그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서도 극장 개봉하고 1975년 7월 26일,8월 2일에 1,2부로 나누어서 주말의 명화로 더빙 방영했다.
1982년에 KBS1에서 한국어로 더빙되어 방영한 바도 있다. 이 때 패튼의 성우는 김병관. VHS도 대우 폭스비디오 클럽을 통해서 1992년에 출시. 이후 1995년 6.25 특집으로 6월 24일 오후 12시 40분에 MBC에서 더빙 방영했다.
[1] 197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주연상, 최우수 감독상 등 6개부문을 석권했다.[2] 예전 영화 월간지 로드쇼에서는 지옥의 묵시록 감독인 코폴라가 이런 지옥의 묵시록과 정반대 같은 영화 각본을 쓰다니 믿기지 않는다라고 평한 바 있는데 영화보면 알겠지만 절대로 패튼을 찬양하지 않고 전쟁을 멋지다고 찬양하지도 않는다(...)[3] 그리고 다음날 '''정말로''' 날씨가 맑아졌다. 이 일화는 마찬가지로 '''실화'''다.[4] 사실 나치 독일군도 설마? 그렇게 지쳤는데 금방 공격할까? 라고 생각했고 패튼의 닥치고 공격명령으로 미군이 이겼지만 미군은 그만큼 사상자가 많았었다.[5] 영어에서 배짱(gut)있다는 표현은 직역하면 내장이라는 뜻이다. 즉 피와 사람 내장으로 범벅이 됐다는 뜻도 된다.[6] 유일하게 작 중 시간대와 동일한 전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