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
'''New Hollywood'''
'''American New Wave'''
미국 현지에서는 뉴 할리우드라는 용어를 더 많이 쓴다.
1. 개요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미국의 영화 사조로 1967년 개봉된 아서 펜이 감독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시작점으로 알려져 있다. 로빈 우드는 펜이 이전에 만든 《체이스》(The Chase)를 꼽기도 하지만, 대중다운 파급력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강하다.
2. 상세
기존하는 영화의 관습상 형태에 대해 정면으로 부딪힌 미국의 영화 운동. 당대의 미국은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어닥친 이후이고 미국의 베트남 침략전 강행이라는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미국 문화가 히피들로 인해 엄청난 격변기를 겪던 시기이기도 했다. 젊은 영화감독들은 이전의 스튜디오에서 줄곧 만들어져 온 꿈과 희망을 담은 영화들보다는 미국 사회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영화들이 필요하다고 여겼고 그러한 의식들이 영화에 반영되게 되었다. 이것은 당대에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인권운동, 히피다운 의식, 미국의 베트남 침략전 반대 운동 등으로 대표되는 청년 문화가 영화계에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된다.
이 사람들은 존 카사베츠나 시드니 루멧, 로버트 올트먼, 샘 페킨파, 오슨 웰스 등 뉴웨이브 이전부터 타협하지 않는 자세로 활동하면서 미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영화감독들을 숭상했으며, 이 사람들이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기에 내놓은 영화들도 큰 영향을 미쳤다.
중심 스튜디오로는 영화감독 밥 레이펄슨과 제작자 버트 슈나이더가 설립한 제작사 BBS가 있다.
197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발전한 실험성을 띤 영화들을 통칭하는 ''''뉴 아메리칸 시네마''''와는 다르다.
보통 이 시기의 영화들 중 가장 유명한 영화는, 1967년작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보니 앤 클라이드), 1967년작 졸업, 1969년작 이지 라이더가 있으며 1972년작 대부는 이 시기의 정점에 나온 영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3. 특징
사회 현실을 냉철하고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해피엔딩을 지양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마치 다큐멘터리와 같은 건조한 촬영 방식들이 영화에 도입되기도 했다. 반사회답고 반영웅답고 쾌락주의다운 캐릭터들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경향이 잦았고 그 캐릭터들의 염세주의다운 세계관이 영화에 그대로 투영되어 인생을 어둡게만 보아 슬퍼하거나 절망스럽게 여기는 결말로 이어지는 영화들이 다반사. 덤으로 상당히 폭력답거나 거친 감성의 영화들도 자주 볼 수 있다.
이것은 영화감독의 권력이 가장 정점에 달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들이였으며 영화상 이러한 특성들은 이전의 스튜디오 중심 체제에서 제작된, 관객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던 미국 영화에 사실주의다운 관점을 도입시켜, 미국 영화의 창작상 스펙트럼을 넓힌 새로운 풍조로 파악되게 되었다.
또한 로드 무비라는 장르를 발명하기도 했다. 당시 비트 문학과 히피로 방랑하는 젊은 사람이 많이 늘었는데 이게 존 포드 같은 전통다운 서부극과 네오 리얼리즘, 누벨바그와 결합하면서 하나의 장르로서 탄생했다.
전체에 걸쳐 동부 뉴욕과 유럽 영화의 영향력이 강했던 시기로도 평가된다. 특히 장 뤽 고다르의 영향력이 강했으며, 자크 드미와 아녜스 바르다 부부처럼 아예 잠시 할리우드에서 일하던 누벨바그 영화감독도 있었다.
4. 쇠퇴
미국의 베트남 침략전이 종결되고 미국 각지에서 벌어졌던 반체제 운동이 저절로 시들해졌다. 사회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해지자 뉴웨이브 영화들은 대중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것과 동시에 죠스에서 시작된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공습도 뉴웨이브의 종언에 형편이 바뀔 수 없을 만큼 확실한 영향을 미친다.
뉴웨이브 영화들은 보통 개인이 사회에 대해 극복할 수 없는 환경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마침 록키 시리즈처럼 개인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다룬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스타워즈》가 미증유하는 대히트를 하면서 아메리칸 드림, 영웅주의를 다룬 영화가 부흥하게 되었다. 즉, 전쟁으로 인한 허무감이 끝나고 밝고 희망을 주는 작품들이 인기를 다시 이끌게 된 것이다.
예외로 끝자락에 등장한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마틴 스콜세지, 우디 앨런등 영화감독들은 현재까지도 왕성히 활동할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역사의 중심에 서 있다.
사실 사회 풍조의 변화 말고도 메이저 스튜디오의 사기에 가까운 행각으로 단물만 쪽쪽 빨아먹히고 버려진 케이스도 많다. 대표적인 피해자가 존 카사베츠와 피터 폰다였는데, 둘 다 이지 라이더 붐으로 제작비 지원을 받았음에도 푸대접과 무자비한 편집으로 버림받았다고 한다.
5. 이후의 여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그라지기는 했지만,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는 이후의 미국 인디 영화 조류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이후로도 블록버스터 영화와 대척점을 이루는 할리우드의 중요한 유산으로 남았다.
1960년대까지 남아있던 헤이즈 오피스의 검열 시스템을 벗어나 현재의 미국 영화의 원형이 완성된 시기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가 한창이던 시절에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하던 하길종은 한국으로 귀국 후 화분, 수절, 바보들의 행진 등 이 흐름에 영향을 받은 영화들을 제작했다. 나아가 이장호, 홍파 등과 함께 영상시대라는 동인을 만들어 한국식 뉴시네마 운동을 전개하려는 노력을 했다.
6. 주요 작품들
- 1967년
- 아서 펜 -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 이 사조의 시발점. 바람둥이계의 본좌 워렌 비티와 '차이나타운', '네트워크'로 유명한 페이 더너웨이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 마이크 니컬스 - 졸업 - 1960년대 최고의 영화로 자주 불리는 영화. 사이먼 앤 가펑클이 맡은 주제가 Mrs. Robinson이 매우 유명하며, 두 주연이 멍하니 앉아있는 엔딩씬도 유명하다. 할리우드 명배우의 대명사인 더스틴 호프만의 초창기 작품이다.
- 스튜어트 로젠버그 - 폭력탈옥
- 1972년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 대부 - 뉴 할리우드가 빚어낸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
- 존 휴스턴 - 팻 시티
- 랠프 박시 - 고양이 프릿츠
- 밥 레이펄슨 - 마빈 가든스의 왕
- 1974년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 컨버세이션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 대부 2 - 위의 대부의 후속작. 전작도 위대하지만, 2편은 전작을 넘는 속편이라는 평을 듣는다.
- 로버트 올트먼 - 우리를 닮은 도둑
- 존 카펜터 - 다크 스타
- 스티븐 스필버그 - 슈가랜드 특급 - 스필버그의 초기작으로 이 사조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 앨런 J. 퍼쿨라 - 패럴럭스 뷰
- 존 카사베츠 - 영향 아래 있는 여자
7. 주요 감독
- 아서 펜
- 데니스 호퍼
- 샘 페킨파
- 존 슐레진저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 랠프 넬슨
- 마이크 니컬스
- 스튜어트 로젠버그
- 할 애슈비
- 제리 샤츠버그
- 존 카사베츠
- 시드니 루멧
- 몬테 헬만
- 마틴 스콜세지
- 밥 레이펄슨
- 윌리엄 프리드킨
- 우디 앨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