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 아메리칸 항공 103편 폭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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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3개월 전인 1988년 9월 2일 독일 프랑크프루트 암 마인 국제공항에서 찍힌 사진.
Pan Am Flight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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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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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2월 21일(현지시각) 영국 스코틀랜드의 로커비 상공에서 팬 아메리칸 항공 103편 보잉 747 여객기가 리비아의 테러 집단에 의해 비행 도중 폭파된 사건. 사건 장소의 이름을 따 '''로커비 테러(Lockerbie bombing)'''로도 불린다.
1.1. 사고기
1978년 BBC 다큐멘터리 Diamond in the Sky의 에피소드4 Conquering the Atlantic에 등장했던 Clipper Morning Light(N739PA)시절 사고기. 촬영 당일도 런던-뉴욕간 노선을 운항 중이었다.
사고 당일 팬암 103편에 투입된 기체는 보잉사에서 15번째로 만들어진 보잉 747기 였으며 1970년 팬암에 인도되었다. 등록번호는 N739PA였다. 팬암은 여타 자사 비행기처럼 이름을 붙여줬으며, 원래 이름은 Clipper Morning Light였으나 1980년 Clipper Maid of the Seas라고 개칭했다. 사고기는 1970년 출고 당시 JT9D-3A형 엔진을 장착했으나 3A형 전량에 이루어진 개선 프로그램으로 JT9D-7A형으로 개수되었다. 1987년 10월 국가 비상 상황 시 3일 내로 민항기를 군수기로 전환 가능하도록 하는 CRAF(Civil Reserve Air Fleet)에 준거한 개조가 이루어져 일반 보잉 747-100형이 아닌 메인덱 바닥이 카고기급으로 보강되고 SCD(Side Cargo Door)가 설치된 C-19형이다. 전세계적으로 20여 기의 비행기가 이렇게 개조되었다.
팬암은 2차 세계대전부터 군수물자를 운송하거나 극비임무를 수행했으며 CRAF를 지원하는 회사였다. 팬암 파산 직전 걸프전 CRAF 임무 또한 팬암 재정을 악화시켰을 정도. CRAF 개조 당시 8년에 한번 2~3개월간 주기되어 받는 오버홀(D Check)을 완료했다. C Check 또한 1988년 10월 27일 인테리어 교체를 시행하며 완료했으며 B Check 또한 11월 2일 완료했다. 그 외에도 경점검 2회가 사고 전까지 완료됐다.
한마디로 초기 항공 운항 및 운영 정비를 정립한 팬암의 명성답게 비행기 보수는 제 때 이루어졌으며 오래되어 노후화로 인한 추락을 의심할 정도는 아니었다. 본래 비행기는 정비만 잘 이루어진다면 수십년도 쓸 수 있는 데다가, 18년이라는 기령은 2014년 델타항공의 평균 기령인 17.1년에 근접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사고기의 기록 중 사고가 1건 존재하는데, 1970년 난기류 속에서의 돌발적(Incident) 수준의 사고이며 사망자 부상자 기체손상은 사실상 전무(None)했던 사고이다.
2. 사건 개요
먼저 이 테러를 제대로 알려면 당시 리비아의 통치자였던 카다피의 행보를 알 필요가 있다. 1969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뒤집어 엎은 카다피는 강대국들이 테러라고 부르는 행위는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하는 무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영국에서부터 필리핀에 이르는 세계 전역에서 테러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리비아의 비밀 문서에 따르면 카다피는 이란항공 655편 격추사건에 대한 서방 세계로의 보복으로 팬암 103편을 택한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지만 힘을 얻고 있는 주장은 리비아에 1986년 폭격을 한 것(리비아 공습)에 대한 보복이라는 주장이다.
팬암 103편은 대서양 횡단 노선으로, 독일 헤센 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국제공항을 출발하여[1] 영국 런던의 런던 히드로 국제공항과 미국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경유하여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웨인 카운티 국제공항으로 가는 황금 노선을 운행하는 항공편이었다.사고기는 로스엔젤레스 국제공항를 출발하여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를 경유해 런던 히드로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재급유 및 크루팀 교체를 하였다. 이후 103편으로 55세의 제임스 브루스 맥쿼리 비행기 기장과 52세의 레이몬드 로날드 와그너 부기장, 그리고 46세의 제리 돈 애브릿 항공기관사가 조종하고 있던 항공기는 243명의 승객과 16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스케줄보다 지연되어 18:04분에 푸시백을 하고 18:25분에 이륙한다.
18:58분 비행기는 대서양 관제권[2] 에 들어왔으며 19:02분 관제소에서 대서양 횡단 항로를 허가하였지만 응답이 없었다. 이때 103편은 남부 스코틀랜드의 로커비 상공을 지나고 있을 때며 CVR에는 폭발음이 녹음되고 로커비에선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으며 잠시 후 파편들이 하나 둘 씩 떨어지더니 종국에는 거대한 불덩이가 마을 중심부를 덮치면서 11명이 사망했다. 잔해가 떨어지는 동안 마을 경찰관은 파편을 조사하면서 팬암의 런던 히드로에서 뉴욕 JFK행 비행기 티켓을 발견하게 된다. 같은 시각 런던에서는 재무부 장관의 관저인 다우닝 가 11번지에서 연회를 하고 있었는데 팬암 103편이 레이더에서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어온다. 이에 따라 일부 기자들이 각자의 방송사 및 신문사로 돌아가 상황을 종합해 보는데 이때 로커비에서 군비행기가 주유소에 추락했다는 제보가 이미 들어와 있었다.[3] 전직 ITN 프로듀서에 의하면 처음 이 제보가 들어왔을때는 국가적 재난이라고 보기 어려워 속보를 내보내지 않았지만 각종 정보를 종합해본 결과 보잉 747기가 추락한 것으로 보여져 준비하기 시작해 20:30분부터 ITN을 시작으로 속보를 내보냈다고 한다. 사고기는 구멍이 폭발물로 인한 공진 현상으로 발생하면서[4] 그 크기가 점차적으로 늘어났기에 감압에 의한 사망할 수준의 폐 손상은 없었던걸로 밝혀졌고 폭발물이 폭발 자체로 비행기를 파괴할 정도로 크지 않았기 때문에 폭발에 의한 파편으로 인한 사망 또한 없었다. 대부분 의식이 있는상태로 지상에 충돌한 순간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 조사관에 의하면 당시 사망자들의 일부는 주변의 잔디를 움켜쥔다든지 이동한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기수 부분에서는 스튜어디스가 생존한 채로 농부에 의해 발견 되었는데 신고 후 돌아오자 사망했다고 한다. 실제 적어도 2명이 구급대가 제때 도착 했으면 생존할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되었다.[5] 제한된 자원과 공중분해로 인해 너무 사고기가 방대하게 조각나서 당일날 구조 작업 및 사고 처리는 로커비의 불구덩이와 다른 한 곳에 집중되었다. 로커비에서 가장 가까운 광역응급센터격인 덤프리스 갤러웨이의 A&E에는 사고 소식이 전해지자 응급 서비스가 풀로 가동되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A&E의 센터장이 나와 이미 모두 사망하여 치료할 부상자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아침이 되자 마을이 입은 피해가 정확히 드러났고 마을 중심부에 떨어진 불덩이에 휩싸였던 거대한 파편은 보잉 747기의 날개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날개는 91,000kg(200,000 파운드)의 등유를 싣고 있었고 마을과 부딪힌 즉시 점화되어 부딪힌 집들을 말 그대로 태워버렸던 것이다.
3. 사보타주? 테러?
팬암 103편이 추락한 1988년은 인도항공 182편이 테러로 대서양에서 공중 분해된 지 3년이 지난 후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테러가 주 원인으로 의심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팬암기의 잔해는 마을 중심부를 덮친 날개로부터 비행기의 부서진 콕핏이 발견된 동쪽으로 2km 떨어진 들판까지 이어져 있었으며 승객들의 사체가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비행기는 공중 분해 됐다는 사실이 확실했다. 또한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비행기와의 교신이 아무 경고도 없이 두절되었다.
기체 결함으로 볼 가능성도 적었다. 위의 사고기 항목에 나왔듯이 팬암 103편은 기령이 다소 오래되기는 했지만 충분한 정비를 받았었기 때문에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가능성은 낮았다.
4. 조사
AAIB는 경찰과 군인들을 동원하여 10000개가 넘는 부품에 일일이 태그를 붙이고 컴퓨터 추적 시스템에 입력했다. 위에도 언급했다시피 인도항공 182편은 대서양 속에 가라앉아 있기 때문에 만족할 만한 자료가 모이지 않았기에 비슷한 이 사건 조사는 상당히 신중하게 임했다. AAIB는 또한 그렇게 모은 부품들을 가지고 보잉 747을 재조립했으며 결국 조사관들은 비행기의 앞부분 화물 적재실에 450g짜리 폭탄이 폭발하면서 남긴 20인치(51cm=510mm)짜리 구멍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폭탄은 시한폭탄이었으므로 원래 증거가 남지 않도록 바다에서 폭발하게 시간이 맞추어져 있었으나 팬암 103편의 출발 지연으로 인하여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폭발하게 된 것이다.
조사관들은 수상한 라디오 칩을 발견하면서 이 제품이 도시바의 라디오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 라디오는 당시 도시바의 라디오카세트 상품명인 BomBeat 제품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폭발적인''' 사운드의 라디오라고 홍보하는 제품이었다. 라디오와 같이 담겨있었던 옷은 아무 옷이나 몰타에서 한 상인에게 산 옷이며 담았던 여행가방이 팔레스타인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는 쌤소나이트 가방이란 것도 알아내었다.
폭탄이 최초 출발지인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국제공항에서 실렸다는 것이 확인되어, 공항의 허술한 수하물 검사도 문제로 제기되었다. 테러범은 알 메그리히로 스코틀랜드 법원에서 팬암 103편의 폭파 용의자로 기소한 용의자 가운데 한 명으로 유일하게 유죄가 선고된 인물이었다. 그는 8년 6개월 형을 선고 받고 그리녹 감옥에서 복역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2009년 8월 20일 석방되었지만 2012년 5월 21일 사망했다. 일부 매체에선 알 메그리히가 종신형을 선고 받았으나 건강 악화로 인해 인도적인 차원에서 본국으로 환송되었다고 하니 참고 바람.
2020년에 로커비 사건을 스코틀랜드 고등법원에서 다시 심리하도록 권고했다고 밝혔다.# 같은 해, 미국은 폭파사건에 관여한 리비아 정보기관 요원인 아글리아 모하마드 마수드를 기소하기로 했다.#
5. 보상
5.1. 리비아
리비아는 2002년 5월 29일 팬암 103편의 폭탄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고 270명의 팬암 103편의 희생자들에게 27억 달러를 배상했다.[6]
5.2. 팬암
1992년 미국 연방법원은 수하물 검사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팬 아메리칸 항공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팬암 103편의 폭발은 안 그래도 무너져 가는 팬암에게 거대한 타격을 입혔고 결국 1991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태평양 노선은 유나이티드 항공으로, 대서양 노선은 델타 항공에 넘어갔다.
6. 사고 후 조치
1985년에 329명의 사망자를 낸 인도항공 182편 폭파 사건과 1988년에 발생한 팬암 103편의 사고는 항공 업계에 폭탄 테러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게 되었고 이 사건으로 인해서 연결 항공편의 짐을 싣는 행위가 금지되었다. 항공업계는 승객과 수하물이 일치해야 비행기가 출발하는 규칙을 만들게 되었다. 보딩패스를 확인하여 승객이 탑승하지 않았다면 짐을 죄다 내려서 안 탄 사람의 수하물은 빼고 출발해야 한다. 또한 승객의 짐과 승객이 같이 탑승하지 않을 경우 비행기는 출발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좀 더 자세한 사고 후 조치는 아래와 같다.
6.1. 영국
비록 미국 국적 항공기였지만 실질적인 사고가 일어난 영국은 특이하게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Aviation and Maritime security Act 1990(항공 및 해양 보안 법률 1990)이란 것이 생겼지만 Air Cargo Agent라는 짤막한 항목이 추가된 것을 제외하고는 동종의 사고를 미래엔 어떻게 막을 것인지에 대한 법률이 거의 전무하다. 이 법률을 간략하게 하자면
이 두개의 항목으로 정리할 수 있다.* 수하물 추적 및 검사 능력 보완
* 테러범들을 단죄할 수 있는 법 추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당연히 백번 낫지만 최단시간 내로 보안 시스템을 구축하려 한 미국과는 달리 수하물 추적이나 엑스레이 기기 통과와 승객과 수하물이 같이 항공기에 올라야 한다는 법 두 가지는 1995년이 돼서야 필수가 되었다. 물론 시스템 구축에 시간이 드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1988년의 사고를 일으킨 간접적인 원인과 직접적인 원인을 1995년이 돼서야 막으려 했다는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
6.2. 미국
9/11 당일까지만 해도 미국의 항공 보안법은 물러터졌다는 말들이 많았지만 사실 이 사고를 통해 미국은 상당한 보안 법률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 법률은 Aviation Security improvement Act 1990(항공 보안 개선 법률 1990)이라고 불리는데 미국 본토에 미치는 영향들 중 일부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이외에도 국외에 나가있는 미국인들을 보호하고 팬암 103편의 미국인 사망자들에게 어떤 조치가 취해질 것인지 대략적으로 쓰여 있는데* FAA에 민간 보안부서가 생김
* 수하물을 자체적으로 검사 할 수 있음
* 항공기에 다가갈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검사할 수 있는 권한이 생김
* 엑스레이 기기 도입
* 탑승 전 승객들을 검사하는것이 필수가 됨
* 승객들과 승무원/조종사들을 위한 테러 위협시의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짐
* 보안을 최대화하기 위해 공항 디자인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구축됨
* 보안이 필요한 미국 공항들에 연방 보안 요원이 파견됨(비슷하게 아마 동의나 요청에 따라 해외 공항에도 파견될 수 있음)
* 모든 공항 직원들의 뒷조사(범죄 경력)를 실시함
* 매년 한번씩 연방 의회에 항공 보안에 대해서 리포트를 올려야 함
* 미국 국내 항공기에 위협이 가해질 만한 낌새가 보이면 FBI가 개입할 수 있음
* 보안 시스템 개선에 더 투자함
* 폭발물 탐지기들의 구매와 설치를 법으로 제재함(법으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 구매나 설치를 못한다는 뜻[7]
)* 테러 위협을 받을 경우 항공편을 취소할 권한
* FBI, CIA, FAA 그리고 미국 운수부(Department of Transportation) 사이에 원활한 자료 및 정보 공유
* 항공기에 실리는 모든 수하물(우편, 화물 등등)을 검사할 보안 방법 연구
등등이 있다. 더 자세한 건 위의 링크를 타면 된다.* 미국인들이 관련되어있는 사고엔 연방정부 요원 두명을 해당 사고 지점으로 파견한다.
* 연방정부는 미국인 탑승객들의 시신 수습 의무를 진다.
* 대통령을 설득하여 테러의 피해자들에게 감세로 보상이 가능하게끔 한다.
영국과 비교하면 1990년 10월에 법률이 상정되고 같은 해 11월에 법률이 통과되었다. 실질적으로 1995년에 발효된 영국의 법과는 조금 대조적인 부분. 물론 이 법이 선언되고 13년 후에 생긴 사건을 보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7. 기타
- 항공 사고 수사대에서 소개되었다.
- 김진명의 소설 '한반도'(현재는 10.26으로 개칭)에서는 음모론적 시각을 차용하고 있다. CIA가 다량의 미국제 무기를 이란에 반입되도록 하고, 헤로인을 뉴욕으로 반입하는 시리아 테러범을 비호하고 있었는데, 이를 알게 된 CIA 요원들의 귀국과 폭로를 막기 위해 미국이 시리아 테러범을 통해 팬암 103편을 폭파했으며, 걸프전 때 미국에게 도움을 준 시리아 대신 리비아를 그 배후로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그 내용. 하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 실제 역사와는 다르다. 김진명은 리비아 폭격이 팬암 103편 폭파 사건 이후인 것 처럼 서술하였으나, 리비아 폭격은 팬암 103편 폭파 사건보다 2년 앞서기 때문이다. 오히려 폭격에 대한 보복으로 테러를 저지른 것에 가깝다.
- 당시 한참 경영난에 빠져있던 팬암은 이 사건으로 인해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물론 이전에도 사건 2년 전인 1986년에 벌어진 팬암 73편 납치 사건 등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회사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웠던 회사였으나 이 사고로 결정타를 맞아 재기불능이 된 셈이다.
- 다큐 "Evolution of Evil"시리즈 카다피 편에, 이 사건의 희생자 유가족이 등장한다. 카다피가 죽었다는 뉴스에 가족에게 전화를 하여 기뻐했다고 증언하는 장면이 막판에 나온다.
- 섹스 피스톨즈의 리더 존 라이든 부부가 103편을 타려다가 비행기를 놓쳐 살았다고 한다. 아내 노라 포스터가 짐을 제때 싸지 못해서 비행기를 놓쳤는데, 그래서 에약을 취소하고 둘이 한바탕 싸우던 와중 그 103편이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폭발했다는 소식에 둘 다 기절할 뻔 했다고.# 그 때문인지 그 이후로 라이든 부부는 2020년 현재도 잉꼬부부로 잘 사는 중이다. 왕년의 런던에서 제일 가던 개망나니 자니 로튼이 알츠하이머 투병중인 아내와 함께 해변가에서 프레드 아스테어 노래를 틀어놓고 춤추는 게 요즘 소일거리라고.(...)